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3009450001651˝기동성에서 비롯하는 가능성.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바이크, 자기만의 차가 필요해요. 게다가 바이크는 사륜차보다 싸고 환경에 덜 해롭기까지 해요. 그러니 여자분들, 조수석 말고 바이크에 타세요.”
벌써 꼼수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 책의 요점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보기를 든 목적은” 이런 말 쪽으로 눈이 빨려 들어간다. 지문분석 훈련의 파블로프의 개. 독자가 버거워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게 유일한 희망이다. 아 맞다 ㅋㅋ주디스 언니 얼굴. 믿고 따라오라는 계시도 있었지, 참..
그러나 무엇이 젠더의 자격을 부여하는가 하는 질문은 이미 그 자체가 폭넓게 규범적인 권력 작용을 입증하는 질문이자, ‘그것이 무엇인가‘ 라는 규정하에서 무엇이 될 것인가 라는 일시적인 작용을 입증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젠더의 장에 대한 기술 자체가 결코 규범적 작용의문제에 선행하지도 그 문제와 분리되지도 않는다. - P65
이 책의 요점은 젠더의 당연시된 지식이 실제에 대한 선제적이고 폭력적인 경계선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 P67
해제에서 기억할 키워드 메모-패러디/원본원본없는 모방으로서의 젠더. 그러므로 젠더는 재현이 아니라 수행적이다법앞복종/우울증적 정체성(이해 못함. 다시 찾아볼 것)당연한 거지만 물 흐르듯이 읽을 수가 없다. 훈련이라고 생각해야지. 폴 오스터 어떤 책인가에 주인공이 못읽은 책들 생활고로 급히 처분하기 전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따라 만졌던, 그렇게 완독(!)하던 생각이 난다. 그런 심정이다 지금 ㅋㅋㅋㅋ서문 집필 의도 부분
젠더의 의미를 그 관행적 의미로만 한정한 페미니즘 이론은모두 페미니즘 안에서 배타적 젠더 규범을 설정하고, 그것이 때로는 호모포비아를 낳는다는 게 그때 나의 입장이었고, 지금의 내 입장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이 새로운 위계와 배제형식을 만들어내는특정 젠더의 표현물을 이상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보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나는 특정 종류의 젠더 표현물은 거짓이거나 변종이고, 다른 종류는 진짜이거나 원본으로 입증되었다고 규정하는 이런 진리체계에 반대했다. 이 책의 요점은 독자들에게모델이 되어줄, 새롭게 젠더화된 방식의 삶을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떤 종류의 가능성이 구현되어야 하는지 지시하지 않으면서 젠더 가능성이라는 장을 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혹자는 ‘가능성을 연다는 것이 결국 어떤 효용이 있냐고 의심스러워하겠지만, 이 사회계에 산다는 것이 불가능‘ 하고, 불법적이며, 실현할 수 없고, 비현실적이며, 위법적인 것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젠더 트러블은 젠더화된 삶에서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 자체가 습관적이고 폭력적인 전제로 인해 배제되는 방식들을보여주고자 했다. - P45
소설 자체의 재미는 나쁘지 않고, 한 여성의 내적 성장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겠지만 여성혐오와 레이시즘 범벅이라 읽기 힘들었다. 어렸을 때 썩 재밌게 읽었는데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된 덕에 다시 읽었을 때가 하필 #stopasianhate 촉발시킨 사건 있을 때. 내가 이걸 세계명작, 명화(페인티드 베일) 등등으로 소비한 것도 오리엔탈리즘과 미소지니에 기여했을 거 같다는 생각은 과장일까. 하긴 그 유구한 배척과 타자화의 역사에 내가 몇자 읽었기로서니 간에 기별도 안 가겠지만 그래도 좌절감과 배신감은 들더라. 다른 얘기지만 어린이나 청소년 권장도서로 비판 없이 서양 고전 안 넣으면 좋겠다. 요새는 안그래야 할텐데. 옐로피버에 대한 기사들을 읽어보면서 외국에서 지낼 때 지인들이 (아마도) 좋은 뜻으로 해준 말에조차 읭?하며 속으로만 떨떠름했던 기억이 여러가지 떠올랐다. 그때 왜 난 알지 못했나라는 원망도 함께. 뭐 이제 아니까 괜찮다. 그깟 고추, 그깟 살갗색. 너네나 그렇게 붙들고 살아라.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