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천왕기 세트 - 전6권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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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통신의 '하이퍼 터미널' 접속음. 팩스의 접속음과 비슷한, 치~~ 하는 잡음과 삐요오 삐요오~ 하는 그 독특한 기계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람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파랗고 까만 바탕 색 모니터 속에 픽셀로 찍혀있던 글자들. 그 안에서 생명력을 얻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수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 단연 뛰어났던 것은 흔하디 흔한 귀신 이야기에, 흔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이 뒤섞인, 뻔하디 뻔한 퇴마 이야기에, 뻔하지 않은 드라마틱한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뒤섞인 이야기 [퇴마록] 이었다. 현실과 비현실, 상상력과 통찰력, 액션과 드라마, 전통과 현대,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들이 절묘하게 비벼진 [퇴마록] 은 한국형 퇴마물의 효시였음과 동시에 한국형 판타지의 출발점이었고, 영화로, 게임으로 변형되며 컨텐츠의 멀티 유즈의 첫 발자욱 - "원소스" 의 위대한 첫 발자욱이자 문단이나 평단의 인정이 아닌, 순수한 대중들의 지지로 빛을 본 첫번째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일본 문화 전면개방과 맞물려 일본 라이트 노벨이나 퇴마물 등 장르소설들이 급속도로 유입되며 한국형 판타지 소설들이 PC통신상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기 시작했고, [퇴마록] 의 엄청난 성공과 더불어 그런 PC통신 출신 장르 소설들이 출판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게다가 IMF 와 함께 소설 대여점이 합법적인 사업 형태로 인정받으면서 소위 "대여점 용" 장르 소설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그 발원지가 바로 PC통신, 그 아버지는 [퇴마록], 즉 PC통신계의 '본좌' 이우혁 작가일 것이다.

 이우혁 작가는 그렇게 자신이 만든 한국 판타지 소설의 필드 위에서 본격적으로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퇴마록 완결 이후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 [왜란 종결자] 가 그것이었다. [왜란 종결자] 는 당시 대여점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당시 한국의 판타지 소설과는 그 궤 자체가 완벽하게 다른 작품이었다. 대여점의 폭발적인 증가세와 더불어 함께 불어났던 한국 작가들의 판타지 소설들은 소위 '일본식' 판타지인 '로도스섬 전기' 나 일본 라이트 노벨인 '슬레이어즈' 의 아류작에 불과했다. 엘프, 정령, 드워프, 호빗 등 유럽식 판타지에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화려한 액션, 그리고 한국 무협지 풍의 무공들이 뒤섞인 만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수준높은 이야기를 짜내는 작가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결국 유럽식을 일본식으로 가공한 라이트 노벨의 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한국 판타지 소설계에 등장한 [왜란 종결자] 는 '역시 이우혁'! 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 했다. 임진왜란이라는 익숙히 알려진 사건 속에 실제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까지 녹여냈던 한국형 팩션(Faction - Fact와 Fiction을 섞은 합성어)이자, 대 유행했던 엘프, 드워프, 오크, 오우거 같은 뻔한 종족들까지 단숨에 배재하고 저승사자, 도깨비등과 같은 우리네 전통 설화에서 이끌어낸 종족들까지. 그리고 사용하는 아이템이나 기술들 또한 철저하게 전통적이었고,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심지어 당시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재해석에 가까운 전개까지!! 진정 새로운 모습의 판타지 소설을 선보였던 것이다.

 당시에 그저 만화적인 상상력만으로 맘대로 아무렇게나 글을 써대던 수많은 판타지 작가들에게 '판타지 작가로서의 길' 을 정확히 제시한 작품이었다. '대여점' 은 신인 작가들에게는 최소한의 판매부수를 보장해주는 장점인 동시에, 중견 작가들에게는 대여점 이상의 책을 팔 수 없는 단점이기도 했다. 때문에 작가들은 단순히 누적부수를 늘려 수입을 늘리기 위한 글을 쓰는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 등장한 [왜란 종결자] 는 철저한 자료조사와 역사고증, 그런 역사적 사건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폭넓고도 설득력 있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대로 짜여진 판타지의 틀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왜란 종결자] 는 바로 이 작품을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았음 밝혀지며, 수많은 장르소설 팬들을 흥분시켰으니, 바로 [치우천왕기] 이다. 이 리뷰를 적고 있는 내가 수년 전, 군대 가기 직전까지 정말 열심히 읽었던 작품 [치우천왕기] !!

