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절대왕정이 무너져간 과정들은 드라마틱하기 짝이 없었다.

수천년간 한낱 '평민' 이었던 대다수의 백성들은, 역시 수천년간 자신들을 '지배' 해온 계급에 맞서 싸우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동일한 계급 안에서 의지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다. 왕이나 나나 다르지 않은 똑같은 인간이고, 단지 누구의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삶 전체가 달라지는 것은 결코 '인간다운 일' 이 아님을 인지하고 받아들였다. 그 과정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서서히 수천년의 절대왕정이 무너졌다. 그리고 '왕' 을 잃어버린 국가들은 새로운 이념들을 받아들였다. 세계 최초의 공화정이 시행되고, 엄청난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새로운 이념을 정립시켰다. 누군가는 새로운 이념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넓디 넓은 바다를 건너 신대륙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그렇게 '민주주의' 라는 이념은 유럽식 민주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로 나눌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유럽식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시민들의 단결과 응집력, 그리고 투쟁을 떠올릴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을 싸워서 쟁취해낸 유럽의 시민들은 권력층을 견제할 수 있는 단일 세력으로 성장했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개개인에 대한 무한한 자유와 권리보장 그리고 자본주의를 떠올릴 수 있다. 미국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가 발달한 것이다. 

유럽식이든 미국식이든, 그들의 민주주의는 최소한 100~200년의 시간동안 서서히 이루어져 왔으며, 권리와 자유를 위해 싸웠던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얻어냈으며, 영위하게 되었다.

 

한편, 대한민국의 왕정은 일제의 침략과 강제병합, 그리고 일본의 패망 이후 미군정의 신탁통치를 통해 무너졌다.

엊그제까지 평민이었던 백성들이 하루 아침에 국민이 된 셈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상의 구별이 명확했는데, 아침에 그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사실 국민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어제 일본군의 앞잡이었던 경찰서장은, 오늘 대한민국의 경찰서장이 되었고, 일제의 비호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오늘 대한민국 정부의 비호를 받아 더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웠던 이들은 빈민으로 전락했다. 세상이 바뀐걸 실감도 하기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로 인헤 미국의 신탁통치는 더욱 강력해 졌으며, 민족 차원에서 정치 수뇌부를 자정할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일제의 똥구멍을 핥으며 배를 채워온 부류는 미국의 똥구멍을 핥으며 여전히 권력의 상석을 차지했고, 허울좋은 '민주주의' 세상에서 돈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의 정부는 일제 침략기의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왕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했고, 정치가와 양반들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공무원과 벼슬아치들을 동일시했다. 수십년 뒤, 고등교육으로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스스로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고, 미군정의 신탁통치와 군사 쿠데타가 만들어낸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한다.

화염병과 죽창을 들고 세상을 바꾼 이들. 우리는 이들을 386세대라고 부른다. 30대, 80년대 대학을 다닌, 60년대생들.

지금 그들은 40대일테니, 486세대로 명명하면 되겠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꾸었지만, 자신들이 무너뜨린 그들과 똑같이 변해갔다.

물론, 세상이 그들이 원하는대로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있었다. 정치 수뇌부들은 지나치게 촘촘히 얽혀있었고, 그들에게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있었으니 바로 '돈' 이었다. 일제를 등에 업고, 미국을 등에 업고 돈을 쓸어모았던 그들은 정권을 지배하고 있었고, 결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열의 맨 앞에서 죽창과 화염병을 들었던 그들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굴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싸웠지만, 진 사람이 없었고, 쟁취했지만, 얻은것이 없었으며, 변혁을 꿈꾸었지만, 바뀐것이 없었다.

 

작가는 바로 그런 386 세대. 특히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상위 10% 안에 드는 엘리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진정한 의미의 '사회 지도층' 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수많은 드라마나 작품들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상위계층들의 모습을 단편적으로나마 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작년, 절찬리에 종영한 '자이언트' 라는 드라마에서도 정경유착의 단면과 한국에서 재벌이 부를 축적해가는 과정이 비교적 설득력있게 그려졌으며, 최근 역시 엄청난 인기속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 에서도 유명 백화점 VVIP 파티나 상속자의 생활상이 잠깐 보여졌었다.

