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유튜브에서 소설책 소개 쇼츠영상이 자주 뜬다. 내가 검색해본 적은 없는데, 언젠가 우연히 뜬 것을 내가 눌러봤을 테고, 그 이후부터는 알고리즘으로 계속 뜨는 것 같다. 그러다 한 영상에서 감동적인 우리나라 소설 몇권을 소개하는데 이 책이 제일 먼저 나온 것을 보았다. 짧은 영상이라 내용까지 소개해주진 않았고 제목과 표지에 ‘잔잔한 로맨스 소설’ 정도로만 소개했다. 소설을 많이 안 읽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책이었다. 검색해보니 어머나! 엄청나게 팔린 책이네. 지금 팔리는 건 개정판이고 처음 나온 때는 2004년, 초판부터 합치면 100쇄를 넘게 찍었다나? 20년 넘은 로맨스 소설이 아직도 먹히나? 나도 한번 읽어보자 하고 집어들었다.

로맨스 세포가 다 죽을 나이라 엄청난 감흥은 없었으나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유명 작가가 쓴 소설들을 읽을 때도 과제 같은 느낌으로 읽을 때가 있다. 부분적으로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읽기 힘들어서. 하지만 이 책은 드라마 보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5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드라마 제작 말이 오락가락 했었다고 하던데 왜 안 만들어졌까? 주인공들의 직업도, 감정선들도 드라마로 딱이었을 것 같은데?

로맨스치고는 현실적이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나 싶다. 재벌 3세 본부장님 그런 남자 나오지 않고, 출생의 비밀도 없고, 질투하고 대립하는 연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아주 살짝은 있는데 귀여운 수준) 한마디로 막장 요소는 없다.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고 타임슬립, 영혼체인지, 귀신 서사 그런 것들도 나오지 않는다. 사랑이 너무 격렬하여 모든 것을 휩쓸어가지도 않고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며 ‘이게 현실이야’ 라고 말해서 독자들을 우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현실적이면서도 최대한 달달한, 적당한 설렘을 가진 로맨스라고 하겠다. 작가님이 그런 전략을 세우신 것 같지는 않지만 본의아니게 매우 좋은 전략이었던 셈이다.

나는 남녀가 만나는 방식이 ‘함께 일하다 정드는 방식’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게 좋은 점은 두 가지다. 일단 그 사람의 포장 안한 생활모습과 삶의 방식 등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직장에 있으면 직장 가기가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ㅎㅎ 이 책의 직장은 라디오 방송국이다. 공진솔은 작가고 이건은 PD이다. 음... 이 직업도 약간 클리셰 같긴 한데 작가 약력을 보니 라디오 구성작가였다고 한다. 본인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직업군을 고른 셈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현장감이 넘쳤다. 뭔가 조사하고 글쓰고 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나는 젊을 때로 돌아가면 저런 일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치열하면서도 안정감은 부족한 일이니까. 쉬운 직업이란 없다.

둘이 그렇게 일로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특히 공진솔 작가는 말과 표현이 적은 매우 조용한 사람인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보고 싶어 먼저 고백한다. 소설 속의 사랑에 난관이 없을 수는 없는 법. 그 난관은 이건 PD의 오랜 친구 커플에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된 서사는 이건-공진솔, 선우-애리 두 커플이 이끌어간다. 선우-애리 커플의 인사동 카페에서 넷이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넷은 각각 꽤 괜찮은 성품들을 가졌고 서로를 존중하며 편하고 즐겁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뇌관이 있다. 이걸 치워야 한다. 그것 때문에 조심스럽고, 그것 때문에 아프게 바라보며, 어느날 터져버린 바람에 모든 것은 엉망이 된다.

내 수준에선 그게 극복할 수 없는 사건 같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정도로 끝장은 아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고.... 어쨌든 둘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수없이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회피하지 않으며 천천히 나아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확실히 요즘 연애랑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두 커플 다 마찬가지다.

