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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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경주의자인 한아는 절친인 유리와 '환생' 이라는 공방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월세를 함께 내고 있지만, 분야는 서로 달랐다. 유리는 미술 관련된 작업을, 한아는 주로 옷 리폼 등 옷을 재활용 하는 작업을 하곤 했다. 기혼자인 유리는 오랫동안 한아와 연애중인 경민을 탐탁치 않아 했다. 유리의 눈에 경민은 절친인 한아가 마음 붙일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마음 내키면 지 멋대로 한아를 홀로 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경민은 누가 봐도 성실함과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한아 역시 반쯤은 정이었고, 반쯤은 관성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헤어질 정도로 마음이 식은 건 아니었다.  
 그 날도 경민은 캐나다 유성우를 보러 다녀오겠다며 연인인 한아에게 상의도 없이 혼자 여름휴가를 써서 훌쩍 떠났다가 돌아온 참이었다. 헌데,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경민은 지금까지 한아가 알던 경민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좀 더 다정다감해지고, 식성도 꽤 변했을 뿐 아니라, 한아가 강조했던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등 환경문제에도 제법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였다. 제법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특별했던 건, 입에서 정체모를 녹색 빛을 내뿜었다는 사실.


 

아서 클라크와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세례를 받고, 어슐러 르 귄과 필립 딕을 영접한 후, 엑스 파일과 맨 인 블랙, 닥터 후의 영향권 안에서 자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작품이었다.
곳곳에서 반짝이는 SF적 장치들이 이 영향권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야기로 엮어내는 과정은 재기넘치진 않았지만, 발랄하게 통통 튀었다. 인물 한명 한명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고, 또렷하게 흘러나오는 메시지도 참 좋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거의 모든 장면에서 서로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들을 배치한다.
자기 멋대로 훌쩍 떠나버리는 경민과 한 곳에 앉아서 옷을 수선하는 한아, 매사에 합리적이고 냉철한 유리와 우유부단하고 정이 많은 한아, 오직 한아만을 바라보는 달라진 경민과 경민을 의심하는 한아, 국정원 직원으로 룰에 얽매인 수동적인 엘리트 정규와 아이돌인 아폴로의 덕질로 일생을 보내는 열정적인 주영.
이 작품이 시종일관 통통 튀는 느낌을 주는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들이 다소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다채롭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서로 상반된 인물들을 꾸준히 한 장면 안에 담아내면서 끊임없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짧은 소설이지만, 풍성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캐릭터의 설정이 치밀해서 내러티브가 풍성하기도 하지만, 작가가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절제하지 못했다는 느낌도 있다. (작가 후기에서 그 이유가 다소 드러난다. ^^)
이야기가 치밀하게 직조되지 않았다고 썼지만, 인물들의 배치 만큼은 매우 영리했다.


나는 이 작품의 초반과, 후반을 매우 좋아한다. 중반은 ,'보통' 이었다.
몸의 일부가 광석으로 만들어진 외계인인 돌아온 경민은 물리적 법칙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다.
초반에 외계인 경민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한아에게 다가서는 과정들은 재미있었지만, 외계인 경민과 한아가 본격적으로 연애하는 과정은 다소 김이 빠졌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그 능력을 이용해 지구에서의 부를 쌓아 생활에 편의를 더해주고, 나아가 우주 곳곳을 구경시켜주며, 부모님께 잘하고, 한아가 바라는 '지구인'으로서의 삶을 공유하는 등의 과정들은 딱히 외계인 완벽남이 아니라, 보통 로맨스물에서 등장하는 완벽남의 전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기사, 이 소설도 맥락은 로맨스 장르물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육체가 있는 종족과 육체가 없는 종족의 컬쳐 쇼크급 갈등들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외려 더 완벽한 지구인 남자와의 연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지구에서 사는 동안 가지고 있어야 하는 보디슈트가 지구인형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상상력을 발휘할만한 부분이라고 느껴져서 이런 평이한 러브 스토리가 다소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이 부분에서 완벽한 부인을 만들어 낸다는 [스텝포드 와이프] 같은 작품이 연상되기도 했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이 꿈꾸는 이성상은 결국 맥이 통하는 것일까, 싶기도.
각자가 다 자신에게 맞춰주는 이성을 꿈꾸는데,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오직 여성이 남성에 순종적일 것을 강요하는 사회였으니, 여성들이 그 반대를 꿈꾸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고.
결국 , 남성중심 사회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그런 이성과의 만남은 '외계인이 아니면 이뤄질 수 없는 꿈' 이라면, 납득할 수 밖에 없다.
※반면, '주영' 이란 인물이 그래서 이 작품 안에서 가장 특별한 요소이기도 하다. 외계에 광석 외계인 경민이 있으면, 지구엔 주영이 있다. 외계인 경민이 한아를 위해 2만광년을 날아왔다면, 지구인 주영은 아폴로를 위해 2만광년을 날아가는 여성이다.


