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
문경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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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민 작가님의 책 중에서 비교적 덜 팔린 책인거 같은데, 서사의 힘은 어느 작품 못지않은 책이었다. 와 진짜 이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구나 생각했다.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님 또한 이런 욕심을 솔직히 고백한다.
“《앤서》는 서사 자체가 중요한 소설이다. 나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도 아니다. 이야기 자체를 훌륭하게 만들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앤서》를 포기하지 않고 고치고 버리는 일을 반복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갈고 닦아왔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펼쳐보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었다.”
수많은 원고를 버리고 다시 써서 다듬은 책이라는 말씀이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주변인이 겪은 일을 모티프로 한 작품도 아니고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 미래를 다룬 상상의 이야기였다. 스케일도 짜임새도 몰입감도 대단했다. 영화 느낌이 나는 책이기도 했다. 장면이 잘 상상되어서. 이상하지? 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장면인데 상상이 가. 당연히 본 적이 없다. 미래를 다룬 이야기니까.

아주 먼 미래는 아니고 수십년 후의 근미래를 다루고 있다. 근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이라고 할까. 너무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개연성이 있는 상상이다. 왜냐면 지구는 급속도로 망가져가고 있고, 인간은 아름답지 못하니까. 그중에 애쓰는 사람도 없진 않다. 하지만 거악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구는 거의 멸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겨우 거주하고 있는 곳들을 셸터라고 부른다. 이들의 삶이란 생존이 전부다. 식량도 부족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것들은 도처에 있다. 선사시대 원시인의 삶이 이렇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원시인들을 무시하는 거겠지. 그들에게는 발전의 가능성과 미래가 있었으니까. 멸망의 공포 속에서 사는 것과는 다르지.

“이것은 유이와 킨의 이야기다.”
이렇게 책이 시작된다.
그들이 열여덟 살일 때, 우연히 만나 서로를 구해주었다. 아르굴이라는 생체병기가 번성하며 인간을 공격하는 세상에서 그것들 중에 고립되었을 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발안셀터의 사령관인 아버지 밑에서 군인으로 자라온 유이는 그순간 총을 들어 죽으려 했으나 킨이 나타나 살려주었다. 그에게는 아르굴이 덤비지 않는 유전자가 있는 듯했다. 알고보니 그는 마낙셀터의 유전자조작 인간이었다. 마낙셀터를 탈출한 그를 사령관이 위험을 무릅쓰고 거둬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생명을 빚졌다. 그리고 사랑했다.

생존이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 사랑을 한다는 것. 말이 안되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며칠전 일제강점기 고난의 역사를 담은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더라. 어쩌면 더 열정적으로. 그러나 유이와 킨의 사랑은 1년 뿐이었다. 마낙셸터가 발안셸터를 공격해 사령관마저 죽이고 멸망시켰다. 의문의 이유로 마낙셸터도 멸망했다. 유이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지금은 앤서(동아시아 국가 연합 셸터)라는 곳에 와 있다. 이전 셸터들 보다는 그나마 살만한 곳이었다. 유이는 이곳에서 말하자면 난민 같은 신분이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갈고닦은 여러 가지 능력들이 앤서에 도움이 되었고 정식 주민의 자격을 얻게 됐다. 그러면서 또 18년이 흘러 30대 후반의 나이가 됐다. 킨은 그때의 난리통에 생사도 알 수 없이 헤어졌다.

그러던 킨이 나타났다! 온라인으로. 앤서의 포털에 그가 쓴 ‘킨의 일기’가 올라왔다. 발안셸터가 멸망하던 당시의 이야기가 현장감있게 상세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서술되어 있었다. 다만 유이는 도려낸 듯 등장하지 않았다. 앤서는 연일 그 연재물로 들끓고, 유이의 마음은 복잡하게 요동친다.

연재를 마친 킨은 드디어 동영상으로 실물을 드러냈다. 18년 만에 보는 킨이 유이는 낯설다. 외모 뿐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의 그 킨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 다른 사람이 되게 했을까. 그는 동영상을 통해 드디어 목적과 본심을 드러냈다. 그의 칼끝은 앤서의 대통령 파비언을 향하고 있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사회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살겠다고 모인 곳은 또다른 지옥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유이가 이 책을 이끌어간다. 하나하나 진실이 열릴 때마다 충격이고 반전이다. 작가님의 스토리 능력에 놀라게 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유이는 킨을 만날 수 있을까. 킨의 실체는 무엇일까. 둘은 다시 진심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까. 셀터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인간이 망친 지구와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무엇이 남아있을까.

