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첫눈 - 제16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 수상작 뉴온 8
오늘 지음, 토티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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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학년 동화를 한권 골라 읽어봤다. 웅진주니어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해서 믿고 골랐는데, 수상작인 이유는 알 것 같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말은 권해주거나 함께읽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사실 아이들이 각자 사든 기관에서 사주든 간에 여러 권이 구입되어야 하는 책은 '안전빵'을 고르게 된다. (나쁜 뜻 아님) 이 책은 안전빵이라기에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살짝씩 넘나든다. 그게 미묘하게 자극적이란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꼰대라는 걸 백퍼 인정하고 하는 말들이니 양해를 바란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연애감정만 자극하는 옛날 하이틴로맨스 류의 저급한 책인 건 아니다. 어쩌다 일찍 '어른의 계절'을 맛보게 된 아이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어른들도 알고 있다. 이렇게 본의아니게 '어른의 계절'에 들어서버린 아이들이 있다는 걸. 그중 대부분은 주변환경 때문이란 걸.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아파하고 고뇌하는지 속속들이는 잘 모른다. 그래서 아이와 거리가 생기고 갈등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떤 아이들을 품고 위로하는 책이며 어른들에게도 의미있는 책일 수 있다.

열매네는 아빠만 온돌마을에 두고 엄마와 남매만 서울로 이사왔다. 5학년인 열매는 반에서 회장도 하는 적극적인 성격이고, 부회장인 최한빛과 사귀는 등 할건 다 하는 아이다. 타지역에서 온 열매와는 다르게 최한빛에겐 재니라는 소꿉친구가 있다. 그냥 가족끼리 친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자꾸만 삼각관계로 얽힌다. 재니 생파를 안간댔다가 갔다가, 게임에 걸려서 뽀뽀를 했네 마네... 이 대목에서 난 1차 짜증.ㅎㅎ

마음이 울적한 열매는 최한빛과 연락을 끊고 여름방학을 맞아 충동적으로 어릴때 살던 집(아빠집)으로 내려왔다. 그 동네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직도 옆집에 살고 있는 연우와 연아 남매 가족. 그리고 잘해줬던 다정 언니.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되살아나며 동시에 다양한 감정들이 생성되고 재배치된다. 복잡한 심정을 담아 최한빛에게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 그 중 한 대목에 이 책의 제목이 들어있다.

"최한빛, 너는 어른의 계절이 뭔지 몰라. 서로 다른 두 계절이 맞물려 있어. 뜨겁고도 차가운 맛.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런 게 있어. 마치 한여름에 내리는 첫눈처럼 그런 어른의 계절이 있어." (103쪽)

열매가 이 어른의 계절에 강제진입당한 이유는 부모의 비밀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아빠랑 떨어져 올라와 같은 약국에서 일하는 친구 남동생과 연애하는 엄마. (드라마로 치면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 연애?) 그 비밀을 품고있기 힘들어 다정언니한테 고백했더니 더 강력한 아빠의 비밀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이렇게 열매네 가정에는 어른드라마에서 보던 일들이 두가지나 일어난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하다고, 기막힌 사연을 품고 있는 가정들이 실제로 숱하다. 이정도는 순한맛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매가 어른의 계절로 진입하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ㅠ

2차 짜증은 마지막 씬이 키스씬이고 그게 열매와 연우의 씬이라는 점이었다. 꼭 그렇게 마무리했어야 했나? 지금까지 열매의 내적 갈등을 잘 가져왔는데, 좀 다르게 마무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웠다. 부모님이 (엄마보다는 특히 아빠가) 단도리했어야 할 감정을 그러지 못해서 가족 전체를 으른의 세계로 빠뜨렸다면 열매라도 어른이 될 때까지는 좀 건강한 감정으로 크면 안돼? 사랑이 건강하지 않다는 거냐고는 말하지 말자.

초등 연애동화들도 이제 꽤 많다. (한때 그 목록을 적어본 적도 있었다.^^;;;) 이 책은 백퍼 연애동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 감정을 담고 있으니 포함시켜 본다면,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감각적(?)이다. 요즘 아이들의 감각 추구 경향이 강하다는 면에서 이건 장점은 아니라고 본다. 작품 속 말고 실제 아이들의 연애를 관찰해보면 이해와 존중, 서로를 세워주는 응원 같은 것과는 거리가 꽤 있다. 자극 놀이에 가깝다고 할까. 거기에 전류를 더 넣어줄 필요까지는 없어보인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의 결말이 꽤나 아쉬웠다.

