엑스칼리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3 아서 왕 연대기 3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의 대부분은 사실상 허구이다. 그렇다고, 역사가 모두 거짓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100% 진실만을 담고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역사' 라는 것은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록과 같은 기록으로서의 역사서 또한 100%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왕들이 과거의 기록들을 지우거나 덧씌우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역사들은 그런 동시대의 여러 기록들을 서로 비교해보고 대조해보며 90%이상 '팩트Fact' 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건들을 위주로 논리적, 인과적인 추정들을 덧붙여 당시의 여러 정황들을 각종 유물과 유적들을 기반하여 '추정'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록이 남아있는 시대를 우리는 '역사시대' 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전. 체계를 갖춘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를 '신화시대' 라고 한다.

 

 '아서 왕'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신화시대의 이야기이다. 실제 영연방의 역사에서도 아서왕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대부분 신화시대의 이야기들은 [신화] 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중국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서왕 이야기는 중국의 하나라 우임금 이야기와 비슷하고, 우리에게는 치우천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아서왕 이야기는 후대까지 민담처럼 널리 알려지게 되고, 아서, 멀린, 란슬롯 같은 인물들 또한 입에서 입으로 넘겨지는 과정에서 점점 구체화가 되었고,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있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 이라고 보면 된다.

 

 [윈터킹]-[에너미 오브 갓]-[엑스칼리버]로 이어지는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는 보다 리얼리티를 추구한 작품으로, 실제 그 시대의 브리튼에 아서왕이라는 인물이 정말로 존재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 충실하게 재현해낸 작품이다. 먼저 고대 브리튼에는 원주민 브리튼족이 있었다. 켈트족이 브리타니아를 침공하여 지배했고, 그 뒤에는 로마가 브리타니아를 지배한다. 로마가 멸망한 뒤에 게르만의 한 일파인 앵글족, 색슨족, 유트족이 정착하고, 후에 노르만족이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고 있던 지역을 지배하기도 한다. 많은 민족들이 뒤섞여있고, 그 민족성 또한 뚜렷해서, 캘트족이 주를 이루는 웨일즈, 스코틀랜드와 앵글로 색슨이 주를 이루는 잉글랜드는 문화와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이 작품은 기원전 4~5세기경, 브리타니아를 지배하던 로마가 멸망한 뒤 앵글, 색슨, 유트족이 브리튼섬에 유입되기 시작한 무렵, 현재 잉글랜드의 남부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다. 버나드 콘웰은 당시 사회는 국가의 개념보다는 족벌의 개념이 컸다. 즉, 일정한 군사를 지니고 있는 족벌 - 군벌들이 각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왕' 은 그런 군벌들의 대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아서는 둠노니아라는 지역을 통치하는 '유서왕' 의 서자로서 정당한 계승권은 없지만 그에게 충성을 서약한 휘하의 전사로써 꾸준한 활약을 통해 충분한 인맥을 쌓아 어느정도 자신만의 세력을 결집한 군벌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진정 리얼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그 시대적인' 삶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비가 많이오고 습한 기후인 브리튼 섬에서 살던 사람들은 적어도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로마인들처럼 목욕과 사우나를 즐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브리튼인들은 식민지배하의 사람들이었고, 로마가 다스리던 런던등과 같은 대도시가 아니었다면 로마의 우월한 문명을 접하지 못했을터다. 오히려 로마가 갑작스레 멸망하고, 브리튼에 살던 로마인들 또한 갑작스럽게 몰락하면서 기술의 정수들 또한 다 가지고 떠났을터다. 런던의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과 목욕탕, 각종 신전들은 자신의 용도대로 쓰였을리 만무하다. 당연히 고대인들의 위생관념이 로만처럼 뛰어났을리도 없다. 브리튼의 원주민들은 로마가 남겨준 유산들을 활용하기보다, 그들이 무너뜨린 자신의 전통과 종교를 일으켜 세웠어야 할테도, 얼마 가지 않아 색슨족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고, 북쪽에서는 호전적이고 독특한 철기문화를 가진 강력한 켈트족의 압박에 맞서야 했을터다. 우리가 전해듣던 원탁과 아발론, 그리고 캐멀롯 같은 성채 요새와 같은 낭만적인 이야기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버나드 콘웰은 보다 현실적으로 이것들에 다가선다. 아서는 로만도, 색슨도 아닌 순수 브리튼인으로 그려진다. 멀린이 보여주는 주술들은 우리 식으로 따지면 무속인들이 보여주는 것들에 지나지 않으며, 브리튼 사람들의 삶 또한 처절하게 그려진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최대의 강점은 리얼한 전투에 대한 묘사이다. 브리튼은 면적이 넓긴 하지만, 척박한 영토가 더 많은 섬나라이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위생상태와 브리튼 섬의 토착 농산물들, 가축들과 농업기술, 축산기술등 삶의 질들을 따져봤을때 인구가 많을 리 없다. 전투라고 하더라도 많아봤자 수백, 과장해도 수천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에서 그려진 조조의 10만대군이 실제로는 1~2만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맥이 닿아있다.

