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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인 더 풀' '공중그네' 등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오쿠다 히데오는 사실 정통 리얼리즘 작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코믹한 캐릭터인 '이라부' 의 강렬한 인상과 시덥지않은 글빨로 진정한 오쿠다 매니아들에게만 읽히는 몇몇 에세이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가볍고 코믹할 뿐, 그의 단편들이나 근작인 '올림픽의 몸값' 만 봐도 그가 일본에서도 보기 드물정도로 정통적인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사실 출판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일례로 '마돈나' 같은 작품집의 작품들을 봐도 그의 작품속은 현대의 일본사회를 살아가는 인본인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꿈의 도시' 는 제목에서 풍기는 환상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너무나 평범하고 리얼한 현실 그 자체가 녹아들어 있다.
작품은 유메노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여러명의 등장인물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30대의 이혼남 '아이하라 도모노리'. 유메노시의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국가 보조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도시 빈민층을 상대로 보조금을 타러 오는 사람들의 서류를 심사하고 상담을 하며 그들이 보조금을 받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일을 하는 하급 공무원이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구보 후미에'. 부모님과 남동생이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고, '가토 유야' 라는 전직 폭주족 출신의 20대의 세일즈맨이 그 다음으로 등장한다. 유야 역시 이혼남으로 전처가 자신의 아들을 키우고 있다.
'호리베 다에코' 는 유메노시 유일의 대형 마트인 '드림 타운' 에서 일하는 사설 경호업체의 파견직원이고, 40대의 독신여성이다. '사슈카이'라는 종교에 빠져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야마모토 준이치'. 2대째 유메노시를 터전으로 사업과 정치를 하고 있는 유지로서 자신도 2대째 시의원을 해먹고 있다. 부인과의 사이에서 두 자녀가 있으며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야쿠자 출신 형제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유메노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나이도 직업도 주변 인물들 마저도 상이한 이 5명의 인물들이 맺고 있는 거미줄과 같은 인맥은 정말 절묘하고 촘촘하게 짜여져 있어서, 전혀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배치가 절묘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연관되어 있지 않은 듯 해 보이지만, 이 5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지나쳐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주는 리얼함은 현대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적확하게 잡아서 이야기 속으로 완벽하게 녹여낸 부분일 것이다.
위에 소개한 인물들의 직업처럼, 이 작품은 도시 빈민층 문제, 교육문제, 청년 실업과 심각한 정경유착과 불륜과 매춘 등 성도덕 불감증 등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있는 문제점들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일찍부터 지방자치가 발달한 일본이 안고 있는 지역 경제 침체의 고착화, 종교의 천국이라는 별명답게 여기저기 판치고 있는 사이비 종교에 관련된 문제, 유독 솔로, 싱글문화가 발달하여 프리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등 일본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도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것들이 너무 리얼하고 효과적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문제라면 문제랄까.
유메노시의 겨울 한 계절동안 일어나는 이들의 어두운 일상들이 가슴 깊이 내려앉는다.
지난 '올림픽의 몸값' 에서는 작품 안에서도 유독 많이 나왔던 '진흙' 이라는 단어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였다면, 이번 '꿈의 도시' 에서는 '추위' 이다. 마침 한국에서도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데, 작품속 도시인 유메노시 역시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는 중이다. 기록적인 추위와 눈 속에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도 메마르게 얼어붙는다.
전에 다른 작품의 감상문을 통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자본주의, 자유주의는 가장 인간의 욕망에 부합하는 사상이었다. 효율적이냐 아니냐는 차후의 문제이고, 인간의 욕망에 가장 부합되는 사상이었기에 가장 널리 퍼지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인 것 뿐이다. 자본주의과 자유주의가 인류사회에 뿌리 내린지 고작 몇백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어느덧 슬슬 한계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주주의 선진국인 유럽사회는 계급의 고착화가 이루어져 봉건사회와 다를 바 없는 구조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 윗 계층으로 올라간다는 건 그때만큼이나 꿈과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부는 혈연을 따라 고스란히 세습되고, 가난 역시 그대로 세습된다. 자본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의 말로는 이런 것이다. 경제성장은 둔화되어 한계를 보이고 있다.