지금까지 말한 건 경향성이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이 작품의 소재와 인물, 배경 모두 새롭고 의미있었다. 다만 감각만 쬐금 덜어냈으면 어떨까 하는 한 독자의 생각일 뿐이다. '어른의 계절'에 떠밀려 들어와버린, 내가 만났던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어린이들이 진짜 어른이 될때까지 건강하게 자라길 함께 응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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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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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권여선 작가님의 소설 3권을 읽었다. (에세이도 한권 읽었지만 그건 빼고도) 앞으로도 몇 권 더 읽을 것이 남았지만 좀 쉬었다 읽어야겠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앞에 읽었던 다른 작가님의 책도 꽤나 힘든 책이었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걸 거다. 소설을 심심풀이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고되어서야 원.... 그래도 더 읽고 싶다. 좀 쉬었다 와서.^^;;;

뒤에 붙은 평론에서 작가님을 '슬픔의 마에스트로' 라고 부른다는 말을 보았다. 어울리는 별명이네. 전에 어떤 젊은이가 "힘들게 일하지 않고 소설이나 쓰며 살고 싶다"고 하는 말에 버럭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글을 쓰는 분들 때문이다. 어디까지 잠겨 봐야 이런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까. 상상력만으로 글을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모든 서사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원천이기는 한지라, 인간의 고통을 예술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 예술가가 같은 자리에 처하거나 최소한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공감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것이다.

이 말을 하다보니 또 '모자무싸' 드라마가 생각나네. 글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작가님들이 더욱 공감하며 보시지 않았을까 싶다. 거기에서 고혜진이 남편 박경세의 창작의 원천을 위해 새로운 사랑까지도 눈감겠다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박경세가 얼른 수습해서 바로 정리되긴 했지만.... 그걸 보며 생각했다. 글이란 건 저렇게나 절박하고 처절한 것인가... 백퍼는 아니겠지만 대체로는 그런 것 같다. 소재는 취재할 수도 있지만 감정의 씨앗은 본인의 내면에서 싹을 틔워서 키워내야 할 테니까. 그래야 생명력을 가질 테니까. 그렇게 힘든 일을 왜 하냐고? 그건 나도 모르지만, 그게 예술의 속성 아닐까 싶기도 하고 창작을 하든가 최소한 소비라도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닐까 싶기도 하다.

쓸데없는 서론이 너무 길어서 작품 얘기는 간단하게... 첫 작품 [모르는 영역]은 드물게 부녀 관계의 이야기다. 부자나 모자, 모녀 관계는 많이 보는데 부녀는 많이 못 본 것 같다. 그런데 '모르는 영역'이 가장 많은 관계가 바로 이 부녀 관계일 거다. 게다가 이 아빠는 이혼한 것 같고 딸도 이제 성인이니 모르는 영역은 더욱 확대되었을 거다. "왜 한번은 해도 되냐"고 따지고 드는 기세를 보아하니 딸은 그 '한번'에 치명상을 입었던 듯한데, 그게 뭔지 딱히 짚어내지도 못하는 아빠.... 그런데도 아빠를 걱정하고 챙기는 딸의 양가적 감정이 짠하고도 예쁘다. 잘들 살아요! 상처 키우지 말고....

[손톱]은 대다수의 독자들이 꼽을 것 같은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다. 스물 한살 소희는 스포츠매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170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는데... 그 액수의 박함보다도 그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 엄마란 여자는 자매들 어릴 때 도망을, 그것도 있는 돈 다 들고 빚까지 남긴 채 날라버린 정신나간 인간이고, 이젠 언니마저도 얼마전 엄마랑 똑같은 수법으로 날라버렸다니. 웬만한 젊은애들 같으면 용돈으로 써버릴 것 같은 월급으로 대출금 값고, 월세랑 관리비 내고, 하다보면 어느날 너무 먹고 싶어 들어갔던 매운 짬뽕도 결국 다음에 오겠다며 돌아나와야 했고 제목의 '손톱' 부상도 치료하지 못해 덧나있다. 머릿속엔 늘 빽빽한 숫자들만이 가득하다. 숨막히게 부족한 그 숫자. 소희에게도 숨쉴 날, 편한 날, 여유있는 날은 올 수 있을까. 요즘 캥거루 족들이 많다지만 이렇게 세상에 혼자 위태하게 내던져진 청년들도 있다는 게 현실.

[희박한 마음]의 데런과 디엔은 수십년을 함께한, 그러니까 이제 노쇠한 여성 커플이다. '희박한' 이라는 단어가 슬펐다. 긴 세월도 채워주지 못하는, 아니 세월 때문에 더 희박해진 마음이려나. 한명은 조용히 떠나갔고, 한 명은 홀로 남아 상념들을 견딘다. 이 쓸쓸함은 모든 인간관계에 다 해당될 것 같은데 작가가 굳이 여성 커플을 등장시킨 이유는,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고리가 가장 연약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가족도 아니고 법적인 어떤 구속력도 없는 관계. 오랜 세월을 함께 했지만 뒤늦은 후회나 미안한 장면들을 곱씹으며 그 바스라짐을 느끼는 것 밖에 도리가 없는 관계.

