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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한국 건축 - 프랑스 건축가 25인의 한국 현대건축 여행
강민희 지음, 안청 그림 / 아트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중인 저자가 '일드프랑스 건축협회' 라는 곳의 지원을 받아 한국으로 건축답사를 떠나는 내용의 책이다. 대상자가 현대의 건축가들이라 전통 양식의 건물들은 가급적 배제하고, 현대 건축가들의 건물들을 주요 답사지로 선정했다.
아무래도, 나 역시 만화를 하는 사람으로 무협,사극에 대한 꿈이 있는지라 한국의 전통 가옥이나 건물에 대한 책들은 화집으로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국내에 있는 현대 건축물만을 찾아다녔다는 점이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사실 건축이라는 장르에 문외한이라 안도 다다오나 DDP로 처음 알게 된 자하 하디드 정도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그들의 작품을 눈으로 확인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물이 꽤 있다는 사실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떤 작품들은 제주도의 모 리조트 한 면을 다 차지하고 있고, 서울 중심부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상상 초월의 공법을 사용해 만든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고, 가끔 파주 출판단지에 가면 신기하게 바라보는 미메시스 아트뮤지엄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사실도 다 처음 알았다. @.@
그리고, 국내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가들이 꽤 많다는 사실도.
건물은 단지 우리가 몸을 누이고 잠자는 공간이 아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삶의 99.999999%를 건축물에 둘러쌓인 채 살다 죽을 것이다.
그 규모나 재료가 뭐든간에, 네모난 공간에서, 네모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의 연속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동하는 길이나 지하도도 모두 건축의 일부분이다.
이런 생각은 비단 현대인들 만의 것은 아니다.
이미 수세기 전, 기원전 시대의 사람들조차 그 사실을 알고, 인지했다.
습기와 병충해, 맹수들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인간의 삶이 바뀌었다.
'생존하는 삶' 에서 안락함을 '누리는 삶' 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생존은 기본이고, 생존의 내용이 중요해진 것이다.
나아가, 건축물은 인간보다 오랜 시간을 이겨내는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도 획득한다.
게다가 2020년이 코앞인 현대에는 도시 '생태계' 를 이루는 나무나 산과 같다.
우리 조상들은 풍수지리를 철칙처럼 믿으며 자연과 병존하는 건축을 추구했다. 외려 근현대에 접어들어 자연을 마구 훼손하는 건축을 추구했다가, 요즘은 다시 자연과 병존하는 방식을 고민중이다. 도시는 더이상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 책 안에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건물들을 답사한 건축가들의 감상이 적혀있다.
특히 DDP를 다룬 대목이 눈에 간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말들이 오갔는지 확실히 기억한다.
정쟁의 요소로 쓰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국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구할 때마다 답사 목록에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MA(일드프랑스 건축협회)와 프로그램을 상의할 때는 그것이 전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열이면 열 고궁이나 절 등 좀더 한국적인 건축물을 답사 프로그램에 넣고 한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더 많이 소개하라는 얘기를 했다. 그 점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이 달랐을 뿐이다. "
사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기껏 외국 건축가들을 한국에 초청해서, 왜 그 나라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여줘??
외국인들이 한국의 절과 고궁을 보면서, '우와 조선 쩔어, 고려 쩔어' 하는거 보고싶어!!!
"어떤 이가 설계를 했는지 상관없이 지금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현대 건축물 중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고 그것을 이 여행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렇지, 어차피 이 사람들은 건축을 '업' 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지금도 활발히'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현대' 의 환경 안에서 현대의 건축물들이 어떠한 모양으로, 어떠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건축엔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없다.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L.M 페이가 설계했고, 퐁피두 센터는 영국과 이탈리아 건축가의 합작품이다. 라데팡스의 신개선문은 덴마크의 건축가 요한 오토 폰 스프레켈센이 디자인했다. 다른 나라 출신의 건축가들이 작업을 이끌었지만, 이것들은 엄연히 파리의 것이며 파리 시민의 자산이다."
"도시는 거대한 유기체다. 무엇이 어떻게 뒤섞일지 알 수 없는 용광로다.
설계자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서울의 건축이 서울의 것이 아니라는 시선은 버려야 한다.
DDP도 마찬가지다. 이 낯선 공간도 결국 우리의 것이란 이야기다."
p. 107
문득, 어떤 건축가분이 조선총독부를 헐어버린 일을 아쉬워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민족의 자긍심에 상처를 낸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 도시의 중요한 역사 하나를 없애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나는 조선 총독부 건물이 국립 중앙 박물관이던 시절 정말 많이 갔었고, 아주 많이 봤더랬지만, 우리 이후의 세대들은 그런 건축물이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민족적 자긍심은 그런 것으로 쉽게 무너지지도, 세워지지도 않는 것인데.
이 책은 DDP가 완공되기 전, 천문학적 건설비용과 그 기묘한 외관에 비판적인 기사들이 매우 많은 시기에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그런 반발들을 이해하면서도 아쉬워했다. 그 와중에도, DDP안에 유적들을 보존하려는 모습들을 인상적으로 본 외국 동료들의 이야기를 싣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가깝게는 인사동 쌈지길과 복개된 청계천, 이화여대 서울캠퍼스부터 멀게는 한탄강 전곡선사박물관과 바다건너 제주도 돌 박물관까지 수많은 현대적인 건축들이 우리 땅 위에서 살아 움트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땅 위에서, 내 땅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진 건축물조차도 외국인이 설계한 건물, 한국인이 설계한 건물을 나누고 있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외국 설계사가 설계했다고, 그걸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뚝딱뚝딱 망치질 하는게 아니다.