곧 우리 사회는 썪어가는 물이 될 것이다.
정경유착과 부패는 심화될 것이고 세계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불리우는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좌지우지 될 터다.
아마 마르크스는 이런 세상을 예측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사회 속에서 개인은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민주주의' 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는 사회의 모든 활동에 돈이 든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결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되어있는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돈이 없으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행복추구의 권리는 물론 생존의 권리조차 돈이 없으면 아무렇지 않게 무시되는게 현대 사회이다.
한국과 일본의 사회 발전사는 쌍둥이 처럼 닮아있다. 지금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은 10년안에 우리도 동등하게 맞닥뜨린 문제들이란 의미이다. 한국은 일본이라는 거울이 있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그대로 되풀이하며 그 부작용들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위 '장르문학' 들은 이야기의 중심이 사건 그 자체에 있는 경우가 많다.
오쿠다 히데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등을 비롯한 일본문학들의 인기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등의 인기도 국내 독자 사이에 불고 있는 장르문학의 붐 덕택이기도 하다. 때문에,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손에 드는 독자들 대부분 또한 그런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 를 기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올림픽의 몸값' 에서 보여졌듯 그는 더이상 그런 엔터테인먼트 소설에 큰 관심을 두고있지 않다. '올림픽의 몸값'은 제목 그대로 테러범과 형사 사이에 벌어지는 서스펜스 스릴러 처럼 보여지지만 플롯이 사건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인물 위주로 그려진다. 사건 자체에도 일련의 트릭과 재미요소가 충분하지만, 지면의 대부분은 '왜' 테러범이 이런 테러를 하세 되는지 그 심경의 변화가 심도깊고 대단히 리얼하게 그려진다.
이 작품 또한 '올림픽의 몸값' 의 연장선으로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건의 전개는 대단히 호흡이 느리다. 거의 한 인물의 한 챕터는 아주 소소하고 디테일하게 시간단위의 심경과 주변환경 묘사가 대부분이다.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의 순간순간 이야기들이 펼쳐진다고 보면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 국내 독자들에게 일본문학은 장르문학을 통해 전래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게 아니라면 에쿠니 가오리 식의 칙릿이나 만화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라이트 노벨' 부터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나쓰메 소세키등으로 일본문학을 접하는 사람들은 아주아주 일부분일 터다. 그래서 일본소설 = 장르문학 이라고 인식하는 독자들이 많고, 오쿠다 히데오 역시 '공중그네' 풍의 경쾌하고 위트있는 풍자로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일본 작가들은 대부분 굉장히 다작하는 편이다. 1년에 한권씩 꼬박꼬박 신작을 내는 것은 예사고, 1년에 2권의 신작을 내기도 한다. 그 덕분에 문단에 등단한 작가들은 굉장히 다양한 장르들을 시도할 수 있고, SF나 판타지 작가들이 미스테리 추리 소설을 집필하거나 로맨스물, 나아가 정통 현대문학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꽤 있는데, 이런 현상은 컨텐츠의 멀티유즈가 일반화된 일본 문화의 특징이랄수도 있다.
이 작품역시 그런 범주에서,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에게 흔히 기대하는 위트있는 풍자나 가볍고 경쾌한 필치를 생각하고 손에 들었다가는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우선 위에 언급했던 내용상의 무거움과 디테일하고 리얼하게, 있는 그대로 현실을 옮긴 부분들을 들 수 있다. 만화스러운 등장인물들이나 문제점을 짚어내는 작가의 친절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리얼리즘 문학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 중 하나인 열려있는 결말 또한 국내의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독, 드라마를 좋아하고, 언제나 딱 떨어지는 결말을 기대하지 않는가?
삶에는 언제나 완벽한 결말이란 없다.
그래서, 리얼리즘 문학들 또한 결말이 열려있거나, 흐리멍텅한 경우가 많다.
어차피 모든 삶은 힘들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통만이 고통이다. 남의 고통은 그저 구경거리일 뿐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자신의 모든 재능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안타깝지만, 삶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