 중국 대륙이기에 그나마 1~2만 정도로 추정할 수 있지, 브리튼섬이라면 수백에서 기천 정도나 가능했을터다.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는 그러한 숫자적인 부분에서 우선 현실적이고, 그려지는 전투 장면 또한 대단히 '그시대적' 이다. 순전히 체력과 완력을 가진 전사들의 숙련도에 따라 승패가 갈라졌을 당시의 전투. 전술이나 전형에 대한 개념도 쐐기형 공격전개나 원형 방패진 정도에 불과했을 터. 작품 속에서 아서가 뛰어난 군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탁월한 기병운용이었다. 보병위주의 전투에서 기병의 숙련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한때 유럽대륙을 제패한 몽골의 군세는 대부분 기병이었고, 몽골인 대부분이 3살때부터 말타기를 즐겼던 기마민족으로서 매우 숙련된 기병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작품 안에서 아서의 승승장구를 납득할 수 있다.      

 

 이러한 전투장면은 물론, 당시 평민들과 귀족들의 삶의 모습들, 의복묘사등 모두 세세하고 현실적이며, 특히 민초들의 삶을 무척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조정래, 김훈등과 같은 뛰어난 역사소설가들이 당대 민초들의 삶을 자주 그리고, 무척이나 리얼하게 그려낸다는 점을 떠올리면 버나드 콘웰이 역사소설가로서 얼마나 뛰어난 식견과 역량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점 들 덕분에 신화속의 아서는 현실, 실제 역사의 한 전장으로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  작품의 화자는 아서가 아니다. 바로 데르벨이다. 데르벨이 나이를 많이 먹은 뒤, 이그레인이라는 왕녀에게 자신이 모신 주군이었던 아서에 대해 술회하는 방식인데,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이 서술방식이 이야기에 더욱 더 리얼리티를 불어넣어 준다. 화자인 데르벨은 물론, 아서와 그의 아내 귀네비어까지 모두가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충분한 결점이 있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데르벨은 이그레인에게 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음유시인(바드) 들이 노래로 만드는 아서왕에 대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꼬집어준다. 불과 한세대만에 아서에 대한 이야기가 그토록 변질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현재의 우리에게 "너희가 알고있는 아서왕 이야기는 다 가짜야!" 라고 직접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여러가지 역사소설로서의 장점들도 좋지만,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다. 아서는 권력욕이 전혀 없지만 자신의 서약에 떠밀려 끊임없이 전쟁터로 향하고, 사랑하는 여인 귀네비어와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집과 작은 농장, 그것만을 바란다. 아서는 둠노니아를 평화롭게 하고, 색슨족을 몰아내고 언젠가는 자신의 권력을 다 내려놓고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유능한 사람이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야심가들이 모여든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신이 하고싶은 일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고, 아내인 귀네비어는 왕의 꿈을 꾸는 여인이었다. 자신이 왕이 될 수 없으므로 남편이나 자식을 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대단히 영특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랜슬럿이나 갤러헤드도 등장하지만, 성배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브리튼의 거대한 솥이 등장하긴 한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대립들 중 하나는 거대한 종교적 충돌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역사와도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꽤나 관심깊었다. 기독교가 전 세계 문화권에 뿌리내린 방식은 거의 대부분 비슷하다.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며 공격적인 종교이다.

"세상에 신은 한분뿐이고, 그건 바로 내가 믿는 신이다. 즉, 네가 믿는 신은 신의 아니다"

초기 기독교는 안그랬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전파된 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한 지역에 들어가서, 그 지역에 있던 토착신을 끌어내어 없애고,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을 개종시키거나 죽여서 없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 종교가 없어지게 된 계기 또한 비슷하다. 우리는 일본의 압제라는 역사적 사건이 하나 더 있긴 했지만,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은 그정도이다.