[너머]는 주인공 N이 기간제교사이고 배경이 학교여서 더 눈길이 갔던 작품이다. 학교 내 다양한 직군들의 저마다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도 표현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내 마음 한구석은 이런 항변도 한다. 꼭 이렇지만은 않아. 나도 월급값보다 더 정성을 쏟은 적 많았고, 생색도 내지 않고 힘든 일을 맡아 하시는 분들도 많아 라고. 하지만 이런 섬세한 결들은 그들이 '집단'이 될 때는 묻혀버리고 저마다의 거칠고 선명한 이기심만이 부각된다. 이것이 당연한 사회적 현상이라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신분이 가장 불안정한 N은 남들이 악착같이 이기심을 발휘할 때 그럴 기운조차 없다. 서로밖에 없이 단 둘이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가 발휘하는 이기심이란 고작 한달의 계약 연장을 앞두고 머리를 굴려보는 정도다. 그 현실적 머리굴림이 어찌나 슬프던지.

[친구] 간단하게 툭, 던져버린 이 제목이 슬프다. 해옥과 민수 모자에게는 '친구'가 없어보인다. 해옥에게 지금 잘해주는 친구가 한 명 있긴 한데 해옥이 호구가 될 것 같은 의심이 짙게 든다. 민수는 학교에서 가해자 전수조사를 해서 해옥을 부를 만큼 집단 괴롭힘의 징후가 농후하게 드러났는데, 모자간에 둘다 해맑게 친구들이 장난친 거예요, 친구니까 그럴 수 있죠 그러고 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내 느낌은 이들의 (특히 엄마 해옥의) 이해력과 판단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변에 현명한 조력자가 필요한 상태로 보인다. 이들이 지금처럼 고립된 상태에서 안전하고 지혜로운 네트워크 없이 살아간다면 앞날은 더욱 험난해 보인다. 예정된 비극을 보는 것 같은 슬픔이다.ㅠ

[송추의 가을]을 읽고 유골함도 없이 보내드린 아빠 생각이 났다. 우린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갈 데도 없다. 추도일이 되면 엄마집에 모여 엄마가 꺼내놓은 아빠 사진 보고 각자 기도하고 다같이 밥먹으러 간다. 그런 내가 이 형제들을 보고 있자니 속터지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마다 중요시하는 게 다르니 정답은 없다. 다만 위압적이고 제멋대로인 큰형과, 의견도 안맞으면서 입으로만 욕하는 누나와 작은형을 보는게 스트레스였고, 마지막으로 폭발한 막내의 눈물이 짠했다. 그리고 난, 내 마지막도 우리아빠처럼 할 거라고 다짐한다....

[전갱이의 맛]에서 작가는 '언어'에 대해 상당히 깊고 근본적인 고찰을 한 것 같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라고 감탄은 하는데, 내가 속속들이 이해하진 못할 거 같다. 내가 닿아본 적이 없는 생각 같다. 작가는 언어를 만지는 사람이어설까. 그래서 오히려 언어의 한계에 대해 깊은 생각에 가 닿은 것일까. 굉장히 감탄하며 읽은 작품이었다. 나는 소설을 여러번 읽지는 않는데, 이 작품을 나중에 읽으면 또 이해가 달라지려나 하는 생각은 했다.

이 책도 역시 표제작은 없고 제목인 '아직 멀었다는 말'은 안쓰러운 젊은 소희가 나오는 [손톱]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아직 멀은' 것은 무엇일까. 이건 맥락을 따지지 않은 순전히 내 바람인데, '남겨진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멀었어. 한참 기다려야 올 거야. 마치 어린날 기차를 타고 외갓집 갈 때, 들썩거리는 우리한테 엄마가 말씀하셨듯이. 아직 멀었다는 말. 그건 시간의 유예일 뿐이지 언젠가는 온다는 거니까. 무리한 해석일지라도 나는 그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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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르의 숲 이야기 친구 제제
이귤희 지음, 오승민 그림 / 제제의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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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생활이 끝난 지금, 예전만큼 어린이책을 읽지 않지만 그래도 도서관에 가면 어린이 자료실에 들르긴 한다. 이젠 수업에 활용하거나 아이디어를 줄 책들을 찾지는 않으니 비문학 쪽은 잘 보지 않고, 동화 중에서 '아직도 재밌을 만한' 책이 있나 살펴보는 거다. 신간코너를 한번 둘러보고 '재밌으려나' 하는 책이 있으면 가끔 대출도 한다. 이 책도 그렇게 대출한 책이다. 유승민 작가님의 그림이 눈에 띄었고, 이귤희 작가님의 '고양이 섬'이라는 책을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읽어보니 전쟁의 본질과 속성을 정확히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한번에 다 읽긴 했지만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그건 이제 흥미가 거의 사라진 나의 상태 때문이 아닌가 싶고, 무거운 주제를 담으며 이정도 서사를 펼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제를 교훈적이지 않게 서사의 무게로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타마르가 무엇인가 검색해보니 대추야자 열매이고 풍요를 상징하는 말이라고 한다. 풍요의 숲. 인간이 가진 감사하고 행복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분쟁의 씨앗이 된다. 무엇 때문이겠는가? 바로 욕심이지. 나눠 갖기 싫어하고, 독차지하고 싶어하고, 한꺼번에 많이 갖고자 하는 욕심. 그 욕심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본래 갖고자 하던 것마저도 파괴한다. 전쟁에 승리란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이러한 전쟁의 속성을 이 책은 정확히 꿰뚫어 보여주고 있다.

