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는 요즘 ‘핫한’ 양자 얽힘에 대해 얘길 나누다가 양자역학의 이해에 관해서 대화하게 되었다.
-둘 다 대충 읽고 주워들은 내용가지고 자칭 용호상박, 타칭 자강두천이므로 내용 생략-
대화 중에 나온 얘기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초등학생도 알고 상대성이론은 고등학생이면 이해를 하는데 양자역학은 미래의 학생들에게 어떨까- 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교집합은
‘발전되더라도 양자역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상태의 연속이라면 나중에도 배우기가 곤란하지 않겠냐.‘
였다.
마치 페르마의 정리를 위해 수학이 발전해오고 결국은 몇 백페이지에 걸쳐 이제라도 겨우 정리를 했다고는 하나, 더 발전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정리‘라는 모양새를 갖출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페르마가 뻥친게 아니라면),
리사랜들같이 ebs(일반교양프로)나와서도 혼잣말 처하고 가는 그런 거 말고,
다시 말하지만 좀 더 깔끔한 ‘정리’를 내심 바라고 있다.
그게 안되면서 결국 미래 애들은 다 알게된다는 둥의 얘기는 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 20세기 인간이여서 갖는 노파심일 수 있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는 지식 이론 따위는 개나주고 그냥 발전된 문물을 생각없이 쓰고 있을 확률도 굉장히 높을 것 같긴 하지만.
문득 인간의 뇌는 (이해의)한계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호모사피엔스에서 크게 안 변했다니까.
예를 들어 로마시대 갓난 아이를 현재로 데려다가 손에 스마트 폰을 쥐어주면 갖고 노는데 얼마나 걸릴까.
현대 아이들을 무지랭이인 채로 그냥 채집생활이 평이한 무인도에 풀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뇌 역시 그냥 뇌 일뿐. 후천적인 사항이 유전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미 판명이 났다.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이다.
한 시대의 인간들이 잘 못배우고 덜 배우고 잘못 배우면 뒤로 갔다가, 평균 지적 인지가 높아지면 좀 앞으로 갔다가 하는 것. 역사는.
다시 말해서 전두환 만났다 노무현 만났다 윤석렬 만났다 하는 이유인 것이다.
까딱하면 전제군주제도 다시 올 수 있으리라. 그것도 아주 생각보다 쉽게.
이런 사실들을 깨닫고도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여전히 구태의연하게 들린다면 초월자이자 바보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소설 얘기로 들어가보자.
아무래도 지구종부터 시작하고 싶다.
earthreligion가 아닌earthlism?
일단, 뭘 들어주거나 기댈 수 있는 신이 아니고 존재감이나 내세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
지구종의 일원이 하는 기도는 결과적으로는 나의 결의의 다짐이고, 응답은 내 노력의 결실이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협력해 주변도 믿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넓혀가자는 심리학적 관점의 종교. 믿음공감종교? faith sympathy religion?
-아들러의 중심 사상이기도 한데. 위아더월드, 피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종교가 될 수 없는 그냥 사상인 것.
반콜레의 얘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유대가 튼튼해질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유사시에는. -사회주의 냄새도 나지 않는가.
내가 만약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면, 저 중에 누가 될 것인가, 어떤 태도에 가까울까도 생각해 보았다.
조앤일까 키스일까 키라일까 어설픈 로런이 될까. 해리? 아니... 난 그냥 죽임을 당하는 존재로 남을 확률도 있다.
변화를 무서워하지만 살아남는데는 적극적인... 의사거나 노예일 수도 있다.
사실적이고 비참한 얘기인데 끌어가는 분위기가 섬세하고 실제감이 있어 책장이 저항없이 넘어갔다.
개인적으로는 ai세계를 표방하는 여타 sf들 보다 좀 더 와닿는 느낌의 미래의 그림이었다.
ai가 판치는 미래를 내 머리로 솔직하게 시뮬레이션해보면,
다국적 기업이 탈세를 하고, 정부의 힘은 여전히 약자한테 강할 것이며, 특별하게 침범 받지 않은 일자리를 공고하게 가진 계층이나 돈을 가진 일부 특권층을 제외한, 일자리를 잃은 다수의 사람들은 최저 생계비나 복지 정도의 혜택으로 살아가는 것 외엔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안써진다. 망할 환경까지 더해지면(재수 없으면) 소설과 엇비슷한 미래가 되지 않을까나.
혹자(유발하라리라던가)는 나쁜 걸 상상해 봄으로서 피해갈 수 있다고도 하지만 그건 두 눈 부릅떴을 때 이야기고,
겁난다고 막연하게 불안한 생각만 한다면 딸려 갈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어려운 이유랑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힘의 논리가 아니라, 지식이 쌓여서 생겨난 정치 원리이며 자본주의와 더불어 인류의 확장을 견인한 이론이다. 다들 원하지 않으면 점점 더 옛날로 돌아갈 수 있고 인류는 쪼그라들 수 있다.
책의 저변에 깔린 생각처럼 굳이 종교를 만들어서 널리 알려야지만 개선되는 수준이 아닌,
올바른 지력과 세상에 대한 공감을 가진 사람들이(자발적으로) 압도적으로 늘어날 때,
이런 인류 미래의 내거티브 시나리오는 점점 더 옅어지고
그냥 세상 사는 것도 서로 좀 편해지지 않으려나.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어른들은 세상을 위해 잘 배운 것들이 있다면(이기적으로 나만 살아남는 건 자본주의에서는 교육도 아니다. 본능을 굳이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세상을 위해 아이들에게 잘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요즘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 번역 깔끔하고 훌륭한 통찰력을 가진 재밌는 sf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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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번역은 earthseed, 지구종.
202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