 이 작품의 두번째 권인 [에너미 오브 갓] 에서 그 과정이 보다 밀도있고 현실감있게 그려진다. 고대 브리튼 또한 다른 많은 문명의 신들처럼 다신교였다. 브리튼의 사람들은 내가 믿는 신과 네가 믿는 신을 인정했고, 네가 믿는 신이 나에게 줄 피해를 막기 위하여 다양한 종교적 관습들이 존재했다. 그것은 기독교의 율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으로, 작품 내에서는 침을 뱉거나, 특정한 표식을 만들거나, 오줌을 누거나 하는 정도였다. 고대인들의 삶은 신과 하나가 되는 삶이었다. 신적인 존재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으며, 그들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관장했다.

 [윈터킹] 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의 군벌의 입지를 다진 아서는 [에너미 오브 갓] 에서 종교적인 대립은 물론 귀네비어의 배신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접하게 되고, [엑스칼리버] 에서 자신을 배신했던 귀네비어를 이해하고 다시 받아들이며, 기독교와 색슨족들의 침입으로 초토화된 둠노니아를 바로잡은 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집 한 채와 앞뜰, 그리고 대장간이 있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얻어낸다.  (물론 그렇게 끝나는 건 아니다.)

 

 버나드 콘웰의 아서 왕 연대기(원제는 The Warlord Chronicles로 '군벌 연대기' 쯤 될터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의 대부분은 사실상 허구이다. 그렇다고, 역사가 모두 거짓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100% 진실만을 담고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역사' 라는 것은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록과 같은 기록으로서의 역사서 또한 100%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왕들이 과거의 기록들을 지우거나 덧씌우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역사들은 그런 동시대의 여러 기록들을 서로 비교해보고 대조해보며 90%이상 '팩트Fact' 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건들을 위주로 논리적, 인과적인 추정들을 덧붙여 당시의 여러 정황들을 각종 유물과 유적들을 기반하여 '추정'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록이 남아있는 시대를 우리는 '역사시대' 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전. 체계를 갖춘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를 '신화시대' 라고 한다.

 

 '아서 왕'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신화시대의 이야기이다. 실제 영연방의 역사에서도 아서왕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대부분 신화시대의 이야기들은 [신화] 로 규정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중국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서왕 이야기는 중국의 하나라 우임금 이야기와 비슷하고, 우리에게는 치우천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아서왕 이야기는 후대까지 민담처럼 널리 알려지게 되고, 아서, 멀린, 란슬롯 같은 인물들 또한 입에서 입으로 넘겨지는 과정에서 점점 구체화가 되었고,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있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 이라고 보면 된다.

 

 [윈터킹]-[에너미 오브 갓]-[엑스칼리버]로 이어지는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는 보다 리얼리티를 추구한 작품으로, 실제 그 시대의 브리튼에 아서왕이라는 인물이 정말로 존재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 충실하게 재현해낸 작품이다. 먼저 고대 브리튼에는 원주민 브리튼족이 있었다. 켈트족이 브리타니아를 침공하여 지배했고, 그 뒤에는 로마가 브리타니아를 지배한다. 로마가 멸망한 뒤에 게르만의 한 일파인 앵글족, 색슨족, 유트족이 정착하고, 후에 노르만족이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고 있던 지역을 지배하기도 한다. 많은 민족들이 뒤섞여있고, 그 민족성 또한 뚜렷해서, 캘트족이 주를 이루는 웨일즈, 스코틀랜드와 앵글로 색슨이 주를 이루는 잉글랜드는 문화와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이 작품은 기원전 4~5세기경, 브리타니아를 지배하던 로마가 멸망한 뒤 앵글, 색슨, 유트족이 브리튼섬에 유입되기 시작한 무렵, 현재 잉글랜드의 남부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다. 버나드 콘웰은 당시 사회는 국가의 개념보다는 족벌의 개념이 컸다. 즉, 일정한 군사를 지니고 있는 족벌 - 군벌들이 각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왕' 은 그런 군벌들의 대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아서는 둠노니아라는 지역을 통치하는 '유서왕' 의 서자로서 정당한 계승권은 없지만 그에게 충성을 서약한 휘하의 전사로써 꾸준한 활약을 통해 충분한 인맥을 쌓아 어느정도 자신만의 세력을 결집한 군벌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진정 리얼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그 시대적인' 삶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비가 많이오고 습한 기후인 브리튼 섬에서 살던 사람들은 적어도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로마인들처럼 목욕과 사우나를 즐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브리튼인들은 식민지배하의 사람들이었고, 로마가 다스리던 런던등과 같은 대도시가 아니었다면 로마의 우월한 문명을 접하지 못했을터다. 오히려 로마가 갑작스레 멸망하고, 브리튼에 살던 로마인들 또한 갑작스럽게 몰락하면서 기술의 정수들 또한 다 가지고 떠났을터다. 런던의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과 목욕탕, 각종 신전들은 자신의 용도대로 쓰였을리 만무하다. 당연히 고대인들의 위생관념이 로만처럼 뛰어났을리도 없다. 브리튼의 원주민들은 로마가 남겨준 유산들을 활용하기보다, 그들이 무너뜨린 자신의 전통과 종교를 일으켜 세웠어야 할테도, 얼마 가지 않아 색슨족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고, 북쪽에서는 호전적이고 독특한 철기문화를 가진 강력한 켈트족의 압박에 맞서야 했을터다. 우리가 전해듣던 원탁과 아발론, 그리고 캐멀롯 같은 성채 요새와 같은 낭만적인 이야기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버나드 콘웰은 보다 현실적으로 이것들에 다가선다. 아서는 로만도, 색슨도 아닌 순수 브리튼인으로 그려진다. 멀린이 보여주는 주술들은 우리 식으로 따지면 무속인들이 보여주는 것들에 지나지 않으며, 브리튼 사람들의 삶 또한 처절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최대의 강점은 리얼한 전투에 대한 묘사이다. 브리튼은 면적이 넓긴 하지만, 척박한 영토가 더 많은 섬나라이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위생상태와 브리튼 섬의 토착 농산물들, 가축들과 농업기술, 축산기술등 삶의 질들을 따져봤을때 인구가 많을 리 없다. 전투라고 하더라도 많아봤자 수백, 과장해도 수천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에서 그려진 조조의 10만대군이 실제로는 1~2만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맥이 닿아있다.

