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괴담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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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부터 서울까지 가로지르는 직통버스. 지금은 광역버스라고 부르는 이 버스는 꽤나 깊은 밤까지 운행하곤 했다. 난 일산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 버스를 이용해본 적은 없지만, 친구들이 아주 유용하게 이용하던 기억이 난다. 술에 취한 손님들을 태우고, 야근에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손님들을 태우고, 늦은 시간에 몸을 뉘일 곳으로 향하는 각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태운 심야의 직행버스. 대체로 손님들이 버스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이 버스는 차내 불을 꺼주는 경우가 많고, 손님들고 그것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적막한 버스 안에서, 한 취객이 난동을 피우기 시작한다.

 아, 버스 노선은 조금 다르다. 내가 언급한 버스는 일산과 서울이었지만, 작품 안에 등장하는 버스는 분당 - 서울 강남을 오가는 시외직행버스였다. 그리고 준호가 본 장면은 쉰살쯤 된 취객이 버스기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서울에서 시외로 빠져나가는 자동차 전용도로는 고속도로와 비슷하다. 자동차 전용도로는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도로이기 때문에 러시 아워가 아닐땐 제한속도 가까이까지 엑셀을 꾹꾹 밟아댈 수 있고, 심야 시간대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와중에 버스 기사를 집적대기 시작하는 취객. 버스 안에는 준호를 포함해 중년 남성 한명과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성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중년의 여성이 있었다.

 위기를 느낀 준호는 취객을 말리기 시작했고, 중년 여성과 여대생이 합세하고, 그 와중에 뜻밖의 사고로 취객이 사망하고 만다.

 

 2000년에 출간되었던 '200X 살인사건' 의 개정판인 이 작품은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재익 작가의 유명세도 유명세였지만, 당시 이런 류의 장르소설이 지금만큼 널리 읽히지 않을 때였기 때문일터다. 이야기의 흐름은 빠르고 막히는 곳 없이 시원시원하게 뻥뻥 뚫린다. 이재익 작가는 '속필' 로 유명한데, 그의 그런 스타일과 기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인물 위주로 주요한 포인트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사건들을 연달아 빠르게 터뜨린다. 200여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종장을 향해 치닫고, 조금은 뻔한 반전이 있지만, 꽤나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미덕은 역시,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일터다. 이재익 작가가 그려내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캐릭터들이 한가지 의도를 담은 속도감 있는 이야기의 전개에는 더욱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보다 농밀했다면, 좀 더 디테일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두께가 얇은 감도 없지 않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지나치게 빠르고 생략적이어서 꽤나 아쉽다. 그 밖에도 말이 안되는 부분들이 여럿 띄긴 하지만, 즐기기 위한 소설로서는 크게 부족하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선택의 순간들이 있을까? 아마,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때론 삶의 방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건들과 선택의 순간들이 있을테지만, 때론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과 선택의 순간들이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건과 그런 순간들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의도치 않은 방향에서 다가오는 경우가 대부분일터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라고 했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든 사건 앞에서 이성을 잃고 결국 그것이 그릇된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릇된 선택의 대가는 생각보다 참혹하고 끔찍했으며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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