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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호텔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인터뷰를 해본적이 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고, 나에 대해 깊이있는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굉장한 위화감이 있었다.
'카메라가 나를 내려보고 있었고, 한쪽편에 앉은 인터뷰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황 자체가 대단한 위화감이 있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꺼낸다는건,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다.
하물며, 뭔가를 숨기고 있다면 어떨까. 게다가 깊은 마음의 상처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잡지 기자인 '강인한' 은 인터뷰 하기 어려운 인터뷰이들을 전문으로 하는베테랑 인터뷰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여러가지 스킬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리는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을 풀게 만들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전문가이다. 강인한이 이번에 타겟으로 삼은 여자는 '고요다' 라는 필명을 가진 신인 작가이다.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서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린 공모전의 대상을 거머쥐고, 그 작품을 통해 엄청난 인세를 받아내고 있는 묘령의 여작가. 하지만, 완벽하게 자신을 감추고 있어서 신상에 대한 것은 터럭 한 올 만큼도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쌓인 사람. 강인한은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간다. 외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성채와도 같은 3층짜리 대저택에 혼자 살고있는 '고요다'. 대문 안으로 한 발짝도 들여보내주지 않는 고요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강인한은 필사의 작전을 구사한다.
인류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슈퍼 박테리아?? 수천만을 순식간에 죽음으로 몰고가는 바이러스??
아마도, 외로움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 여기 있어요' 라고 외치고 다닌다. '누가 내 말 좀 들어주세요' 라는 말도 함께 외친다. 가장 큰 공포는 지극한 외로움이다. 함께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고, 내 자신을 인정해줄 타인이 없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공포일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선택' 한다. 그리고, '선택 받음' 을 갈구한다. 어쩌면 '결혼' 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싹트게 된 계기도 그 부분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넌 이 사람을 선택했어, 또는 선택 받았어. 그러니까 죽을 때 까지 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을거야.' 라는 약속을 통해 남은 생을 위안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잠깐이고, 그 약속 하나를 통해 남은 전 생애를 그래도 평안하게 마무리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종족번식의 과제를 열심히 이행하면서 말이다.
삶은 끊임없는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외로움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연인이 없을 때 보다, 있을때 외로움은 더 강렬하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고요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처음 혼자가 되었을땐 외로움의 고통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생존을 위해 방을 빌려주면서 외로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정들 만하면 떠나 버리는 사람들이 싫었더든요. 한 사람씩 떠날 때마다 공허해지는 순간들도 싫었고요.
차라리 아무도 없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뭐든 애초에 없었던 걸로 쓸쓸해하진 않으니까요."
"이해해요. 더 외로운 건 남겨진 쪽이니까요..." p. 178 中 고요다와 강인한의 대화.
강인한과 고요다의 대화를 보면,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내보이고, 약점을 내보인다. 감정의 가장 깊숙한 곳, 그 곳에 아직 시뻘겋게 벌어져있는 상처를 내보인다.
약점을 보듬어주고, 상처를 핥아주며 둘은 서서히 친밀감을 갖게 된다.
또한, 연애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남녀들은 이성의 마음을 열어내기 위해 거짓을 꾸며내곤 한다.
약점을 토로하도록, 깊은 곳을 드러내도록, 살살 꼬드기고, 협박하고, 회유한다. 그렇게 알아낸 약점과 깊은곳을 찾아서 만져주고 핥아줘서 선심을 얻어내고자 한다. 연애란 일종의 수싸움과도 같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이다.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같던 초 중반을 지나, 후반부가 되면 이야기는 보다 관념적으로 선회한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하 편의 후반부를 읽는 느낌이었다.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사건들이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작가의 메시지는 보다 어지럽게 얽혀든다. 자신을 사랑한 사람들이 모두 고양이로 변했고, 그런 고양이들을 데려다 키우며, 타인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킨 상처투성이의 여류 작가. 과연 이 복잡다단한 장치들을 둘둘 감은 고요다는 어떤 메타포인가? 아이러니의 복합체인 고요다를 통해 저자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기 짝이없는 여자들만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일까??