 당시 한국 판타지 문학계는 [왜란 종결자] 이후로  작가들 사이에서도 일대 격변이 일었고,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기 위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나, 몇몇 작품들을 제하고는 사실 습작에 무방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그 와중에 등장한 [치우천왕기] 는 그야말로 한국형 판타지의 종결자였다. 역시 치밀한 사전조사와 엄청난 현장고증과 역사고증, 마치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것 같은 치밀한 인물과 상황묘사, 배경묘사들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5권인가 6권까지 읽어보고 군대에서 전역했으나, 치우천왕기는 완결이 나지 않았다. 후에 PC통신에서 열광했던 독자들이 그대로 넘어온 모 온라인 동호회와 각종 뉴스를 통해서 이우혁 작가의 송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결국 치우천왕기는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완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전에 다른 책의 리뷰를 통해 살짝 언급한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볼 때 '좋은 작품' 을 가늠하는 기준은 단연 '세계관' 이다. 물론 판타지 소설 또한 '소설' 이기 때문에 소설적 가치들도 따지지만, 특히 판타지에는 '세계관' 이라는 요소를 덧붙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훨훨 날아다닌다고 치자. 이들이 어떤 원리로, 어떤 방법을 통해 어떻게 날아다니며, 날아다니는 사람들과 날아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런 것들이 설득력이 충분하냐는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훨훨 날아다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분명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모습일 것이며, 사람들의 생각, 사상, 습관 또한 완벽하게 다를 것이다. 어쩌면 헤어스타일, 피부 색, 감각기관, 팔다리, 손가락, 발가락 갯수가 다를수도 있다. 어쩌면 네 발로 기어다닐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현재 모습으로 진화한 가장 큰 요인은 '직립보행' 때문이므로. 가느다란 뼈대 두개로 물이 가득한 가죽 주머니를 오른쪽으로 던졌다, 왼쪽으로 던졌다 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뇌의 능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진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이 직립보행 할 필요 없이 날개로 파닥파닥 날 수 있었다면, 혹은 날개 없이 붕붕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면, 지금 모습처럼 진화했을리가 없다. 지금 우리와 같은 모습이면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에 걸맞는 타당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마법을 쓰는 세상이라면 역시 사람들의 생각, 사상은 물론 사회의 모습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 바로 '세계관' 이고, 그것들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느냐가 바로 판타지 소설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그런 기본적인 철저한 세계관이 정립되어있지 않다면, 그 작품은 판타지 소설이 아닌 그냥 상상력을 지맘대로 끼적댄 낙서에 불과할 따름이다.

 

 하물며,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파고 들어가는 작품이라면 어떨까? 역사의 반은 허구와 상상력으로 이루어져있다. 게다가 문자가 발명되기 전, 문명시대 이전 시대는 빈약한 후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중국 역사에서도, 하-은-주 시대는 전설시대로 분류되고, 비슷한 시기의 우리 역사인 고조선 시대 또한 그렇게 접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우혁 작가는 아예 '판타지 소설' 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활용해 그 시대를 풀어냈다. 하지만, 역시 대가답게 철저한 현장 고증과 자료 검증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배경을 그려냈고, '신수' 와 '주술' 이라는 개념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그려냈다. 그 뿐아니라, 그 이후 시대에서는 왜 신수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고, 주술의 개념이 변화했을까에 대한 부분까지 짚어냈다. 그런 디테일한 부분들이 판타지 소설이지만 세계관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뚜렷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뚜렷한 인과관계를 통해, 세계관은 작가의 전작인 [왜란 종결자] 를 아우르고, 심지어 '맥달' 이 등장하기도 했던 [퇴마록] 의 세계까지 아우른다. 즉,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현실 세계까지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 있는 '현실적인' 세계관이 완성된 것이다.

 

