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국의 연대기 -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 걸작 논픽션 19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 김현정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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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9년에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는 카피와, 미국인들도 제대로 몰랐던 미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라는 책 설명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더랬다. 다소 의심스러웠던 마음으로 책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서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럴 만 했겠다' 싶었다.


책의 서문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이미지. '로고 지도' 와 미국의 현재 실제 영토의 지도를 비교해준다.

 


(미리보기에서 가져온 바로 그 페이지)

이 페이지를 보는 순간,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더랬다. 

미국령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도 잘 알고 있고, 괌, 푸에르토리코 같은 미국령, 그리고 필리핀처럼 한때 미국령이었던 지명들도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의도적으로 미국 본토만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도 이 대목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미지가 작아 아래 글씨들은 잘 안보일지 모르지만, 저자는 꽤 도발적으로 주장을 펼쳐내고 있다. 문장과 단어들은 매우 적확하고, 매우 깔끔하게 읽힌다. 어학 실력은 형편없어서 번역까지 지적할 깜냥은 안되므로 그 부분은 패스하고... 오역으로 느껴졌던 부분이 두어문장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 방대한 볼륨의 책이라 단순 실수로 보이는 지점들이었다. 주석과 감사의 말을 빼면 590페이지다. 


다양한 국가와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저자는 의도적으로 매우 유명한 사건과, 매우 유명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논지를 펼쳐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찾아들었던 이유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의 미국의 활약에 대한 의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록적으로 보자면, 미국은 1770년대 중 후반에 정부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초기의 미국 정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에 난리도 아니었다. 워낙 넓은 땅에 다양한 유럽 출신 유지들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에 여전히 깊은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바로 1810년대엔 영국과 캐나다 연합 군대에게 워싱턴이 털린적도 있었고, 1860년대엔 남북전쟁도 있었다. 이 전쟁이 수습된지 50여년 후.

미국은 어떻게 유럽에 참전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참전할 정도가 아니라 전쟁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지점이 꽤나 궁금했다.


 초반에는 바로 그 시점. 특히 루스벨트가 서부를 누비던 시기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으로 금광이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흡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번째 위기는 산업화와 영토 확장으로 인한 폭발적인 인구증가에서 비롯됐다. 멜서스는 이런 속도로 인구가 증가한다면 식량 생산을 앞질러서 "인류는 때 이른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농업 방식이 오래 지속되려면 질소의 순환을 관리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지혜를 바탕으로 순환 작물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쌓아야 충족되는 것인데,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가 이러한 순환주기를 깨뜨렸던 것이다. 19세기 미국 동부의 농가들은 타격을 받았다. 에이커당 작물의 생산률이 반 이하로 급감한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연구 끝에 페루 연안의 친차 제도에서 서식하는 가마우지, 얼가니새 및 펠리컨에게서 나오는 질산이 풍부한 똥, 즉 해조분이었다. 

 당시 이러한 해조분은 다른 모든 것처럼 영국이 독점하고 있었고, 미국은 해조분이 쌓여있을 태평양의 무인도들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미국이 발견한 그런 무인도들은 점유권을 주장하고, 그 독한 해조분들을 채취하는 일은 대부분 흑인들이 투입됐다. 너무나 척박하고 괴로운 환경 속에서 일꾼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비로소 해외 영토에 대한 법적, 전략적 개념을 획득하게 된다. "새똥이 널려 있는 바위와 섬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지간에 그곳은 결국 미국의 일부였다." 수십년 후, 이 곳들은 비행장 건설에도 적합한 곳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많은 미국의 해외 영토들이 어떻게든 연방으로 편입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얼핏, 로마 제국 말기, 시민권을 얻기 위한 시칠리아 동맹시들과의 갈등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삼, 미국 사람들이 로마 역사에 열광하는 이유도 이해하게 됐다.

 

 사실 이 책이 더 강조하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에 관한 부분이다. 

미국이 푸에르토리코를 차지해야 했던 이유, 괌, 사모아 제도, 하와이, 미드웨이 환초 등 태평양의 섬들을 가져야 했던 이유. 

나아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의 필리핀을 차지해야 했던 이유와, 일본에게 빼앗긴 이후, 다시 되찾는 과정. 그리고 이후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필리핀의 노력. 더글러스 맥아더가 필리핀에서 성장했고, 필리핀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터다. 독립을 추구하지만, 독립할 수 없었던 푸에르토리코의 경제적, 현실적인 고민,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을 독립시키고, 초토화시킨 일본을 점령하지 않았던 이유.  미국 상원의원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의 치열한 대립, 

그리고 전 세계에 산적해있는 약 800여개의 미군부대로 나아간다.

이란, 이라크 전쟁과 걸프전, 그리고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 

그리고 세계에서 모국어로 쓰는 빈도는 두번째이지만, 제2외국어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 '영어'를 위한 치밀한 전략.

그 실패의 잔재들과, 전략 밖에서의 뜻밖의 승리. 