작가는 그래도 완전한 멸망을 그려내지 않았고, 유이는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난다. 말하자면 열린 결말이다. 짧은 문장 하나가 작가의 메시지인가 싶게 눈에 띄었다.
“끝이 와도 슬프지 않을 삶을 찾고 싶었다.” (303쪽)
마지막을 향해서 간다는 점에서는 원시인이나 우리나 이 책의 사람들이나 같지 않을까. 어떤 시대에서나 어떻게 살지는 본인만의 선택이다.

이 책을 읽은 날이 하필 긴 연휴의 끝이어서 나는 조금 우울하고 두려웠나 보다. 나는 그래도 참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어.... 하지만 스멀스멀 불안은 다가온다. 정확한 실체가 없는 그것은 인간이 당연히 가는 마땅한 그 길마저도 불안으로 채색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이러고 있는 것이 맞는지 두렵게 한다.

군인 출신인 유이가 다치고 내던져지면서도 결단하고 실행하고 하는 모습들이 멋있었다. (드라마로 만든다면 엄청 멋있는 캐릭터가 될 듯) 주변에서 폭탄이 터져도 시체가 즐비해도 목숨이 붙어있으면 사는 거다. 유이는 그 끈질긴 생명력의 표상 같았다. 이상적인 캐릭터인 건 맞다. 하지만 유이도 인간이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몇 페이지를 더 쓴다면 거기엔 유이의 끝이 나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렇다. 그런 오늘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작가님은 항상 작가의 말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시던데, 이번 책에서도 쉽지 않은 자신의 상황을 살짝 언급하셨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을 잘 살고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내일을 모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정도이지 않을까. 내 손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빌려주면서.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면 잡으면서. 이 책이 그리는 미래는 절대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유이의 모습은 마음 속에 남겨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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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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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느껴지는 책을 만나는 것은 보람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그런 책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 (어린이책 빼고는 대부분의 책이 그렇다고 할까^^;;;) 그래서 마음의 결심은 잘 지켜지지 못하고, 여전히 나는 무식자로 살아가고 있지. 하지만 인간이 무식자인 것은 당연하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달까. 세상엔 너무나 많은 지식이 있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그것들은 또 얼마나 복합적이고 복잡하냐.... 이 책을 읽고 '오호 그랬단 말이지' 하지만 그것 또한 일면일 뿐이니... 하지만 이 책 속 어디선가의 표현대로 그 일면 일면을 알아가며 세상에 대한 ‘해상도를 높여’간다. 선명하게 본다는 것은 나로선 어불성설이다. 평생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벗어나지 못하겠지. 그래도 안 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 책은 심지어 꽤 재밌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떤 매체에 기고했던 원고들을 다듬어 출판한 책이다. 저자는 사회학자이다. 사회학자가 쓴 역사서. 사회학과 역사학은 그 관련이 높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책에서 다룬 근현대사는 더더욱. 이 책은 통사가 아니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18가지 이야기로 되어있다. 관심이 가는 에피소드들부터 읽든가 골라 읽어도 별 상관은 없는 구성이다. 나는 이번 긴 연휴동안 생각날 때 두세편씩 읽었다. 어린이역사책 정도의 기본만 아는 내게 이 책의 이야기들은 본채에 가려진 뒤뜰에 무수히 떨어진 꽃잎들 같은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표제로 사용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가 가장 궁금한 꼭지이긴 했다. 나는 연식이 제법 되는 사람이라 그 영화를 봤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 단체 관람으로. (우리 학교는 대한극장, 단성사 등의 주류 영화관이 아닌 동네 변두리 영화관에서 가끔 그렇게 단체관람을 했었다) 철없던 내게 그 영화는 거의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심지어 줄거리마저도. 남은 것은 휘파람이 들려주던 그 유명한 멜로디 뿐. 콰이강이 어디에 있는 강인지도 잘 몰랐....;;; 그랬으니 그 장면에 실제로는 조선인이 끼어 있었을 거라는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그것도 포로 감시원으로.... 그걸 하고 싶어서 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악몽으로 기억되는 조선인... 그런 점이 슬프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엔 뭔가 슬프다. 인간은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될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의, 그리고 역사의 복잡함인 것 같다. 근본적 원인을 두고 그 말단의 사실에만 집착하면 안되지만 또 묵살해서도 안되는 이중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후퇴 앞에서 리샹난을 생각하다’ ‘카스바에서의 망향, 자기 연민의 서사를 넘어서기’ ‘식민지에도 스타는 탄생하는가’ 같은 꼭지에서는 그시대에도 대중문화가 있었구나 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되었다. 대중문화는 그 시대 서민들의 감정을 반영하며, 어느 시대에나 뛰어난 대중문화인(연예인)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그리고 고난의 시대에 그들의 삶도 파란만장할 수밖에 없었겠다. 파란만장한 삶이야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시대 자체가 그럴 때는 더더욱.