 작품의 초반부는 작가가 개정판 서문에도 밝혔듯, 지나치게 친절하게 세계관을 설명하려 한 부분이 존재한다. 발귀리 선인과의 만남에서는 8계에 대한 설정이 장황하게 설명되서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이지만, 그 부분이 결국 [왜란 종결자] 의 세계관을 아우르기 위한 선행작업이었던 셈이다. 초반부를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치우천과 치우비로 불릴 희네와 나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치우천과 치우비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대하 소설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즉, 판타지 소설이지만 허무맹랑하게 주인공들이 눈 앞에 시련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는 것이 아니다. '정립' 작가가 그려냈던 '광개토 대제' 처럼, 그리고 이문열 작가가 그려냈던 '대륙의 한' 의 근초고왕처럼 치우천과 치우비 형제는 죽을동 살동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려가며 차근차근 시련을 이겨낸다. 이야깃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시련이 크면 클수록 독자들은 더욱 깊이 이입된다. 우리가 영웅 서사의 원형으로 잘 알고있는 '니벨룽겐의 반지' 의 지그프리트를 예를 들 필요도 없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홍길동만 봐도 그가 겪는 시련은 평범한 것을 넘어선다. 서자로 태어나 거대한 사회적, 신분의 벽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새어머니라고 부를수도 없는 아버지의 부인에게 목숨을 위협받는다. 가족도 배경도, 친구도 잃고 혼자가 되는 홍길동. 광개토대제나 근초고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맨몸으로 꿋꿋하게 일어나서 악한 길로 빠지지 않고, 선한 길을 걸어가서 끝끝내 자기 희생적인 신념을 지켜내는 인물, 그를 우린 영웅이라고 부른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치우천과 치우비 형제 또한 그러한 선천적 시련과 후천적 시련들을 하나 하나 이겨나간다. 그러한 끊임없는 시련에 괴로워하고, 수많은 위협과 유혹들, 그리고 수많은 의문, 의문, 의문들. 치우천과 치우비 형제는 때론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버려가면서도 끝끝내 나아간다. 나아가고, 나아가고. 너무 쉬운 길이 있어 보임에도, 피눈물을 흘리며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어렵고 험한 길을 꾸역꾸역 헤쳐나간다.

 

 현실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눈 앞의 시련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 "나에게 왜 이런일이??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왜 나에게만?? 저 사람은 편하게 살고있는데, 왜 나만 괴롭고 어려워야되?" 너무나 쉽게 그렇게 단정짓고, 그러한 시련들로부터 피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리석은 방법인 '죽음' 을, 역시 너무나 쉽게 택한다. 그러한 정신적 나약함을 세대 전체로 돌릴수도 있을 테지만,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어느 세대에나 많았을터다.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 강인함을 키울 수 있는 너무나 쉬운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독서일 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도 과거부터 전해오는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흑인으로 태어나 인종차별을 당해왔고, 게다가 여성이었기에 성차별도 당했으며, 10대때 강간당하고 유산까지 겪었던 그녀가 수많은 사람들의 멘토로 인류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역할은 단연 '독서' 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련에 빠진 민족을 위해 역사속 영웅들을 세상으로 내보냈다. 그렇다. 바로 역사와 역사속 영웅들을 사람들에게 '읽힌' 것이었다. 이러한 위인전들은 한 사람이 맨몸으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과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시련에 처했을때,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거대한 의문이 생겼을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고통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회비용' 이란 것은 단순히 경제활동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불교에는 '인과율' 이라는 것이 있어서, 지금 내가 하는 이 악행은 언젠가 반드시 배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고 말한다. 불교 뿐 아니다.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 나의 행동은 언젠가는 반드시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원인과 결과. 그것은 세상 모든 이치를 관통하는 진리이다. 치우천과 치우비는 '신념' 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불했는가? 그리고, 자신이 지켜내야 할 '신념' 과 자신이 지불해야 할 그것의 가치를 어떻게 비교했는가? 더 큰 것을 위해, 어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 그 찰나의 선택에서 어떤것을, 어떤 마음으로 선택했을까.

 

 이우혁 작가가 [치우천왕기] 를 구상할 때,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그 당시 이미 최고의 작가였고, 엄청난 인세를 벌어들이는 부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수년간 곰팡내 나는 고서적들을 뒤진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이미 다른 작가들은 상상력만으로도 별의 별 말도 안되는 소설들을 쏟아내며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고, 이우혁 작가 또한 검증된 스토리 텔러로써 아무 얘기나 써도 독자들이 달라붙었을텐데, 왜 그렇게 힘들게 자료 조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인가?? 물론 그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겠지만, 그 욕심은 '한국의 영웅을 부활시킨다' 는 명제로부터 시작된 것일터다.