작가 소개를 보니 눈에 익은 제목도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 책이야말로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이네. 그걸 한 번 볼까. 파괴적이거나 참혹하지 않은 것도 가끔은 보고 싶거든. 이런 건 딱 명절연휴 때 전 부쳐놓고 잡으면 기분 느긋하고 좋을 것 같아. 지금 나는 연휴가 따로 없으니까 아무 때나 한번 봐볼까 싶다. 살찌니까 전은 생략하고.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지 마, 소슬지
원도 지음 / 한끼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도 작가의 소설을 한 권은 읽어봐야지 했었다. <눈물 대신 라면>이라는 책을 읽고 그의 이력을 알고부터다. <경찰관속으로>라는 책이 큰 반응을 얻은 후 그는 경찰 생활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경찰이었던 그의 이력은 모든 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게 흥미로운 요소이기도 하고 작품의 사실성을 높여주기도 하니 힘들었어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겠다.

위의 책을 읽었던 건 몇달 전인데 잊어버리고 았다가 도서관 신간 큐레이션에서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고 아맞다! 반가워서 집어들고 왔다. 그 책에서도 젊은이의 냄새가 진했는데 이 책도 그렇다. 나이들어가는 나의 정서와는 좀 결이 다르지만, 오래 살았다고 무게와 깊이가 꼭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은 젊은이의 시각으로 쓰여졌지만 가볍거나 얕진 않다. 오히려 단조롭게 살아온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현장'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책도 요즘 서사의 유행을 따르는지 '귀신'과 '빙의' '귀신이 보이는 주인공'이 주 설정이어서 읽다가 덮을까 잠시 고민했다. 드라마고 소설이고 요즘은 귀신이 단골손님인가. 그래도 덮기에는 재밌어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죽은 소슬지 얘기를 하는데 귀신 설정 아니고는 어려웠겠다 싶어 이해가 가기도 했고.

경찰관 '하주'가 귀신을 보는 주인공이다. 작가님의 직업과 캐릭터가 그대로 반영된 듯하다. 하주는 경찰관으로서는 결정적인 핸디캡이 있었는데 바로 '급똥 문제' 였다. 화장실을 참아야하는 직업들이 꽤 많다. (초등교사 직업병으로 방광염이 있다. 유치원교사는 더하겠지) 경찰관은 이보다도 더할 것 같은데 급똥문제라니.... 그래서 하주는 이용가능한 화장실 지도를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소슬지와의 만남도 똥과 무관하지 않았다.

과학수사팀인 하주는 변사자를 보는 게 일상이다. 그날도 변사 신고가 들어와 확인하러 간 원룸에서 화장실로 뛰어들고 말았다. 급볼일을 마치고 고개를 든 순간, 변사자가 거기에 있었다. (으악) 그리고 그날 밤, 본인의 원룸에서 아까 그 변사자, 소슬지의 귀신을 만난다.

소슬지 귀신은 원한을 해결하러 온 것도 아니고 딱히 요구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죽어서도 죽지못해(?) 떠돌며 힘들어하고 있을 뿐이었다. 죽어서 가는 곳에 어떻게 가는지를 모르는? 귀신과의 동거상황에 처음에는 분노했으나 은근 심한 오지랖인 하주는 소슬지를 연민하게 되고 그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그렇게 엮이고 풀려가는 이야기다.

나는 자식들에게 별로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양친부모 다 건강히 존재하고 경제활동을 하며 그들이 취업할 때까지 집과 학비와 용돈을 해결해준 것만으로도 꽤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더 잘 사는 사람들 보면서 저런 것도 못해줬어... 하고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다. 이 모든 배경이 전무한 젊은이가 세상에 내던져져서 7평 원룸 월세라도 살게 되기까지 얼마나 막막했는지, 고단했는지, 치열했는지, 외로웠는지, 사랑도 사치였는지,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헤어지고 얼마나 아팠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죽고 나서 알게된 것들에 의하면 말이다. 그렇다 소슬지는 스물 아홉 젊은 나이에 무리해서 자기집 화장실에 쓰러져 죽은 이시대의 불쌍한 청년이다.

공무원 신분이라 그나마 나은 변하주 또한 부모님 노답에 동생들 줄줄이다. 잘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또한 소슬지의 다른 이름이다. 젊은이들 생각없고 철없다고 쉽게 욕하지만 나의 평생보다 힘든 삶의 현장을 지켜가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자주 까먹는다.

