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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빼어난 글, 읽을 만한 글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논문(학문?), 과 ‘잡문’의 구별을 지양한다. 그리고 이를 구분하는 사람일수록 그 지성을 의심하는 습관이 있다. 글은 정치적 입장과 문장력으로 구별되는 것이지 학문, 잡문 예술로 구별되지 않는다. … 좋은 글은 읽는 이의 정치적 입장이나 기호와 상관없이 합의된다. - P17

내게 가장 어려운 책은 나의 경험과 겹치면서 오래도록 쓰라린 책이다.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전’이다. - P20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려는 지적 자극의 본질적 측면은 요동하는 세계관이다. 아는 방법을 질문하는 책. (중략) 조감도는 전경을 볼 수 있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체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뿐이다.
우리를 다른 세게로 인도하는 책은 피사체를 내가 모르는 위치에서 찍은 것이다. - P28

독서가, 조금 ‘다른 책’이 나한테 이런 확신과 자신감을 준 것은 여성학 책을 통해 획득한 위치성(positionality) 때문이다. - P47

책을 읽는 데 필요한 태도는 왜 이 책을 읽는가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자기 탐구라는 정의감과 그 정의감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창의력은 독서의 결과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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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책 정보를 보고 가급적 모녀 서사 다룬 책은 피하는 편인데 읽다가 이중으로 뚜드려 맞음 ㅋㅋ 읽다가 못 피했고, 제목이 탈혼기인데 조금이라도 안 나오리라 생각한 것도 말이 안됨… 피하는 이유 아프니까 ㅜㅜ
“딸은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ㅜㅜㅜ 메타에세이… 재밌다..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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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가 사라진 내일 한울림 지구별 그림책
로지 이브 지음,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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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들었는데 요즘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환경이슈에 대해 물어보면 이미 대답을, 모범답안들을 다 안다고 하더라. 환경오염이 심각하고, 기후위기가 코앞에 닥쳐있고, 탄소 중립이 뭐고, 이제 무얼 해야 하고, 하면 안되고… 교육이 잘 되어 있다고 할지, 아니면 이제 이들이 누구보다도 당사자인지라 당연한 걸지도. 우리집 어린이도 마찬가지라 아이들이 그렇게 반응한다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기가 어렵지 않았다. 우리집 일곱살, 환경 문제나 멸종 동물을 다룬 그림책을 볼 때 엄근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쁜 어른들 니네 다 가만 안도… 부들부들ㅎㅎ… 귀엽긴 한데 이쯤에서 나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고 생각이 복잡해진다. 제로 웨이스트며 업사이클링이며 주워 나르는 말은 많아도 육아 핑계로 일회용품 사용을 얼마나 합리화했나. 육류 소비는. 멀리 갈 것 없이 읽어주는 내가 바로.

다른 그림책들처럼 빙하가 녹아 터전을 빼앗기는 북극곰이 주인공이다. 엄마 북극곰과 헤어지게 된 아기 북극곰을 따라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위태롭게 길 떠나는 북극곰을 보면서 아이와 나 둘 다 감정적이 된다. 엄마와 떨어져서, 밟을 얼음이 계속 녹고 깨져서, 폭풍우와 눈보라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조마조마하다. 그래도 북극곰은 제법 의젓하게 풍파를 헤쳐나가고 우리도 다행스런 마음으로 마지막에 이른다. 어라.. 근데 그동안 우리 노파심의 핀트가 어긋났다는 것을 깨닫는다(스포). 아기곰은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웬 컨테이너 위에 올라 목숨을 부지하는데 그 밑으로 한때 인간 세상이었을 모든 것이 잠겨 있다. 바다 위로 드러난 일부 건물들 옥상만이 군데군데 동물들의 새로운 서식지가 되어있고 아기 북극곰은 거기서 엄마와 재회한다.
이 책이 다른 빙하&북극곰 그림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북극과 지구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으로 인간은 나오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제목 <빙하가 사라진 내일>에서 내일의 주어는 북극곰일테고 이 책 안에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요란하고 벅적하게 살다간 흔적만이 밑바닥에 가라앉아 이제 고요하다. 인간이 북극과 북극곰을 걱정하기도 전에 이미 인간은 지워질거란 듯이 바다는 그저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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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2-19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라지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지구에게는 유익한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물론, 주어는 ‘인간‘입니다.
일회용품 사용과 육류 소비에 대해서라면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하구요.
고요한 바다에 인간은 없네요. 하... 슬프지만 그게 또 사실이구요. 아니면 우리의 미래일까요.

