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몇 년 전에 못 읽고 덮었었는데 지금은 재미있누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딛고 미래를 설계하며 현재의 과제를 수행하지만 그는 동시에 동시성과 완전성을 지닌 영원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현재는 영원과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 P18

책에 시간을 바치려면 무엇보다 먼저 토막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서재에 세 시간 이상 혼자 앉아 있을 수 있어야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독서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한 권의 책만 두고두고 읽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책의 하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 P27

문화적 맥락의 지배를 받으면서 책들은 서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은 문화적 맥락 자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문화적 맥락 속에서 나서 죽는 인간이 문화적 맥락의 외부로 나와서 문화적 맥락의 전체를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책들의 지형학으로 드러나는 맥락은 결국 인간이 구성한 인간의 작품일 수밖에 없고, 맥락 자체는 무한하나 인간의 구성 능력은 유한하므로 책들 사이의 맥락은 고르지 않고 빈틈이 많은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 P30

마음밭 일은 침묵 속에서 원리로 환원할 수 없는 사실들을 인식하는 훈련이다. (마음 밭 일=사유) -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타 있지만 인터뷰가 좋다. 시집 담아둬야지.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9041905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정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남성중심적인 대가족의 막내딸, 남성중심적인 문단 말석의 시인인 자신과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충분한 곁 혹은 품”을 주지 못한 결여와 미달을 떠올리며 (..)


게다가 20대에 80년대를 거쳐온 저로서는 늘 인간과 인권이 더 먼저였는데, 지금은 두 고양이 덕분에 동물과 동물권에 진심이게 되었습니다. 동물해방과 종 평등에 눈을 뜨게 되었구요.
(..)


정 시인은 “타자로서의 제 조건들을 충실히 살아내느라 제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했고, 싸우는 걸 무서워했다”고 말한다. “그 겁도 학습 받은 것이거나 가스라이팅된 것이었겠지만요.”

“이제 겁내지 않아도 돼,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 이젠 절망해도 되고, 분노해도 되고, 지쳐도 되고, 져도 돼! 비로소 여성이어도 돼! 그게 진짜 지치지 않고 지지 않는 것이라는 걸 제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제 자신을 울력하는 문장이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은미 읽는 오후.



수미는 수업 테이블 한쪽에 앉아 방향제 같은 걸 만들다 가기도 했고 많이 피곤한 날에는 은채 침대에 잠깐씩 누워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알람을 오분 단 위로 연이어 맞춰놓고서.
시간에 맞춰 학원 차가 도착하지 않으면 차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각자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그러면 그 엄마들은 일을 하다 말고 불안해하며 다시 수미한테 전화를 했다. 수미는 정확한 차량 시간과 아이들 승하차 안전 둘 다에 신경을 쓰느라 늘 곤두서 있었다.
나리야, 나 좀 깨워줘.
알람을 맞춰놓고도 수미는 말했다.
나리야, 이십분 있다 나 좀 꼭깨워줘.
나좀 꼭.
수미가 잘 하는 말이었다.
나리야.
나 좀 꼭.
67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3-09-03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은미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이번 장편은 읽고 싶은 마음 안 읽고 싶은 마음 반반

유수 2023-09-03 22:20   좋아요 1 | URL
why?

반유행열반인 2023-09-03 23:34   좋아요 1 | URL
요즘 읽는 책 마다 번번히 반찬 투정이라 이거 읽고도 또 지랄할까 봐? ㅋㅋㅋㅋㅋ 최은미 몇번째 파도인지 거기에 약사 많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그 책 읽고 세뇌되서 약대간다고 깝친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유수 2023-09-03 23:3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반찬 투정!
아홉번째 파도죠. 호평 남기신 거 봤던 거 같아요.(아닌가? 아무튼 맞는 반찬을 대령하라!)저는 반님과 거기서도 갈리더라구요. 책은 좋았지만요.

반유행열반인 2023-09-03 23:45   좋아요 1 | URL
그게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속편도 뭔 파도여서 둘이 그렇게 헷갈리더라구요 ㅋㅋㅋ 거기 소설에 나오는 마냥 맑은 약대생 공익 청년 너무 좋았습니다 ㅋㅋㅋㅋ제가 소설 속 남자 등장인물 대부분 혐오하는데 걔는 완전 유니콘 ㅋㅋㅋㅋ유니콘이라 일찍 죽니...흑흑 ㅋㅋㅋ

유수 2023-09-03 23:49   좋아요 1 | URL
우와 나는 그 청년 나오는 부분 읽을 때마다 고역이었고 걔랑 진짜 안맞았는데!! (유니콘을 시러하는 개인 취향) 약사가 또 누구 있었더라.. 구병모 소설에도 있었던 거 같고..