 '영웅' 은 어디에나 필요하다. 오죽하면 미국이라는 거대 사회와 거대한 문화의 주춧돌이 '슈퍼맨' 이었을까. 아직도 수많은 미국의 어린이들은 '슈퍼맨' 을 가장 닮고 싶은 위인으로 손꼽는다. 아이들은 단지 슈퍼맨처럼 날고싶다거나, 행성을 옮길만한 힘을 갖고싶어서 쫓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슈퍼맨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닮고싶어한다. 어떠한 적이 나타나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희생정신, 아무리 사악한 적도 인권과 생명을 존중해주는 자애심, 신념을 가진 행동에 한 톨 부끄러움이 없는 당당함. 완벽히 창조된 '캐릭터' 이지만, 슈퍼맨은 이야기를 통해 생명력을 얻고, 미국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 완벽히 창조된 '캐릭터' 에 숨을 불어넣고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바로 '이야기' 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디테일하고 인과관계도 뚜렷하며 너무나 잘 짜여진 '이야기'. 슈퍼맨은 인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들의 세상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고뇌를 겪고 시련을 겪는다. 인간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유혹에 시달린다. 그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한 인간이 지구의 정복자가 아닌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 과연 성장기 때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어떤 친구들과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욕망을 어떻게 제어했고, 차별을 어떻게 극복했으며, 나쁜 유혹들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이런 수많은 디테일함들이 수십년동안 꾸준하게 쌓이면서 '슈퍼맨' 은 한 '사람' 으로 각인되어 수많은 미국인들의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스포츠 스타들에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맨몸으로, 수많은 부상들과 위협을 이겨내고 거대한 상대를 당당하게 맞서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영웅을 본다. 리오넬 메시가 호르몬 이상증후군을 이겨내고 세계 최정상에 우뚝 서는 모습, 유럽에서 인종 차별과 부상을 끝끝내 이겨내며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각광받는 박지성의 '이야기' 를 통해서 말이다. 이우혁 작가는 우리에게 바로 그런 영웅이 이미 수천년 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보여주고 싶어했고, 그러한 '디테일' 을 획득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고, 결국 이렇게 우리 눈 앞에 '치우천왕' 을 보여주었다.

 동북공정에 맞선다는 단편적인 해석도 좋다. 그래봤자 가상인물이라는 비아냥도 좋다. 결국 판타지 소설이지 않느냐는 조롱도 좋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 어린이들은 슈퍼맨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스스럼 없이 꼽는다. 욕심을 버리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언제나 타인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가치를 최선으로 삼는 '스타워즈' 의 '제다이 나이트' 들도 있다. 중국이 숭배하는 영웅들은 다른가?? 그들이 숭배하는 탕왕이나 무왕 같은 영웅들도 모두 전설시대의 신화같은 인물들이다. 관운장은 어떠한가? 그들이 숭배하는 관운장은 역사속 인물 모습 그대로인가? 위에도 언급했지만 역사의 반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허구이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겉모습도 아니고, 그 사람의 업적도 아니고, 그 사람의 계급이나 지위도 아니다. 그들은 그의 정신을 숭배한다. 그리고 그들에겐 모두 공통점이 있다.

 목숨을 쉽게 여기지 않았고, 어떠한 시련 아래에서도 당당하게 그것에 맞서 극복해나가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사랑과 관용으로 아군과 적을 모두 포용했다는 것이다. 치우 형제처럼 말이다.  

 

 너무나 쉽게 '삶' 의 스위치를 내리는 세상이다. 그렇다. 때론 이 고달픈 삶 속에 태어난 것이 내 의지가 아니라면 적어도 계속 살지, 아니면 그만 여기서 멈출 지 정도는 내가 선택하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투정을 부리고 싶을때도 있다. 마치 불을 끄듯, 삶의 스위치를 내리고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 편하게 생각될 정도로 극심한 고통과 시련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럴 땐, 지키고 싶은 것을 떠올려 보라. 치우천은 '세상' 이라는 큰 꿈을 꾸었지만, 동생인 치우비는 '형님' 이라는 꿈을 꾸었더랬다. 치베는 '우정' 이라는 꿈을 꾸었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이름없는 모든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주요 인물들처럼 크진 않았지만, 치우천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며 '자식' 이라는 꿈을 꾸었고,'아내' 라는 꿈을 꾸었으며, '집' 과 '자식' 이라는 꿈도 꾸었다. 그리고 당연히 '돈, 재물' 이라는 꿈도 꾸었다. 그 꿈은 이루고 싶은 꿈이었으며, 지키고 싶은 꿈이었고, 삶을 지탱해나가는 굵은 밧줄이었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쉽지도 않다. 하지만, 평생 한번 쯤 꿔볼 만한 것이다. 지금의 삶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더 꿀 만하다. 언제나 영웅은 난세에서 나오기 마련, 또 아는가? 지금 이 책을 읽는 나나 당신이 '세상' 이라는 꿈을 꾼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다가오는 시련에 당당하게 맞설 준비를 한다면, 충분히 될 수 있다.

 '치우천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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