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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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후 손원평 작가의 책을 샅샅이... 찾아 읽은 건 아니고 <서른의 반격>이라는 소설과 <위풍당당 여우 꼬리>라는 동화를 이어서 읽었다.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오호, 저 책도! 했었는데 며칠 전 도서관 신간코너에 아무도 안모셔가고 딱 놓여있어서 받들어들고 나왔다.ㅎㅎ

제목도 잘 지었고 표지도 느낌을 완전 잘 살린 것 같다 어떤 느낌이냐면 불길하고 섬뜩한 느낌...ㅠ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도 불쾌했다. 재미는 있는데 마음은 불편했다. 그 불편의 정도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순한 맛에서부터 핵매운맛까지. 아주 주관적인 기준으로 매운맛 점수를 매기며 리뷰를 해볼까 한다.

[당신의 손끝] 이건 '약간 순한 맛'이라 하겠다. 미술을 전공하고 딱히 자리를 못 잡은 효원은 좋은 동네의 문화센터에 채용이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보수는 매우 적지만 경력 면에서) 거기서 주영이라는 수강자와의 만남은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주영은 그림에서 행복을 찾아갔고 주4회나 수강을 끊어 효원에게 경제적 안정감도 선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여야 했을까. 주영이 선사한 성취감은 효원에게 자꾸 그 이상을 보게 했다. 결국 좀더 크게 벌인 일 앞에서 주영과의 관계는 칼같이 끊어지고, 몰래 숨어 들은 주영의 평가는 비수와도 같았다. 얼마나 비참하고 상처였을지 알겠지만 그래도 내가 순한 맛 범주에 넣은 것은 이정도는 '약이 되는 경험' 축에 넣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불킥하고 가슴을 칠 경험인 것은 맞는데, 약이 된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모욕과 후회의 기억으로 다듬어지는 것 아닐까. 그렇게 세상을 배운다는 게 서글프고 씁쓸하긴 하지만.

[태양 아래 반짝이는]은 ‘아주 매운 맛’이되 더럽고 고약한 맛이다. 화자는 고급 호텔의 수영장에서 구조요원으로 근무하는 젊은 남자다. 누군가의 느긋한 휴양지가 누군가에게는 고된 일터가 될 때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럴 때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그 대답으로 이 젊은 남자는 최악을 보여준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법륜스님의 문답 영상을 어느 분이 페이스북에 공유를 했는데 썸네일에 “놀러나 다니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되어 있길래 궁금해서 한번 열어 보았다. 내 딸 또래의 젊은 직장여성이 훌쩍 훌쩍 울면서 회사 다니기 힘들다고 스님께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썸네일의 저 말이다. “소설을 쓰는 예술가나 되든지 놀러나 다니는 부자로 살고 싶어요.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서 우리 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스님의 말씀은 길어서 다 듣진 못하고 넘겨가며 대충 들어봤는데 의외로 이런 말씀이었다. 인류의 지나온 역사를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형편도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덜 고생스럽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이미 소득 상위권들이 세금 많이 내고 있다... 젊으니까 열심히 살아보자 그런 말씀이셨다. 솔직히 그녀가 훌쩍거릴 때 코웃음이 나긴 했지만 딸처럼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에이구 이 딸래미야, 소설가는 뭐 쉬운 줄 아니? 그리고 너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고 세금 내잖아? 그럼 이미 소득 순위 어느정도는 되는 거야. 진짜로 너말처럼 그래야 한다면 니 월급에서도 더 떼야 돼. 그러기는 싫지? 젊고 멀쩡한 너가 일하지 않고 놀고먹겠다는데 왜 누가 돈을 보태줘야 하니?

난 그 딸래미가 지금은 열심히 잘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야 누군들 안해봤을라구. 그날따라 유난히 힘들어서 했던 투정이었을 거라고. 근데 투정에서 그치지 않고 되지않는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의 화자 같은 놈들이다. 세상의 격차는 그것대로 줄여가고자 하는 의식이 있어야겠지만 너같은 놈이 하는 짓은 그냥 범죄행위지. 내가 힘들여 일하는 곳이 팔자좋은 인간들의 휴양지라 해도 나는 너처럼 비틀어지진 않을 것 같아. 시스템? 인간의 시스템인데 모순 많지. 하지만 너의 행동이 더 모순이야. 너 같은 인간이 있는 한 모순은 더 깊어질 거야. 그가 마지막 새벽에 수영장 물에 풀어놓은 그 불순물은 딱 그 내면의 모습과도 같았다. 나는 그에게 세상이 어쩌구 타령할 기회를 절대 주지 않겠다. 그냥 너는, 아웃이야. 잡혀서 제대로 처벌받길 바란다. 통렬히 깨달은 후에야 기회가 있을 것.