반유행열반인 2023-09-03 23:54   좋아요 1 | URL
구병모 나 거의 다 봤는데도 기억 안 나요 ㅋㅋㅋ그냥 나는 끝없이 현재에서 도망만 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소설집은 너무너무 맴찟이어서 좋은데도 아파서 아마도 이 책도 비슷할 거 같아서 슬슬 피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읽고 좋으면 야 반새끼 너도 읽어라 읽어 하는 글 써주세요 ㅎㅎ

유수 2023-09-03 23:59   좋아요 1 | URL
눈으로 만든 사람 나도 많이 찢어졌어요. 그런 글 못 써요!하려다가 제가 읽은 리뷰들 생각하면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어지니.. 일단 알겠습니다요.
구병모는 아마 네 이웃의 식탁인 거 같은데 아니면 어쩌지? 어쩔 수 없죠,, 그것도 또 갈릴 거 같다 그리고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04 00:02   좋아요 0 | URL
네 이웃의 식탁은 구병모 소설 중 징벌적 판매에 당첨된 두 권 중 하나입니다 ㅋㅋㅋ또 하나는 버드 스트라이크 ㅋㅋㅋㅋ

유수 2023-09-04 00:04   좋아요 1 | URL
버드 스트라이크는 못봤어요 ㅋㅋㅋㅋ 현재까지로는 눈으로 만든 사람이 유일한 것인가..

서곡 2023-09-04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은미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만 읽었는데 매우 힘들었습니다 ㄷㄷㄷ 맴찢 일인 추가요 ......유수님 월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유수 2023-09-04 12:58   좋아요 1 | URL
최은미한테 찢기는 거 왜케 좋은지 모르겠어요ㅋㅋ
 

밀리로 재독 중. 그간 품절되었구나 ㅜㅜ

나는 일종의 탐사나 답사를 구상했다. 말하자면 21세기 초입 어느 한여름의 일주일 동안 잉글랜드 한구석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포착해 글로 옮겨보려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사람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구실을 댔다. 사실, 진짜 의도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일상 세계의 표면 아래에 이르고 싶었다. 잠이 든 사람이 일상의 공기를 떨쳐내고 꿈에 다다르는 것처럼 그렇게.

 

풍경 사이로 흐르는 강은 세계를 포착하고 운치를 한결 더해준다. 반짝이는 물결이 어우러진 세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비해 더욱 신비로운 감이 있다. 강은 구슬을 꿰는 줄처럼 문명 속을 흐르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3-09-04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밀리로 읽고 있습니다 ㅎ 딴 거 읽으며 딴 짓 하느라 진도가 안 나가고 있지만서두 ㅋ 9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유수 2023-09-04 12:58   좋아요 1 | URL
저는 걸으면서 들어서 게다가 tts.. 근데 묘하게 또 들을만 하더라는요 ㅎㅎ 서곡님도 저도 9월에는 읽겠죠! 기록 남겨주시는 거 잘 보고 있을게요
 


아이의 솜털이 햇빛에 비쳐 반짝거린다. 귓바퀴, 팔꿈치 위, 광대와 볼 라인을 따라 동그라니 줄지어 있다. 회색인지 하얀색인지도 모를 섬유, 얼핏 먼지처럼 보이는 것들이 균일하게 누운 그 천연덕스러운 모양새를, 본다. 분명 매일 보는 아이 몸의 일부인데 낯설다. 어제도 있었던가. 있는 줄도 모르고 함께 해온 시간을 일순 몽환의 영역으로 소환하면서 이제야 저를 발견했냐고 능청부리는 솜털을 보노라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도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순간 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그게 자식에 대한 사랑이어도 내겐 그다지 순리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순리’라는 오명 자체가 그걸 설명할 수도 있을 거 같다고,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내리사랑'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어쩌면 자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면, 사랑이고자 한다면, 응당 받는 자에게 제대로 가 닿지 않으면 안된다. 양육자인 나는 앞으로도 그 당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삽질 같은 괜한 생각을 사서 하는 것도 스스로를 사랑해 본 적 없다는 사실에서 연원함을 나는 육아를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한때 작가의 소설을 좋아했다는 이웃님의 선물로 받았는데 그게 벌써 일년도 더 된 일이다. 이 얇은 책을 이제서야 읽은 스스로가 어이없게 느껴질 정도지만 핑계는 있다. 할머니 이야기라면, 내게는 읽기 전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읽다 보면 내 외할머니에 생각이 미칠 테고 할머니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감정의 파동을 버티려면 나도 안정적일 때 펼쳐야지, 생각했었다. 그렇게 둔 지 꽤 되었는데.. 안정은 개뿔, 안팎으로 시끄러운 요즘에야 읽기 시작하게 됐고 역시 ‘책 읽기’에는 내가 맞출 수 없는 맞춤한 때가 따로 있는 것도 같다.






