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6
마이클 하워드 지음, 최파일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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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에 대해 흔히 '사라예보의 총성' 정도로 알고 지나간다.

1914년 6월 28일.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계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가 후원하는 흑수단이 훈련, 무장시킨 십대 테러리스트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다.

발칸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화약고였다.

수많은 민족들이 얽혀있었고, 지리적으로도 중요했다.

수많은 열강들이 얽혀있었고, 작은 나라들과 큰 나라들이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페르디난트의 암살로 촉발된 위기는 발칸 반도에서 발생하여 열강의 개입으로 평화롭게 해소된 이전의 대여섯 차례 위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이제 세르비아를 확실히 제압하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주변국가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통일된 독일 제국은 프랑스의 자금을 받아 대규모 철도 부설 사업과 동원 계획을 수행 중이던 러시아가 1905년의 패배(러일전쟁)에서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일찌감치 전쟁을 치르는 편이 낫다고 계산했다. 프랑스에서는 호전적 민주주의가 득세하며 전쟁을 각오하고 있었고, 러시아에서는 범 슬라브주의 여론이 전쟁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 책은 1914년, 전쟁 직전의 유럽을 전반적으로 훑어가며 제1차세계대전을 개괄한다.

20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 안에 1914년 전쟁직전부터 15~16년의 소모전, 미국의 참전과  18년부터 시작되는 당사국들의 강화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까지 제법 꼼꼼하게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전황이나 큰 전투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기병대의 몰락과 포병 전술의(관측) 발달과정, 탱크의 개발과정과 전투기 활용성의 변화(항공사진)는 물론,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아우르는 폭넓은 서술로 '전쟁' 그 자체를 과감하게 파헤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도입부다.

당시 유럽 상황을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중심으로 간명하게 짚어내는데, 서로가 어떤 관계로 묶여있는지,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떠한 합의들로 얽혀있는지 정말 쉽게 풀어놨다.

사실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들을 보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도입부다.

러시아의 범 슬라브 민족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체첸인, 루마니아인, 세르비아인, 아르메니안들과 오스만 투르크(터키)와 중동 민족들의  갈등상황, 나폴레옹의 복고왕정이 다시 무너지며 혁명과 반혁명파로 철저히 분열된 프랑스,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서 광대한 자원과  인구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존재감을 과시하는 러시아,  그리고 가장 복잡한 통일 독일.

민족주의가 전쟁으로, 나아가 군국주의로, 왕조로 묶여있던 민족들이 국가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들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부록도 충실하다.

당대의 국경선과 서부 전선, 중부 전선의 제법 상세한 지도들은 물론, 원저자와 역자가 추천하는 1차세계대전에 관련된 많은 책 목록까지 있다!

'첫단추 시리즈' 특유의 작지만 훌륭한 퀄리티의 도판도 빼놓을 수 없고.

개론서로는 더없이 좋은 텍스트다.



새삼, 이런 요약 정리본으로 한국전쟁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솜 전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잘 알아도, 흥남철수나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그만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물론,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당대 대한민국의 상황과 2차 세계대전을 막 끝낸 주변 열강들의 대치상황,전략, 전술의 시험장이 되었을 수많은 전투들, 중국이 참전하기까지의 과정, UN연합군의 창설과정, 미-소 냉전체제까지 아우르는 뜻깊은 텍스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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