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행성 샘터 외국소설선 6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시간과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었고, 의지가 있었다."
p.299

 초기의 Sci-Fi 라는 장르(이하 SF) 는 굉장히 어려운 장르였다. 초기 SF문학의 선구자였던 아이작 아시모프는 화학박사였고, 천문, 물리, 생물 등 모든 과학에 정통한 학자였다. 아서 클라크 또한 물리학, 수학박사였고, 로버트 A 하인라인 역시 뛰어난 사회학자에 가까웠으며, 어슐러 K. 르 귄 이나 필립 K. 딕, 로저 젤라즈니 같은 그 이후 세대의 작가들도 깊이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작품세계를 펼쳐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하게 순수하게 대중적인 인기에만 초점을 둔 SF 소설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자의 작품들이 철저한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한 보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과학 소설이었다고 한다면, 후자는 서부 활극의 배경이 우주로 바뀌었을 뿐인, 단순한 모험소설에 불과했다. 이런 우주 모험물은 후에 '스타워즈' 와 '스타 트렉' 등의 작품들의 모태가 되고, 'Space Opera'  라는 비아냥 섞인 이름을 갖게 된다. 이후로 SF장르는 '하드SF' 와 '스페이스 오페라' 로 양분된다. 
 SF 장르는 쭉 이런 두 파벌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위에 언급한 SF의 3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뒤를 이어 러브 H 크래프트, 로저 젤라즈니,어슐러 K 르귄, 필립 K 딕, 스타니스와프 렘 등이 하드SF의 줄기를 이어왔고, 그 밖의 수많은 작가들이 과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은 채 스페이스 오페라를 발전시켜왔다. 게임. 영화산업은 필연적으로 대중적인 장르와 시너지를 일으켰고, '스타워즈' 와 '스타트렉' 은 대중들의 인기를 업고 생명력을 쭉쭉 뻗어나갔다. 

 비아냥과 조소가 섞인 명칭이었던 '스페이스 오페라' 는 이제 완전한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비아냥을 받지 않는다. '스타워즈' 는 장르를 넘어 미국 문화의 근간이나 다름없다. '배틀쉽 갈락티카' 같은 TV드라마는 새로이 리메이크되어 '미국 그 자체를 그려냈다' 는 평을 들으며 Sci-Fi 채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스페이스 오페라는 드디어 하드SF와의 융합을 꿈꾼다.
충분한 과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 우주를 누비는 스페이스 판타지. 댄 시먼스나 존 스칼지 같은 작가들이 바로 그 전위에 서있다.  


 내가 좋은 장르 소설을 구별하는 기준은 다른 많은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나 그럴 듯 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이다. 장르 소설도 엄연히 '소설' 이다. '있을 법한 일' 이어야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완전 허황된 발상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서 '일어난 일' 들 조차 허황되기 짝이 없다면 필연적으로 독자들에게 외면당한다. 만약 허황된 발상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런 허황된 일들이 일어나는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 것이다.  

 SF의 거장들이 시대와 장르를 넘어 폭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발상과 이야기들이 전혀 '허황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 너무나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상을 구체화 시켜서 세상을 만들어 내고,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과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가 비아냥과 조소를 들으면서도 꾸준히 발전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스타워즈' 나 '스타트렉', '배틀스타 갈락티카' 등에서는 우주비행선들이 순식간에 쓩쓩 날아가며 수십광년 수백광년을 뛰어 넘는다. 이런 작품속의 우주비행선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아예 시간과 공간의 간섭 자체를 받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작품속에서 중요한 것은 우주선과 우주비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 워즈' 는 수많은 외계 종족들과 광선검과 포스를 사용하는 지극히 동양적인 사고방식의 제다이 들의 이야기이다. '스타 트렉' 은 엔터프라이즈라는 우주 비행선 안에 살고있는 종족과 인종을 초월한 크루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이다. '배틀스타 갈락티카' 는 사일런의 침공에 멸종 위기에 몰린 피난민들을 태운 거대한 노아의 방주이다. 모두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그들은 우주선들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그 세계의 과학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궁금해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근의 '스페이스 오페라' 들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정보의 바다에서 뛰노는 돌고래들과 같은 세대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시간의 상대성 이론을 너무나 쉽게 풀어낸 수많은 리포트들을 검색할 수 있고, 우주의 양자역학을 중딩도 이해할 정도로 재미나게 풀어낸 수많은 리포트들 또한 검색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수많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들. 즉,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론적으로 '어느정도는 가능한'  과학적 가설들도 접할 수 있고, 역사와 신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들도 키보드를 몇번만 두드리면 찾아낼 수 있다. 우리의 선배들이 차곡차곡 쌓아놓은 수많은 지식들을 너무나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의 작가들 또한 이러한 수많은 지식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만든 세계관에 그럴듯한 논리를 적용시켜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시공간을 넘나들 것인가? 그리고 그에 따른 시간과 공간의 간섭은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류는 어떤 식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이며, 관련된 산업과 기술들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그리고 결국 그러한 기술들이 인류 사회에 미치는 궁극적인 영향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인류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존 스칼지 같은 최근의 SF작가들은 결국 이러한 논리들은 너무나 정연하고 '그럴 듯 하게' 풀어낸 성공적인 작가이다.  