외국 건축 사무소와 국내 건축 사무소가 긴밀한 파트너쉽 아래서 작업을 한다.
토질, 주변환경, 재료수급 등 실제로 '짓는' 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인부 한명까지 다 우리나라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리고 누가와서 누가 지었던들.
그 곳에 살고 있는 내가 주인이고, 내 삶의 공간인데.
이미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알게 뭐람!!!
게다가 수년, 수십년 전 사람인데!!!
다만, 이 집을 지은 사람의 마음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어떤 마음으로 이 방향에 창을 냈고, 어떤 마음으로 이 기둥을 세웠고, 어떤 마음으로 이벽을 발랐을지.
그 어떤 창보다 많은 햇살이 들어오길, 그 어떤 기둥보다 튼튼하길, 그 어떤 벽보다 단단하게 버텨주길.
건축들은 그래서, 우리 삶의 일부분일 수 밖에 없다.
그 어떤 생태계보다, 도시 생태계가 우리와 밀접한 이유다.
[휴먼 에이지] 에서 저자인 다이앤 애커먼은 '인류세' 인류sms '도시종' 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인류의 절반이 넘는 35억명이 도시에 몰려 있다. 2050년이면 도시가 세계 인구의 70퍼센트를 홀리리라고 내다본다. 이 추세는 밤하늘의 달처럼 엄연하고 산사태처럼 막기 힘들다. 2005년에서 2013년 사이에 중국의 도시 인구는 13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치솟았다.(...) 이 추세라면 2030년에는 중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 것이다.
(...)
영국은 1950년 무렵에는 바둑판처럼 배열된 도시들이 인구의 79퍼센트를 품게 되었다. 도시 거주자 비율이 92퍼센트에 달할 2030년이면 영국은 진정한 도시형 국가가 되어, 그보다 할 발 앞서 그렇게 변한 다른 나라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인구의 90퍼센트가 도시에서 살고, 독일은 88퍼센트가, 프랑스는 78퍼센트가,'
이 줄줄이 통계의 바로 다음에 한국이 나온다.
'한국은 80퍼센트가 그렇다.'
([휴먼 에이지] p.105)
우리나라는 이미 80퍼센트가 도시에 산다!!
이제 지구는 오직 자연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자연 생태계 뿐 아니라, 자연을 인간의 생활권 안으로 끌어들인 도시와 병존하고있다. 바야흐로 도시 생태계의 정착이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건축이 있다. 건물이 있다.
이러한 고민은 문명을 선도하는 소위 '선진국' 에서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전용되고 있다.
지하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운동에너지)과 발산하는 열에너지로부터 전기를 생산하는 건물이 있고, 그 어떤 에어 컨디셔너 없이 오직 건물의 구조만으로 공기의 흐름을 조정해서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건물들도 있다. 건물의 외장재 대신 거대한 수풀을 옷처럼 둘러입은 건물들은 도시 생태계의 중요한 테마다. 태양에너지와 바람에너지는 이미 정착되어 있는 발상이다!
건축가들은 오직 예술적인, 또는 기능적인 면만 보지 않는다.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기능적인 효율성은 물론, 도시의 역사성과 도시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습관은 물론, 도시 생태계의 원활한 사이클을 살핀다.
참 절묘한 타이밍에 두 책이 얽혔다.
거의 두달간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있는 '휴먼 에이지' 에 끼어든 [봉주르 한국 건축].
[봉주르 한국 건축] 에서 소개하는 우리나라의 건축물 중 한국인이 설계한 건축물은 몇 안된다.
하지만, 모든 건축물은 한국에서 건설되었고, 거의 모든 재료들은 한국에서 나왔고, 거의 모든 건축자들은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거의'의 나머지는 외국인 노동자겠지. 그럼,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높으면, 그건 외국인이 지은 건물일까?
'쌈지길' 을 품고 있는 인사동 거리 재정비 사업,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 정비 공사, 동대문 운동장 터에 내려앉은 번득이는 곡선의 DDP. 우리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공 건축들은 과연 서울의 도시 생태계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
'건축물'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만 보아도, 이 거대한 예술품에 정신을 내려놓을 곳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자연을 이기고도 살아남을 우리의 흔적. 문명의 조각. 그 안에 녹여내는 작가의 메시지.
아, 그러고보니, '러브*데스*로봇' 이라는 넷플릭스의 단편 애니메이션 모둠에 비슷한 작품이 있었다.
지구를 넘어 대기권도 넘는 행성급 규모의 설치미술!! 지구만한 캔버스라면, 그것은 회화일까, 건축일까??
단순히 상상만을 넘어 공학적 설계를 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반드시 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장르.
건축.
새삼, 건축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더불어, 여행이라곤 1도 관심없는 내가 이 책을 한 권 들고 우리나라 각지를 여행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