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달력 2
장용민 지음 / 시공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워드 레이크는 촉망받는 역사학자였다.

향후, 미국 역사학계의 장래까지 거론될 정도로 명성을 쌓고 있던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 헬렌과의 사이에서 어여쁜 딸 제레미를 얻으며 최고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가. 딸 제레미가 행방불명 되고 만다.

레이크와 헬렌은 경찰에게 맡기고 매일매일 기도하는 나날을 보냈지만, 두달이 넘도록 뉴욕 경찰들은 어떠한 단서도 잡아내지 못하자 레이크가 직접 딸을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모든 능력과 초인같은 의지를 발휘한 하워드 레이크는 결국 사건의 범인을 스스로 검거하는 일을 해내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딸 제레미는 차디찬 주검으로 변한 뒤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헬렌은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고, 하워드 레이크는 자신이 하던 모든 일을 내려두고 사설탐정이 된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한 의뢰인이 찾아온다.

의뢰인인 여인은 하워드에게 자신의 딸 '엠마' 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딸처럼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던 엠마는 무수한 상처자국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왔으나,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엠마가 집으로 돌아왔을때 했던 첫 마디는 사람의 이름이었다고 했다.

그 이름은 '새뮤얼 배케트' .

 

하워드 레이크는 이 정체불명의 여인으로부터 이름 하나만으로 사람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의뢰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새뮤얼 배케트라는 인물의 뒤를 밟아가면서 뭔가 이상한 점들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지구의 멸망에 관계된 무언가에 한발 한발 다가가게 된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라는 놀라운 소설을 선보였던 장용민이 오랜 세월동안 웅크린 끝에 엄청난 스케일의 대작을 완성했다.

마치 미국의 장르소설들처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이 큰 스케일의 작품은 퍼즐을 하나씩 짜맞추는 미스테리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주제는 결국 인간의 종교에 직결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있다는 점에서 [다빈치 코드] 와 [천사와 악마]의 '댄 브라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두개의 큰 축 중 하나는, 

'새뮤얼 배케트'는 누구일까?' 라는 의문을 갖고 그 뒤를 쫓는 하워드 레이크와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이고,

두번째는 주인공인 하워드 레이크가 끊임없이 되뇌이는,

'신을 믿습니까?' 라는 의문일 것이다.

 

'새뮤얼 베케트' 라는 인물을 보면, 단순히 어떤 사람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서로가 대화하는 시퀀스들로만 이루어졌지만, 큰 파장을 불

러 일으켰던 영화 [맨 프롬 어스 The Man From Earth] 라는 영화가 곧바로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새뮤얼 베케트' 라는 인물을 창조해내고, 작품의 얼개를 짤때 어느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가 전 이 영화 몰라요, 그럼 할 말은 없다.)

 

잠깐 이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1만 4000년. 즉 인류가 시작되던 순간부터 현대까지 죽지않고 살아왔던 한 인간이 있었다. 그 인간이 바로 어떤 학교의 선생이었다. 그는 불멸이라는 속성 탓에, 한 지역에서 몇년 이상 머물지 않는데, 이번 직장의 동료들에게는 자신이 불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어떠한 가정법을 통해 밝혀준다.'

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축적해온 엄청난 지식과 지혜를 통해 그 자리에 모였던 동료 교사들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자신이 불멸의 존재이고, 그들이 '예수' 라 부르며 신의 아들이라 믿는 존재의 발자취도 실은 자신의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들에게 '불가침의 영역' 을 건드린 것이다.

 

이 부분때문에 [맨 프롬 어스] 라는 작품이 미국 종교사회 안에서도 상당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고 알고 있고, 아마 국내에 수입되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극단적인 나의 생각이지만) 국내 종교단체의 압박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거의 예술영화 수준이어서, 그게 아니더라도 배급사들이 수입할 생각조차 안했을수도 있다. ^^

 

다시 [신의 달력] 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수집을 하고, 그 정보들은 이야기 안에 짜넣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음이 분명히 느껴진다. 이 정보들은 분명 단순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디테일하고 정밀한 정보들은 톱니바퀴처럼 어우러져 이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조금 아쉬운 점은 역시, 지나치게 획일화된 플롯에 있을 것이다.

사실, 이야기의 얼개는 '다빈치 코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헐리우드 영화식 구성' 을 모범답안처럼 차근차근 쫓아간다.

 

의문이 등장하고, 의문을 쫓기 시작하면, 단서들이 툭툭 떨어지고, 음모가 있고, 적들이 있으며, 반전이 있고.

결국 이런 작품의 재미는 단서간의 유기성과, 음모의 참신성과 현실성일 것이다.

참신하고 현실적인('아 이럴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음모를 통해, 단서들이 유기적으로 배치되면, 굳이 뒷통수를 때리는 반전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안타깝게도 단서간의 유기성이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또한, 인물간의 갈등이나 관계성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헐거운 느낌이다.

도입부는 좋았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이 만든 거대한 스케일의 압박때문인지, 캐릭터의 매력은 점점 떨어져간다.

특히, 2권째에 진행되는 내용들은 좀 생뚱맞다고 생각되는데, 결국 극의 초반과 후반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단서와 단서간의 연관성이 이야기와 인물에 의해 착 달라붙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정보에 의한 연관성으로 모아지기 때문일수도 있을 것 같다.

 

[신의 달력] 이라는 이 작품은 생각보다 책장이 굉장히 잘 넘어가는데, 이야기가 감칠맛난다기 보다 흥미로운 정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보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들이 가득하다.

작품을 놓고 봤을때는, 그 방대한 정보들과, 그 정보들을 담으려 하는 작가의 과욕이 조금은 독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고 봤을때도, 이 작품은 꽤나 재미있다.

영화 [맨 프롬 어스]가 떠오르고, [만들어진 신] 의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인문학자가 보면 펄펄 뛸 행보를 보여주지만, '새뮤얼 배케트' 라는 인물 또한 흥미롭다.

위에 언급했던 헐리웃식의 플롯도 모범적으로 따라가고 있기때문에, 이야기의 통일성이나 완성도도 좋은 수준이다.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출신 답게, 묘사나 서술도 시각적이고, 진행도 스피디 하여 읽는 맛은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소재들로, [다빈치 코드] 못지 않는 팩션을 우리작가가 만들어 냈다는 점 또한 자랑스러워 할 만 하다.

 

책을 덮은 뒤에, 나 역시도 고민했던 이 주제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일단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과연 신은 정말 인류의 탄생과 멸망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만든 것 처럼,

인간들의 집단인 '인류' 역시 태어났기에, 언젠가 반드시 멸종되도록 만들어 놓으셨을까?

 

아, 배고파.

밥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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