[피아노]는 드물게 ‘순한 맛’이었다. 약간은 따뜻한 맛이기도 했다. 상황은 서글프고 딱히 밝은 앞날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막장으로는 치닫지 않아서 마음이 한결 나았다. 아파트에서 공부방을 하던 혜심은 가르치는 역량은 우수했지만 요즘 엄마들의 마음에 들기에는 너무 뻣뻣한 사람이었다. 수강생은 줄고 거기다가 아파트를 옮겨타려다 시기 조절에 실패해 사지도 못하고 있는 집만 팔고 손해보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공부방도 접고 외곽으로 이사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자꾸만 찾아오는 아이가 있다. 준용이라는 이 아이는 더구나 수강료를 넉 달이나 안낸 아이다. 공부방에는 모두의 추억이 어린 피아노가 있었는데 중고로 팔기도 여의치 않아 딱지를 사다붙여 내놓은 다음날, 그걸 누군가 중고로 내놓은 걸 보았고, 찾아간 집에서 바로 준용을 마주쳤다. 사실 버린 걸 주웠는데 왜 화를 내냐고 뻗댈 수도 있는데, 준용은 순순히 카트를 밀고 제자리로 되돌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탁한다. 공부 좀 봐주시면 안되냐고. 이사가 얼마 남지 않은 날 혜심과 준용은 마지막 수업을 한다.

크게 자극적인 소재는 없었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나도 아이들과 긴 세월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나도 혜심처럼 원칙주의자였고, 아이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유난히 기대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는 가정집의 공부방이었으니 가정이 무너진 준용이 더욱 애착을 느끼는 공간이었던 것 같다. 주변 세계가 무너진 아이들을 내가 입양해서 키울 게 아니라면 애정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관계라면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칼같이 끊는 것만 방법인 것은 아니다. 혜심의 마지막 수업이 준용에게 실제로 큰 도움이 될 수도 없고 지속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부당하지 않았다는 기억, 마지막 따뜻함을 주고 떠났다는 신뢰감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어른들이 아이를 대할 때 여러 원칙과 현실적인 상황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점이 이런 점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

[그 아이]는 '약간 매운 맛'이라고 할까. 몰랐던 세상 풍경 한 켠을 보았다 정도. 그 세상은 명품 소비 세상이다. 나로서는 명품 가방이 백만원이든 천만원이든 아무 상관없다. 왜 저래~? 이런 느낌이니까. 이 작품 속 정민은 구매대행 알바를 한다. 추운 겨울날 오픈런을 위해 몇시간씩 줄을 서서 구매해 주는 역할이다. 이 작품을 읽고 명품 가방은 중고가격이 신상 가격보다 더 비쌀 수도 있고, 그런 전문업자(리셀러)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민아, 너무 맘 상하지 말고 니 갈 길 가라! 소수의 세상을 굳이 들여다보며 부러워하진 말자꾸나.

[유령의 집]은 여기서 가장 '핵 매운맛', 정말 고통스러운, 몸부림치도록 견디기 힘든 맛이라고 해야겠다. 아니 이게 이렇게 됐다는 거야? 눈을 비비며 다시 봐야 할 만큼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죽음, 거기에 이르게 된 절망이 너무 처절한 장면들과 함께 불시에 다가왔다. 그 작품 안에서 개는 비참함과 끔찍함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작품 앞에 실린 윤동주 님의 시는.... 돌아와서 다시 읽으면 눈물을 부른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다른 고향 중에서)

[모자이크]는 '매운 맛'이지만 떫고 비위 상하는 매운 맛이다. 화자는 아무 목표 없이 고시원의 방 한 칸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다 유튜버가 된 여자인데... 끝까지 가면을 쓰고 익명성을 유지했어야 하는 것을 딱 한 번 경계심을 풀고 누굴 만났다가 치명상을 입고 계정을 접었다. 이후 같은 수법으로 복수를.... 포장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랄까. B컷은 뒤로 다 감추고 A컷으로만 자신을 과시하는 SNS의 허상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심지어 A컷도 아닌 꾸며낸 거짓컷으로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지. 결국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이 여자는 부르짖는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네, 그럼요, 아무도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못할 거예요. 절대로요.”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런 속성을 안 가진 사람은 없지만 조절 능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차이가 있다는 점. 성찰 능력도.

[조망]도 '핵 매운맛'이다. 뒤통수를 내리누르는 둔중한 매운맛이다. 고속도로 요금소 그 좁은 공간에 갇혀 일하는 수하에게는 얼마전부터 자신만 아는 도피처가 생겼다. 쇼핑몰로 짓다가 중단된 큰 건물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 건물을 계단으로 올라 꼭대기 전망층에 올랐을 때 본 광경은 수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특히 비가 세차게 올 때의 광경이.