자식뻘인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젊은이들에 대한 응원의 필요성'으로 읽혔다. 젊은이들에겐 공감과 위로, 그외 다양한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어른의 존재'이다. 경찰관 하주의 '반장님' 근덕은 뚝배기(국물) 음식을 흡입하는 식성으로 하주의 소화기에 부하를 가하지만 젊은 동료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좋은 어른이다. 슬지의 어른은 너무 늦게 잠깐 만났다. 물류센터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쓰러지고 쫓겨나는 슬지를 쫓아나와 걱정해준 아주머니. "여사님이 우리 엄마면 좋겠어요." 라는 말에 크게 울어준 아주머니. 이런 어른들이 많아야지. 나는 어떤 어른인가.

전직 경찰 작가님이 작품에 풀어놓은 내용에 의하면 변사자는 매우 자주 꽤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모든 인생들의 주변에 방어벽이 적어도 세 겹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라고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기억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네에 청년주택이 지어지고, 입주가 다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3층에 새 도서관이 들어섰다. 자그만 규모에 책도 적다. 하지만 다른 도서관에선 다 대출중이라 대기 걸어야 하는 책이 떡하니 새책으로 놓여있을 때가 있다. 이 책도 그런 행운으로 잡은 책이다. 내가 읽은 김애란 작가의 책으로 4권째다. 그동안 장편 2권 단편 1권 읽었는데 다들 '김애란은 단편!' 이러셔서 몇권 꼽아놓고 있었던 중의 한 권이다. 이 책 나왔을 때 유명세를 익히 알았는데도 그때는 넘겼다가 이제야 읽게됐네.

일곱 편 모두가 다른 상황 다른 인물이 나오는데도 어쩌면 마지막 한줄기 감정은 같은지. 그건 상실감과 외로움이다. 그냥 가을날 고독을 씹으며 왠지 쓸쓸해지는 그런 종류의 외로움이 아니고 통렬하게 깨달아지는 외로움. 그래서 제목에 '여름'이라는 계절을 넣은 걸까. 신록이 푸르고 생명력이 왕성한 여름이 아니고 작렬하는 태양이 두려운 맹렬한 여름.

첫 작품 [입동]은 젊은 부부가 거실 한쪽 벽에 도배를 하는 이야기다. 읽어보니 그들은 어린 아들을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잃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보고싶어 허공을 휘저어도 만져지지 않는 허망함에 애간장이 끊어질 것이다. 그걸 공감할 사람은 같은 입장밖에는 없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 그들이 같은 마음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같은 슬픔, 같은 고통. (그것마저도 안되는 부부들도 있으니) 이웃들은 처음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했지만 이제는 피한다.
"- 다른 사람들은 몰라.
- 다른 사람들은 몰라.
그러곤 내가 아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37쪽)
그 둘만의 공감 속에서 그들이 버티고 일어날 수 있기만을 바란다.

[노찬성과 에반]이 무슨 뜻일까 봤더니 사람 이름과 개 이름이었다. 노찬성은 남자 어린이고 에반은 개다. 찬성은 독자가 볼때 한없이 불쌍한 상황에 처했으나 본인은 그런 의식도 못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으나 보상금도 나오지 않았고 할머니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죽어라 일해서 겨우 찬성이랑 먹고 산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찬성이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 바로 에반이라는 버려진 개였다.
에반이 어리고 건강한 개이기라도 하면 뭔가 웃을 일도 생길 것 같잖아. 근데 늙고 병들었다. 모아둔 전재산을 들고 동물병원에 가서 알게된 건 에반이 암이라는 것과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거였다. 검사할게 많다는 수의사의 말에 "이만오천원어치만 검사해주세요." 하는 찬성이가 왤케 슬퍼.ㅠㅠ
"있잖아, 에반. 만약에 못 참겠으면.... 나중에 정말 너무 힘들면 형한테 꼭 말해. 알았지?"
안락사라는 선택지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찬성이는 나이만 어린 어른인가. 그 어린애가 안락사비를 마련하려고 전단지 알바를 한다. 딱 그만큼의 돈을 모았다. 에반은 그돈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을 것인가, 아니면.....