이 작품 '허수아비 춤' 은 그런 드라마속 이야기의 리얼 버전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아리랑' '태백산맥' 에 이어 '한강' 까지, 한국사 100여년을 종이위에 고스란히 글로 녹여냈던 노작가는 '허수아비 춤' 을 통해 한국 근대사에 방점을 찍어낸다. 작품은 크게 4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작가가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훨씬 더 많다.

 

2~3년 전,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 라는 작품을 통해 386세대가 만든 세상에 살아가는 현대의 20대의 현실을 분석하여 큰 호응을 받았던 책이 있다. 그 작품에서도 20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싸울 줄  모른다' 는 점을 들었다. 독재정치와 군정에 화염병에 짱돌, 죽창을 들었던 세대들의 자식들로 자라난 20대는 당연하게도 투쟁심 자체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우리 세대는 부조리 속에 있지만, 부조리 속에 있는 줄 모르고, 억압받고 있지만 억압받는 줄 모른다. '민주주의' 를 처음 맞닥뜨렸던 50년~60년대의 한국 국민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386 세대가 굳건히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제국에서 살아남기만을 위해 노력한다. 대학은 더이상 고등교육기관이 아닌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싸워서 쟁취하는 것보다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을 386세대에게 전가할 생각은 없다.

그들 또한 억압되고 부조리한 세상속에서 당당하게 맞섰고 자신들의 것을 쟁취한 선구자 들이다. 결국 노무현 정권과 참여정부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끌어 냈던 것은 그들이었고, 그런 정권을 MB 정권으로 망가뜨린 주역은 결국 우리 세대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그들로부터 그런 점들을 배웠어야 했고, 끊임없이 사회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리 윗세대의 실책만큼 우리 세대 자체의 실책이 있는것이다.  

 

조정래 작가는 '허수아비 춤' 을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상위 2%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우리 세대는 분명,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시크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게 '쿨' 한거 아니냐며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놈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라고 분에 차서 소리지르면, 우리 세대는 분명 '짜증나게 열폭하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 라고 말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세대는 그렇게 교육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상위 2%안에 못들어간 98%는 다 자신들이 잘못해서 그모양 그 꼴인 것이다.

상위 2%만 넉넉하고, 나머지 98%는 배고픈 사회의 시스템을 붙들고 늘어져야 겠다는 생각따위, 우리는 못한다.

그 시스템이 잘못된 시스템이라는 것. 우리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모두가 적들뿐이다. 이것을 세대 안에서의 싸움이라고 한다. 우리 세대는 세대 내 갈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뜻을 모을 수 없고, 공동의 전선을 펼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우석훈 교수와 여러 시민운동가들이 주창했던 '생협' 같은 세대간 연대는 너무나 힘들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터다.

작품 안에서도 언급는 '시민연대' 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반 시민들이 권력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에도 말이다.

 

아마, 우리 88만원 세대들은 영원히 가난과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이 가난과 절망은 고스란히 물려줄 터다.

우리 세대는 허수아비 세대이다.

짧디 짧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가장 별 볼  일 없는 세대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의 88만원 세대. 우리들 말이다. X세대와 N세대 사이에 어설프게 걸쳐있는 어설프고 불쌍한 세대.

 

조정래 작가가 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들려준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그릇되었음' 을. 우리 사회의 구조가 '불합리함'을. 그리고, 이런 세상에 태어난 우리 세대에게 잘못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 세대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잘못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 짱돌을 집어들 수 는 없을것이다. 우린 너무나 나약하고 온순하며 무력하게 자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 세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88만원 세대' 라는 용어가 태동했을 즈음에 국내에서는 많은 촛불시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위 안에는 당연하게도 88만원 세대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였다고 해도 일부였고, 대다수의 88만원 세대들은 그 와중에도 어디 도서관에 쳐박혀 취업준비에 열중이었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열중이었다. 물론 시위는 88만원 세대들과 386 세대 선배들이  10대~20대. 80년대 중후반~90년대생들이었다. 우리가 취업몰입교육에 물들어 있을때 그들은 수많은 대안학교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 세상의 무한한 정보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허수아비 춤' 은 88만원 세대인 나에게는 정말 큰 과제처럼 다가왔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데 나는.

설마 내가.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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