일제강점기에 매우 다양한 입장과 처신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결과론의 관점에서 봐서 그렇지 그당시에는 어떤 게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학자와 예술가, 전문직들도 자신의 능력을 어떤 식으로 쓰는게 옳은지 고민했고, 생각한 방법도 다 달랐을 거라 생각한다. 자기만 살려고 남을 등치거나 배반하지만 않았으면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압록강을 건넌 의사들’ 이라는 꼭지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독일 유학 갔다가 거기서 글을 쓰고 삶을 마친 이미륵 작가 이야기가 나오는데, <압록강은 흐른다>가 번역 작품인 것은 그런 이유였구나. 근데 나 그 책을 안 읽었어. 표지와 제목은 수없이 봤는데도...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내가 놓친 작품들을 읽을 동기가 생긴다.

‘사할린 한인, 나의 나라는 어디인가?’ 라는 꼭지는 얼마전 이금이 작가의 ‘슬픔의 틈새’를 읽어서 그런지 비교적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금이 작가님이 참 잘 쓰셨네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존인물을 다룬 이야기인 줄도 몰랐네. 그 ‘마리아’가 가족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고 그게 각색된 것이 뮤지컬과 영화인 줄은.... 나는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다 해도 스토리는 창작일거라 생각했는데 실화였다니. 그런데 실화는 정말 실화일까? 마리아의 입장에서 쓰여진 실화는 자녀들의 입장에선 매우 속상한 이야기였다고. 마리아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그들은 높은 수준의 음악가족이었으며 첫째 부인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이 꼭지는 이런 미묘한 가족사를 고발하려는 내용은 아니고, 그들의 아버지, 자식들을 군대식으로 훈육한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자상했다는 폰 트라프의 현역군인 시절 이야기다. 그가 공을 세운 공격들은 근대사의 비극들과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평생 침묵했으나 저자는 묻고자 한다.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라기보다는 우리들에게일 것이다. 역사의 비극에 개인의 책임은 없는가?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가 나오는 ‘레니 리펜슈탈, 무지한 아름다움은 무죄일까?’ 라는 꼭지에서도 저자는 무지의 책임을 말하고자 한다. 몰랐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음을.... 문득 생각이 났는데, 지식, 정보의 습득이 예전보다 훨씬 쉬운 오늘날에는 이런 위험이 줄어들어야 맞는데 오히려 더더더더더더더 어려워졌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정보는 넘치는데 거짓정보도 같이 넘쳐. 얼마나 교묘한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아. 그러니까 알고 싶은 대로 알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 지식은 그걸 합리화하는데 주로 써먹어. 후일에 누군가 나에게 그때 왜 그렇게 어리석었냐고 물으면 내가 할 말이 있을까. 근현대사도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아니 앞으로는 더할수도...ㅠ

저자는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이라는 표현으로 이 책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사람들, 잠시 알았지만 또 잊어버릴 그 이름들을 통해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과 고뇌를 조금 엿본 느낌도 들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나름대로 몸부림쳤다. 같은 뜻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가기도 했다. 당신이 맞았는지는 모르겠고 중요하지 않고 그저 애쓰셨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세월에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또 다음에 읽을 책을 연결하고 하는 게 유튜브 보는 것보다는 낫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이 독서를 마무리한다. 몰랐던 게 많았고 따라서 생각할 것도 많아서 흥미로운 독서가 됐다. 짧은 호흡으로 한꼭지씩 읽는 다양한 소재의 재미있는 역사서를 찾는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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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 2025 뉴베리 대상 수상작 큰곰자리 고학년 5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고정아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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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소재의 SF를 보면서 뭔가 거슬리지 않은 적은 처음인거 같다. 왠지 그런게 나오면 나는 몰입이 안되더란 말이야.... 내가 뭐 아는게 많아서 논리를 따져서 그런게 아니고 그냥 왠지 그렇더라.... 근데 왜 이 책에선 아무것도 거슬리지 않았을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어서 였을까.