이와 맞물려, 인간인 경민과 외계인인 경민이 대치하는 장면은 백미라고 보였다.
작품 안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기도 한데, 돌아오지 않기를 바랬던 한아, 최후의 최후에 봉착해 가장 '아쉬운 순간' 자신의 안식할 수 있는 인물에게 찾아온 인간 경민, 오직 한아만을 바랐고 모든걸 한아에 맞췄던 외계인 경민의 삼각 구도는 '인간' 와 '외계인' 의 테마가 가장 극명한 지점이었다.
마지막까지 인간 경민은 이기적인 남자였다.
그의 반대편에 있는 외계인 경민은 그 누구보다 순애보적이고 이타적인 존재였다.

한편으론,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 경민을 보며, 인간이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늙고, 병들고, 죽어가니까.
외계인 경민은 광석으로서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평화로울 수 있을지도, 그렇게 이타적일 수 있을지도, 그렇게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렬한 클라이맥스는 사족처럼 붙어있지만, 이 다리를 통해 뱀은 도마뱀이 되었다.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이 소설은 매우 다른 두 편의 소설이 된다. 어느 쪽이건 각자의 취향에 따르면 될 터.


에필로그는 마치 마블 영화의 쿠키영상처럼 붙어있다.
내용도 딱 그와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 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최종 진화에 실패한 외계종족 오버로드의 도움으로 최종 진화의 대상으로 선택된 지구인 아이들이 무너져가는 지구에서 건져올려지는 장면. 이제는 내 아이도 아닌, 나아가 지구인도 아닌 아이들을, 최후의 지구인이 바라보는 그 마지막 장면.
한아는 유리와 유리 남편과 함께 광석 외계인 경민의 선택을 받았다.
아마 이제 한아는 경민의 진짜 이름을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육신을 벗고, 환생한다. 자신이 평생동안 환생시킨 옷들처럼,
아폴로가 노래하고, 주영이 덕질하는 그 영원한 우주에서.
오직 자신만을 영원히 사랑해줄 그와 함께.

 










덧: 이 작품은 절대 SF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사실, 본문에도 적었지만,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딱히 외계인이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외계인은 사실, 신에 가깝다. 그것도 항상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기독교의 신, 수호신, 수호천사 등등.

아주 오래전부터 마치 편재하듯 한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강림하듯 어느순간 갑자기 내려와 한아의 모든 고민을 일소해주고, 지구에서 완벽한 삶을 누리게 생활의 편의를 살펴준다. 

솔직히 대부분의 일들도 지구 안에서의 일이기에, 외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다소 떨어진다.

다만, 엔딩 부분의 구도와 에필로그에서 일종의 전화轉化(어쩌면 진화일지도 모르겠으나, 확실하진 않으므로)를 암시하는 장면에서야 외계인을 선택한 당위성을 얻는다. 

어쩌면 작가는 이 후의 이야기를 먼저 상상하고, 앞부분의 연애소설을 쓴 것일지도 모르겠고, 개인적 취향으로는 작가가 구체화하지 않은 이후의 삶이 훨씬 더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여튼, 

이 소설은 완벽한 존재와의 완벽한 연애 판타지를 그린 소설이지-특히 여성을 위한-,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다루는 SF의 작법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덧붙인다.

덧: 이 작품은 절대 SF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사실, 본문에도 적었지만,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딱히 외계인이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외계인은 사실, 신에 가깝다. 그것도 항상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기독교의 신, 수호신, 수호천사 등등.

아주 오래전부터 마치 편재하듯 한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강림하듯 어느순간 갑자기 내려와 한아의 모든 고민을 일소해주고, 지구에서 완벽한 삶을 누리게 생활의 편의를 살펴준다. 

솔직히 대부분의 일들도 지구 안에서의 일이기에, 외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다소 떨어진다.

다만, 엔딩 부분의 구도와 에필로그에서 일종의 전화轉化(어쩌면 진화일지도 모르겠으나, 확실하진 않으므로)를 암시하는 장면에서야 외계인을 선택한 당위성을 얻는다. 

어쩌면 작가는 이 후의 이야기를 먼저 상상하고, 앞부분의 연애소설을 쓴 것일지도 모르겠고, 개인적 취향으로는 작가가 구체화하지 않은 이후의 삶이 훨씬 더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여튼, 

이 소설은 완벽한 존재와의 완벽한 연애 판타지를 그린 소설이지-특히 여성을 위한-,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다루는 SF의 작법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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