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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 ㅣ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소설' 을 즐기는 방법은 아주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도 소설을 즐기는 데에는 최소한 세가지의 방법이 있다.
즉, 한 편의 소설을 읽을때 최소한 세가지의 관점에서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가장 보편적이고 쉬운 방법인데, 등장인물, 특히 화자나 주인공에 감정이입해서 읽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을 이러한 방법을 따르고 있고, 작가들 또한 독자들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하곤 한다. 아주 평범해서 어떤 독자라도 거울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보편적인 캐릭터를 창조해 이야기를 진행하게 한다. 물론 이런 경우엔 이야기의 주인공은 화자가 바라보는 제3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화자인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엔 서술시점 또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독자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화자에게 이입될 수 있다. 독자는 마치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듯, 혹은 화자의 실제 경험담을 듣는 듯한 착각을 경험할 수 있다.
두번째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방법인데, 등장인물들 중 화자와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에게 집중해서 읽는 방법이다. 어느정도 볼륨이 있는 직품이라면 주인공이나 화자 외에 이야기의 축을 이끌어가는 안타고니스트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아니, 그렇게 프로타고니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안타고니스트가 아니더라도 그들 주변에는 흥미로운 조연들이 자리잡고 있다. 아주 쉬운 예로, [배트맨] 시리즈를 떠올려보자. 이 작품에서 프로타고니스는 '배트맨' 이다. 당연히 안타고스트는 '조커' 나 '펭귄' '캣우먼' 등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아주 흥미로운 조연들이 있으니, 바로 고담시의 형사과장이자 배트맨의 조력자인 '짐 고든' 형사. 그리고 배트맨의 오랜 친구이자 웨인가의 집사인 '알프레드' 이다. 그 밖에 배트맨의 사이드킥인 '로빈' 이나 고든의 딸인 '오라클' 그리고 후에는 강력한 안타고니스트로 변모하는 투페이스 '하비 덴트' 검사 등도 있다. 이런 주변 인물에 집중해서 작품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알프레도의 입장에서 '배트맨' 영화를 다시 보아도 아주 새로운 느낌일 것이다.
세번째는 작가의 다른 작품군을 폭넓게 읽어봐야 가능한 방법인데,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며 읽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책을 정독해서 읽고, 읽은 뒤에 그 내용을 곱씹어 사색해보는 타입이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경우엔 '장 도미니크 보비' 의 [잠수복과 나비] 나 '키토 아야'의 [1리터의 눈물] 을 접한 뒤에야 진지하게 생각해본 방법이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오로지 언어영억 문제풀이를 위한 독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속독법엔 몇가지 스킬이 있는데, 아마 왠만한 분들은 다 아실만한 방법들이다. 눈으로 읽는 단계를 거쳐, 대각선으로 읽기, 주어구와 서술구 나눠 읽기, 동사만 읽기, 명사만 읽기 등등 말이다. 20대 중반까지는 나 역시 이런 독학한 속독법에 익숙해져서 '정독' 을 하는 책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쥐어짜듯, 눈을 깜빡거려서 한권의 책을 완성했던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를 손에 들었을 때, 그렇게 쉽게 술렁술렁 읽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신이 마비된 장 도미니크 보비가 힙겹게 완성한 한 권의 얇은 책. 과연 그 안에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담았을까. 나비처럼 날고 싶은 영혼을 끈덕지게 붙들고 있는 잠수복 같은 육체안에 갖혀서,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철자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을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나아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든 작품들엔 그와 같이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가지 방법만 이용하더라도 책 한 권 읽는데 한주일은 우습게 넘어간다. 시간이 부족하다. 그동안 설렁설렁 읽은 책들도 다시 손에 들게 된다.
내가 놓친 인물들 한명 한명들이 다 사랑스러워 진다. 5번도 더 통독한 폭풍의 언덕에서도 새로운 인물들과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이후에 만난 작품들 중에 '루이스 사폰' 의 [천사의 게임] 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다른 작품들도 접하게 되었다.
유럽 특유의 모호함과 서양 특유의 뚜렷한 분할, 스페인 특유의 음울함과 유럽 특유의 낙천적임이 말도 안되게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소설이었다.
지금 막 종장을 덮은 [한밤의 궁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마음을 단순히 선과 악 - 그리고, 그 중 악에 속한 부분은 한없이 잔인하고 끔찍한것으로 이분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점을 가지고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달하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뚜렷한 인과관계 속에서 개연성 있는 스릴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며, 권선징악의 동화적인 결말 또한 너무 2차원적이다.