다치고 기억을 잃은 아이 로아는 리마엘 나라의 마리 할머니 집에서 보살핌을 받고 살아났다. 이 나라는 디아스 나라와 전쟁중이라 궁핍하고 비참한 상태다. 모두가 전쟁에서 이기면 이 상태가 끝날 거라며 전쟁 승리에만 목을 매고 있다. 두 나라의 싸움은 풍요의 숲, 즉 자야 숲을 차지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됐다. 빽빽하고 울창한 자야 숲은 아이들에게만 들어올 틈을 열어 주었고, 두 손으로 가지고 나갈 만큼의 자야 열매만을 허락했다. 두 나라 모두에게 공평했고, 숲 안에서 두 나라 아이들은 함께 어울려 놀았다. 어른들은 그게 감질나고 양에 차지 않았다. 마치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듯 두 나라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의 파괴상과 참상, 인간성 상실의 장면이 작품 안에 잘 표현되었다.

"전쟁에서 이기는 건 없어. 모두 망할 뿐이지... (중략) 우리가 갖고 싶으면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 전쟁은 전쟁을 부른단다. 전쟁이 인간의 욕심을 깨우기 때문이지. 결국 우린 모두 죽게 될 거야." (78,80쪽)

"수많은 사람과 항구를 없앨 힘은 있지만 작고 힘없는 아이 한 명을 살릴 힘은 없었다. 파괴는 너무나 쉽고 생명을 지키는 건 어려웠다." (100,102쪽)

"이제 자야 열매는 중요하지 않아. 적에게 자야 숲을 뺏기느니 아예 없애는 게 낫지. 전쟁에선 이기고 지는 게 더 중요하니까. 자야 숲은 적들과 함께 사라질 거다. 그럼 우린 숲은 잃지만, 전쟁에서는 이기겠지." (107쪽)

하지만 이 참상들 속에서도 마지막 인간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아주 미약해서 대부분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아니 그래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말도 그렇고 우리 세상도 그 힘으로 이나마라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추악한 이기심을 명분으로 포장하려는 자들이 존재한다. 그런가하면 내 안에도 크건 작건 이런 본성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싸움은, (전쟁이 아닌 싸움은) 아주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한 방향에만 매몰되면 다른 방향을 놓칠 수 있는 아주 정교한 싸움이다. 어린이들도 독서를 통해 이 싸움이 가능한 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4학년 이상 어린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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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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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후 손원평 작가의 책을 샅샅이... 찾아 읽은 건 아니고 <서른의 반격>이라는 소설과 <위풍당당 여우 꼬리>라는 동화를 이어서 읽었다.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오호, 저 책도! 했었는데 며칠 전 도서관 신간코너에 아무도 안모셔가고 딱 놓여있어서 받들어들고 나왔다.ㅎㅎ

제목도 잘 지었고 표지도 느낌을 완전 잘 살린 것 같다. 어떤 느낌이냐면 불길하고 섬뜩한 느낌...ㅠ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도 불쾌했다. 재미는 있는데 마음은 불편했다. 그 불편의 정도는 여러 단계가 있었다. 순한 맛에서부터 핵매운맛까지. 아주 주관적인 기준으로 매운맛 점수를 매기며 리뷰를 해볼까 한다.

[당신의 손끝] 이건 '약간 순한 맛'이라 하겠다. 미술을 전공하고 딱히 자리를 못 잡은 효원은 좋은 동네의 문화센터에 채용이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보수는 매우 적지만 경력 면에서) 거기서 주영이라는 수강자와의 만남은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주영은 그림에서 행복을 찾아갔고 주4회나 수강을 끊어 효원에게 경제적 안정감도 선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여야 했을까. 주영이 선사한 성취감은 효원에게 자꾸 그 이상을 보게 했다. 결국 좀더 크게 벌인 일 앞에서 주영과의 관계는 칼같이 끊어지고, 몰래 숨어 들은 주영의 평가는 비수와도 같았다. 얼마나 비참하고 상처였을지 알겠지만 그래도 내가 순한 맛 범주에 넣은 것은 이정도는 '약이 되는 경험' 축에 넣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불킥하고 가슴을 칠 경험인 것은 맞는데, 약이 된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모욕과 후회의 기억으로 다듬어지는 것 아닐까. 그렇게 세상을 배운다는 게 서글프고 씁쓸하긴 하지만.

