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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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릴적에 숙제를 하기 위해서 백과사전을 뒤지던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고학년때 발표수업을 가끔 했었는데, 당시엔 피피티 같은 것도 모르던 때라, 프리젠테이션(보통 사회역사 분야)를 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조원들끼리 각자 조사범위를 정하고, 모여서 정리한 후에 전지 몇 장에다가 조사한 것들을 요약하고 그림을 그리고 해서 발표를 했었다. 똑똑한 리더감도 필요하고 글씨를 잘 쓰는 친구도 필요하고, 나처럼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친구가 있으면 유용했다.

개인적인 조사를 하기 위해선 거실 책장에 웅장하게(?)꽂혀있는 대백과사전중에 인물 사회 역사 분야를 뽑아서 범위를 찾고, 옆에 국어대사전을 가져다 놓고 모르는 단어나 애매한 건 도움을 받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정보를 모았다.

언제나 저런 것들을 시작할 때면 피로감부터 가졌다.
그러나 막상 백과사전을 몽땅 훑고 필요한 것들을 발췌하고 나면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것을 느끼고 뭔가 똑똑한 짓을 하는게 분명하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충만해졌던 기억이 있다.
백과사전과 국어사전은 크고 두껍지만 믿을만한 정보만 있다는 신뢰감이 있었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언정 산만하지 않게 언제나 내가 계획한 정도에서 끝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용물 역시 그림, 도표, 글자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조금은 원시스럽지만)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얘기를 하나 들라면 니체가 타자기를 쓰기 시작하고 글에 변화가 왔다는 에피소드이다.
핸드폰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훨씬 많은 메모를 편하게 남기기 시작했고(아이에게 젖을 물리거나 유모차를 몰다가도 한 손으로는 메모 가능) 매년 구입하던 다이어리 쓰기가 멈췄다.
최근엔 핸드폰으로 글을 쓰면 점점 오타도 많고 눈도 아파서 남편이 타블릿에 호환되는 키보드를 사주었다, 덕분에 쳐박아놨던 타블릿까지 새 생명을 얻는 와중인데.
편하다고만 생각했지 내 생각하는 방식이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충격이었다.
잘 생각해보면 글씨는 필적 감정이 있을 정도로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난다.
이모티콘이 대신한다지만 그것 역시 보편화된 기호이자 약속에 불과하다.
아마도 스스로의 필적조차 알 수 없는 것 부터가 전조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의 상태는 집중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큰 감정기복이 있지도 않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인터넷 정보와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로 뇌마사지를 계속 받는 한 상태는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느끼고는 있었다.
집중하고 날카로워지고 싶으면 댓가가 있다는 것을.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르겠다. 애키우려면 날카로운 것 보담 차라리 요정도 맹한게 적당한 거 같기도 하고.

아이에게 인터넷을 안겨주는 일 역시, 그날부터(시대에 뒤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전전긍긍해왔다.
근데 이 책에 나온 실험결과는 막연한 우려를 현실로 꺼내서 단정지어주고 있다.
음...

인류의 장기기억과 주도권을 데이터베이스에 다 맡긴채, 그냥 좀 낮은 지능에서 머무르게 될 확률이 높은 대다수의 후세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영화에서 나오듯이 좀 멍하게? 혹은 해커들로 거듭나나? 인터넷중독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몇몇의 지배를 받으며?

어릴적부터 핸드폰을 탐닉하도록 길들여진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한 삶이고 다른 삶을 알 수 없는데 뭐라고 설명하나. 그냥 핸드폰을 뺏으면 되는 걸까?(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그에 비해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은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지긴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좀 더 괜찮게 사는 방향이려나.

한 켠으로는, 인터넷 중독의 뇌 변이(?)에 길들여져서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다고도 인지하지 못하는 시대가 와버리면 작가의 우려처럼 그렇게 나쁘려나 싶기도 하고.
인류가 망하지 않고 계속 존속하는 길로만 갈 수 있다면, 그냥 그 방법의 진화과정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지 않으려나.

물론 20세기 소녀인 내 취향은 아닐지라도.

202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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