마이클을 비롯한 이 책의 인물들은 1999년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서 온 리지는 2199년에서 왔다. 200년을 뛰어넘은 시간여행이 이뤄졌으며 독자들은 그 사이(앞시간 쪽에 훨씬 가까운)에서 살아가고 있다.

1999년을 배경으로 선택한 작가의 의도가 탁월한 것 같다. 근데 그 시기 한참 젊은 날을 살았던 내게는 부끄럽게도 그때의 기억이 별로 없다. 육아와 직장생활, 잦은 이사 등으로 그저 눈앞의 것에만 급급해서 살아서였나. 이제 와서 y2k 같은 것을 찾아보니 아 맞다, 그랬었지 하고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게 다행이었던 게 아닐까. 작가가 이 시기를 선택한 것은 마이클의 불안한 내면과 관련이 있다. 12살(미국 학제로는 중학생)인 마이클은 이제 몇 달 남은 밀레니엄을 불안해하며 마트에서 통조림을 슬쩍하여 방에 쌓아두는 습관이 생겼다. 양심의 가책은 불안감을 한층 증폭시키지만 행위를 멈추지는 못한다.

마이클 주변의 인물들 + 미래에서 온 여행자 1명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다.
마이클의 엄마 : 닥치는 대로 일하며 혼자서 마이클을 키우지만 벌이가 신통치 못하다. 얼마 전 마이클이 아팠을 때 결근한 일로 해고된 뒤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 앞에서는 늘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려 애쓴다.
기비 : 이웃의 고등학생. 시간제로 마이클의 돌보미 일을 한다. 얘네 아빠가 바로 엄마를 해고한 사람인데 비록 푼돈이긴 해도 엄마한테 고용되었다는 설정이 우습지만, 받은 돈 이상으로 마이클에게 정성을 다한다. 이웃이자 친구이자 마이클이 남몰래 좋아하는 첫사랑?이기도 하다.
모슬리 :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 단순한 주변인인 줄 알았는데 중요한 인물이었다. 느닷없이 감정의 파도와 감동을 몰고 오는 인물.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지만 사실상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은, 내 가까운 사람이거나 혹은 나일 수도 있는 캐릭터를 그려낸 게 아닌가 싶다.
리지 : 200년 뒤 세상에서 온 소년. 기비와 같은 나이고 엄마가 과학자. 형제들과 함께 엄마 연구실의 학생이다. (미래의 학교, 가정의 모습을 슬쩍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정도 단면으로는 전체적인 파악은 어렵게... 슬쩍만 보여주는 느낌) 엄마 세이비오 박사가 바로 시간여행 기기(공간 텔레포트) 연구자. 4명의 아들들은 모두 연구소의 천재적 학생들. 하지만 형제들끼리 힐난하고 투닥거리는 건 지금 시대와 똑같음. 그러던 중 리지가 충동적으로 기계조작을 하고 마이클의 시대로 건너옴.

이렇게 된 이야기다. 1999와 2199년이 교차 구성되며 2199 부분은 약간 회색 종이로 구분되어 있는데, 서술이 완전 달라 작가의 센스가 느껴지고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화로 잘 만들면 무척 재미있겠다.

그러잖아도 y2k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마이클에게 리지의 등장은 큰 기회이다. 더구나 그가 가져온 ‘요약서’라는 책. 그건 말하자면 2199년 시점에서의 역사책이다. 그걸 볼 수만 있다면.... 하지만 리지는 절대 보여주지도 말해주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범위에서 최소한의 행동만 하고 돌아간.... 그랬기에 패러독스가 덜 느껴졌던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초점이 ‘지금 여기’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건 제목에서부터 느껴진다. 그 제목이 본문 여러 군데에 나온다.