[태양 아래 반짝이는]은 ‘아주 매운 맛’이되 더럽고 고약한 맛이다. 화자는 고급 호텔의 수영장에서 구조요원으로 근무하는 젊은 남자다. 누군가의 느긋한 휴양지가 누군가에게는 고된 일터가 될 때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럴 때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그 대답으로 이 젊은 남자는 최악을 보여준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법륜스님의 문답 영상을 어느 분이 페이스북에 공유를 했는데 썸네일에 “놀러나 다니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되어 있길래 궁금해서 한번 열어 보았다. 내 딸 또래의 젊은 직장여성이 훌쩍 훌쩍 울면서 회사 다니기 힘들다고 스님께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썸네일의 저 말이다. “소설을 쓰는 예술가나 되든지 놀러나 다니는 부자로 살고 싶어요.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서 우리 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스님의 말씀은 길어서 다 듣진 못하고 넘겨가며 대충 들어봤는데 의외로 이런 말씀이었다. 인류의 지나온 역사를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형편도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덜 고생스럽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이미 소득 상위권들이 세금 많이 내고 있다... 젊으니까 열심히 살아보자 그런 말씀이셨다. 솔직히 그녀가 훌쩍거릴 때 코웃음이 나긴 했지만 딸처럼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에이구 이 딸래미야, 소설가는 뭐 쉬운 줄 아니? 그리고 너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고 세금 내잖아? 그럼 이미 소득 순위 어느정도는 되는 거야. 진짜로 너말처럼 그래야 한다면 니 월급에서도 더 떼야 돼. 그러기는 싫지? 젊고 멀쩡한 너가 일하지 않고 놀고먹겠다는데 왜 누가 돈을 보태줘야 하니?

난 그 딸래미가 지금은 열심히 잘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야 누군들 안해봤을라구. 그날따라 유난히 힘들어서 했던 투정이었을 거라고. 근데 투정에서 그치지 않고 되지않는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의 화자 같은 놈들이다. 세상의 격차는 그것대로 줄여가고자 하는 의식이 있어야겠지만 너같은 놈이 하는 짓은 그냥 범죄행위지. 내가 힘들여 일하는 곳이 팔자좋은 인간들의 휴양지라 해도 나는 너처럼 비틀어지진 않을 것 같아. 시스템? 인간의 시스템인데 모순 많지. 하지만 너의 행동이 더 모순이야. 너 같은 인간이 있는 한 모순은 더 깊어질 거야. 그가 마지막 새벽에 수영장 물에 풀어놓은 그 불순물은 딱 그 내면의 모습과도 같았다. 나는 그에게 세상이 어쩌구 타령할 기회를 절대 주지 않겠다. 그냥 너는, 아웃이야. 잡혀서 제대로 처벌받길 바란다. 통렬히 깨달은 후에야 기회가 있을 것.

[피아노]는 드물게 ‘순한 맛’이었다. 약간은 따뜻한 맛이기도 했다. 상황은 서글프고 딱히 밝은 앞날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막장으로는 치닫지 않아서 마음이 한결 나았다. 아파트에서 공부방을 하던 혜심은 가르치는 역량은 우수했지만 요즘 엄마들의 마음에 들기에는 너무 뻣뻣한 사람이었다. 수강생은 줄고 거기다가 아파트를 옮겨타려다 시기 조절에 실패해 사지도 못하고 있는 집만 팔고 손해보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공부방도 접고 외곽으로 이사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자꾸만 찾아오는 아이가 있다. 준용이라는 이 아이는 더구나 수강료를 넉 달이나 안낸 아이다. 공부방에는 모두의 추억이 어린 피아노가 있었는데 중고로 팔기도 여의치 않아 딱지를 사다붙여 내놓은 다음날, 그걸 누군가 중고로 내놓은 걸 보았고, 찾아간 집에서 바로 준용을 마주쳤다. 사실 버린 걸 주웠는데 왜 화를 내냐고 뻗댈 수도 있는데, 준용은 순순히 카트를 밀고 제자리로 되돌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탁한다. 공부 좀 봐주시면 안되냐고. 이사가 얼마 남지 않은 날 혜심과 준용은 마지막 수업을 한다.

크게 자극적인 소재는 없었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나도 아이들과 긴 세월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나도 혜심처럼 원칙주의자였고, 아이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유난히 기대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는 가정집의 공부방이었으니 가정이 무너진 준용이 더욱 애착을 느끼는 공간이었던 것 같다. 주변 세계가 무너진 아이들을 내가 입양해서 키울 게 아니라면 애정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관계라면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칼같이 끊는 것만 방법인 것은 아니다. 혜심의 마지막 수업이 준용에게 실제로 큰 도움이 될 수도 없고 지속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거부당하지 않았다는 기억, 마지막 따뜻함을 주고 떠났다는 신뢰감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어른들이 아이를 대할 때 여러 원칙과 현실적인 상황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점이 이런 점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

[그 아이]는 '약간 매운 맛'이라고 할까. 몰랐던 세상 풍경 한 켠을 보았다 정도. 그 세상은 명품 소비 세상이다. 나로서는 명품 가방이 백만원이든 천만원이든 아무 상관없다. 왜 저래~? 이런 느낌이니까. 이 작품 속 정민은 구매대행 알바를 한다. 추운 겨울날 오픈런을 위해 몇시간씩 줄을 서서 구매해 주는 역할이다. 이 작품을 읽고 명품 가방은 중고가격이 신상 가격보다 더 비쌀 수도 있고, 그런 전문업자(리셀러)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민아, 너무 맘 상하지 말고 니 갈 길 가라! 소수의 세상을 굳이 들여다보며 부러워하진 말자꾸나.