[건너편]은 지친 커플이 마침내 헤어지는 이야기다. 오래된 연인의 헤어짐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쓸쓸할 수가. 딱히 유능하지도 않고 의지력과 인내심이 강하지도 않고 부모 재산이나 배경도 없는 평범한 젊은이가 취업에만 젊은시절을 낭비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우면서 동시에 너무 현실적이다. 이렇게 헤어진 커플들이 실제로 많을 것이다. 말하자면 흔한 얘기인데 작가님의 펜끝에서 나오니 유독 쓸쓸하고 눈물겹네.....

이 책의 수록작들은 외롭고 슬프긴 해도 현실의 사람들을 보여주기에 서사를 따라가긴 어렵지 않다. 다만 [침묵의 미래] 이 작품만은 예외였다. 화자를 파악하는데서부터 어리둥절하다. 읽다보면 화자가 스스로 밝힌다.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뤄진 영이다." (125쪽)
공간적배경은 '소수언어박물관' 이라는 곳이다.
"지금 이곳에는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산다." (129쪽)
"멸종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호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 단지를 세웠다. 결과는 정 반대였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치켜세웠고,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132쪽)
대단한 상징과 비유가 담긴 작품인 것 같다. 작가님이 담으신 걸 다 찾아낼 수나 있을까. 개인적인 상실감을 넘어서 인류적 상실감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까. 내가 한번에 이해하긴 어려웠던 작품이다.

[풍경의 쓸모]에선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직업군으로 대학강사 이정우가 나온다. 착하고 조용한 성격인 그가 겨우겨우 버티고 지탱해온 것들에 균열이 가는 느낌으로 끝난다.
"마음속으로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183쪽)
남에게 모질지 않게 살아왔는데 그게 본전도 아닌 실책(더블폴트)이 되어 기회가 다 상실되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까. 모질게 말한다면 이선생, 당신은 좀 똑땍이 할 말은 하고 처신해라! 라고 해야되는 걸까. 공짜를 바란 적은 없지만 비겁한 적은 있잖아, 라고. 그가 비겁하지 않았어도 삶이 그에게 주는 것은 마찬가지였을지 몰라도 자괴감만은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가리는 손] 에서는 죽음이나 이별로 인한 상실은 없지만 어쩌면 더 서늘한 상실이 있다. 다문화가정을 이뤘으나 남편과는 헤어지고 아들 하나를 정성껏 키우며 지켰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년기에 이른 아들의 내면은 엄마의 상상과 기대 범위를 넘어선다. 모종의 좋지 않은 일로 찍힌 영상에 아들의 모습이 담겼고, 아들의 변명에 남들은 넘어갔지만 엄마는 직감한다. 자식의 거짓말을, 그리고 '가리는 손' 안쪽의 진짜 표정을....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이건 정말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가장 슬펐지만, 상실감과 그리움도 가장 컸지만 왠지 절망감은 가장 덜한 느낌이었다. 남편이 떠났다. 교사였던 그는 현장학습에서 계곡사고를 당한 제자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같이 목숨을 잃었다. 혼자 남은 아내에게 나타난 피부질환은 그 내면의 고통의 형상화인 것 같았다. 안팎으로 처참한 그녀 앞으로 편지가 한통 도착한다. 죽은 학생의 유일한 유가족인 누나가 보낸 편지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외면해왔던 상황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266쪽)
가버린 남편을 이해했다고 그리움이 줄어드는 건 아닐 거다. 더 커졌으면 커졌지. 마지막 문장도 '당신이 보고 싶었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맨 마지막에 자리한 건 슬픔 이상의 것이 들어있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2017년에 나온(첫 발표는 2015년) 이 작품에는 지금의 인공지능 채팅도구들이 아닌 초기 인공지능(시리)이 나온다. 아무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는 주인공의 마음을 알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의 인공지능은 답변이 더욱 정교해지고 공감능력은 사람보다 더 나은 지경이 되었지만.... 채워줄 수 없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아주 작은 답이 있다면 있고, 영 없다면 없는 것도 같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7월 말, 여름의 한복판에서 이 책을 읽었다. '바깥은 여름'이니 에어컨 켜진 까페에 들어와서. 지금은 시원하고 좋지만 문을 밀고 나가면 여지없이 폭염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감싸겠지. 이 책은 어쩌면 나의 '문 밖 세상'을, 그러니까 내가 열고 나갈 바깥을 보여주는 것일까. 알고는 있으라고. 어쩌면 선불, 혹은 후불의 위로 혹은 경고이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 참고 슛오프 다산어린이문학
문경민 지음, 오승민 그림 / 다산어린이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경민 작가님의 책은 거의 다 읽어본 독자라 최근 나온 이 책도 궁금했다. 제목과 표지만 딱 봐도 양궁 이야기. 이번에는 스포츠 동화를 쓰셨구나. 스포츠 동화도 참 종목이 다양하다. 야구가 가장 많은 것 같고 축구, 농구, 배구 등등의 구기종목, 체조, 육상, 스케이트, 수영까지도 읽어봤다. 양궁은 처음이다. 양궁이 동화가 될까? 올림픽 때 다른건 몰라도 양궁은 챙겨보는데, 그때 참 희한하다고 생각한 적 있다. 조준, 쐈다, 몇점! 이게 끝인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미나게 볼까?