큰 비는 수하에게 부모를 잃은 사고의 기억이자 어린 나이에 거부할 수 없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기억이기도 했다. 어느날도 비가 심상치 않게 내렸다. 주변 지역에 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관계자가 데려온 딸 한 명을 급하게 수하의 좁은 공간에 맡겼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재난이 터졌다. 살면서 거의 해마다 홍수 피해의 소식을 뉴스로 접했지만 이 정도의 재난은 듣도보도 못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사고의 규모를 키웠을까? 잘 모르겠다. 거의 종말적 재난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직전, 둘은 그 버려진 건물 전망층에 있었고 살아남았다. 수하가 처음보는 ‘맡겨진 아이’를 품에 안고 거기까지 왔다는 사실에서 한줄기 인간애를 찾아야 하겠지. 하지만 거기서 ‘조망’하는 비극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

[통행증은 마스크]는 '아주 매운 맛'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별 일은 불거지지 않았고 선미와 까페에서 마주친 일행과의 은근한 실랑이가 다인 것 같지만, 선미가 하고 있는 일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아서이다. 선미는 듣보잡 매체의 연예부 기자이고 우리가 보통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그런 종류의 기사를 쓴다. 있는거 없는거 긁어모아 대상은 죽든말든 알게 뭐냐는 식의 기사...
"선미는 종종 이 일에 가책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살기 위해선 그가 죽어야 했다. 생존의 법칙은 늘 그런 식이었다." (190쪽)
어쩌면 이 작품이 책의 제목을 가장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에 [딸과 깍 사이]를 배치한 것은 독자를 위한 배려인가. 전체 작품 중 가장 '순한 맛'이었다. 약간은 환하고 달콤한 맛이기도 했다. 그런 반면 현실성 면에서는 가장 약하다고 생각되니 이 일을 어쩌면 좋나.^^;;;;; 매운맛들만이 현실이라면 세상이 지옥에 접근했다는 뜻이 되니까.ㅠㅠ 하지만 이 작품은 현실에서 느껴지는 보통 사람들의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잘 담고 있다. 악하지는 않은 소시민이 조직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진 못하고 그 안에서 고뇌하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자신의 무가치함에 슬퍼하는 모습. 이 작품은 어떤 드라마의 몇 에피소드로 오마주되어도 좋을 것 같다. 그정도로 주인공 소미 씨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뜨개질이 소재로 쓰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뒷표지에 "비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는 손원평의 강렬한 메시지" 라는 말이 나온다. '비정함' 이야말로 이 책의 지배적인 정서이다. 내가 순한 맛으로 분류한 작품에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덜 비정하게 살아갈까. 이 책에 의하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냥 숨쉬는 것 자체가 남한테 가해가 되는 '가해의 사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인가.

어제 '모자무싸' 드라마를 보다가 사소한 한 장면에서 울컥했는데, 황동만이 사채업자를 피해 도망가려고 뛰어나오면서도 매트리스를 옮기는 이웃을 도와 뒷부분을 받쳐 들어준 일이다. 나는 어쩜, 하고 감탄했다. 어쩜 저런 짧은 순간에도 저런 장면을 넣었지.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장면들은 힘이 없을까. 그런 장면들이 모이고 모여도 세상은 여전히 비정할까. 나는 마지막 작품에서 작가님이 이미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포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씩 다 언급하다보니 리뷰가 넘 길어졌네.... 짧게 잘쓰는게 좋은 거지만 기록용으로 쓰는거라 아무말 대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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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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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님을 접한 순서는 음식 에세이가 맨 먼저다. 두번째는 영화 '봄밤'이다. 세번째 비로소 소설을 접했다. <엄마의 이름>을 읽고나서 이 책을 잡았는데 그게 이 소설집에 포함된 단편인 걸 몰랐네.^^;;; (여기선 '실버들 천만사'라는 제목으로 실림) 그 작품 외에도 6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은 따로 없는데 모든 작품을 어우르게 책 제목을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계절'이라....

