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화집 - 그림꾼의 마감병
석정현 지음 / 성안당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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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스튜디오 네이버 카페 "코믹스튜디오-디지털 만화제작을 배워보자!"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입니다.




우선,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적기 전에, 내가 에세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순전히, 작가의 "이야기" 보다 국내 최고의 디지털 드로잉 작가인 석정현씨의 "그림" 때문이다.

2000년대에 디지털 작화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석정현 작가의 필명인 "석가"의 작법서나 그림을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디지털 작화계(그런게 있다면)의 지평을 넓히고 디지털 일러스트의 표준과도 같은 이정표를 세운 작가가 바로 석정현이라는 사람이다.

그가 디지털로 구축한 작품세계는 '코렐'의 "페인터" 라는 소프트웨어를 빼고는 말하기 힘들 정도다.

페인터는 이름처럼 오직 '그림그리기' 만을 위해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무척 직관적이고, 디지털임에도 아날로그의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면에서 '어도비'의 "포토샵" 과 비교된다.

포토샵도 여러가지 플러그인을 설치하면 페인팅 작업에 매우 훌륭한 툴이지만, 페인터가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수많은 장점들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포토샵이 진정 "레이어" 위에 픽셀로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라면, 페인터는 정말로 종이 위에 수많은 진짜 미술도구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을 준다.

다만, 그만큼 호환성이 부족하고, 초보자들에게는 허들이 좀 높은 편인데, 석정현씨는 그런 단점을 자신의 작업과정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극복, 결국 "페인터" 라는 소프트웨어의 대중성을 한단계 높여준 이다. (코렐사가 정식으로 한국 홍보모델(?)로 위촉했다는 썰이 있을 정도.)


석정현 작가는 그림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만화적 연출력이나 표현력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아, 만화쪽에서는 크게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 없지만, 상업 일러스트쪽에서는 꾸준하게 작업하며 비정기적으로 자신의 작업물들을 책으로 엮어 내 왔다. 최근에는 "석가의 해부학노트" 라는 방대한 양의 미술용 해부학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런 책들을 본인은 "소품집" 이라고 하지만, 실려있는 일러스트의 퀄리티는 "소품" 이라 부르기엔 대단히 훌륭하다.


그런 와중에, 이 책 만큼은 정말로 "소품집" 에 가깝다. 작품에 가까운 그림과 함께한 소품집.


실제로, 작가가 활동중인 각종 SNS에 그린 그림이나, 저작권상 문제가 없는, 비상업적인 그림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 그림에 담긴 작가의 소회나, 당시 SNS 에 함께 올렸던 글들이 실려있다.

일러스트의 퀄리티와는 달리, 글의 퀄리티는 제목처럼 "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과 제목, 표지와 작가까지 아주 잘 만들어진 책임은 틀림없다.


평소에 석정현 작가가 한명의 "예술가" 로서 갖고 있는 여러가지 심상들, 고민들, 그리고 사회에 갖고 있는 이념, 그리고 그 이념들을 표출하기 위한 고심이 충분히 드러난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그걸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냈을테지만, 석정현 작가는 유려한 디지털 붓질로 적어냈다.

전작들과는 달리, 작법이나 기술보다는 보다 직업적, 개인적인 심상들이 적절하게 자리잡고 있다.


중간중간 맘에 담아둘 만한 이야기들도 있었고, 남편으로, 아버지로 변화해가는 "인간" 석정현씨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서 오랜 팬으로써 벅찬 내용들도 담겨있었다.

동시에, 재능 없는 나로서는, 운이 딱 맞는 때를 만난 재능 넘치는 자를 바라보는 부러움 역시, 한가득이었고.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그림을 보며, 그 그림에 대한 도슨트를 작가 본인에게 듣는 느낌은, 역시 좋다.



※석정현작가의 인스타를 링크해둔다. 이 책에 실려있는 많은 일러스트들은 이 링크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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