확실히 가장 최근작인 [천사의 게임] 에 비하면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을 준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처음에 콱 박혀진 베이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야기 내내 평면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지만, 루이스 사폰이라는 작가가 초기작부터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한밤의 궁전]의 이야기는 인도의 캘커타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캘커타의 한 보육원에 살고 있는 7명의 고아 소년들. 절친한 친구사이인 동갑내기 소년둘 중 리더인 '벤' 의 출생의 비밀과 무시무시한 악당인 '자와할' 과의 숙명적인 대결. 작가는 애초에 등장인물들의 성장을 디테일하게 그리려는 의도를 완전히 배재하고, [대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벤과 소년들은 피할 수 없는 [대결] 을 인지하고 그것을 준비해 나간다. 등장인물들의 성장이 그려지는 부분은 이 부분에서 아주 잠깐이다. 단호하게 선과 악을 구분하고, 악에 맞설 수 밖에 없음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대결] 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소년은 어른이 된다.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대결] 그 자체로 끌어들이기 위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벤' 이 아닌 평범하기 짝이없는 소년 '이언' 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중간중간 편지문을 등장시킴으로서 이야기의 화자가 '이언' 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주지시킨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인도의 [캘커타] 라는 도시 또한 상징적이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인도. 모든 유럽인들이 황금이 넘치는 낙원.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신화와 전설의 나라, 인도. 각종 도시 괴담들과 정령,악령, 불 같은 이미지들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트레이트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를 훌륭하게 자리잡아 나간다.
작품은 확실히 작가의 초기작답게 이야기를 간결하고 적확하게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적당히 독자들을 속이기도 하는데, 그 부분은 '자 이제부터 독자들을 속일겁니다' 라는 암시를 드러내 버려서 오히려 더 긴장하고 집중하게 만든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나를 속이는 걸까? 어느 부분을 어떻게 속이는 걸까?' 라고 의심하며 바짝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대결부분에 대한 정신없고 스펙타클한 묘사도 굉장하다. 아마 책의 클라이막스부분에서 책장을 덮은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 오싹함과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 사폰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는 낯설지만 익숙하다.
흔히들 서양 문학의 정서 전달은 보다 직접적이고, 한국 문학은 보다 우회적이라고들 한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호러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면, 헐리웃 작품은 베고 썰고 죽이는 살인마들이 눈 앞에 불쑥 불쑥 등장하며 깜짝 깜짝 놀래킨다. 한편, 한국 영화는 뭔가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고, 나올락 말락 하다가, 웃음소리나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며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루이스 사폰은 독자들의 감정을 그 두가지를 아주 잘 활용하며 쥐락 펴락 한다. 그리고,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우며 대단히 능숙하다. 명확하지만 몽환적이고, 뚜렷하지만 음울한데 바로 그 점이 우리에게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 역시 참 다들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벤의 이야기가 중심이기에 큰 비중 없이 배치되어 있지만, 한 명 한 명이 모두 개성적이다.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더욱 길게, 많이, 오래 보고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어떻게 이런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주변에 멤돌게만 할 수 있었을지. 작가도 아주 아쉬웠을 것 같다.
누구나 마음속에 악을 품고 있다.
위에도 언급했듯, 선과 악의 구분은 대단히 모호하지만, 누구나 양심이 가로지른 라인이 존재한다. 그 라인의 이쪽 편은 선이고, 저쪽편은 악이다. 때로는 선과 악이 혼합된 영역도 있으며, 그 두 가지가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삶의 대부분의 일에서 사실 선과 악을 구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너무나 완벽한 '악' 을 분별하는 방법은 있다. 바로 그 감정이 무엇으로부터 파생되었는지 생각해내는 것이다. 때론 사랑에서 파생된 행위가 악한 것으로 규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증오에서 파생된 행위가 선한 것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없다. 증오는 언제나 악이다. 이분법적인 구분을 싫어한다고 몇번이나 언급했지만, 싫어한다고 해서 안 한 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수 많은 것들 중에서 두 가지를 나눠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이 경우일 터다.
증오는 반드시 악을 파생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한다면, 삶은 활활 타오르는 불속에서 언제나 지글거리며 나의 살을 태워낼 뿐일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