첫번째 실린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나는 작가님에게 바로 감탄하고 말았다. 사소한 소재 하나를 가져와 작품 전체를 뒤덮는 그 확장력이라고 할까 의미부여력이라고 할까. 그 소재가 바로 사슴벌레였다. 80년대로 추정되는 시기에 대학을 다니며 룸메이트였던 여성 4인방의 이야기다. 그들이 강촌으로 함께 1박 여행을 갔을 때, 민박집 방에서 사슴벌레를 보고 "방충망도 있는데 커다란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올까요" 하는 질문에 숙소 주인은 "어디로든 들어와" 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사슴벌레식 문답의 시작이다. 그들은 재미있는 것이라도 발견한듯 '든'이 들어간 그 대답을 수시로 써먹었다.
-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
-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이런 식. 처음에는 그게 상당히 경쾌하고 쿨하고 센스있으며 긍정적이고 희망차 보였다. 하지만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그게 아니구나를 보여준다. '든'은 엄청난 무게를 지닌 화법이었다.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29쪽)

이 작품은 어쩌면 그 문답의 서늘한 진짜 의미를 깨달아가는 수십년의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라 할 수 있다. 와 그 사소한 것으로 이렇게 엄청난 걸 보여주다니,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작가라고 부르는구나 생각했다. 빛나는 청춘을 같이했던 그들. 그들 중 하나는 그 엄혹했던 시절에 배신과 변절을 했고, 꿈을 찾아 안정을 버렸던 누구는 10년 후에 자살을 했고, 남은 둘도 결국 서로를 위로하며 손을 잡지 못한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선택은 결국 결별이다. 함께했던 시간들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잊히는 것보다도 더 뼈저린 '서로를 견딜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나 미련을 갖지 않는 게 좋겠다. 이제라도 그들이 과거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노년이 되어가는 나이긴 해도.

첫 작품에서 작가의 확장력을 느꼈다면 [무구]라는 작품에서는 클리셰를 훨씬 넘어서버린 작가의 과감하고 자유로운 서사력이 느껴졌다. 비극으로 흘러갈 만한 소재가 의외로 행운 쪽으로 흘러간다? 우와 좋겠다, 부럽네... 근데 그게 또 훨씬 현실적인 외로움과 서늘함을 선사하다니. 애매하고 미묘한 맛이었지만 아주 신선하기는 했다.

소미는 퇴직자 남편과 아주 럭셔리한 노년생활을 시작했다. 하루 일과를 거의 '관리' 받는데 쓴다. 건강 관리, 외모 관리... 한마디로 세상 가장 편한 팔자라 하겠다. 그들이 원래 금수저였던 건 아니고 그들의 윤택한 생활에는 웃지못할 아이러니가 들어있다. 소미는 sns에서 우연히 옛 친구 현수와 연락이 되어 그를 찾아갔다. 현수는 먼 도시에서 부동산 중개인이 되어있었다. 이후 소미는 뻔질나게 그 먼 곳을 드나들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근묵자흑이라고 땅장수 옆에 붙어서 뭘 했겠어? 결국 현수의 소개로 빚을 얻어 빈 땅을 샀는데.... 어느날 현수는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고 산 땅의 가치는 한없이 하락했다. 근데 웃기는 반전은, 소미가 그 빚을 근근히 갚으며 존버했더니 결국은 대박이 났다는...ㅎㅎ 그래서 소미 부부의 윤택한 노년생활이 시작된 거다. 어휴 이보다 부러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나라면 절대 못했을 일이다.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지만 돈은 일단 무서운 거다. 십수년의 존버 생활동안 바늘방석을 견뎌낸 결과가 지금인 거지. 말하자면 그들 노년의 윤택은 중년의 불안과 맞바꾸어 얻은 것이다. 물론 말아먹은 보다는 천만배 나은 결과지. 부럽다니까? 아 근데, 왜 결말의 지배적 감정은 외로움일까? 그걸 배부른 투정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돈과 운과 자본의 원리로 세워진 행복의 허망함은 크든 작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갈수록 그건 더 심화되겠지.
(그래도 어쨌든 부럽긴 해ㅋ)

[실버들 천만사]는 단행본에서 따로 리뷰했으니 넘어간다. 그런데 일곱 편의 단편 중 세 편이나 '엄마'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실버들 천만사]외에 [깜빡이]와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두 편이었다. 이 두 편의 어머니들은 실버들 천만사의 반희 씨와 완전히 반대의 캐릭터였다. 이 두 편을 읽으며, 이혼하고 집을 나와 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긴 했어도 홀로 꼿꼿이 서려는 반희 씨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절감했다. 상처를 주고 떠나는 편이 물귀신처럼 들러붙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도. (반희 씨는 결국 완전히 떠나진 않는다)

