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의 아폴론 1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나도 소싯적엔 순정만화 꽤 봤다. '만화' 라는 매체를 처음 접했던 건, '국민학교' 시절 까치가 형을 위해 권투를 하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이현세 작가의 처절한 복싱만화였지만, 생일 선물로 받은 돈으로 난생 처음 손에 쥐었던 책은 이케다 리요코의 걸작 '베르사이유의 장미' 였다. 그 뒤로, '불새의 늪' , '굿바이 미스터 블랙', '레드문' 등 대하 서사물에 강했던 황미나 작가의 작품을 탐독했고,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 '리니지' , '파라오의 연인' 등을 접했다. 물론 순정만화의 대명사인 '캔디, 캔디' 나 '유리 가면' 도 빼놓을 수 없다. 당연히 나의 취미는 4살 터울의 여동생이 물려받았고, 우리는 서로 만화책을 권하며 자랐고, 덕택에 나 역시 꾸준히 오랫동안 여중생들이 즐겨보는 순정만화를 함께 즐기게 되었더랬다.(내 동생이 여고생일때 난 대학과 군대에 있었더랬다.) 그 시절부터 어렴풋이 '순정만화 그려보고 싶다!' 는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순정만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내가 능란하게 해 낼 자신은 별로 없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만화의 천국인 일본에서는 '순정만화' 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순정만화 라는 용어는 한국에만 있다. 일본은 만화의 천국답게 구분이 훨씬 세분화 되어있다. 우리가 말하는 순정만화의 원류는 일본의 '소녀만화' 이다. 내가 접했던 많은 순정만화들 중, 소녀만화에 가까웠던 작품은 이미라 작가나 천계영 작가의 작품들이었을 터다. 내가 접했던 황미나 작가나 신일숙 작가의 작품들은 대하 서사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에 엄밀히 따지면 소녀만화와는 거리가 먼 감성의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굳이 '순정만화' 라는 타이틀을 대체하자면 '대하만화' 가 맞을 것이다. 그런 작품들을 보며 '순정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라는 어렴풋한 꿈을 꾸었으니, 애초에 난 방향을 잘못 잡았을 터다. 

 초기의 '소녀만화' 는 '캔디캔디' 처럼 여자 주인공이 환상적인 남자 주인공들과 로맨틱한 경험들을 나누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인공은 언제나 독자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고, 독자들을 쉽게 이입시켰다. 언제나 배경은 중세인지 근대인지 애매모호한 서양풍에 주인공의 이름은 외국이름이었다. 당연히 소녀가 만나는 남성들은 모든 여성들의 영원한 로망인 멋진 귀족이나, 왕자등이 주를 이뤘다. (이런 취향은 한국 순정만화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점점 배경이 현대가 되면서, 여자 주인공이 상대하는 남성들은 멋진 재벌이나 재벌 2세, 연예인 등으로 변하였고, 역시 꾸준하게 '여성들의 로망' 의 왕좌를 쥐고 있는 외국의 귀족들이나 왕족들 또한 간헐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약간 다른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소녀 만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소녀' 여야 했다. 소녀만화가 아닌, 여성을 타깃으로 한 만화라면 응당 그래야 했다. 성인 여성 타겟의 작품들도 대부분 '여성' 들이 주인공이어야 했고, 그들은 독자들의 아바타가 되어 그녀들이 꿈꾸는 환상적인 로맨스를 나눠야 했는데, '남성' 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기의 주 화자가 '남성' 이 되어버린 '소녀만화' . 독자들은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로맨스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위치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소녀만화' 의 주인공 '남성' 들은 굉장히 소녀틱한 감성을 갖게 된다. 그러한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이런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 고등학교가 된다. 주인공 '남성' 은 아직 '소년'. 정체성과 자아가 확립되기 이전이므로 여성스러운 소년들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주인공 소년보다 그 주위의 인물들이 더욱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 주인공 소년은 말 그대로 이야기의 '화자話者'가 되고, 진짜 이야기의 '주인공' 은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나 선배, 후배가 된다. 작가가 여자인 경우,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는 성별을 불문하고 당연히 작가의 성별인 '여성'의 시각으로 친구를 바라보게 된다. 이 때문에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작품 전반에 '야오이' 풍, 혹은 'BL' 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  

 코다마 유키의 두번째 장편 연재작인 [언덕길의 아폴론] 은 니시미 카오루와 '카와부치 센타로' 라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학원물로서, 1960년대 일본의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외딴 시골 학교에 전학온 '차도남' 의 적응기라는 전형적인 오프닝으로 시작되지만, '재즈' 라는 음악과 '1960년대' 라는  시기를 만나 복고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해준다. 물론 코다마 유키의 조금은 투박한 터치도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 위 단락에 언급한 부분 때문에 이 작품은 이야기의 화자인 카오루와 이야기 자체의 주인공인 센타로 사이에 미묘한 야오이의 아우라가 깔린다. 게다가 화자인 카오루는 여성스러운 외모와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여성스러운 남자아이이고, 여성적인 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하기까지 하는 등, 여러가지 부분들이 센타로와 대비되며 동성 친구라기 보다는 이성친구에 가까운 포지션에 자리잡는다. 이러한 동성애 코드를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미묘한 시각을 처음부터 꾸준하게 유지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 전반에 노골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깔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이러한 미묘한 코드가 지나치리만치 평범하고 담담한 에피소드와 전형적인 성격의 주인공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이야기 자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카오루는 엄마 없이 외항 선원인 아빠 손에서 자란 결손 가정의 소년이다. 엄마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간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외항 선원이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은 아빠의 직업이 한 몫 했을터이고, 그 때문에 카오루는 거의 고아처럼 혼자 지냈을터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그 자체. 세상을 상실하는 경험을 가져본 카오루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랐을리는 없다. 게다가 아빠의 직업 탓에 전학도 자주 다녀야 했을테고, 결국 삼촌 손에 맡겨지고 만다. 외로움이 몸에 벤 아이. 하지만, 음악을 통해 감수성 만큼은 날카롭게 벼려온 아이. 결국 카오루의 외로움과 감수성은 예민한 신경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을 터다.
 그리고, 성장기의 정점에서 만난 센타로와 센타로의 소꿉친구인 무카에 리츠코. 불량기가 있지만, 비뚫어지지 않은 센타로와, 그런 센타로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을 것 같은 쾌활하고 발랄한 소녀 리츠코. 이들과의 만남은 분명 카오루의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남자로서, 여 작가가 그려내는 남고생에 대한 로망이 살짝 거슬리기도 하지만, 잔잔하고 담백한 우정과 로맨스 등 충분히 공감할만한 요소가 가득한 수작임은 틀림없다.  카오루와 센타로가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이 기대된다.
청춘은, 그래. 언제나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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