‘The first state of being’
이 제목을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로 번역했다. 고심한 제목이라고 느껴지지만 굳이 의역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문에서는 ‘존재의 첫 번째 순간’이라고 번역했다. 이런 식이다.
『“있잖아.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해.”
“존재의 첫 번째 순간. 우리 엄마가 ‘현재’를 가리키는 말이야. 차를 타고 달리는 지금 이 순간.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여기는? 이건 첫 번째 순간이야. 가장 중요한 순간, 모든 게 의미있는 순간. 그래서 나는 내가 미래에 벌여 놓은 혼란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미래, 그건 제3의 순간이야. 미래는 돌아간 다음에 걱정할 거야. 당장은 그냥 지금 여기에 있고 싶어. 너희랑 형편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156~157쪽)
『“그런 건 제3의 순간에 대한 생각이야.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는 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지금을 살아야 해. 그게 첫 번째 순간이야.”
“첫 번째 순간.”
마이클이 웅얼거리자 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 이곳이 우리 인생 최고의 장소야.”』 (193쪽)

‘존재의 첫 번째 순간’이라는 멋진 말을 해주었다고 해서 리지가 미래에서 온 선지자 같은 존재는 전혀 아니다. 사고를 쳐 스스로도 당황하며 복귀를 시도하는 청소년일 뿐이다. 그건 이쪽과 저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했는데 그 순조롭지 않은 과정이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인다. 더구나 이시대의 면역을 갖지 못한 리지가 감기에 걸려 아프게 되었을 때는 특히.

사소한 부분도 놓치면 아까울 정도로 잘 짜여진 이 책에서 가장 편하게 웃음지었던 대목은 리지가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쇼핑몰’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이것저것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 하지만 그 장면들에 특히 작가는 많은 메시지를 넣어 놓았다. 이 책은 두 번 정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독서에서 100% 캐치하기는 어려우니까. 내가 바로 그러한데, 다시 처음부터 읽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정도는 되어야 뉴베리 대상을 받는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받은 작가라니! ‘안녕 우주’를 안 읽은 것을 후회하며 다음 도서관 방문 때 찾아봐야겠다.

번역이 꽤 까다로운 책이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리지가 200년 전 유행어랍시고 배워 온 어설픈 은어나 줄임말들도 다 우리말식으로 바꿔야 했고, 그렇게 눈에 띄는 작업보다도 더 어려운 세밀한 부분들이 많았을 것 같아서. 느낌의 차이를 살려야 할 부분도 많았을 것 같고.

스포가 되겠지만 누구나 생각하는 결말이라 얘기하자면 리지는 결국 무사히 돌아갔고, 현재에는 현재의 사람들만 남았다. 그 ‘요약서’의 행방이 아주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것만은 스포 금지.^^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래를 안다는 것과 미래를 준비(대비)한다는 것은 다르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미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는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뿐이다. 번역 제목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구석구석 아주 다양한 메시지가 결국 큰 메시지로 통합되는 책. 그래서 지금 당장 작은 한 발이라도 떼게 되는 책. 그런 책에 큰 점수를 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길게 썼는데도 아직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네.... 그래도 이제 그만 쓰고 명절연휴를 즐기러(테레비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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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구 바람어린이책 34
양자현 지음, 불키드 그림 / 천개의바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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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스포츠클럽. 그것도 진짜 어쩌다보니 생겨버린 배구팀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보니 학교 스포츠클럽은 바로 이런 이유로 필요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가 있다면 스포츠클럽 활동은 꼭 시켜보세요 라고 목소리 높이고 싶은 마음이다. 실제로는 많은 제약이 있고 쉽지 않지만 말이다.

첫째는 지도자의 문제다. 이 책 속의 도민호 선생님은 체육 전담 선생님이다. 이런 분이 학교에 있고, 팀 지도에 열정을 쏟는 상황은 쉽게 오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는 킨볼 팀이 있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건 오직 한 사람의 역할이다. 6학년 담임인 그 선생님은 해마다 맡은 반 아이들을 데리고 팀을 만든다. 운동실력이 좋아도 그반이 아니면 참여할 수 없으니 그반에 배정되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실력자를 뽑아 꾸린 팀이 아닌 단순 학급팀인데도 이들은 해마다 예선을 통과하여 잠실체육관에서 본선경기를 치르고 최소 동메달이라도 따 온다. 이걸 보면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 선생님의 전보 시기가 다가오자 학교에서 붙잡아서 1년 전보유예를 하셨다. 이제 가시게 되고 같은 급의 선생님이 오시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은 전설이 될 수 있다.

