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이재갑 글.사진 / 살림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영국 BBC를 통해 나치 휘하에서 독일군 제복을 생산했던 독일 명품 의류기업인 '휴고 보스' 가 나치 시절,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는 여러 사람들의 끊임없는 국제 법정 투쟁에 의한 결과물로서, 휴고 보스는 당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에게 법적인 보상을 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공을 쏟아야 하게 생겼다.

 이 기사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 침략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전쟁에 동원한 물자의 대부분은 우리 민족에게서 강제로 침탈해간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성장한 군수업체가 바로 미쓰비시나 도요타 같은 자동차 회사들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일본의 기간산업들은 일본이 침략한 국가에서 강제로 끌고온 노역자들에 의해 성장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자기네 정부부터 제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임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성스러운 전쟁이었고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선전하기 바쁘며, 일본 내의 여러 기업들 또한 정부의 비호 아래 강제 노역자들과 피해자들을 외면하기에 바쁘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아픈 과거를 더욱 절절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340여 페이지에 달하는 페이지들에 꼼꼼하게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슬픔과 고통, 절망들이 또렷한 사진으로 보여지고 있다.

후쿠오카를 시작으로 나가사키와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까지 일본 열도의 대부분을 샅샅히 훑으며 우리 조상들을 침탈한 역사의 현장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피를 토하고 죽을때까지 석탄을 캐 날라야 했던 수많은 갱도들, 석탄을 고르고 골라 운반해야 했던 탄광들, 누군가를 쏘아 죽이고 파괴하는 무기를 만들어내는 지하 은밀한 곳의 터널과 군창들.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인간 어뢰로, 가미가제 특공대로 끌려간 선조들의 이야기도 있다. 위에도 언급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쓰비시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등장하고, 우리의 기억속에서도 점차 잊혀져 가는 우토로도 등장한다.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당하면서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정말 너무나 아프고 쓰린 기록들에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것은 단순히 탐욕스러운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분노였고, 무능한 우리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오히려 당시 고통받았던 생존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있는 부근의 일본인들이 나서서 도와주고 있었다. 결국 나라와 이념을 떠나면 다 같은 사람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강제 노역을 한 것은 침략한 국가만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인들도 평범한 국민들 대부분은 피해자이다. 그들도 함께 노역을 했다. 물론, 그 대우는 완전히 달랐지만, 일본인들도 사람인지라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조선인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도와주려 했던 이들도 있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사진들과, 철저하게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실려져 있다. 단순한 감상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완벽한 한권의 논픽션 르포이다. 폰트도 큼직하고, 사진과의 배치도 상당히 잘 되있어서 굉장히 잘 읽힌다. 정말 힘든 내용이지만, 그것들을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미덕은 단순히 독자들에게 일제 침탈기 겪었던 조상들의 고통을 느끼게 해 주는데 있지 않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쟁의 위협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중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를 도발하고, 북한과를 이빨을 맞대고 있는 사이이다. 누구라도 턱에 힘을 주고 물기 시작하면 서로가 살아남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될 터다.

 전쟁이란 그런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님, 형제, 친구들과 강제로 떨어지게 되고,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기도 할 것이며, 하루하루 차라리 죽음을 바랄 정도의 고난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옆에서 함께 숨쉬고, 웃고, 울고, 서로 위로하던 존재가 순식간에 썩어가는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리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제나 그럴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폭탄 한방에 도시 전체가 쓸려버리고, 그 후유증이 나로 끝나지 않고,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전쟁의 공포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정말 너무나 잘 실려있는 책이다.

 

 분명, 과거는 잊어서는 안된다.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반추가 단순히 분노와 슬픔에서 멈춰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않고, 끊임없이 반추해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현재와, 미래에 있다. 과거에 얽매여서는 현재를 살아갈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일본의 행위는 쉽사리 용서해서도 안된다. 일본이 아시아 전체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할 때 까지 싸움을 멈춰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것에만 매몰되어 현실을 보지 못하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워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별개이다.

우리는 일본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용서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과거를 잘 알아야 한다.

이 책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는, 그를 위한 쉽고도 친절한 첫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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