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제나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 순간들은 대부분 명확한 두갈래의 길로 갈려져 있다. 때론 세갈랫길, 혹은 네갈랫길로 보이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둘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 두 길의 대부분은 '안정' 과 '도전' 인 경우가 많다. 때론 안정 자체가 도전이고, 도전 자체가 안정인 경우도 있지만, 다시 말하면 '현실' 과 '이상' 이란 뜻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보수적이 되기 마련이다. 육체는 약해져서 쉬이 피로를 느끼게 되고, 그동안 쌓아서 깔아둔 바닥에서 쉬이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 좋게 말하면 현실에 안주하고, 조금 나쁘게 말하면 현실과 타협한다.

 

하지만, 삶은 때로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곤 한다.

'남들이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 는 선택 말고, '하지 않으면 죽으니까 반드시 해야한다' 는 선택을 말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굴지의 로펌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고 부유하게 살아가는 미국의 중상위층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변호사 '벤 브래드포드.

그는 처음부터 현실을 선택해오던 사람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배경들을 업고, 역시 자신도 그 배경 안으로 걸어 들어간 전형적인 미국 부유층의 외아들. 그런 그에게도 사진사라는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안정' 과 도전'. '현실' 과 '이상'. 그런 상황에서 '도전' 을 택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도전' 을 택하는 순간 지금 이 순간의 달콤한 '안정' 을 산산히 깨부수고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벤은 도전이 주는 불안정함, 그리고 불안정함이 주는 고통과 괴로움에 맞설 용기가 아주 조금 부족했다.

그렇게,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오던 벤에게 엄청난,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외길뿐인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이 작품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누구나 꿈꿀만한 부와 가정을 이뤄낸 한 남자의 이야기. 하지만, 세상에 언제나 '만족할만한' 삶이라는 것은 없다. 세상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항상 한 가지를 얻기 위해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벤 브래드포드는 현실을 위해 이상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의 아내 베스 또한 그랬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남편과 현실을 포기하게 된다.

벤 브래드포드와 그의 아내 베스의 불화가 처음부터 아주 대놓고 등장한다.

미드 '위기의 주부들' 이나 'O.C' 등을 떠올리게 하는 부유한 거리에서 부족함 없이 지내는 벤의 가족. 하지만, 그 전반에 깔려있는 불협화음와 위화감. 그것들이 아주 리얼한 필체로 그려져 나간다. 꿈을 포기한 댓가로 얻은 현실. 아내의 꿈을 포기하게 만든 댓가로 얻은 현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기반으로 다시 꿈을 향한 삶을 살고 싶지만, 그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현실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약들을 물처럼 마시며 사는 현대인의 단면.

 

2부와 3부는 벤이 예기치 않은 큰 사건을 겪으면서 다른 방향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내용이다.

이제야말로 벤의 인생은 외길이 되어버렸다.

1부에 등장하는 벤의 삶과 2,3부에 등장하는 벤의 삶의 큰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선택, 그리고 결과. 많은 일들이 좀 어이없을 정도로 벤의 의도대로 풀려나가는 것 같다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긴장감을 많이 떨어뜨렸지만,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이나 꼼꼼한 심리묘사가 돋보였다. 사실, 사건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작품 자체의 이야기는 밋밋하기 짝이 없다. 긴장이나 갈등을 조성할 수 있는 요소가 중간중간 굉장히 많이 등장하지만, 그 장치들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작가는 환경적인 갈등이나 긴장감을 불어넣기보다 주인공 내면의 긴장과 갈등에 집중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감이 떨어지고, 클라이맥스는 지지부진하다.

차라리 초반에 보여졌던 가정, 현실, 사회와의 치열한 갈등들이 훨씬 좋았다고 느껴진다.

1부는 드라마, 2부는 스릴러, 3부는 로드무비 - 그런 느낌이다.

분위기도, 느낌도, 이야기의 구조도 모두 별개의 것이 되어 꽤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완성도를 많이 떨어뜨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후반부는 너무 주인공의 의도대로, 그리고 너무나 뚜렷한 인과관계대로 밋밋하게 흘러간 점이 너무너무 아쉽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내러티브를 이끌어낼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작가가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것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많은 이야기적 재미의 요소들을 포기한 것 같아 대단히 아쉽다. 

 

한 사람이,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예로부터 많은 철인들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사색해 왔다. 아주 유명한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말도 있고, '네 자신을 알라' 라는 말도 있다. 수많은 장르 소설가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이용해 인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로봇,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등등. 신이 아닌 인간이 창조한 피조물들. 그는 스스로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인간사회는 몇가지 단순한 표식들을 이용해 타인을 증명한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운전면허증, 자격증, 여권, 주민등록등본, 인감, 사인, 필체, 지문, 치과기록,동공 등등. 피나 유전자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 그렇게 사람은 스스로를 뭔가 표식을 통해 증명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인생' 이 나의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

당신.

우리는 정말 우리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부모님의 인생, 선생님의 인생, 아내와 자녀의 인생, 사회의 부품으로서의 인생. 마지못해 살아지는 인생.

그것들이 온전히 나의것. 당신의 것.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어떤 절대적인 자가, 당신에게 '너의 인생이 너의 것임을 증명해 보아라.' 라고 한다면 과연 증명해낼 수 있을까?

거기서, 내가 졸업한 학교의 졸업장들이나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나 속해있는 팀의 구성원이라는 자격증을 내민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돈을 모아온 통장을 내밀어서 거기 찍혀있는 숫자들을 내보이면, 역시 증명할 수 있을까???

 

삶을 살면서, 인생을 바쳐 하고픈 일을 찾기도 쉽지 않지만, 설령 찾았다고 한들 그 일에 인생을 바치기도 쉽지 않다.

우리의 눈에 삶은 언제나 외길인 듯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택의 기회들 속에서 우리는 매번 한 길만을 보게 된다. 그게 도전이든, 혹은 안정이든.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모를것이다.

난 제대로 선택했을까?

내가 선택한 이 길의 끝엔 과연 뭐가 있을까?

삶의 끝은 당연히 죽음이다.

그래, 그렇다면, 내 삶의 끝엔 어떤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삶이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이 작품을 생각이 달라진 뒤에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삶이란 단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죽음 자체를 배재시키기 때문이다.

삶이란, 영원으로 가는 과정이다.

그 누구도 내일 당장 죽을거라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지 않는다.

삶은 영원하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된다.

이런 영원한 삶을 , 난 하고픈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일 한다고?

 

오, 하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내일의 삶은 내일부터이다.

어쩌면, 당신의 삶 속에서 '선택' 할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지금 뿐일 수도 있다.

때로 삶이란, 운명이란, 당신의 눈 앞에 정말 외길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딱 하나의 외길.

벤 브래드포드에게 그랬듯 말이다.

 

어쩌면 삶이란, 인간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느것도 선택하지 못했으면서, 선택했다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삶이라는 단어에 '나의' 라는 건방진 소유격을 써서는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생각보다 엄청나게 길고,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며, 엄청나게 많은 다른 삶들과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살아있어서 좋다.

아마, 벤 브래드포드도, 결국은 그렇게 되뇌일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