[깜빡이]의 엄마도 그랬지만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의 어머니가 더 가슴이 답답하여 이 작품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오익은 박사과정생인 것 같다. 나이먹고 돈은 없고... 어머니의 전화를 잘 받아주는 걸 보면 모질지 못한 사람이다. 홀로 된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집착적으로 전화를 한다. 제목처럼 '잠을 못 잔다'며 자신의 불안을 중계방송하듯 자식에게 전가한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라 그렇겠지만 이 대목을 읽으며 <모자무싸>에서 변은아의 대사가 떠올랐다. 인생의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힘있는 엄마요" 라고 대답했다. 불안해하지 않고 옆을 지켜줄 수 있는 엄마. 여기엔 대단한 통찰이 담겼다고 본다. 인생의 목적이라 할 만큼 이게 쉽지 않다는 거다. 중심을 잡고 본인이 흔들리지 않으며 가족까지 안심시켜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요즘 보기 쉽겠나. 하지만 나는 다짐해본다. 나의 불안까지는 내가 어쩌지 못하더라도 그 진동으로 자식까지 흔들지는 말자. 나는 아직 자식에게 의존할 나이는 아니긴 한데, 앞으로도 최대한 의존성을 키우지 말자.

오익의 어머니는 고통과 눈물을 무기로 삼아 아들을 심리적 인질로 옭아매는 사람이다. 요양원에선 국에다 미원 대신 비료를 넣는다며 그런 데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선수를 치는 잔머리도 가지신 분.ㅠ 오익 씨의 여동생은 결혼도 했는데, 요즘 난데없이 엄마랑 오빠에게 미친 듯이 패악을 떨어대고 있고 그게 극에 달해 마침내 절연을 선언했다. "요런 영악한 년 좀 보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걔는 판단이 선 거야. 이 굴레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모질지 못한 오빠도 있겠다, 자기라도 살고 봐야겠다고 판단을 한 거지. 일종의 선제공격을 통한 방어라고 할 수 있겠다. 엄마가 던지는 죄책감의 올가미를 쳐내고 나는 차라리 못된 년이 되겠다! 어찌보면 현실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짐을 좀 나눠 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줌마 마음... 오익 씨가 허물어져가며 이야기가 끝나니.ㅠ 이젠 세상에 오익 씨가 많이 남지도 않았겠지만, 세상의 오익 씨들이 잠시라도 독한 마음으로 거리두기를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나도 부모라서,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마음이 무겁다. 이래서 저출산이 더 심화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ㅠ

표제작은 없지만 표제가 살짝 나온 작품은 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라는 작품이다. 여기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이 말을 한 마리아라는 분은 성당 교우들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기도 하고 성당 봉사도 성심껏 하는 분이다. 70대의 나이에 자신보다 10살이상 어린 교우한테도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마리아. 이분이 돌아가셨고, 성당 바자회 자리에서 나이든 여자 교우들이 그를 추억하며 수다를 떤다. 그들을 보며 베르타는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어가 바뀌어있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자신을 포함시킨 그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나도 포함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읽는 내내 착잡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우리는 인물들을 욕하거나 응원하거나 간에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에 몰입한다. 이 성당의 교우들도 특별히 나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힘든 인생을 조용하고도 헌신적으로 살다 갔던 마리아가 했던 '각각의 계절'이라는 말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각각'이라는 말에서 인생들 각자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떠오른다. 그건 남에게 인계할 수도 인계 받을 수도 없는 각자의 몫이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인물들이 그렇듯이. 그렇다고 파편화가 우리의 지향점일 리는 없다. 자신의 인생, 즉 '각각의 계절'이 자기 몫인 것을 명확히 인식한 후에 연대도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남의 힘으로만 살 수도 없다.

나의 계절을 나기 위해 나는 어떤 힘을 내야 할까. 내 옆에 가족도, 친구도, 언니들도 있었으면 좋겠는 건 당연한 마음이겠지? 나와 그들의 '각각의 계절'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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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름 소설의 첫 만남 22
권여선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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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권여선 작가님 책을 한권 빌렸는데 옆에 아주 얇은 이 책이 꽂혀 있었다. 오 금방 읽겠다 싶어서 같이 빌려왔고, 편한걸 선호하는 나는 원래 빌리려던 책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생각보다 더 짧은 책이었다. 중편 정도도 안되고 단편인 듯했다. 단편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작품 분량에 비해서 여운은 깊고 길었다. 그러니 충분히 곱씹어 감상하라고 따로 출간한 것일까...? 어쨌든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책이다.

등장인물은 딱 둘이다. 50대로 짐작되는 엄마와 20대의 딸. 나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른 점도 있다. 나는 평생 하던 일을 올해 그만두고 퇴직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엄마는 아직 생활 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완벽히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다는 점. 독립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연을 끊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 만 가닥이든 끊어 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둘 사이가 끊어진다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 여야 했다." (21~22쪽)

딸 고2때 이혼하고 집을 나온 엄마는 이런 생각으로 누구와도 왕래 없이 혼자서 살아간다.
"당분간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73쪽)

여기에 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점이 놀랍다. 세상에 딸 아닌 어떤 존재가 이렇게 할까. 아들도 아주 드물게는 할 수 있겠지. 딸이라고 다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들 엄마들이 딸 엄마들을 부러워하는 건 대부분 이렇게 최후의 친구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딸이라서가 아닐까.

