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불과 피 세트 - 전2권 - 얼음과 불의 노래 외전 얼음과 불의 노래
조지 R. R. 마틴 지음, 김영하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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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테로스 타르가르옌 왕조의 역사'
 '얼음과 불의 노래' 의 원작의 대장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드라마는 끝이 났다.
마틴옹은 본편을 이어나가기보다, 드라마의 팬들을 위해 세계관을 한번 정리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이 시점에 대체 왜??' 라고 생각했으나, 막 드라마판 '얼음과 불의 노래' 인 [왕좌의 게임] 8시즌 6화를 보고 나니, 마틴옹의 기획이 대단히 탁월했음을 알게됐다.
마틴옹은 아마 8시즌의 프리프로덕션부터 지켜봤을 것이다.
아니, 마지막까지 검수에는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대본을 미리 받아봤을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는 시즌6 후반부부터 원작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8시즌에서 마무리가 되는 것으로 결정이 나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드라마 제작사는 7,8 시즌을 독자적으로 끌고가기로 결정했고, 그에 동의한 마틴옹은 아무리 원작자라도 드라마 작가들이 만들어놓은 디테일을 일일히 간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 7,8 시즌은 앞 시즌들에 비해 내러티브가 상당히 부족하다.
부족한 내러티브는 자연스럽게 개연성의 부족으로 귀결됐다. 훌륭한 캐릭터들은 좌절하고 절망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내린다. 대너리스의 선택도 내러티브만 충분했으면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많은 부분들을 지나치게 생략했다.
8시즌의 호흡을 생각하면, 7시즌의 홧수들이 아까울 정도다. 

에소스 대륙에 있던 발리리아의 파멸과 함께 웨스테로스로 날아온 드래곤의 혈통 타르가르옌 가문과 그 기수가문이었던 바라테온 가문은 드래곤 스톤에 자리를 잡았다. '드래곤의 군주' 혈족이었던 아에곤 타르가르옌은 비세니아와 라에니스,두 누이와 함께였는데, 이 말인 즉슨 드래곤 세마리와 함께 도착했다는 의미. 혈통이 중요한 타르가르옌은 근친혼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에, 아에곤의 두 누이는 두 아내이기도 했다. 발리리아산 강철로 만든 검과 드래곤을 앞세운 침략자들은 주변을 차근차근 정복해 나간다. 
 [불과 피]는 이렇게 웨스테로스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정복자' 아에곤 1세부터 '미친왕' 아에리스 2세까지 약 280여년의 타르가르옌 통치기를 다룬다.
재미있는 점은 각 권 말미에 타르가르옌 가문의 연보가 실려있는데, 아에곤1세를 끝으로 '드래곤 왕가의 계보는 끊겼다' 고 단언한 점이다. 이는 마침 드라마의 엔딩과도 어느정도 접점이 있어서, 이 기획이 드라마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흥미로울 부분이 무척 많고, 드라마의 팬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부분들이 있다.
  
하렌홀이 드라마상에서 거대한 폐허와도 같은 모습인 이유, 협해에 위치한 요새인 드래곤 스톤의 홀에 있던 웨스테로스의 지도가 정교하게 조각된 거대한 테이블인 '채색 탁자'의 유래, 바라테온이 스톰스엔드를 근거지로 삼게된 과정, 도르네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 마르텔 가문이 왕가에 복속되지 않았던 과정, 왕의 직속 보좌관을 '핸드' 라고 칭하게 된 계기, 강철군도의 '그레이 조이' 가문이 스타크가문의 기수가 된 역사, 킹스랜딩에 레드킵이 건설되는 과정, 일곱개의 얼굴이 있는 유일신을 믿는 종단의 위세, 그리고 정복전쟁중에 입수한 적의 칼을 녹여 만들어진 철왕좌. 

나는 드라마가 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이 시리즈를 팔로우하고 있던 오랜 팬으로써 너무너무 의미가 깊은 책이었다.
다만, 팬이 아니라면, 서술 형식이 실제 역사학자의 그것처럼 왕을 중심으로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는 방식이라, 소설처럼 강력한 흡인력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대너리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드래곤의 파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와는 달리, 드래곤을 앞세워 주변 세력들을 복속시키는 아에곤의 행보는 지나치게 판타지스러워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드라마판 얼불노,[왕좌의 게임] 은 8시즌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나 역시 다른 팬들과 마찬가지로 큰 실망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나마, 이 책 [불과 피] 가 부족한 개연성에 어느정도 땜질을 해줄 수 있었지만, 원작 팬들이 이십년간 기다렸던 '겨울' 과 백귀들의 침탈, 서세이와의 갈등, 대너리스와 존의 결말을 그런 식으로 매듭지어서는 안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5분의 장면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시리즈의 완결이라는 느낌은 충분히 들었다.)

[불과 피] 마지막권의 역자의 말을 보니, HBO는 이미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의 프리퀄 드라마 제작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얼음과 불의 노래' 세계관의 단편집인 '세븐킹덤의 기사' 에 나온 내용들이나 '불과 피' 의 내용은 물론, 더 과거의 역사까지 폭넓게 접근하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발리리아 왕국의 최초의 드래곤 군주들의 이야기나, 웨스테로스의 처음 터를 잡은 '퍼스트맨' 들의 이야기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원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시, 역자의 말을 빌려보면, 2016년 마틴옹은 [겨울의 바람]이 큰 난관에 봉착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이 2019년이지만, 아직도 출간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그 난관에서 무사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일수도.... 
  
[불과 피] 는 원작 팬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다만, 이제 막 얼음과 불의 노래에 입문한 독자들이라면, 가급적 한참 뒤에 읽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적어도, 드라마 정도는 마지막편까지 정주행 하고 시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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