자신을 사랑했던 수많은 남자들의 속에서. 도저히 '대화' 가 통하지 않는 수많은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 였던 고양이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외로운 사람 '고요다'. 뻑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때문에 짜증났던 '고요다'? 자뻑도 이런 자뻑이 없고, 공주병도 이런 공주병이 없다.
하지만, 남자로서 주인공 고요다는 몰라도, 고양이들은 이해가 된다. 나도, 쉽게 쉽게 홀랑홀랑 빠져드는 성격이니까. 그렇게 한번 빠져들면 몸도 맘도 재산도 다 훌훌 갖다 바치는 남자니까. 고양이가 되서라도, 그 사람 곁에 머물고 싶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남자니까. 그 여자의 마음은. 일단,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남자니까. 나 역시 고요다를 사랑했다면, 그녀가 주기적으로 불러들이는 섹스 파트너보다는, 그녀의 고양이가 되고싶으니까.
결국 난 고양이가 되겠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빠져드는 것. 그 무엇보다 위험한 사랑이다.
고요다는 마치 블로그나 트위터 스타의 모습과 닮아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지만, 그들에겐 껍데기의 모습만 보여주고, 깊은 이야기는 철저하게 숨기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주위에 가득한. 사람들은 많으나, 정작 소통을 부족한 현대인들의 모습. 현대인들은 주변에 들끓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보다 강렬한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을 해갈하기 위해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보다 강렬한 외로움을 느끼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때론 애완동물에 심취하지만, 그들 또한 외로움을 완전히 해갈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외로움을 해갈해주는 건 무엇일까??
저자는 일단 결론을 유보한 듯 하다. 저자의 페르소나일 주인공 '고요다'는 자신의 세계속으로 들어간다.
창작. '소설' 을 쓰기로 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필명을 사용하는 극중 주인공 '고요다' 의 본명 또한 저자와 이름이 같다.
마지막 장에서, 고요다는 강인한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고양이로 변하지 않은 그를 확인하게 된다.
과연 그때 고요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정말, 고양이로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을까??
자신과 완벽하게 소통을 했음에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고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을까??
여기에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
고요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꺼내 보였을지 몰라도, 강인한은 거짓만을 말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언제나 '솔직함' 을 전제할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더 이상 세상은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일터다.
사랑하고 고양이가 될 것인가, 사랑하지 않고 거짓말쟁이 사람이 될 것인가?
+덧
또 하나 재미있는건, 이 작품의 저자인 김희진 작가의 쌍둥이 자매인 장은진 작가는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를 통해, 결국 해답은 '사람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먼저 아주아주 감명깊게 읽었고, 김희진 작가가 그녀의 쌍둥이 자매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두 작품의 차이점을 은근히 의식하면서 작품을 읽어내렸다는 것을 고백해야 하겠다.
두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상당히 비슷하다.
가족들을 다 잃은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깊숙한 외로움을 끄집어내기 위해 불청객들이 난입한다는 점도 같다. 그 불청객들이 엄청난 철면피에 뻔뻔하기 그지없으며 상당한 능력자들이라는 점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미스테리한 기법으로 다소 쇼킹한 반전에 다다른다는 점 또한 닮아있다.
일단 '현대인의 풍요로운 듯 하지만 굉장히 빈곤한 소통' 을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같지만, 그걸 해석한 결론은 꽤나 다르다. 둘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완벽히 다르며, 각자의 작품이 내뿜고 있는 색채 또한 완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김희진 작가는 장은진 작가에 비해 보다 냉정한 느낌이랄까. 불쌍한 고요다에게 접근했던 강인한이 거짓을 무기로 고요다의 마음 깊숙한 것들을 끄집어내게 만들었다는 점이 김희진 작가가 냉정하게 바라보는 현실을 대변하는 듯 했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즐거움은 정말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