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내딛는다.
온 삶의 과정은, 달리 말하면 죽음의 여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도 살면서 죽음을 실감하지는 못한다. 누구나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지만, 죽지 않을거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하루 하루를 이겨낸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동전의 앞 뒷면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있지만, 결코 입을 맞출 수는 없는 관계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의 삶은 지난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또한 몸도 마음도 연약한 존재라서 외로움에 취약하다. 그래서, 지난하기 짝이없는 인간의 삶은 외로움과의 치열한 싸움의 기록이기도 하다. 작품속의 주인공인 '조연주' 는 외로움이라는 상태를 잘 이해하거나 체득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했으나, 그녀 또한 사람과 말을 섞고 마음을 섞을 수록 외로움을 이해하고 체득해 갈 것이다. 사람은, '본래 그러한 것이라서 외롭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이해하거나 체득하지 못하는 편인 조연주는 민통선 안쪽, 북한에 가장 가까운 그곳에 위치한 수목원에 계약직으로 취직하게 된다. 뇌물죄로 징역 삼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복역중인 공무원 아버지와 홀로 계신 어머니를 뒤로 하고 고립무원의 세계로 넘어온다. 모든 생명들이 서로 굳게 연관하고 있는 광활한 숲. 그리고, 그 안에 들어앉아 있는 수목원의 연구실장인 안요한과 그 아들 시우. 조연주와 안요한, 그리고 시우는 모두 외로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체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폐증세가 있는 시우와 그의 아버지인 안요한 역시 비슷한 성정이고, 아이 엄마와는 이미 이혼한 사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뒤에 두고 온 연주. 각각 자신들의 등에 '가족' 이라는 거대한 베낭을 짊어매고 있고, 그것은 세상 누구나 지고 있는 짐이다. 연주는 가족이라는 짐의 무거움을 스스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매일 밤마다 들려오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통해 가족이라는 짐을 이해하고 체득한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안실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실장과 이혼한 부인, 그리고 캥거루가 제 새끼를 배의 주머니에 넣고 다니듯 좀체 떨어질 줄 모르는 아들 시우. 안실장과 시우는 서로에게 짐인 동시에 위안이 되고 이유가 된다.

 

 연주의 아버지는 딸인 연주와 부인이 삶의 이유이자, 범죄의 이유였다.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연주의 가족에서 정이현 작가의 [너는 모른다] 의 김상호와 진영옥 부부가 떠올랐다. 야심이나 명예는 남자에게 삶의 이유이자 목표가 된다. 권력과 욕망을 위해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남자들은 가족들을 위해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들이다. 가족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은 김상호나 연주의 아버지나 별반 다르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그 안사람들은 어떠한가. 김상호의 부인인 진영옥은 자신의 남편이 뭔가 께름칙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구태여 파고들지 않고, 모른 척 한다. 아마 연주의 어머니도 그러했으리라.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면, 돈의 출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이다.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는, 일단 '어떻게' 먹고 사는지를 해결해야만 따져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결국 그것들 또한 짐에 되어 어깨 위에 켜켜히 쌓이게 된다.

 

작품은 시종일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려진다.

김훈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는 여전히 감정이 절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제일의 리얼리즘 작가라고 칭송받아 마땅한 그의 문장들은 감정은 절제되어 있지만,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연상시키듯 주관적인 인상 또한 녹아있다. 등장하는 주인공의 직업이 세밀화가여서 문장들을 자연스럽게 세밀화와 비교하게 되었지만, 그의 글속에서 난 세밀화보다는 모네와 마네, 그리고 비슷한 사조의 영향을 받은 바르비종파의 밀레나 테오도르 루소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인상을 화폭에 담기를 갈구했다. 수련잎에 반사되는 찬란한 햇빛, 거대한 숲을 휘몰아 나가는 연무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그 느낌을 잡아 화폭에 옮기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의 문장들 또한 다르지 않다. 이번 작품 속에서 작가는 뛰어난 감각으로 자연을 묘사해낸다. 애초에 그림작가와 글작가의 지상과제는 동일하기 때문일까? 그가 묘사해내는 자연의 인상에는 사람의 감정들이 함께 휘몰아친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에도 누군가가 숨쉬고 있는 듯 하다. 삶의 호흡. 삶의 무게. 삶의 의미. 질문들. 해답들. 또 질문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변화무쌍한 자연과 변화 없이 풍화되어가는 유해의 이미지는 서로 반대편에서 꿈틀대며 삶과 죽음을 가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 나무나 꽃. 자연은 혼자 고고하지 않다. 우리의 눈에는 언덕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가 제 혼자 고고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뿌리는 언덕 밑 땅속을 굳게 쥐고 있고, 수많은 곤충들을 품고 있으며, 주변의 수많은 수목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꽃이건 나무건 풀이건, 그들 또한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품고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그것들도 때가 되면 죽어서 주저앉고, 결국은 흙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흙을 붙들고 또다른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주저앉아 흙이 된다. 살아있음은 수많은 기회이다. 색을 낼 수도 있고, 쟁쟁쟁 하는 소리도 낼 수 있으며, 상추쌈도 먹을 수 있다.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고립을 선택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명함을 내밀수도 있고, 그것을 받아 갈무리 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볼 것이고, 나의 죽음을 보여줄 누군가를 만나기도 할 터다. 단한번의 우회전으로 고립된 세상을 만날수도 있고, 수많은 교차로투성이의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수많은 생각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으며, 질문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인간이 외로움을 타는 이유는, 인간이 원래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은 원래 홀로 고독하게 태어났으며, 그 고독함이 외로움이라는 태생적인 감정을 야기한다고 여겨왔다. 

나 자신 또한 외로움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외로움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고립과 고독을 갈구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짐스러웠고, 사람들과 섞는 말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주거나, 나에게 남기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상처받고, 그 상처 역시 사람을 통해 치유된다면, 애초에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상처 받을 일도, 치유받을 일도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원래 외롭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고독하지 않게 태어났다.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모른 채 태어난다.

살아있는 누군가의 몸 속에서 10여개월동안 함께 먹고, 싸고, 숨쉬고, 웃고, 울고, 움직이다가 어미의 뼈를 부수며 태어나는데, 어찌 인간이 태생적으로 외로울 수 있단말인가? 타인을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되지 않아도, 그것은 고독과 외로움의 원초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나무가 꽃을 이해하지 못하고, 연못 위의 수련이 소금쟁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름답게 어우러지며 살아가듯이 말이다.

 

그렇기때문에 누군가는 자신이 고독하지만 고독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외롭지만 외롭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혼란과 혼돈은 입을 닫게 하고, 눈을 돌리게 한다. 점점 더 스스로의 안으로 파고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 알 수 없는 감정에 단지 외로움이나 고독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였을 뿐이다. 서어나무가 홀로 서어나무 될 수 없고, 패랭이 꽃이 홀로 패랭이 꽃이 될 수 없듯, 사람은 홀로 사람일 수 없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사람은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고독함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꽃에 각각의 고유한 색이 있는 이유는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주변 색과 전혀 다른, 어디서나 한눈에 띌 수 있는 색을 몸 안에서 끌어내어, 쟁쟁쟁 하고 세상에 내뿜는 이유는 바로 그것일 터다. 외로워 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색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이면 된다. 누군가 나의 소리를 들을터다. 색이 바래지고 줄기에서 떨어져서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요동치는 감정들을 갈무리 하여 켜켜히 쌓아 색을 만들어내면 된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그 순간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