유수 2022-12-19 10:16   좋아요 1 | URL
네. 주어가 인간 ㅜㅜ 동물은 멸종하는데 우리는 영속할 것처럼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거네 싶어서 훅 들어왔어요.
그건 그렇구 햇살같은 단발님 댓글ㅎㅎ 월요일 기분좋게 시작합니다.

단발머리 2022-12-19 10:30   좋아요 1 | URL
하트 잘 보이시는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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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많은 책들에 솔깃한 젊음이었고, 또 그 책들을 밀어내고픈 치기였다. 짧았지만 수덕사의 시간은 오래 남았다.

나는 출간된 내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지나간 시들을 품고 있지 않다는 말이 더 적절할것 같다. 나는 예전의 잘된 시보다도 차라리 마음에 안 드는 오늘의 메모를 더 선호한다. 항상 그랬다.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다시 추적해 들어가는 것은 자기 동일시에 빠져야 하는 고문이라 생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나는 내 시가 낯설어지기를 기다린다. 나를 알아 보지 못하고, 쓰였을 때의 정황을 잃고, 헐렁해지고 더 무뎌지기를 기다린다. 한 행 한 행의 중얼거림도 의식하지 못하는 채 도대체 쓸데없이 어슬렁거리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29


모든 글은 앞에 쓴 것을 훼손하면서 덧붙이거나 덧붙이면서 이질화한다. 하지만 그러한 충돌이 있기에 구부러지는 모퉁이가 있고 이것을 매끈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글은 불연속을 억압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때때로 7세 때의 시골 생활이 나를 거의 다 형성시켜는 온 것 같다고 느낀다. 나는 거의 완전한 자유를 누렸고 누구의 조바심이나 지도 없이 직접 세계를 맞닥뜨릴 수 있었다. 어른들은 내가 말이 없고 속으로 우는 아이라는 말을 나중에도 많이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7세 때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너무 일찍, 충분히, 홀로 세계를 대면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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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산토레 그림으로 보는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와 먼 사람이라 본인은 영 별로 관심 없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랑 그림책보다 보면 계절과 이벤트 등등을 반영해서 고르게 된다. 책은 예상보다 꽤 재밌었다. 보통 읽으면 다른 그림책들은.. 산타가 선물 주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 산타가 다른 날에는 뭐할지, 어떤 사람일지 크리스마스의 빈 그림을 상상해서 그려낸 책들이 많고 그런 창의적인 부분들이 대체로 재밌기도 한데 이 책에는 산타의 서사가 들어있다. 어쩌다 어떤 재능으로 이 일을 하게 됐는지, 어떤 유년을 보냈는지, 산타로서 철칙은(!) 뭔지 등등.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숲에서의 삶이 싫고 “일이 필요해서“ 인간 아기를 키우기로 결정하는 님프 니실.. 흥미로운 캐릭터라고 할 수 밖에. (공동육아가 가능하다는 숲만의 장점과 모자라기보단 세대, 종족을 넘는 좋은 친구로 보이는 멋진 관계는 역시 판타지) 니실의 아기라는 뜻으로 다들 아기를 니클로스라고 불렀지만 니실은 끝까지 원래 이름 클로스라고 불렀다는 것도.
산타는 초기에 모든 아이들의 모든 선물을 수공예+주문제작(!!! 뭔가 dm드려야 할 거 같음🙏🙏)했는데 자기도 선물 달라는 부자 소녀(아이들과 놀아주러 갔다가 얘네 집에서 클로스를 쫓아낸 전력이 있다)와 맞짱토론 뜬 거 흥미로움.

"너는 부유한 영주의 딸이니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지 않니? 내 장난감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거야. 그 애들은 너처럼 많은 장난감을 가지지 못했으니까."
클로스의 말에 베시가 물었다.
"하지만 가난하든 부유하든, 아이들은 모두 장난감을 좋아하잖아요?"
"그렇겠지."
클로스는 깊이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나는 내가 원하는 장난감을 가질 수 없는 거지요? 다른 아이들이 나보다 가난한 건 내 잘못이 아닌데요."
베시는 울기 시작했다.
"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못 가지면 난 너무나 슬플 거예요!"
그 말에 클로스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의 소망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것이었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가난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베시에게 장난감을 줄 수 있겠는가?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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