대충 생각나는 것만 짧게 담아내기엔 너무너무 많은 내용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얽히고 설키면서 정신없이 펼쳐진다.


올 한해, 아니 최근 몇년간 읽은 인문, 역사서중 가장 쉽고 재미있게, 술술 읽히면서도 익히 알려진 유명한 사건들 이면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사산에서 시작된 '국제 표준'에 관한 치열한 외교전이라거나 고무를 개발하는 과정 등등은 결국 전쟁이 아니었으면 쟁취하지 못했을 편리함이라는 사실에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기사, 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어야 잠재력을 발휘하는 법이기도 하니까...

미국은 일본의 침공이라는 역사적 위기 앞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그 결과 영국, 독일보다도 빠르게 화공학, 원자물리학 분야에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결국 식민지의 필요성은 전쟁 수행 능력과 결부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불법 침략하고, 타이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을 침공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원자재를 조달하고, 병참선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미국도 태평양의 섬들이, 필리핀이 필요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항공모함과 비행기의 발달로 '영토' 의 필요성은 점차 약해져갔다. 미드웨이와 괌이 중요했던 이유,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아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항공기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영토를 점령하지 않는 대신, 곳곳에 미군 기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제국주의가 변화하기에 좋은 구실이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세웠던 기지들을 철수하는 대신, 부지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지배 방식을 변환시켰다. 오키나와의 미군부대는 하나의 커다란 예시였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오키나와를 점령했었다. 1970년 일본의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켜 미군부대로 쳐들어간 2년 뒤, 오키나와를 반환했지만 그 후에도 미군부대는 여전히 상주해있다. 미군부대는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주민들이 미군부대의 철수를 요구하지만, 그들 중 태반은 미군부대를 통해 일상을 유지한다. 철수와 유지에 대한 찬반 비율은 미묘하다. 심지어, 초토화되었던 일본의 산업과 경제가 일어선 계기는 미국의 군수품 조달을 통해서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대규모 군수품 조달을 일본에 맡겼다. 도요타는 한국전 직전 회사 규모를 축소할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고, 일본중앙은행은 '신의 도움' 이라고 할 정도로 산업 전반이 일어서는데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 일본이 미국이 세운 국제표준에 적응할 시간을 줬다. 


이러한 현상은 미군부대가 상주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동등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사마 빈 라덴의 집안도 미군의 사업을 수주하는 업체였고, 오사마 빈 라덴 본인도 미군들의 휴양시설을 짓는 사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 퍼져가는 미군부대는 번영과 증오를 함께 퍼뜨리고 있다. 무려 800여 곳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점묘 제국주의" 라고 표현했다. 다소 도발적이고 신선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적이지 않은 책은 아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왜 세계는 미국을 증오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자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라는 개념 안에 여러가지 것들을 억지럽지 않게, 논리적으로 끼워 맞춰내는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무척 인상적인 마지막 한 페이지를 옮겨본다.


" 이상하게도 미국은 제국주의라는 비난에 자주 시달렸으나 영토 차원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을 로고 지도로 나타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나머지, 제국을 부르짖으며 열렬히 비판하는 전문가들조차 해외 영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확장된 미국 영토의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영토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나 기지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중요한 문제다. 미국 입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영토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군기지에서 시작됐다. 피임약, 화학요법, 플라스틱, 고질라, 비틀스, 초원의 집, 이란-콘트라, 트랜지스터라디오, 미국이라는 이름 자체에 이르기까지 영토 제국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들의 역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영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식민주의는 정체적 배경에서 그 존재가 가장 두드러진다. 매케인, 페일런, 오바마 그리고 트럼프는 모두 식민주의의 영향을 받아왔다. 이는 이상하고도 놀라운 사실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놀라움을 뛰어넘어 미국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p.590


저자는 결국 제국주의 시대에 흩어진 미군부대가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문명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아이돌 음악도 결국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밴드, 그룹, 댄서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군 부대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이 머리맡에 있다는 점을 빼고라도, 미국이 결코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지 않으리라는 명백한 이유가 이 책에 잘 서술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방어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국으로서의 미국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최소한의 깃발.

그것이 미군 기지이다. 


이 리뷰를 정리하는 동안, 또 미군 기지로 인해 시끌시끌하다.

미군이 순환 배치와 전략적 유연성을 갖추려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미군이 한국에서 기지를 철수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미군 군인의 물리적인 숫자를 줄일 수는 있다. 이 책에도 언급되는데, 더이상 보병의 '쪽수' 는 그다지 중요한 전략적 개념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기지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상주인구가 있어야 하고, 기지가 설치되어 있는 국가, 지역, 주민들의 성격에 맞춰 재편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이라기보다, 미국의 지배 전략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또 크게 나뉜다.

미군들의 비행을 보도하며 반미감정을 증폭시키면서도, 미군이 쪽수를 감축할까봐 호들갑을 떤다. 

이 책이 예로 든 다른 나라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 안에 묶여있는 식민지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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