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죽인 형사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
레이프 페르손 지음, 홍지로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출판사의 리뷰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고 작성한 책입니다. 스포일러 없습니다. 





이야기는 공동주택에서 은퇴 후의 연금생활을 즐기던 전직 회계전문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매일 아침 신문을 돌리는 성실한 소말리아 출신 난민인 셉티무스 아코펠리가 끔찍한 시신을 발견했다. 

죽은 칼 다니엘손은 무쇠 냄비 뚜껑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고, 죽은 뒤에 목을 졸려 살해당했다.

이 끔찍한 사건은 벡스트룀에게 할당됐다.

인종차별주의자에 성차별주의자, 계급차별주의자에 알콜중독자이기도 한 벡스트룀은 상사들에게는 차라리 제손으로 죽이고 싶은 꼴도보기 싫은 부하고 부하들에게는 끔찍하고 재수없는 상사였다. 그런데, 그가 조직에 붙어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의외로 큼직한 사건을 해결해냈기 때문이었다.  

칼 다니엘손의 죽음은 단순 폭행치사로 보였지만, 그의 은행 대여금고에서 수백만 크로나의 현금뭉치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점차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처음 몇페이지는 벡스트룀의 독백이 다소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를 욕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과 어떤 대화를 할 때마다 속으로 미친듯이 욕을 해대는데, 그 욕의 수위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벡스트룀은 정말 쓰레기 같은 인성을 지닌 인물이다. 인종, 성별, LGBT 등 온갖 금기시되는 개념들을 총 동원하어 쉬지 않고 욕을 해댄다.

그 욕이 정말이지, 너무나 창의적이어서 익숙해지니 웃음이 터져나올만큼 유머러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주인공이 모든 것에 차별주의적인 인물이라는 점만 빼면, 이 작품이야말로 정말이지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큰 이슈인 'PC(정치적 올바름)' 에 가장 걸맞는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정말 온갖 인종과 커플들이 등장하고, 그들 모두 정당한 배역들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다.

이러한 균형성이 작가의 출신지이자 작품의 배경인 스웨덴의 단면으로 읽히기도 했다.

작품 안에서도 인종갈등과 남녀갈등, 계급갈등, 연금 생활자와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편하게 지내는 젊은 백수로 대표되는 세대갈등, 난민,이민자들과의 민족갈등  등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속으로 수없는 욕을 쏟아내는 벡스트룀에게 조금씩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벡스트룀은 작가의 입장에선 위악적인 인물이고, 작품 내에서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독자에겐 자기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다. 

내가 느낀 감정은, 일종의 길티 플레져랄까.

겉으로는 사려깊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욕을 내뱉는 벡스트룀이 이해되기 시작하자, 작품 안 모든 인물들의 속마음도 들리기 시작했다. 벡스트룀이 중남미계의 부하 경찰들을 욕하는동안, 그들 역시 겉으로는 위계질서에 따라 굽신대지만, 벡스트룀을 그 못지 않게 욕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가 예의라는 안경을 쓰고, 위선의 탈까지 쓴다. 

벡스트룀은 인간 그 자체의 모사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인종적, 민족적으로 대단히 폐쇄적인지라 작품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종, 민족갈등에 공감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이민자들을 홀대하고, 난민 출신 흑인들을 비하하는 등장 인물들의 태도를 보며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과연 나라고 다를까? 우리사회라고 다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침, 우리 사회에서도 난민 문제가 일기 시작했다. 엄청난 유언비어들이 양산되고, 난민들을 쫓아내자는 청원이 순식간에 30만을 넘는 동의를 얻는 모습을 지켜보며, 더더욱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우리 윗집, 아랫집에 예멘 난민과 시리아 난민, 소말리아 난민들이 들어온다면. 그들이 무리지어 동네 여기저기서 낯선 말을 하고, 낯선 몸동작을 하며, 낯선 눈빛을 보낸다면. 같은 시간마다 같은 곳을 향해 절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면. 

회사에서 나의 상사가 필리핀인이고, 내 파트너가 베트남인이라면.
그 중 일부는 게이이고, 일부는 무슬림이라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만약 통일되면, 북한 출신 사람들을 남한 사회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엄청난 지역차별로 어마어마한 갈등이 생겨날터다.

심지어, 경찰이라면.

새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스웨덴 경찰 시스템의 공정성과 평등함이 놀라웠고,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건들을 통과해 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도 문제인지라, 이야기 자체보다 이런 점들이 먼저 신경쓰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 자체도 굉장히 재미있다.

저자가 책 앞에 붙여놓은 '다 큰 아이들을 위한 사악한 이야기' 라는 문장이 아주 안성맞춤이다.

벡스트룀이 길티 플레져라면, 안니카 칼손 경위는 저스티스 플레져(이런 단어는 없겠지)를 주는 인물이다.

둘 다 위선의 탈을 쓰고 서로의 뒷다마를 까면서도 서로의 능력을 완벽히 존중하고, 결국은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해 달려가는 조합이 참 신선했다. 특히, 벡스트룀이 안티 히어로라면, 안니카는 전형적인 히어로다. 알콜 중독자에 불평불만 투성이인 벡스트룀과 전도 유망한 여성 경찰이자 유능하고 머리도 팽팽 잘 돌아가는 안니카. 결국 따지고 보면 벡스트룀을 얼르고 달래면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인물이도 하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깜찍한 반전까지.

 

이 작품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틀을 따르고 있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사실은 얽혀 있었고, 전혀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인물이 범인이며, 결코 예상하지 못한 동기가 있었다. 멕거핀과 힌트가 적절하게 흩어져있고, 반전도 꽤나 흥미롭다. 

범인과 대면해서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도 클리셰이지만, 어차피 추리소설은 장르 자체가 클리셰다. 

얼음틀 안에 어떤 음료를 넣어 얼릴까의 문제일 뿐이다. 

간만에 정말 푹 빠져 읽었다.

벡스트룀은, 정이 간다해도 다시 보고싶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짜증나는 인물이지만, 다음 권에 안니카 칼손 경위가 나온다면, 꼭 다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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