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빌리는 책은 대체로 나만 빌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책이었다. 예약도 길고 그런. 다 읽고 나니 여행에 들고 가도 괜찮았을 거 같다. 이야기가 후루룩 읽히고 소재 자체도 내겐 감정이 북받치거나 하는 류가 아니라서. 줄 안치고 뭐 안붙이고 책읽는 게 오랜만이라 솔직히 여유있고 편아~안했다. 안 읽은 과거의 나에게, 여행 짐가방 여유있을 때 넣을 만한 책으로 추천… 뭔 쌉소린지 싶지만 여행 가방 챙길 때마다 책 뭐 넣지 고민 만번해서 그렇다. 추리할 건 없는 추리 소설이지만 완성된 그림을 알고 맞추는 직소퍼즐 같아 재밌게 읽었다. 장르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꽤 친절하고 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메시지가 가벼운 건 아니다. 책을 덮고 나면 보이는 제목, ‘가장 나쁜 일’이 내게 남겼을 흔적(“인간은 모두 약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약해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두죠.”)을 생각하게 하고, 그렇게 다른 이들의 것도 한번쯤 헤아리게 한다. 이 주인공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 읽으면서는 의아한데 마지막에 이르러선 어느 정도 설득되었다는 것도 장점이었겠지?“정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도 확률적으로도 희박했다. 그녀의 삶이 그런 판타지로 작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희는 문득 억울해졌다. 어째서지? 한번쯤은 그래도 되잖아. 인생에 딱 한 번쯤은.”“그녀는 스스로를 공양하기로 했다.”
일다에서 연재되던 칼럼 재밌게 봤는데 책으로 나왔구나. 심조원 작가 알림 신청해놨을텐데 왜 3사 서점 아무도 안알려줬어요? 원망원망.. 팥죽할머니 칼럼 특히 좋았던 기억 있어서 일부 첨부. 사러 가야지!!
<그런 나이는 없습니다> 중 밑줄”더 한참 후에야 쇠락과 쇄락의 의미들이 나이듦의 양면성을 비유하는 것처럼 읽혔다. 우리는 상실 이후의 언어를 갖지 못한 채 헤어졌지만 마담 J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나이듦은 쇠약하여 말라 떨어지는 일방향의 쇠락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자유롭고 깨끗해지는 쇄락을 동시에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것.“쇠락과 쇄락 사이_김지승
<그런 나이는 없습니다> 중 밑줄“노년기 여성들의 정체성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무엇이든 하고 싶고, 또 될 수 있는 상상력과 실천력을 빼앗는 현실은 사양한다.” ‘할머니’ 롤 모델과 ‘황혼’_김영옥
늙은 여성 배우들의 배짱에 기대어 앞으로 늙어갈 여자들도 떵떵거리는 큰 웃음을 웃어본다. (…) 현실과 문화 텍스트 간의 기분 좋은 상호 미러링을 기대한다. - P15
손자를 돌보는 것과 외로운 밤을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보내는 것이 왜 꼭 양자택일이어야 하는지? 이런 식의 양자 택일 주장은 정의롭지 못하고 퇴행적이다. 상투적인 선입견들을 전제하는 이 반전이 몹시 불편하다. 훨씬 더 복잡한 요소들이 얽힌 구조의 문제를 사적 혈연의 책임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니 해결책으로도 너무 단선적이다. - P11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 세대 간 돌봄 책임 이전이라는 정의롭지 못한 정책에 코를 박고 있으니, - P11
<그런 나이는 없습니다> 중 밑줄생애주기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특정 사회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회가 만든 장치이기 때문이다.나이듦? 그냥 생로병사_정희진
연령(age)과 연령주의(ageism)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나이는 자연의 질서일 뿐이다. 그러나 나이에 대한 사회적 해석, 나이에 맞는 정상성, 나이와 사회적 역할 등은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자 동력이다. 이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나이에 대한 개념은 200~300년밖에 되지 않았다.나이 개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인류가 알고 있는 지식의 거의 전부가근대의 산물이다. 고대나 조선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논의 자체가 현재의 시각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오천 년의 역사보다 지난 200~300 년 동안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생애주기(life circle)‘는 나이가 아니다. 나이에 대한 이데올로기다. 자본주의사회의 대표적인 통치 체제다. 개인의 건강이나 조건 등에 관련 없이 나이에 따라 삶의 정상성을 부여하고, 개인의 삶을 통제한다.
젊음도 ‘좋은 노동자‘의 당연한 조건이 아니며, 이러한 계급 격차가 오늘날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으로 둔갑하여 나타나고 있다. 세대 갈등이 맞는 말이라면, 20대는 모두 가난하고 50대는 모두 부자여야 한다. 물론 그런 사회는 없다. 세대갈등이 감추고 있는 진실 중 하나는 ‘50대의 가난‘이다. 소위 ‘386‘은모두 잘 산다는가? 망상에 가까운 편견이 아닐 수 없다.(…)아픈 몸은 24시간 내 일상을 지배한다.나는 모든 이들이 나이와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연령은 계급, 젠더와 함께 중요한 사회 구성 요소로, 모든 분야가 노소(老少)에 따른 ‘우선권‘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의 전쟁터다. 나이는 다른 사회 구조와다르게 ‘어려도‘ ‘어중간해도‘ ‘늙어도‘ 맥락에 따라 차별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