 중국 대륙이기에 그나마 1~2만 정도로 추정할 수 있지, 브리튼섬이라면 수백에서 기천 정도나 가능했을터다.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는 그러한 숫자적인 부분에서 우선 현실적이고, 그려지는 전투 장면 또한 대단히 '그시대적' 이다. 순전히 체력과 완력을 가진 전사들의 숙련도에 따라 승패가 갈라졌을 당시의 전투. 전술이나 전형에 대한 개념도 쐐기형 공격전개나 원형 방패진 정도에 불과했을 터. 작품 속에서 아서가 뛰어난 군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탁월한 기병운용이었다. 보병위주의 전투에서 기병의 숙련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한때 유럽대륙을 제패한 몽골의 군세는 대부분 기병이었고, 몽골인 대부분이 3살때부터 말타기를 즐겼던 기마민족으로서 매우 숙련된 기병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작품 안에서 아서의 승승장구를 납득할 수 있다.      

 

 이러한 전투장면은 물론, 당시 평민들과 귀족들의 삶의 모습들, 의복묘사등 모두 세세하고 현실적이며, 특히 민초들의 삶을 무척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조정래, 김훈등과 같은 뛰어난 역사소설가들이 당대 민초들의 삶을 자주 그리고, 무척이나 리얼하게 그려낸다는 점을 떠올리면 버나드 콘웰이 역사소설가로서 얼마나 뛰어난 식견과 역량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점 들 덕분에 신화속의 아서는 현실, 실제 역사의 한 전장으로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  작품의 화자는 아서가 아니다. 바로 데르벨이다. 데르벨이 나이를 많이 먹은 뒤, 이그레인이라는 왕녀에게 자신이 모신 주군이었던 아서에 대해 술회하는 방식인데,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이 서술방식이 이야기에 더욱 더 리얼리티를 불어넣어 준다. 화자인 데르벨은 물론, 아서와 그의 아내 귀네비어까지 모두가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충분한 결점이 있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데르벨은 이그레인에게 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음유시인(바드) 들이 노래로 만드는 아서왕에 대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꼬집어준다. 불과 한세대만에 아서에 대한 이야기가 그토록 변질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현재의 우리에게 "너희가 알고있는 아서왕 이야기는 다 가짜야!" 라고 직접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여러가지 역사소설로서의 장점들도 좋지만,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다. 아서는 권력욕이 전혀 없지만 자신의 서약에 떠밀려 끊임없이 전쟁터로 향하고, 사랑하는 여인 귀네비어와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집과 작은 농장, 그것만을 바란다. 아서는 둠노니아를 평화롭게 하고, 색슨족을 몰아내고 언젠가는 자신의 권력을 다 내려놓고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유능한 사람이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야심가들이 모여든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신이 하고싶은 일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고, 아내인 귀네비어는 왕의 꿈을 꾸는 여인이었다. 자신이 왕이 될 수 없으므로 남편이나 자식을 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대단히 영특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랜슬럿이나 갤러헤드도 등장하지만, 성배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브리튼의 거대한 솥이 등장하긴 한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대립들 중 하나는 거대한 종교적 충돌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역사와도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꽤나 관심깊었다. 기독교가 전 세계 문화권에 뿌리내린 방식은 거의 대부분 비슷하다. 기독교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며 공격적인 종교이다.