[유령의 집]은 여기서 가장 '핵 매운맛', 정말 고통스러운, 몸부림치도록 견디기 힘든 맛이라고 해야겠다. 아니 이게 이렇게 됐다는 거야? 눈을 비비며 다시 봐야 할 만큼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죽음, 거기에 이르게 된 절망이 너무 처절한 장면들과 함께 불시에 다가왔다. 그 작품 안에서 개는 비참함과 끔찍함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작품 앞에 실린 윤동주 님의 시는.... 돌아와서 다시 읽으면 눈물을 부른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다른 고향 중에서)

[모자이크]는 '매운 맛'이지만 떫고 비위 상하는 매운 맛이다. 화자는 아무 목표 없이 고시원의 방 한 칸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다 유튜버가 된 여자인데... 끝까지 가면을 쓰고 익명성을 유지했어야 하는 것을 딱 한 번 경계심을 풀고 누굴 만났다가 치명상을 입고 계정을 접었다. 이후 같은 수법으로 복수를.... 포장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랄까. B컷은 뒤로 다 감추고 A컷으로만 자신을 과시하는 SNS의 허상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심지어 A컷도 아닌 꾸며낸 거짓컷으로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지. 결국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이 여자는 부르짖는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네, 그럼요, 아무도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못할 거예요. 절대로요.”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런 속성을 안 가진 사람은 없지만 조절 능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차이가 있다는 점. 성찰 능력도.

[조망]도 '핵 매운맛'이다. 뒤통수를 내리누르는 둔중한 매운맛이다. 고속도로 요금소 그 좁은 공간에 갇혀 일하는 수하에게는 얼마전부터 자신만 아는 도피처가 생겼다. 쇼핑몰로 짓다가 중단된 큰 건물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 건물을 계단으로 올라 꼭대기 전망층에 올랐을 때 본 광경은 수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특히 비가 세차게 올 때의 광경이.

큰 비는 수하에게 부모를 잃은 사고의 기억이자 어린 나이에 거부할 수 없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기억이기도 했다. 어느날도 비가 심상치 않게 내렸다. 주변 지역에 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관계자가 데려온 딸 한 명을 급하게 수하의 좁은 공간에 맡겼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재난이 터졌다. 살면서 거의 해마다 홍수 피해의 소식을 뉴스로 접했지만 이 정도의 재난은 듣도보도 못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사고의 규모를 키웠을까? 잘 모르겠다. 거의 종말적 재난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직전, 둘은 그 버려진 건물 전망층에 있었고 살아남았다. 수하가 처음보는 ‘맡겨진 아이’를 품에 안고 거기까지 왔다는 사실에서 한줄기 인간애를 찾아야 하겠지. 하지만 거기서 ‘조망’하는 비극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

[통행증은 마스크]는 '아주 매운 맛'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별 일은 불거지지 않았고 선미와 까페에서 마주친 일행과의 은근한 실랑이가 다인 것 같지만, 선미가 하고 있는 일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아서이다. 선미는 듣보잡 매체의 연예부 기자이고 우리가 보통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그런 종류의 기사를 쓴다. 있는거 없는거 긁어모아 대상은 죽든말든 알게 뭐냐는 식의 기사...
"선미는 종종 이 일에 가책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살기 위해선 그가 죽어야 했다. 생존의 법칙은 늘 그런 식이었다." (190쪽)
어쩌면 이 작품이 책의 제목을 가장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에 [딸과 깍 사이]를 배치한 것은 독자를 위한 배려인가. 전체 작품 중 가장 '순한 맛'이었다. 약간은 환하고 달콤한 맛이기도 했다. 그런 반면 현실성 면에서는 가장 약하다고 생각되니 이 일을 어쩌면 좋나.^^;;;;; 매운맛들만이 현실이라면 세상이 지옥에 접근했다는 뜻이 되니까.ㅠㅠ 하지만 이 작품은 현실에서 느껴지는 보통 사람들의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잘 담고 있다. 악하지는 않은 소시민이 조직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진 못하고 그 안에서 고뇌하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자신의 무가치함에 슬퍼하는 모습. 이 작품은 어떤 드라마의 몇 에피소드로 오마주되어도 좋을 것 같다. 그정도로 주인공 소미 씨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뜨개질이 소재로 쓰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뒷표지에 "비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는 손원평의 강렬한 메시지" 라는 말이 나온다. '비정함' 이야말로 이 책의 지배적인 정서이다. 내가 순한 맛으로 분류한 작품에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덜 비정하게 살아갈까. 이 책에 의하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냥 숨쉬는 것 자체가 남한테 가해가 되는 '가해의 사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인가.