 [노인의 전쟁] 시리즈는 바로 그러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SF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존 스칼지는 보다 황당하고 보다 고전적인 발상을 구체화 시켰다. 그것은 바로 [영생] 인데,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인간의 영혼을 새로운 육체로 전이시키는 발상이었다. 이 새로운 육체는 우주 시대에 맞게 새로이 개조된 육체였다. 뼈, 살, 피 모든게 새로웠다. 이렇게 개조함으로써 우주에 나간 인류는 시간과 공간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진다. 나이를 먹지 않는 육체, 바꿀 수 있는 육체에 시간이나 공간은 그 의미 자체가 상실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우주로 나간 새로운 인류는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고, 그 와중에 수많은 외계 종족들과 마주한다. 그 외계 종족들 또한 자신의 행성을 떠나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려고 하는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우주는 놀랄만큼 광대하지만 인간이 살기 적합한 행성은 놀라울 정도로 적고, 공교롭게도 우주에는 인류와 같은 행성들을 원하는 다른 지적 생명체가 가득하다. 이들 중에서 무엇인가를 함께 나눈다는 생각을 지닌 종족은 거의 없다. 인류야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이들 모두는 전쟁을 하고 있다.  p.11 "
는 점이다.    
 

 [노인의 전쟁] [유령 여단] [마지막 행성] 으로 연결되는 소위 [노인의 전쟁]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전쟁' 을 화두로 삼고 있다. 폭력, 욕망, 정치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있는데, 결국 우리의 역사가 거울처럼 투영되어 있다. 특히 3부작의 완결편인 [마지막 행성] 은 '콘클라베' 라는 범 외계 연합과 인류의 마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치밀한 정쟁政爭과 음모들이 섞이고 섞여 상당한 지적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음모위에 음모, '계計 위의 계計' 의 정점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음모와 정쟁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도덕적 잣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그려지는데, 특히 인류가 만든 '우주 개척 연합' 의 치졸한 정치놀음과 황무지 행성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개척민 사회가 대비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 그리고, '주권적 사고' 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안에는 크게 세개의 정치 조직이 등장한다. 

우선 범 외계인 연합인 '콘클라베'. 콘클라베는 우주 종족 전체가 '땅따먹기' 전쟁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종족 자체의 발전이 고착화되어 오히려 퇴보를 시작하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조직된 연합이다. 이미 엄청나게 오랫동안 수백종에 달하는 외계 종족들은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남이 가지고 있는 행성을 빼앗고 빼앗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인류, 즉 '우주개척연맹' 이 새로이 가세한 형국이었다. 이제 막 개척사업을 시작한 인류는 콘클라베가 기치로 삼고 있는 '개척 중지' 라는 현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정치적인 모략으로 콘클라베라는 연합 자체를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콘클라베의 제안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신 개척지 '로아노크'가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제 한 가족이 된 [노인의 전쟁] 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존 페리' 와 [유령 여단] 에서 등장했던 '제인 세이건' 그리고 '조이' 가 있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이 이야기의 주제는 '정치' 이다. 이 모양새는 마치 현재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범 외계종족 연합인 콘클라베는 역시 크게 두개의 파로 나뉘어 주도권을 쥔 싸움을 하는 중이고, 우주개척연맹은 로아노크의 개척민들을 미끼로 도박을 벌이는 중이며 그 안에도 구성원들의 정치적인 파벌싸움이 자리잡고 있다. 존 페리가 책임자로 내정된 로아노크의 개척민 사회 또한 트루히요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개척민 평의회의 주권을 쥔 정치싸움이 은근하게 벌어진다.
 그 안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 정말 손을 뗄 수 없을정도로 재미있다. 음모 위의 음모를 밝혀내 가는 과정도 재미있고, 특히나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개성적이고 사랑스럽다.
 결국 정치를 둘러싼 음모와 음모, 계책과 계책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음모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위태롭게 서있는 존 페리의 인간성 - '진심' . 그것은 무엇이며, 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 거대한 우주 전쟁의 엔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장르 문학은 - 그렇다, 지나치게 따지고 들어가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우주로 나가든, 바닷속으로 들어가든, 핵폭발로 폐허가 되든, 모두 좀비가 되든 인류의 본성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장르 문학이랑 상상력에서 기반한 것이고, 순문학보다 더 '먹어주는' 구라를 얼마나 '완벽하게' 칠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그 안에 인류 문화 전반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의문이나 해답 등이 들어가면 문학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장르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존 스칼지는 그러한 고전 문학의 클래스와 영상 세대에 어울리는 놀라운 상상력과 묘사를 두루 갖춘 작품들을 뽑아 낼 수 있는 재능을 보여준 작가로서, 이 3부작보다 앞으로의 작품들이 더 기대되는 작가임도 사실이다.  

 '정보의 바다, 영상의 세대'  

과연 존 스칼지는 SF장르 소설 매니아들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줄 것인가? 

정말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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