두번째는 선수들의 문제다. 선수들의 실력을 키우는 건 위에서 봤듯이 지도자의 역량이 크게 좌우하니 실력이 큰 문제는 아니겠다. 간혹 도저히 경기에 끼울 수 없는 깍두기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바로 나 같은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연습과정에 같이 하다가 시합이 다가오면 스탶으로 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인드다. 힘든 연습을 이겨내고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는 마인드. 우리 학교 팀이 왜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두나 혼자 생각해 봤는데, 이런 것이 가능한 동네여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자가 요구하는 시간투자를 할 수 있는 아이들. 이건 사실 아이들의 문제라기보단 부모들의 문제이다. 운동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팀웍은 더더욱 그렇다. 그걸 봐주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교사인데, 올해는 체육관을 통과해서 교실로 가는 길이 지름길이다. 들어서면 벌써 책임감있는 아이들 두세명이 나보다도 먼저 와서 킨볼에 바람을 넣으며 아침 연습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있으니 그런 결과가 가능한 것이다.

배구 동화는 처음 본다. 사실 나는 배구 팬도 아니고 이게 재미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우와, 청소년기에 읽었던 스포츠 만화의 박진감과, 완전하지 못한 실력에서 오는 긴장감과, 그걸 넘어서는 팀웍의 감격이 느껴졌다. 아주 잘 쓰신 스포츠 동화라고 생각한다.

모든 설정이 흥미롭게 잘 구성되었다. 일단 배구팀을 만들게 된 배경부터. 여기에서 배구를 원래 잘 아는 팬은 장지민 한 명 뿐이었다. 요즘 체육 시간에 배우는 종목이 배구였고, 도민호 체육 선생님이 모둠별로 배구에 대해서 소개하는 영상제작을 수행평가로 내주셨을 뿐이었다. 그런데 배구 팬인 지민이가 영상을 너무 끝내주게 만들었다. 팀원들의 부족한 실력을 커버하고 멋진 장면만을 연출해서. 그런데 이 영상이 어느날 유명해졌다. 바로 지민이의 우상인 강인해 선수가 sns에서 공유를 한 것이다! (강인해 선수는 현실로 치자면 현역 시절의 김연경 선수쯤 되는 것 같다.)

멋진 영상이었지만 당연히 악플도 달렸다. 특히 인근 선사초 배구부원들의 도발은 이 모둠 멤버들을 격분시켰는데, 그바람에 앞뒤 구분 못하고 도발에 넘어갔다. 토스도 겨우 하는 아이들이 걔네들과 한판 붙기로 한 것이다. 결국 수행평가 모둠은 졸지에 ‘은강초 배부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 설정, 연습과정이 실제 경기 장면보다 훨씬 길다. 딱 3분의 1씩이라고 하면 되겠다. 이 책의 차례는 1세트, 2세트, 3세트인데 3세트가 선사초와의 경기 장면이다. 1,2 세트도 재미있고 특히 3세트는 배구 경기 장면을 이렇게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구나 싶으면서 그 옛날 스포츠 만화를 읽던 추억을 소환한다. 외인구단 류의 만화들 말이다.

외인구단? 그렇다, 주류가 아닌 걸로 치면 아무 경험도 없는 얘네들도 바로 그렇지 뭐. 그렇다고 진짜 외인구단처럼 기적을 일으키는 건 이제 너무 식상하다. 작가님은 경기 결과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것만은 스포하지 말아야겠다.ㅎㅎ

6명의 배구 멤버들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는 구성도 각 인물의 특성과 마음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며 흥미를 더해준다. 체격조건이나 운동능력, 특기가 각각 다른 아이들이 각자에게 맞는 포지션을 부여받아 거기에 맞게 성장해 가는 모습들 또한 흥미롭다. 심리적 위기들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도 감동적이고 경기로 승화시키는 모습은 감격을 선사한다.