어제 '모자무싸' 드라마를 보다가 사소한 한 장면에서 울컥했는데, 황동만이 사채업자를 피해 도망가려고 뛰어나오면서도 매트리스를 옮기는 이웃을 도와 뒷부분을 받쳐 들어준 일이다. 나는 어쩜, 하고 감탄했다. 어쩜 저런 짧은 순간에도 저런 장면을 넣었지.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장면들은 힘이 없을까. 그런 장면들이 모이고 모여도 세상은 여전히 비정할까. 나는 마지막 작품에서 작가님이 이미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포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씩 다 언급하다보니 리뷰가 넘 길어졌네.... 짧게 잘쓰는게 좋은 거지만 기록용으로 쓰는거라 아무말 대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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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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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님을 접한 순서는 음식 에세이가 맨 먼저다. 두번째는 영화 '봄밤'이다. 세번째 비로소 소설을 접했다. <엄마의 이름>을 읽고나서 이 책을 잡았는데 그게 이 소설집에 포함된 단편인 걸 몰랐네.^^;;; (여기선 '실버들 천만사'라는 제목으로 실림) 그 작품 외에도 6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은 따로 없는데 모든 작품을 어우르게 책 제목을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계절'이라....

첫번째 실린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나는 작가님에게 바로 감탄하고 말았다. 사소한 소재 하나를 가져와 작품 전체를 뒤덮는 그 확장력이라고 할까 의미부여력이라고 할까. 그 소재가 바로 사슴벌레였다. 80년대로 추정되는 시기에 대학을 다니며 룸메이트였던 여성 4인방의 이야기다. 그들이 강촌으로 함께 1박 여행을 갔을 때, 민박집 방에서 사슴벌레를 보고 "방충망도 있는데 커다란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올까요" 하는 질문에 숙소 주인은 "어디로든 들어와" 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사슴벌레식 문답의 시작이다. 그들은 재미있는 것이라도 발견한듯 '든'이 들어간 그 대답을 수시로 써먹었다.
-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
-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이런 식. 처음에는 그게 상당히 경쾌하고 쿨하고 센스있으며 긍정적이고 희망차 보였다. 하지만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그게 아니구나를 보여준다. '든'은 엄청난 무게를 지닌 화법이었다.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29쪽)

이 작품은 어쩌면 그 문답의 서늘한 진짜 의미를 깨달아가는 수십년의 과정을 보여주는 서사라 할 수 있다. 와 그 사소한 것으로 이렇게 엄청난 걸 보여주다니,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작가라고 부르는구나 생각했다. 빛나는 청춘을 같이했던 그들. 그들 중 하나는 그 엄혹했던 시절에 배신과 변절을 했고, 꿈을 찾아 안정을 버렸던 누구는 10년 후에 자살을 했고, 남은 둘도 결국 서로를 위로하며 손을 잡지 못한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선택은 결국 결별이다. 함께했던 시간들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잊히는 것보다도 더 뼈저린 '서로를 견딜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러나 미련을 갖지 않는 게 좋겠다. 이제라도 그들이 과거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노년이 되어가는 나이긴 해도.

첫 작품에서 작가의 확장력을 느꼈다면 [무구]라는 작품에서는 클리셰를 훨씬 넘어서버린 작가의 과감하고 자유로운 서사력이 느껴졌다. 비극으로 흘러갈 만한 소재가 의외로 행운 쪽으로 흘러간다? 우와 좋겠다, 부럽네... 근데 그게 또 훨씬 현실적인 외로움과 서늘함을 선사하다니. 애매하고 미묘한 맛이었지만 아주 신선하기는 했다.

소미는 퇴직자 남편과 아주 럭셔리한 노년생활을 시작했다. 하루 일과를 거의 '관리' 받는데 쓴다. 건강 관리, 외모 관리... 한마디로 세상 가장 편한 팔자라 하겠다. 그들이 원래 금수저였던 건 아니고 그들의 윤택한 생활에는 웃지못할 아이러니가 들어있다. 소미는 sns에서 우연히 옛 친구 현수와 연락이 되어 그를 찾아갔다. 현수는 먼 도시에서 부동산 중개인이 되어있었다. 이후 소미는 뻔질나게 그 먼 곳을 드나들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근묵자흑이라고 땅장수 옆에 붙어서 뭘 했겠어? 결국 현수의 소개로 빚을 얻어 빈 땅을 샀는데.... 어느날 현수는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고 산 땅의 가치는 한없이 하락했다. 근데 웃기는 반전은, 소미가 그 빚을 근근히 갚으며 존버했더니 결국은 대박이 났다는...ㅎㅎ 그래서 소미 부부의 윤택한 노년생활이 시작된 거다. 어휴 이보다 부러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나라면 절대 못했을 일이다.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지만 돈은 일단 무서운 거다. 십수년의 존버 생활동안 바늘방석을 견뎌낸 결과가 지금인 거지. 말하자면 그들 노년의 윤택은 중년의 불안과 맞바꾸어 얻은 것이다. 물론 말아먹은 보다는 천만배 나은 결과지. 부럽다니까? 아 근데, 왜 결말의 지배적 감정은 외로움일까? 그걸 배부른 투정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돈과 운과 자본의 원리로 세워진 행복의 허망함은 크든 작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갈수록 그건 더 심화되겠지.
(그래도 어쨌든 부럽긴 해ㅋ)