아빠의 재혼을 앞두고, 딸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1박2일의 여행을 제안했다. 못이기듯 따라나선 그 이틀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들은 여행동안 서로 이름을 부르기로 약속한다. "반희 씨" "채운 씨" 이런 식으로.

방송 관련 현장 일을 하는 듯 보이는 딸은 큼직한 SUV 차량을 렌트해와서 산속 펜션으로 엄마를 이끈다. 차 안에서, 숙소에서 그들은 각잡고 대화를 한 건 아니지만 할 말들은 다 했다. 돌아오는 길 엄마와 딸은, 특히 엄마에게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나는 처음에 저렇게 벽을 치는 엄마를 이해했다. 이혼, 요즘 세상에 그게 뭐라고 인생에 오점이라도 남긴 듯이 주변을 끊어내나 하겠지만, 평생 인생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은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린 엄마의 상한 자존심을 알 것 같았다. 단편이라 그간의 과정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그냥 그렇게 짐작을 했다.

아예 안나오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의 기억 소환에서 딸 열 살때의 일이 나온다. 그날 참을 수 없었던 엄마는 가출을 했고 남편과 아들의 문자가 빗발쳤다. 결국 엄마는 밤을 넘기지 못하고 귀가했는데, 바로 '채운이가 울고 있다'는 연락 때문이었다. 그때 채운이는 엄마에게 안기지도 않고 눈을 흘기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엄마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서 엄마는 이후 몇년을 더 참은 것 같다. 열살에서 고2때까지. 남편과 무슨 갈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인내의 과정에 엄마 자신은 없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큰 차로 산길을 운전하며 여행을 주도하던 씩씩한 딸이 공황 비슷한 증세를 보인 것은 또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장면을 보며 '모자무싸' 드라마의 변은아가 생각났다. 버려진다는 공포감은 그런 것인가보다. 그들이 최악까지 가지 않은 건 다행히 변은아에게는 따뜻한 등을 내어준 새할머니가 있었고, 채운의 엄마는 이별을 몇년이나마 보류하고 더 보살펴주다 떠났다. 그래도 변은아는 어떤 장면에서 코피를 흘리고, 채운에게는 호흡곤란이 찾아온다.

채운이 '미래완료'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때 나는 이 책이 비록 단편이지만 안 보인 사건들을 구체화하고 상세화해서 드라마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16화는 너무 늘어지고, 8화 정도로? 생활 밀착형 드라마이면서 매 화마다 가슴에 꽂히는 단어들을 던져주는 드라마. 그 낱말 중 하나는 '미래완료'다.

"엄마, 나는 미래 완료라는 말이 그렇게 슬퍼. 언제부터인가 난 알았던 것 같아. 엄마가 집을 나갈 거라는 걸. 엄마가 나간 다음에 나 혼자 엄마 없이 살 거라는 걸. 나 고2때 진짜 엄마가 이혼하고 나갔잖아? 내가 상상한 그대로 미래 완료가 된 거야. 그렇게 될 줄 다 알면서 모른 척 살아온 거 같았어. 그리고 얼마 안 가 더 나쁜 미래완료가 생겨난 것 같았어.... (중략) .... 그러면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숨을 못 쉬겠어." (81쪽)

속소에서의 밤, 맥주 기운을 빌려서인지 채운이 이런 고백을 하고 잠이 든다. 딸은 나와 달랐으면 하던, 그래서 천가닥 만가닥의 실이라도 끊어내려 하던, 추호라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결벽스러운 어미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중간이라는 건 참 어렵다. 얼마전 읽었던 [용궁장의 고백]이라는 책에서는 부모가 천륜이라는 실을 물귀신처럼 틀어쥐고 자식의 피를 빨더니, 이 책의 엄마는 조금이라도 더럽게 얽힐까 봐 그렇게나 조심을 하네.... 하지만 20대의 딸이 정말 어른이네. 아직도 엄마 생각하며 사는 어린애 면도 있지만 그걸 이렇게 풀어가니 어찌 어른이 아닐소냐. 결국 모녀는 다소 구질구질하게 엉키더라도 인연의 실은 끊지 않고 살아갈 듯하다. 누추한 엄마 집에 놀러가고, 밥도 얻어먹고 그러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엄마의 결벽스러운 면과 독립적인 태도가 딸에게 신뢰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징징대는 어른보다 얼마나 낫냐고. 공공체육센터 청소일을 하고 감염병으로 (코로나 때겠지) 문을 닫자 음식솜씨를 발휘해 반찬가게에 납품을 하는 성실함과 생활력. 사실 이런 면이 있으니까 딸도 손내밀 수 있는거고 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홀로서기가 먼저고 다음이 관계다.

