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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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에게 망각이란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망각. 잊는다는게 왜 선물일까? 이 질문은 '죽음' 이란 축복일까, 저주일까 라는 질문과 상통하기도 한다. 인간의 모든 상황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모든 것은 비교를 통해야만 인식이 가능하다. 죽음이 없다면 삶이 무의미할 것이다. 영원히 사는데, 오늘이 무에 소중할까? 시간의 개념도 나이의 개념도 불필요 할 것이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산 위의 바위와 다를 바 없어질 것이다. 기억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언젠가 사라지기에 소중하다. '글' 이란 애초에 망각 때문에 만들어 졌지 않은가? 인간에게 영원한 기억력이 있었다면, 글이란, 문장이란 애초부터 태어나지도 않았을 터다.
죽기 때문에 삶은 아름답고, 망각하기 때문에 기억은 아름답다. 세상에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를들면, 이런 상황. 죽어서 저승사자를 만났는데, 저승사자가 이렇게 물어보는 거다.
"이승에서의 기억들 중 단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뭘 가져갈래?? "
(뭐, 그렇게 말한다면, 그 기억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가져갈 수 있는건지,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인지, 여러사람의 기억인건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는 않는지 등등....꼬치꼬치 따져보겠지만, 그냥 가정이니까 너무 디테일하게 따져보지는 말자.)
작가의 자전적 느낌이 물씬 드는 '7번 국도' 는 그 질문에 대한 답과도 같다.
 
'나' 와 '재현' 그리고 '세희' 에게 얽혀있는 청춘의 이야기.
삶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거치는 시절에 대한 이야기.
삶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짐작도 못할 시절, 삶이라는 유리병을 무언가로든 채우기 위해 안달을 하던 시기의 이야기.
그 안을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채우던 그 시절의 이야기.
 
'7번국도' 로 대변되는 길은 결국 삶이라는 긴 길이다.
우리는 삶의 길을 따라가며 동반자를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잊는다. 미워하고 미움을 잊고, 기뻐하고 기쁨을 잊고.
길은 수갈래로 갈라지기도 하고, 다른 길과 모여지기도 한다. 수많은 교차로들이 있고, 이정표들도 있다. 포장이 덜 된 곳도 있고, 길 양 옆으로 너른 아스팔트 대지가 펼쳐져 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해안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떨어진 동전이나 지폐를 줍는 횡재를 하기도 한다.
지루하고 고된 삶의 길을 걷다 보면 의미도 잃고 이유도 잃어버리게 된다. 사실 삶의 대부분이 그렇다. 인간은 고통은 오래 간직하고 행복은 쉬이 망각하기 때문에 삶 대부분은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럴때, 우리는 과거를 양분삼는다. 추억이란 이름의 연료를 태우며, 오늘이라는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고, 희망을 되새김질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추억이든, 고통스러운 추억이든, 그것들은 '다 지나갔다' 는 사실만으로 삶의 원동력이 되고 희망이 된다.
 
내가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란 작품을 통해서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이나 청소년을 위한 고전선집, 노벨상 문학전집들 중 재밌어 보이는, 그리고 잘 읽힐 것 같은 책들을 주로 골라 읽었더랬고, 한국 소설은 주로 변경, 태백산맥, 아리랑, 광개토 대제, 대륙의 한...등과 같은 대하소설에 심취해 있었다. 물론 만화책을 훨씬 더 많이 봤고. 대학때는 만화책을 공부하듯 읽어제끼던 시절이었고, 손에는 책보다 크로키북이 들려있었다. 군 전역후, 만화과로 복학했을땐 시나리오 작법서나 영화연출서적, 각종 만화기법 책들을 끼고 살았고,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에 심취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베스트 셀러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일본 장르소설 작가가 지겨워 졌을때 폴 오스터 작가 와 김연수 작가를 동시에 만나게 되었다.
 
평소, 책 두권 정도를 동시에 시작하는 버릇 탓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은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 과 '뉴욕 삼부작' 사이에 걸쳐서 읽었더랬다. 그래서인지 난 언제나 '김연수' 라는 세 글자에 '폴 오스터' 라는 이름이 겹쳐친다. 두 작가분의 스타일도 통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서술과 결국은 이러한 여러 이야기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생동감 넘치는 플롯의 구성능력 또한 엄청나지 않은가. 섬세하고 감정이 풍부한 문장들도 두 작가의 장점이기도 하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두세권 더 읽고 나서야, 비로소 '오- 좋다!' 라고 외치게 되었더랬다.
 