이걸 서사로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전략이 있길 하나, 예측불허의 경기상황이 있길 하나, 격하게 뛰길 하나.... 도통 재밌게 만들어낼 건덕지가 없어보인다. (그래서 그동안 안나왔던 것 아닐까?^^;;;) 하지만 문경민 작가님은 도전해 내셨다.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평하고 싶다.

이러한 양궁의 성격은 본문 중에도 나온다. 주인공 정다희가 도희성 코치님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다.
"내가 양궁을 좋아하는 이유는 말이지."
"양궁은 태권도나 권투처럼 대련하는 경기가 아니잖니. 상대랑 몸 부딪치며 싸울 필요가 없어요. 체조나 다이빙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경기도 아니고."
"양궁은 과녁과 나의 싸움이야. 운이 따라 줘야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양궁은 공정해. 나는 양궁이 과녁과 승부를 보는 스포츠라서 마음에 든다." (171쪽)

이렇게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것이 양궁의 장점이면서 서사로 표현하기에는 재밌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겠는데, 이런 점을 이 작품은 잘 극복해냈다. 나는 신체기능이 매우 취약해서 절대 그럴 리 없지만 스포츠를 하나 해야 한다면 저 코치님과 같은 이유로 양궁이 그중 맞을 것 같다. 또한 우리나라의 온갖 스포츠협회들이 욕먹고 있는 가운데 양궁협회만은 인정받고 있는 것은 구성원들이 훌륭하신 점도 있겠지만 이 종목 자체의 깔끔함도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판정시비가 나올 일도 없고, 경기중 거친 몸싸움이나 허리우드 액션도 나올 일이 없으며 누굴 봐주고 싶다고 봐줄 수도 없으니. 이상 양궁에 대한 얘기를 길게 했는데, 올림픽 때 외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던 양궁이라는 종목에 대해 이 책을 읽고 좀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는 증거라 하겠다.^^

운동을 하는 주인공은 뭔가 핸디캡이 있기 마련이다. 다희의 경우는 약한 몸과 부모님의 걱정이다. 다희는 태어나면서부터 병원 신세를 많이 졌고 체구도 작고 체력도 약하다. 빛든초로 전학 와서 양궁부에 들었지만 부모님은 다희가 선수생활을 하길 바라진 않는다. 코치님한테도 기본만 가르쳐주고 무리는 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빛든초 양궁부는 매번 예선탈락이지만, 누구하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다희는 불만이다.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과 함께 이야기는 힘을 받기 시작한다. 파장 작전의 양궁부에 신입부원 방봉식이 전학왔다. 다희가 있었던 주명초에서. 다희는 그곳의 영서라는 아이한테 괴롭힘 당하다 전학왔었다. 영서는 그곳 양궁부 에이스였고.

봉식이는 양궁실력도 수준급이고 성격도 의욕도 좋았다. 혼성팀으로 나가야 하는 스포츠축제에 함께 나가자고 다희를 설득한다. 당연히 주명초도 영서도 출전한다. 이렇게 이야기는 풀려야하는 매듭을 향해 치닫는다. 대회 결과는 어떻게 될까? 영서와의 과거는? 이해와 화해가 가능할까? 매듭은 어떤 식으로 풀릴까? 그리고 그 이후는....