할머니에 대한 회고록일 줄 알았던 소설가 심윤경의 에세이는 열어보니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작가 본인이 그간 자녀를 양육하면서 할머니가 떠올랐던 순간들과 할머니의 그 모습에 견주어보며 스스로가 양육 뿐 아니라 삶의 태도를 다듬고 배워온 기록에 가까웠다. 작가의 할머님처럼 말 없이 지지를 보내고 가족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은 아니었지만 나도 어렸을 때 외할머니에게 받은 절대적 사랑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정도의 사람 구실하기 어려웠을거라 생각하는지라 그 기제가 이해되었다. 할머니는 내가 이럴 때 어떻게 했었지? 어떻게 했었을까. 다만 내 경우엔 할머니를 떠올리는 것이 현실적 도움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상황과 시대가 다르고, 엄마/할머니라는 위치가 다르고, 무엇보다도 피양육자인 나와 아이가 다르니까. 다만 책과 함께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마음이 시리면서도 편안해졌다. 또 울적해진 적도 있다. 나는 내 아이에게 할머니가 가까이에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작가도 비슷한 언급을 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꿀짱아에게는 나의 할머니만큼이나 너그럽고 따뜻한 조부모님이 네 분이나 있다. 나의 부모님들은 내가 어릴 때는 꽤나 엄격하고 까다로운 분들이었지만 손자녀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조부모님들이 되셨다. 하지만 그분들은 꿀짱아와 함께 살지 않는다. 한 집에 함께 살면서 순간순간 꿀짱아에게 한없는 관용과 지지를 베풀어주지 않는다. (...) 바로 그날 나의 육아에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꿀짱아에게 함께 사는 할머니가 없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거대한 빈 구멍을 내가 인식한 날이었다."162


그레타 거윅이 모든 딸/엄마의 가슴을 명중시킨 바 있듯이 (I know you love me, But do you LIKE me?, [레이디버드]) 자식이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일은, 좋아해지는(?) 것과 한참 다르다. '사랑받다'와 대칭하는 '좋다'의 수동형이 없다는 것도 새삼 놀랍네. 엄마란 딸을 사랑할 수만/사랑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엄마를 대체 불가능한 위치로 만들고, 그렇기에 관계에서 가장 근본적인(파괴적인) 균열도 내고 그러는 걸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더 괴롭게 할 뿐인 경우를 얼마나 많이 겪고 보았나. 어렴풋이라도 알았으면서도, 다 몰랐다고는 못하는 내가 가족을 만들어버린 이상, 아이에 관해서는 특히 자식 본인이 수신할 수 있는 것만을 사랑이라고 정의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랬지만..



체득은 언제나 인식 위에 있다. 머릿속 정의대로 깔끔하게? 현실에선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동안도, 어제도, 오늘도. 나르시시스트 양육자가 되지 않는 것만을 목표로 했더니 그게 나를 더 옥죄는 한계가 될 줄이야. 지난 몇년은 육아 자체의 힘듦보다도 내가 왜 힘든지를 알아내는 과정만으로도 지난한 시간이었다. 최근 쉽게 잠들지 못해 유튜브를 방황하며 본 동물원의 판다육아일지. 내가 얻은 위안의 정체는 어쩌면 사랑스러운 판다가 아니라 분열없는 온전한 기쁨으로 판다를 돌보는 중년 남성들에 대한 대리만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도 그런 분열감을 언급한다. 
"이전에 살았던 세계는 학교, 직장, 문화, 친구, 성취와 우정의 세계였다. 모두 두 글자 이상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세계는 쉬, 똥, 침, 코, 토, 잠, 젖, 신기하도록 모두 한 글자였다. 아마 생명과 양육 활동이 그토록 근원적인 것임을 언어로서도 상징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면서도 거북했다. 좀 더 고차원적인 것, 언어와 문자로 이루어지는 활동, 교육받은 성인과 함께하는 대화를 목마르게 그리워했다. 먹고 자고 싸고 놀고 우는 것은 나의 삶이 아닌 것 같았다."


"나의 삶이 아닌 것 같은" 세계에서 아직도 헤매는 내게 숨돌릴 구석을 만들어주는 책이었으며, 또한 양육서이기도 하다. 읽는 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어떠어떠한 아이 만들기"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양육서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 분류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내 경우엔, 양육자인 독자가 아이뿐 아니라 스스로를 들여다 보게 해주는 책이 좋은 양육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은 것이 꽤 도움이 되었다. 
책에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꽤 있다. 도대체가 변덕스러우면서도 그 나름으로는 잘 돌아가는, 사춘기 딸과의 하루를 함께 하는 에피소드에서도 소리내 웃었었다. 남일이 아니라는 두려움이 앞섰는데도 웃음은 새어나왔다. 그 딸이 아기였을 때 일화 중에서는 아가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할지 그렇게 어려워하다가 놀이터에서 초보 견주인 이웃이 잘 다루지 못하는 개를 만나 자기 식구처럼 우레탄 바닥에서 뒹굴고 나서야 어느 정도 육아에서의 깨달음(!)이 왔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기억 속에서 할머니를 꺼내 먼지를 털고, 당신의 방으로 들어가 추억을 곱씹어보면서 현실을 지나보낼 동력을 얻고, 때로는 성찰에도 이르렀다는 고백이 책에 가득한데, 그래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까다롭기 그지 없고 동네에서 무섭기로 유명했던 나의 외할머니 또한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가 아닌가 생각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책을 읽는 다른 이들도 "나의 아름다운" 누군가, 무엇, 혹은 어디를 소환하며 바로 여기 있었네, 왜 몰랐지, 나처럼 뒤늦게 웃음짓게 되지 않을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8-31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31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