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말 1~3 세트 - 전3권 - 6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6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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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뛰어난 것을 신에게 바친다.' 

경기대회에서 우승한 가장 빠르고, 강한 말이 희생제물로 쓰였다. 

'시월의 말' 은 그렇게 재단에서 목이 잘리는 말을 의미했다. 희생제가 끝나면 그 목은 두 무리의 하층민들에게 던져졌다. 수부라 지구의 하층민들과 사크라 가도 지구의 하층민들이 이 목을 두고 난투에 가까운 소동을 벌였다. 이 목을 차지한 무리는 자신들이 속한 지구의 대표 건물에 그 목을 못박아 자랑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 1권의 첫장부터 조심조심 페이지를 넘겼다.

카이사르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셰익스피어와 BBC드라마를 통해 익히 알고 있어서, '여기부터일까?' '이쯤일까?' 하며 조마조마했다. 과연 매컬로는 위인의 죽음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너무 궁금해서 미리 뒤를 넘겨보고 싶을 정도였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에서 시작된 로마 공화정 말기 '로마의 일인자' 는 술라를 거쳐 나이우스 '마그누스' 폼페이우스에게로, 그리고 카이사르에게로 넘겨졌다.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의 죽음으로 폼페이우스와의 연결고리는 끊어졌고, 카이사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보니파의 준동에 의해 정치권력의 균형추는 크게 흔들렸다. 크라수스의 죽음과 함께 '삼두연합'은 깨진지 오래였지만, 폼페이우스와 사돈으로 연합하며 카이사르는 로마의 권력을 차근차근 장악한 터였다. 폼페이우스를 등에 업은 보니파는 비불루스와 카토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 카이사르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결국 카이사르는 '주사위를 던졌고',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강을 건넜다'. 이탈리아는 다시 내전의 격랑에 휘말렸다. 그들은 카이사르를 '독재자', '왕' 이라 불렀다. 폼페이우스와 카토를 위시한 보니파는 스스로를 '공화파' 라 불렀다. 그들에게 카이사르는 공화정의 적이었다. 


 [시월의 말] 은 이집트에서 시작된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는 비록 이탈리아에서 카이사르의 군대에게 패했지만, 시리아 등 동방 속주의 공화파들을 재결집시켜 이후를 도모하려 했다. 카이사르와 공화파의 대결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내란은 속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도시들은 공화파와 카이사르파로 나뉘었고, 그에 따라 속주의 총독들도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 동방 속주는 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 보니파가 파견한 총독들이 많았다. 로마의 곡물은 주로 이집트를 비롯한 동방 속주에서 나왔고, 내전이 길어질수록 동방 속주의 중요성은 커질 터였다. 폼페이우스는 동방을 향해 도피로를 잡았다.  이 정보를 파악한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카이사르에게 잘보이기 위해 이집트에 도착한 폼페이우스를 죽이고 그 목을 선물로 보낸다.  


 하지만, 이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큰 오해였다. 집정관까지 지낸 로마인이 이집트에서 참살당한 사건은 카이사르에게 알렉산드리아 정벌에 대한 명분이 되었고, 카이사르 개인적으로도 큰 충격과 분노로 다가왔다.

그는 결코 공화파들을 죽일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온 카이사르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클레오파트라.

하지만, 남동생이자 남편이기도 한(!!)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축출당해 지방으로 쫓겨난 그녀에겐 프톨레마이오스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가 양탄자에 말려 카이사르에게 바쳐지는 장면이 여기서 등장한다.

수많은 작품에서 허접한 양탄자에서 등장하는 클레오파트라는 자기보다 몇배나 나이가 많았던 카이사르를 사로잡은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묘사하지만, 역시, 콜린 매컬로는 달랐다. 

[시월의 말]의 카이사르에게 바쳐진 돗자리 안에서 솟아난  클레오파트라는 어떠한 매력포인트도 없었다. 로마인에 비해 피부는 갈색이고, 자신의 딸보다도 어린, 비쩍 마른 마케도니아 혈통 소녀의 외모가 로마의 숱한 귀부인들을 농락한 카이사르의 욕망을 자극했을 리는 만무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에게 그저, 딸 율리아보다 어린 깡마른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를 정벌한 뒤에 프톨레마이오스를 그대로 둘 마음이 없었다.

폼페이우스를 척살한 프톨레마이이오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로마인의 복수를 해야했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가 군주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집트는 속주로 거느리기에 너무 넓었고, 시리아, 아프리카등 여러 국가들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었으며, 이집트 안에서 자기들만의 공고한 집단을 이루고 있던 유대인들도 다루기에 쉽지 않았다. 총독을 파견하여 속주로 다스리는 것보다, 철저한 계약관계로 국가대 국가로 맺어지는 편이 나았다.

프톨레마이오스를 축출해내고, 그 자리에는 클레오파트라를 앉히는 편이 나았다.

카이사르에게 클레오파트라의 정략적 가치가 생긴 것이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줌으로써 로마의 오랜 우방이 될 씨앗을 심었다.    