[실버들 천만사]는 단행본에서 따로 리뷰했으니 넘어간다. 그런데 일곱 편의 단편 중 세 편이나 '엄마'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실버들 천만사]외에 [깜빡이]와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두 편이었다. 이 두 편의 어머니들은 실버들 천만사의 반희 씨와 완전히 반대의 캐릭터였다. 이 두 편을 읽으며, 이혼하고 집을 나와 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긴 했어도 홀로 꼿꼿이 서려는 반희 씨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절감했다. 상처를 주고 떠나는 편이 물귀신처럼 들러붙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도. (반희 씨는 결국 완전히 떠나진 않는다)

[깜빡이]의 엄마도 그랬지만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의 어머니가 더 가슴이 답답하여 이 작품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오익은 박사과정생인 것 같다. 나이먹고 돈은 없고... 어머니의 전화를 잘 받아주는 걸 보면 모질지 못한 사람이다. 홀로 된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집착적으로 전화를 한다. 제목처럼 '잠을 못 잔다'며 자신의 불안을 중계방송하듯 자식에게 전가한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라 그렇겠지만 이 대목을 읽으며 <모자무싸>에서 변은아의 대사가 떠올랐다. 인생의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힘있는 엄마요" 라고 대답했다. 불안해하지 않고 옆을 지켜줄 수 있는 엄마. 여기엔 대단한 통찰이 담겼다고 본다. 인생의 목적이라 할 만큼 이게 쉽지 않다는 거다. 중심을 잡고 본인이 흔들리지 않으며 가족까지 안심시켜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요즘 보기 쉽겠나. 하지만 나는 다짐해본다. 나의 불안까지는 내가 어쩌지 못하더라도 그 진동으로 자식까지 흔들지는 말자. 나는 아직 자식에게 의존할 나이는 아니긴 한데, 앞으로도 최대한 의존성을 키우지 말자.

오익의 어머니는 고통과 눈물을 무기로 삼아 아들을 심리적 인질로 옭아매는 사람이다. 요양원에선 국에다 미원 대신 비료를 넣는다며 그런 데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선수를 치는 잔머리도 가지신 분.ㅠ 오익 씨의 여동생은 결혼도 했는데, 요즘 난데없이 엄마랑 오빠에게 미친 듯이 패악을 떨어대고 있고 그게 극에 달해 마침내 절연을 선언했다. "요런 영악한 년 좀 보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걔는 판단이 선 거야. 이 굴레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모질지 못한 오빠도 있겠다, 자기라도 살고 봐야겠다고 판단을 한 거지. 일종의 선제공격을 통한 방어라고 할 수 있겠다. 엄마가 던지는 죄책감의 올가미를 쳐내고 나는 차라리 못된 년이 되겠다! 어찌보면 현실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짐을 좀 나눠 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줌마 마음... 오익 씨가 허물어져가며 이야기가 끝나니.ㅠ 이젠 세상에 오익 씨가 많이 남지도 않았겠지만, 세상의 오익 씨들이 잠시라도 독한 마음으로 거리두기를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나도 부모라서,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마음이 무겁다. 이래서 저출산이 더 심화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ㅠ

표제작은 없지만 표제가 살짝 나온 작품은 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라는 작품이다. 여기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이 말을 한 마리아라는 분은 성당 교우들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기도 하고 성당 봉사도 성심껏 하는 분이다. 70대의 나이에 자신보다 10살이상 어린 교우한테도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마리아. 이분이 돌아가셨고, 성당 바자회 자리에서 나이든 여자 교우들이 그를 추억하며 수다를 떤다. 그들을 보며 베르타는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어가 바뀌어있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자신을 포함시킨 그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나도 포함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읽는 내내 착잡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우리는 인물들을 욕하거나 응원하거나 간에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에 몰입한다. 이 성당의 교우들도 특별히 나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힘든 인생을 조용하고도 헌신적으로 살다 갔던 마리아가 했던 '각각의 계절'이라는 말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각각'이라는 말에서 인생들 각자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떠오른다. 그건 남에게 인계할 수도 인계 받을 수도 없는 각자의 몫이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인물들이 그렇듯이. 그렇다고 파편화가 우리의 지향점일 리는 없다. 자신의 인생, 즉 '각각의 계절'이 자기 몫인 것을 명확히 인식한 후에 연대도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남의 힘으로만 살 수도 없다.

나의 계절을 나기 위해 나는 어떤 힘을 내야 할까. 내 옆에 가족도, 친구도, 언니들도 있었으면 좋겠는 건 당연한 마음이겠지? 나와 그들의 '각각의 계절'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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