이 모든 일들에 작가의 마음이 담긴 것이 느껴지고,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더욱 확인이 된다.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마음에 품고 함께 살아가던 이들에게 손을 흔드는 기분이 든다. 다희가 좋았다. 봉식과 영서도 좋았다. 그들과 함께 <숨 참고 슛오프>를 만들어 온 지난날이 즐거웠다. 막상 떠나보내려니 못내 아쉽다."
작가님은 여러 입장에서 학폭을 지켜보신 분인 것 같다. 특히 최근 몇년간은 학교에서 학폭 업무를 맡으셨다고 한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나로서는 수업에, 학폭업무에, 창작까지 하신 작가님의 애씀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작가의 말에 보니 이 작품은 같은 소재의 이전 작품보다 훨씬 괜찮아진 마음으로 쓰신 것 같다. 세월이 준 그 치유와 힘이 이 책을 읽는 학생들 모두에게 화살처럼 정확히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대회 장면의 묘사에는 문학작품에선 보기 드문 점수표까지 들어갔다. 딱딱한 사각의 표가 긴장감을 주고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 꽤 가능하다! 양궁도 되는 거였어.ㅎㅎ 재미있게 읽었고, 고학년 학생들에게 추천한다. 4학년과 중1 정도까지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벼랑 끝의 교사, 다시 교실 문을 열다 -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의 시대, 교육을 살리는 회복과 연대의 기록
실천교육교사모임 지음 / 푸른칠판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평범한 초등교사로 30년 조금 넘게 근무하고 올 초에 퇴직했다. 나의 교직생활은 그리 파란만장하진 않았다. 하루하루 온힘을 다해 떠받쳐야할 만큼 무겁고 버거운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 버티다보니 퇴직 가능한 시기가 와서 뒤도 안돌아보고 퇴직했다. 마지막날 인사자리에서 소감을 묻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무사퇴직이 감사할 뿐 후회도 미련도 없습니다."

영광도 찬사도 없이 그저 물러나는 자리에서 나는 왜 그렇게 감사했을까. 이 책에 답이 있다. 운이 좋으면 나처럼 특별한 재주 없는 교사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훌륭한 교사도 덫에 걸려 큰 상처를 입고 피흘리며 신음하고 오점에 괴로워한다. 그런 일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책으로 나오고 심지어 드라마에서까지표현된 것은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괴롭히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아니 그것도 피해 교사가 받는 시간, 물질,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점점 많은 이들이 시도한다. 이 무고한 교사 죽이기를.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아홉 명의 교사가 겪었던 아동학대 피소의 경험을 담았고 2부에는 이 책을 엮어낸 실천교사모임에서 회장이나 교권법무팀장 등 중책을 맡아 이 문제에 대해 연구와 경험이 풍부한 4명 선생님들의 제언이 실려있다. 매우 효율적이고 짜임새있는 구성이다.

1부를 쓰신 아홉 분의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는 것은 떠올리기 싫은 악몽같은 기억을 또박또박 되살려 그 과정을 상세히 적어주셨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아차 싶거나 아쉬웠던 부분과 천만다행이었던 지점들이 보인다. 같은 일을 당하는 분들께도 도움이 되겠지만 언제 피해를 당할지 모를 모든 교사들이 읽고 염두에 두어야할 내용들이다.

사례들은 모두 기가 막혔지만 익히 상상이 가능한 상황들이었다.
1) 6학년 교실의 권력자 학생이 마땅히 교사에게 돌아가야 할 권한을 두고보지 않고 세력을 만들어 담임을 몰아내려 모의한 경우 (그 조직 이름이 '교실혁명당'이라니 기가 막혀서)

2) 담임교사도 아닌 학폭 담당교사로 주어진 업무를 했을 뿐인데 가해학생들 측에서 아동학대 신고와 행정심판 청구가 들어온 경우

3) 성 사안 학폭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아이의 학폭 처리 후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온 경우 (심지어 그 부모가 교사였다니, 교사들도 학부모로 위치가 바뀌었을때 자기 발밑을 늘 점검할 필요가 있다)