이 당시 평균수명이 50~60 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카이사르는 인생의 황혼기에 막 발을 들여넣은 셈이다.

우리 삶에서 나이를 느끼는 순간은  당연하게도 육체의 쇠락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 시대의 군인이라면, 매일같이 수십킬로그램의 등짐을 지고 매일 수십킬로미터를 행군하던 시기다.

카이사르는 항상 보병들과 함께 했던 장군이다. 매우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였던 그는 그 즈음, 이미 육체의 쇠락을 느꼈을 것이다.

수많은 사가들이 추측하는 카이사르의 지병인 간질발작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드러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카이사르는 수많은 역사기록을 통해 인류 역사상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가장 완벽한 정복군주로 손꼽힌다. 알렉산더가 뜻밖의 이른 죽음으로 신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카이사르는 이 간질 발작(으로 추정되는)의 기록으로 인간의 역사에 남았다. (한편, 간질 발작이 다른 병들과는 달리 당시 신관들이 '접신' 했을때의 모습과 닮아있어서 '신에게 선택받은 증거' 로도 읽혔다고 한다.)

콜린 매컬로는 이 발작도 매우매우 현실적으로 추론해서 소설 안에 너무 잘 녹여냈다.

카이사르 간질설은 나폴레옹 치질설과 함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애초에 '간질' 은 병명이 아니라, 증상이다.

원인이 너무 다양한 병변이라 그 시대의 다른 이들처럼 어떠한 지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콜린 매컬로는 기록상 카이사르가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 과로와 영양부족으로 인한 저혈당을 원인으로 삼았다. 카이사르가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위에 관련된 다양한 병을 앓았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심한 위궤양과 저혈당도 간질과 같은 발작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당대의 식습관을 떠올리면, 귀족들은 그런 병들을 앓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시월의 말] 에서 초반을 장식하는 인물은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이지만, 중반을 장식하는 인물은 다름아닌 카토이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어머니이자 카이사르의 오랜 정부였던 세르빌리아의 이복 오빠. 그리고 그녀가 평생에 걸쳐 가장 증오하는 인물. 카이사르를 가장 맹렬히 공격했던 보니파의 아이콘이자 철저한 금욕주의자.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괴이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 카토.

작품 전체를 통틀어 카이사르와 함께 가장 복잡하고 입체적이며, 마력적인 매력을 풍기는 인물이다. 

특히 최후까지도 너무너무 인상적인데, 그 페이지를 읽으며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자신의 OO를 꺼내는 최후. 이건 진짜....

너무나 카토다운 죽음이었다. 


 

[시월의 말]의 후반부 이야기의 축은 '계승자'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의 기병대장이었던 안토니우스의 대립으로 옮겨간다.

카이사를 암살한 세력들은 권력의 공백을 장악하지 못했고, 옥타비아누스가 가장 먼저 카이사르의 군자금들을 접수하면서 가장 먼저 행동을 개시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술라, 카이사르에게도 각기 약점은 있었지만, 옥타비아누스의 약점에 비교하니, 약점도 아니다.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의 약점을 알면서도 그를 후계자로 지명할 정도로 그 재능을 읽었고, 약점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조언들을 건넸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에게 충성할 수 있는 진정한 동료들을 두면서 약점들을 커버하고자 했다. 그들 중 하나가 내가 2000년 대학입시때 소묘로 그렸던(ㅋㅋ) 아그리파였다. 젊은 정치 천재가 동료들을 얻고, 탁월한 정치감각을 발휘해 육체적인 약점을 극복하며 차근차근 성장하는 이야기는 흡사 일본만화처럼 흥미롭기 짝이없었다!!!! 


많은 학자들이 '로마 공화정의 최후의 정확한 시기' 를 점찍지 못한다. 

이는 이후 동서 로마의 멸망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로마는 시대를 지배한 패러다임이었고, 정신이었다. 

그저 왕과 나라이름이 바뀐게 아니다. 

수백년간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바뀌는 과정이 한두해 뚝딱 해서 바뀔 리가 없다.

로마 공화정의 종말은 고대와 중세의 전환기를 대표하는 사건이다.


옥타비아누스는 공화정으로 로마라는 거대한 문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간파해냈다.  

로마에서 가장 먼 속주까지 법률이 도달하기까지는 몇년이나 걸렸지만, 정작 집정관의 임기는 고작해야 한두해에 불과하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집정관을 여러번 역임하면서 그 맹점을 해결했고, 술라는 독재관이라는 예외조항을 강화하여 적용시켰다. 콜린 매컬로와 많은 학자들이 공화정의 종말을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기준점을 찍는 이유이다.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후 콜린 매컬로는 독자들의 성원에 못이겨 7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를 집필했다고 한다.

옥타비아누스는 [시월의 말] 을 통해 로마 제국의 꿈을 이미 싹틔웠다. 이미 동서를 가르는 거대한 지배체계도 상상해냈다. 옥타비아누스의 로마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비록 콜린 매컬로의 로마사는 다음권이 마지막이지만, 옥타비아누스가 만들어갈 새로운 로마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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