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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아가미를 단 인간 곤을 거두어 숨겨 키운 가족과 그 이후의 이야기. 첫 장 한강에서의 장면이 나에게 서울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환기해 유난히 끌려 들어갔다. 출렁이는 검은 물을 노려 보던 기억, 아무 생각 없이 강물에 간 시선에 어질해져 본 감각들. 이 책을 처음 연 건 바다에서였는데 텐트 안을 기어다니는 애기 궁둥이에 짓눌리면서도 재밌게 읽었다. 한동안 소설 읽지 않아서인가 싶기도 했지만, 아니야-구병모여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혐오가 만연하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래서일까. 제대로 된(!) 혐오라고는 할 줄 모르는 캐릭터들-개중 가장 밑바닥인생이라고 할만한 사람조차 이미 비늘과 물고기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다-만 나오는 책이라서 읽기가 그렇게 편했던가. 이너서클 밖의, 들어본 적 없는 고단한 인생들. 이내호라는 배경은 나에게는 부단히 상상을 해봐야만 가 닿을 수 있는 곳인데, 읽다 보면 내가 사는 곳보다 그렇게 끔찍한 곳이 아니기도 하고, 거기서 나름의 정의대로 일상을 버텨내는 인물들에 위안을 받는다.
한강에서 처음 만나, 제 두 다리로 걸어 바다로 돌아가는 인어남자의 전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이야기다.
비록 그렇지 않은 가정이 세상에는 더 많다 하더라도, 아이란 한 집안의부서지는 관계를 지탱하는 일종의 축과 같다고 의사는 믿었다. 그 자체가 형식이자내용인 존재가 아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사이사이에 닻을 내리는 것이며, 그런 아이에게는 제대로 된 사회적 명명이 부여되고제도가 갖추어져야 했다. 의사가 보기에 강하네는 그것이 가능한 집안이 아니었다.
"물론 죽이고 싶지." 작은 불꽃이 그대로 사그라지는 바람에곤은 그 말을 하는 강하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곤한테 다시 후드를 씌운 뒤 조임줄을 당겨 머리에 단단히 밀착시키고 강하는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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