'7번 국도' 는 김연수 작가의 초기작 답게 뒤에 다른 작품들을 통해 다시 발현되는 장면들이 눈에 띄어 즐거웠다.
또한 위에도 언급했던 시간과 공간의 사이를 비집고 뒤틀고 엎어치면서 이야기의 중심을 유지하는 균형감각은 역시 그냥 타고난거였구나, 싶기도 했다.
책을 앞으로 넘겼다, 다시 원래 읽던 자리로 돌아갔다를 반복하면서 그 읽는 맛도 상당히 즐거웠다.
 
나의 이십대를 추억해보면, 아둥바둥 아둥바둥, 필씅!! 입대를 명 받고,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필씅! 공모전, 떨어지고, 졸업하고, 또 떨어지고.
여자친구, 사귀자마자 채이다니, 이게 뭔일인고, 하기도 전에 컬러리스트의 세계로 빠져들어 일하고 또 일하고, 고료 체납되다 떼어먹히고, 일 있다가 없어서 단돈 몇만원으로 한두달 버티고, 그나마 요즘은 간신히 제대로 받기 시작하고. 자리 좀 잡아서 고료도 좀 오르고, 일도 꾸준히 들어오고.
그래도, 나도 언제나 사랑했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든, 짝사랑이라도 했다. 헤어진 연인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살기도 했고, 내내 좋아하다가 고백 타이밍을 못 맞추고 잊기도 했고, 고백했다가 채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사랑할 거리를 만들어서 반하곤 했다.
 
작품 말미에 있는 '고양이 킬러' 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욱, 더욱 더욱 더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단 하나의 희망을 가지기 위해 사랑했다...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며, 당신이 다시 복수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다. 거기 의미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  -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2010) p. 203~4 -
 
앞길이 막막했고, 고난과 좌절뿐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했다.
하지만, 사랑할수록 스스로는 더 고통스러워졌고, 현실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짝사랑만 하기로 했다.
나의 20대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더 고통스러운 짝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고통들을 양분삼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스스로를 현실로부터 단절시키고, 나의 마음은 내 안쪽으로 더욱 갈무리 했으며, 넓은 체육관에 앉아 묵직한 쇳덩어리로 육체를 혹사시키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고립. 단절. 짝사랑은 그 증거이자 방법이었다. 상처 받지 않기위해 혼자 사랑했고, 상처 주지 않기 위해 혼자 사랑하려 했다.
하지만, 고립되고 단절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난 내 자신을 믿지 못했다. 내 현실을 믿지 못했다.
 
작품 안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일을 하는' 우체부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리고, 7번국도를 여행하는 두 남자에게 '삶의 의미' 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뒷주머니에 손수건을 넣고 다니듯, 젊은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하나 정도" 라며 풀어준 이야기가 바로 '고양이 킬러' 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제 나도 내 삶속에 희망을 품는다.
어제가 2010년이었고, 오늘이 2011년 이라 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듯이 내 삶속에 희망이 들어온다고 뭔가가 당장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내 앞길은 여전히 막막할거고, 내 작품은 번번히 공모전에서 떨어질거고, 내 그림은 여전히 비례가 안 맞을테고, 내가 만드는 이야기들은 재미 대가리도 없을 터다. 또 누군가를 마음에 품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릴거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헬스장에서 에로틱한 소리를 내며 쇳덩이들을 애무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희망을 갖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고백하고, 채이면서 새로운 청춘을 맞이하련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길을 죽은 길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제아무리 숭고하다 한들 고립돼 있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오."
-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2010) p. 144 -
 
 
P.S
근데,
책이 짧아서 아쉬웠다.
이 작품은 김연수 작가의 장편들 중 눈에 띄게 짧은것 같다. 책에 빈 공간도 많고. 얇잖아!!!!!! 글자가 적어!!!!!!!
여기 신작 하나 추가요!!! 플리즈!!! 하악하악!!! 기다리는 동안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을 또 펴들게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재현과 세희의 다른 버전 이야기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아닐까 싶다.
은근히 연관성 있어보이는 장면들이 꽤 등장하니, 김연수 작가의 팬이라면 한번 찾아보는 것도 즐거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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