4) 유치원 교사의 사례. 한국인 아버지가 해외에 체류 중이고 언어에 서툰 어머니가 데리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를 극진히 돌봐줬으나 아이의 거짓말+한국말 못하는 엄마의 콜라보로 오해한 아버지가 신고한 경우 (다문화 학생... 편견없이 잘 지도해야 되지만 이런 경우 정말 모든 의욕 상실됨ㅠ)

5) 생활기록부를 자기 입맛에 맞게 고치기 위해서 아동학대 신고를 무기로 휘두른 경우

6) 아이의 문제행동에 비해 교육의지가 현저히 부족한부모가 긴 지도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학폭과 선도위원회 처분에 분노하여 아동학대 신고를 한 경우

7) 과학전담교사로 6학년 교육과정의 고난이도 실험을 할 때 보안경 착용을 지시하고 실험 안전교육을 철저히 했다는 이유로 정서적 학대 신고를 당한 경우

8)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더불어 교권보호위원회의 2차 가해를 당한 경우

9) 전담시간의 무질서에 대해 전해듣고 반 전체 학생들을 훈휵하는 과정에서 한 아이의 거짓진술로 학대 신고를 당한 경우

요약하면서도 기막히다는 생각이 또 든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어찌됐든 '혐의없음' 처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었던 불안과 공포, 억울함과 슬픔 등의 심적 고통은 필설로 다할 수가 없다. 또한 무혐의를 받아낸 것 또한 매우 다행스러운 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 사건발생 직후 교원단체와의 연결, 즉각적인 지원과 대응 (꼭 이럴 때를 대비해서는 아니지만 교사라면 교원단체 한곳에는 꼭 들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퇴직하며 탈퇴했지만 나는 세 곳에 들었었다. 다들 강점과 성격이 다르니 두 군데 정도 드는 걸 추천한다)

2) 교실 수업 장면에선 교사가 전문가지만, 조사를 받으러 갔을 때는 실수할 수 있는 불안한 존재일 뿐이다. 전문가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위의 단체 가입과도 연결되는 이야기다.

3) 기록의 중요성이다. 현장에 적자생존이라는 우스개소리가 통용될 정도로, 사안을 겪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차가운 조사실의 압박감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는 억울하다는 눈물이 아니라 빈틈없이 준비된 차가운 기록과 논리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146쪽)
내가 운이 엄청 좋았다고 느끼는 건, 나는 평소 독서기록 등 글쓰기를 즐기면서도 이런 기록에는 철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교과보다 생활지도 기록에 철저하지 못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이 부분을 반드시 보완할 것이다. 나는 평소 교사가 '지도자' '기록자' '평가자'의 역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 '기록자'의 역할을 다시한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사시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교사의 꾸준한 기록은 학생의 성장 과정을 파악하는데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

4) 평소 관계를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그렇게 신뢰로 형성된 관계는 중요할 때 힘이 된다. 위 아홉번째 사례에서도 교사를 살린 건 선생님을 신뢰하는 학생들의 증언이었다.

거칠게 요약했는데, 책을 읽어보면 이 모든 과정이 가까운 사람의, 심지어 나의 일처럼 와닿으며 꼭 필요한 지침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힘든 과정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교실문을 여는' 선생님들께 감사와 응원이 마음이 생긴다. 극복하며 단단해지고 더 성숙해지는 마음에 존경심도 생겼다. 나같으면 적개심과 복수심 말고는 남지 않을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훨씬 성숙하시더라구. 그게 이후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맞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을 보낼 뿐이다.

이렇게 극복했으니 된 건가. 그게 끝이 아니다. 이렇게 어이없는 아동학대 신고의 칼날을 제멋대로 휘두르지 않도록 제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기분 나쁘다고 트집을 잡으면 그로부터 교실이 마비되는 이 잘못된 현실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학교가 불안한 쟁송의 장이 아니라 안정된 신뢰의 장이 되어야 한다. 불안과 미움 속에서는 배움이 싹틀 수 없다. 2부의 선생님들의 분석과 제언이 이후 사회 변화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교사들의 필독서이자 학부모, 행정가, 정책자 등 교육에 옷깃이라도 스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