나 포함 수많은 엄마들의 모녀간, 모자간 아름다운 관계를 빌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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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스, 이건 사랑 이야기야 I LOVE 스토리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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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케이트 디카밀로 책이 자주 나오는 편이네? 지난번 얇은 동화(오리스와 팀블)에 이어 이번엔 좀 두꺼운 동화책이 나와서 읽어보았다. 이번 작품은 뭐랄까, 내가 좋아하던, 무척 익숙해져버린 케이트 디카밀로의 느낌과는 뭔가 살짝 다르다고 할까. 다 읽고 나서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마도 고요한 중에 마음을 건드리는, 그런 느낌이 나의 취향이다가 이 책은 좀 소란스러운 느낌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소란스러운 이유는, 소동이 많고, 그럴 만한 인물들이 있기 때문에....^^;;;

페리스라는 열 살 여자아이가 주인공이고, 주된 공간은 집이다. 그러니까 주로 가족 이야기라는 뜻이 되겠다. 내가 이집 엄마라면 도망가고 싶겠다. 이 집의 일상은 내가 선호하는 '고요한 시간'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집은 지하실이 딸린 큰 집이다. 그 지하실에 직장도 때려치고 집나온 시동생이 들어앉아 있다. 무슨 세계의 역사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사명을 받았다나? 연로하신 할머니도 계신데, 페리스 시점에선 좋은 할머니지만 엄마가 '낭만주의자' 라고 평하는 걸 보면 나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번거롭고 도움 안되는 사람일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진 소동을 일으키는 인물은 페리스의 동생 핑키다. 얘는 악당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하며, 지명수배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기이하다는 면에선 말괄량이 삐삐랑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파괴적이어서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캐릭터인데다가 너무 톤이 튀는 인물이어서 거슬렸다. 앞에서 말한 좀 아쉬운 느낌이 이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가족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페리스의 절친 빌리는 아빠랑 둘이 사는 아이라 수시로 페리스네 집에 드나들 뿐 아니라 그집의 피아노를 친다. 물론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라 아주 잘 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군식구인데다가 시끄럽잖아. 하여간에 늘 이렇게 북적이고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페리스네 집이다.

할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유령이 보인다고 하신다. 그리고 병에 걸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할머니는 이 집에 처음 살던 유령이 샹들리에를 밝히기 원한다고 한다. 그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샹들리에를 밝히고 그 김에 파티를 하는 장면의 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그 파티에는 이집 가족 외에 지하실 삼촌의 아내인 셜리 숙모도 오고, 평생 할머니를 흠모하던 부이 할아버지도 오고, 빌리의 아빠, 얼마전 남편을 여읜 밀크 선생님도 왔다. 빼곡히 초를 밝힌 샹들리에 아래, 정말 아름다운 파티였다. 내가 유난스럽다고 느낄 만큼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들이 받고 싶은 사랑, 주고자 하는 사랑은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류가 그 많은 다툼 가운데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완벽하게 아름답다기엔 소동도 있었다. 어느새 자리를 이탈한 핑키는 다락방 상자 속에 들어가 있었고, 부엌에는 너구리가 출몰한다. 너구리 출몰의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핑키 사건은 지금까지 핑키의 모든 기행이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몸짓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물론 그런 방식을 매우 반대한다. 하지만 당위로만 풀어갈 수 없는 일들이 아이들과의 사이에선 많이 일어나니까... 그때 이렇게 말하는 페리스는 나보다 어른인가!
"넌 내 동생이야."
"그게 뭐."
"사랑해."

파티는 아름다웠지만 결국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삼촌은 드디어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세계의 역사를 하나의 캔버스에 그린다는게 애초에 말이 안되지 않나? 하지만 그림은 완성되었고 그 장면은 연회장이었다. 샹들리에 아래 그날의 그들이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귀퉁이에 날고 있는 작은 참새.