선수의 길은 특별한 능력자들이 가는 것이지만 선수가 아니라도 이런 경험 한번쯤은 있는 것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 같은 최저 기능자는 다른 역할을 찾아봐야겠지만... 부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빈다. 현실은 반대로만 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이 널리 읽히며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분다면 참 좋은 일이겠다. 물론 현실의 아름다움은 작가가 만들어내기보다 훨씬 어렵다. 그 점은 감안하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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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과 사마 - 제1회 이지북 고학년 장르문학상 본심작 책 읽는 샤미 56
정승진 지음, 김완진 그림 / 이지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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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소재로 다루었다고 하면 아주 민감한 문제를 다루었다고 여겨진다. 복잡할 수 있는 문제를 한쪽 면에서만 다루기 쉽다는 걱정을 들을 수도 있다. 말이 쉽지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기만 하겠냐는 타박을 들을 수도 있겠다. 난민을 다루었다는 이 책도 그런 부담을 안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읽고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한 올바름을 넣으려는 의지보다도 그저 인간의 어떤 상황과 그 절박함, 그 안에서 지키려는 존재의 소중함 그런 것들로 꽉 차 있었다. 게다가 꽤 긴박하기까지 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마는 난민 소녀이고 아말은 그의 고양이다. 둘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항구에 당도했으나 검역소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둘은 헤어질 수 없는 사이였기에 다시 만나지 않고는 각기 다른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그들이 다시 만나기까지 사마는 사마대로, 아말은 아말대로 각각의 모험이 교차해서 펼쳐지기 때문에 독자는 이중의 흥미진진함으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둘은 각각 새롭게 처한 환경에서 새로운 존재들을 만난다. 세상이 그렇듯이 당연히 선역도 있고 악역도 있다. 동물의 세계는 어떤지 우리가 잘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아말이 만나는 동물들도 마치 인간 세상의 군상들처럼 그려놓았다. 악이 지배적이어서 선이 힘도 못쓰고 움츠러들면 이야기는 슬프고 참혹하다. 세상은 때로, 아니 자주 이러하다. 따라서 이를 반영한 참혹한 작품도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주 조금, 정말 아슬아슬하게 선이 악을 살짝 넘어서도록 이야기를 짜 놓았다. 어린이 독자들이 환호하고 안도하기에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마에게는 난민 캠프에서 탈출하려는 무모한 계획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항구로 가는 길에서 먹여주고 씻겨준 할머니도 있었다. 하지만 사마의 상황을 이용해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야비한 기자가 있었다. 이 인간 때문에 하마터면 모든 일을 그르치고 절망에 처할 뻔했으나! 센스있는 조력자가 마지막 퍼즐처럼 존재했다.

아말이 사마를 기다리며 떠나지 못하는 그 항구의 마을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도 그렇다. 셰퍼드 빅과 하얀 고양이 화이트는 생사를 같이하는 친구가 되었지만, 정육점 불독(불독들아 미안) 한스는 악역 중의 악역이고, 해피라는 리트리버는 그의 졸개다. 한스의 주인이자 정육점 주인 피터는 오히려 좋은 사람인데, 자기 개의 성미를 알지만 그렇게까지 악역인지는 잘 모른다.

이렇게 이중의 구조를 가진 이 작품은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이 동물들을 통해 더 많은 말을 한다. 말하자면 동물 주인공들은 각기 나타내는 캐릭터들이 있다. 아말과 빅, 화이트 등이 ‘바다 건너온 동물 내지는 그들의 2세’라면 빅은 ‘굴러들어온 존재를 못 참고 혐오하는’ 캐릭터에 해당된다. 빅은 사사건건 그들을 못참고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괴롭혀 쫓아내려고 한다. 그들의 협력과 기지에도 불구하고 한스의 악랄함 때문에 결국 큰 위기에 처하고 상처를 입게 되는데.......

분명한 것은 결국 만나야 할 존재들은 만났다는 사실이다. 기다리고 찾아도 못 만나는 존재들도 세상에는 많지만.... 이 이야기 속 존재들은 다행스럽게도 만났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고도 긴박하게 짜여져 있어서 독자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독자들은 갈수록 이 사회에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어가는 혐오와 배척에 대해서 고민해보아도 좋겠다.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혐오하는 측과 그 대상들의 캐릭터가 선명히 대비되는 것은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아말과 친구들은 품위 있었고 의리와 사랑을 지켰으며 함부로 남을 해치지 않았다. 이것이 없다면 혐오는 돌고 돌며 끝을 모르고 반복될 것이다. 우리가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이것을 말해준 것으로 이 작품은 이야기 한 편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그것 또한 전부가 아니고 독자 시선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생각, 다른 느낌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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