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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많은 책들에 솔깃한 젊음이었고, 또 그 책들을 밀어내고픈 치기였다. 짧았지만 수덕사의 시간은 오래 남았다.

나는 출간된 내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지나간 시들을 품고 있지 않다는 말이 더 적절할것 같다. 나는 예전의 잘된 시보다도 차라리 마음에 안 드는 오늘의 메모를 더 선호한다. 항상 그랬다.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다시 추적해 들어가는 것은 자기 동일시에 빠져야 하는 고문이라 생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나는 내 시가 낯설어지기를 기다린다. 나를 알아 보지 못하고, 쓰였을 때의 정황을 잃고, 헐렁해지고 더 무뎌지기를 기다린다. 한 행 한 행의 중얼거림도 의식하지 못하는 채 도대체 쓸데없이 어슬렁거리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29


모든 글은 앞에 쓴 것을 훼손하면서 덧붙이거나 덧붙이면서 이질화한다. 하지만 그러한 충돌이 있기에 구부러지는 모퉁이가 있고 이것을 매끈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글은 불연속을 억압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때때로 7세 때의 시골 생활이 나를 거의 다 형성시켜는 온 것 같다고 느낀다. 나는 거의 완전한 자유를 누렸고 누구의 조바심이나 지도 없이 직접 세계를 맞닥뜨릴 수 있었다. 어른들은 내가 말이 없고 속으로 우는 아이라는 말을 나중에도 많이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7세 때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너무 일찍, 충분히, 홀로 세계를 대면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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