이번 책이 전작들보다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이 비유만큼은 매우 강력해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베데 작가가 이런 글을 남겼어. 우리 모두는 어떤 성의 거대한 연회장에 날아 들어왔다 나가는 참새와 같다고."
"연회장으로 들어오기 전과 나간 뒤의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거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단지 우리가 그 안에 잠시 들어와 머물다가 밖으로 나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날아간다는 것 뿐이야." (216쪽)

작은 참새로 잠시 들어왔다 나가는 세상에서 굳이 이를 갈고 싸울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래서 작가는 작품마다 '사랑'과 '이야기'를 말하는가보다. 이번 작품에는 특히 사랑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가슴 절절한 로맨스만이 사랑은 아니니까. 일상의 소동이 보여주는 사랑도, 가족과 이웃, 친구 간에 생각해주는 마음도 다 사랑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좋은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야."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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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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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리 작가의 에세이와 소설 한 권씩을 인상깊게 읽었다. 이번 소설은 자전적 내용을 넘어선 내용이어서 작가로서 더 한걸음 나아간 것 같아 관심이 생겨 읽어보았다. 특히 책 소개나 '작가의 말'을 보면 천륜에 묶여 학대받고 고통 당하는 이들에 대한 응원인 것 같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이런 내용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륜은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다. 천륜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채 각자의 지옥을 버텨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7쪽, 작가의 말)

근데 읽어보니 그렇게 단순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였다. 그것들을 구성해 엮어낸 서사력에 놀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저게 주제라면 서사의 무게에 짓눌려 주제는 빛이 바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지는 독서였다. 가독성이 엄청나서 앉은자리에서 다 읽긴 했으나 쉬운 독서는 아니었다. 힘들었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가 나이 들어도 애틋해하고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인간 종류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어서,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다. 자녀에게 빨대 꽂고 평생을 갈취하며 자녀가 주도적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비정한 부모들이 있다. 미혼인 경우 결혼을 방해한다는 얘기도 들어봤다. 착한자식 콤플렉스건, 가스라이팅의 결과이건 그 자녀들은 끝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간다.

내가 그 자식이라면 이 책을 읽고 그 강제된 천륜을 끊을 용기를 얻지 못할 것 같다. 용기를 내기는 커녕 더 겁먹고 실행에 못 옮길 것 같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머지 서사가 너무 무겁고 참혹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어야 용기를 내지, 이렇게 인간의 밑바닥 본성까지 보게되는 참혹함이어서야 어떻게 용기를 내겠는가 말이다. 만약 그것이 독서의 목적이라면 전체 5부 중 70대의 시각장애인이면서 90대의 패악한 노모를 떠맡은 주인공이 나오는 1부만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도 울지 않는, 슬픔보다 안도와 평온이 자리한 장례식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런 장례식은 실제로 꽤 많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평생 주변을 지옥으로 만들며 살아온 망자의 인생도, 그사람 때문에 행복 한조각 갖는 것도 사치였던 가족의 삶도 참 딱하다. 누군가가 죽기를 바라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의외로 많이 있을 것 같다. 그 인간의 파괴력이 크면 클수록. 그럴때 그가 죽기를 바라는 심정은 죄악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있는 그 응원을 나도 함께 보내고 싶다.

문제는 나머지 서사의 고통스러움이다. 이것까지 그려낸 작가의 역량은 소설가로서 한층 더 나아갔다고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아쉬움은 밀도 높은 서사가 주제를 짓눌러버린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건 나만 느낀 것일 수도 있고, 작가가 그려내고 싶었던 진짜 주제는 다른 곳에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총 5부로 다섯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그동네 대형교회의 장로이자 동네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오사장'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종교의 외피를 뒤집어쓴 악의 실세로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으로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단순하지 않다. 나는 평소에 "나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내가 아플 때 누워있으라고 하고 설거지를 해준다거나, 돈없고 허기졌을 때 국밥 한그릇 사준다거나 하는 사람이 말로만 사랑한다 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오장로는 이런 면에서 부지런한 사람이고 해결력도 뛰어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섬뜩한 악의 진면목을 외면할 수도 없다.

중심 장소인 용궁장은 그 신도시에서 매우 불행한 이력을 가진 참혹한 장소이다. 지금은 누구도 보살피기 어려운 사람들 몇명의 수용소처럼 되어버렸고, 그런 와중에 화재사고가 나서 입주자들이 다 사망해버렸다. 그 장례식이 바로 눈물 없는, 안도의 한숨이 조용히 번지는 장례식이었던 것이다.

5부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그걸 확인하는 독자는 몹시 괴롭다. 오장로 뿐 아니라 다른 화자들까지 오장로의 굳건한 종교적 껍데기 속으로 편입하려 애쓴다. 그 안에 엄청난 것들을 다 묻은 채. 심지어 방화 살인까지도. 물론 그 방화는 누구에게는 나머지 삶의 행복을 보장해 주었지만.ㅠㅠ

세상이란 이다지도 단순하지 않으며, 뒤섞여 뭉쳐버린 컬러점토처럼 악을 분리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런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 나이에도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만 든다. 작가님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참 많은 것을 보셨구나 하는 생각도. 좋았던 책으로 꼽기는 어렵겠지만 작가님의 다음 창작도 응원한다. 그때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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