"세상에 신은 한분뿐이고, 그건 바로 내가 믿는 신이다. 즉, 네가 믿는 신은 신의 아니다"

초기 기독교는 안그랬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전파된 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한 지역에 들어가서, 그 지역에 있던 토착신을 끌어내어 없애고,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을 개종시키거나 죽여서 없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 종교가 없어지게 된 계기 또한 비슷하다. 우리는 일본의 압제라는 역사적 사건이 하나 더 있긴 했지만,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은 그정도이다.

 이 작품의 두번째 권인 [에너미 오브 갓] 에서 그 과정이 보다 밀도있고 현실감있게 그려진다. 고대 브리튼 또한 다른 많은 문명의 신들처럼 다신교였다. 브리튼의 사람들은 내가 믿는 신과 네가 믿는 신을 인정했고, 네가 믿는 신이 나에게 줄 피해를 막기 위하여 다양한 종교적 관습들이 존재했다. 그것은 기독교의 율법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으로, 작품 내에서는 침을 뱉거나, 특정한 표식을 만들거나, 오줌을 누거나 하는 정도였다. 고대인들의 삶은 신과 하나가 되는 삶이었다. 신적인 존재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으며, 그들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관장했다.

 [윈터킹] 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의 군벌의 입지를 다진 아서는 [에너미 오브 갓] 에서 종교적인 대립은 물론 귀네비어의 배신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접하게 되고, [엑스칼리버] 에서 자신을 배신했던 귀네비어를 이해하고 다시 받아들이며, 기독교와 색슨족들의 침입으로 초토화된 둠노니아를 바로잡은 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집 한 채와 앞뜰, 그리고 대장간이 있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얻어낸다.  (물론 그렇게 끝나는 건 아니다.)

 

 버나드 콘웰의 아서 왕 연대기(원제는 The Warlord Chronicles로 '군벌 연대기' 쯤 될터다)를 보며 지난해 완간된 이우혁 작가의 [치우천왕기] 가 떠올랐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아서왕에 버금가는 동양의 전사는 바로 치우천왕이다. 이우혁의 '치우천왕기' 역시 뛰어난 작품이지만 애초에 '판타지' 라는 옷을 입고 나왔기에 상대적으로 현실감이 떨어졌다. 만일 치우천왕기가  바로 이 아서왕 연대기처럼 보다 리얼리티를 강조했던 작품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물론 치우천왕기는 애초에 판타지의 세계관 - 왜란 종결자와 퇴마록을 아우르는 거대한 '이우혁 유니버스' 의 안에서 기획된 작품이지만, 이우혁 작가의 뛰어난 필력을 생각해보면 정통 역사소설로 접근해도 괜찮았을 거라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무엇보다 아서왕 연대기가 가지고 있는 '주술' 이라는 것이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것을 보며 더더욱 그랬다.

 언젠가는 우리의 치우천왕기도 아서왕 연대기처럼 수준높고 뛰어난 작품이 되어 등장할 날이 있으리라 본다.

그만큼, 이 작품 [아서 왕 연대기] - [윈터킹],[에너미 오브 갓],[엑스칼리버] 는 탐나도록 멋진 작품이다.  

다)를 보며 지난해 완간된 이우혁 작가의 [치우천왕기] 가 떠올랐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아서왕에 버금가는 동양의 전사는 바로 치우천왕이다. 이우혁의 '치우천왕기' 역시 뛰어난 작품이지만 애초에 '판타지' 라는 옷을 입고 나왔기에 상대적으로 현실감이 떨어졌다. 만일 치우천왕기가  바로 이 아서왕 연대기처럼 보다 리얼리티를 강조했던 작품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물론 치우천왕기는 애초에 판타지의 세계관 - 왜란 종결자와 퇴마록을 아우르는 거대한 '이우혁 유니버스' 의 안에서 기획된 작품이지만, 이우혁 작가의 뛰어난 필력을 생각해보면 정통 역사소설로 접근해도 괜찮았을 거라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무엇보다 아서왕 연대기가 가지고 있는 '주술' 이라는 것이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것을 보며 더더욱 그랬다.

 언젠가는 우리의 치우천왕기도 아서왕 연대기처럼 수준높고 뛰어난 작품이 되어 등장할 날이 있으리라 본다.

그만큼, 이 작품 [아서 왕 연대기] - [윈터킹],[에너미 오브 갓],[엑스칼리버] 는 탐나도록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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