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드라, 떠나보니 살겠드라 - 65살, 여자, 혼자, 세계 여행자 쨍쨍으로부터
쨍쨍 지음 / 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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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쨍의 두번째 여행 에세이가 나왔다. 첫번째가 나온 후 거의 10년만이다. 그사이 쨍쨍은 또 수많은 곳을 여행했을 테니 책은 몇권이라도 나오고도 남았겠다. 그러니 이 책은 수많은 여행기록 중 엄선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린아이가 할머니 무릎에서 이야기 한개만 더 들려달라고 조르는 느낌으로, '아~ 책이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책을 덮었다. 실리지 못하고 짤린 이야기들도 듣고 싶다는 느낌^^

나와 같은 직종(초등교사)이던 쨍쨍이 50세에 퇴직하고 본격적인 여행가가 되었을 때, 적당한 때에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남의 세월은 왜이리 빨라. 벌써 15년이 지났고, 나는 퇴직 당시 쨍쨍의 나이를 넘어 아직도 현장에 있다. 작년부터 퇴직 시기를 훅 앞당겨 계획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올해 아이들이 마지막? 늘 그랬지만 올해는 더더욱 빡세게 봄방학을 보내고 있다. 매일 출근해 교실 이사하고 청소하고, 학기초 필요한 안내와 서식들을 준비하고, 교육과정 살펴보고 자료 만들고 등등으로 꽉채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이 책을 구입했다. 오늘은 오후에 병원진료도 있어 하루 쉴까 고민하던 참에, 잘됐다 하고 이 책을 들고 병원 근처 까페에 왔다. 그리고 새학기 준비와 전~~~혀 상관없는 이 책을 읽었다. 쨍쨍 페북에 한 교사 독자분의 소감을 공유하셨던데, 한마디로 "해로운 책"이었다.ㅋㅋㅋㅋ 느낌 알겠지? 지금 이런 책 읽고 앉았을 때가 아니라는 거야.ㅎㅎㅎ 하지만 궁금해서 읽었다. 저분도 물론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전혀 해롭지 않았다. 나의 마지막 해를 불태운 다음에 나도 자유로워지리라. 꿈을 예약하고 현실에 매진하는 건 그나마 현실의 고통에 마취약을 놔주는 효과가 있으니까....^^;;; 단 쨍쨍의 여행은 좋은 숙소에서 잘먹고 노는 럭셔리 여행이 아니라서 사실 내가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덥썩 저지르는 본인의 성격 탓도 한몫을 하지만서도....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본문에 다 있다. 사서 고생한 이야기들.^^

무계획이 특징인 쨍쨍의 여행기는 그래서 여행 가이드북으로는 적절치 않다. 어느 코스가 시간을 절약하며 어디서 뭘 하는게 가성비가 높고 편한지 그런 것들을 이 책을 보고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재밌다. 쨍쨍의 필력은 원래부터 좋았는데 더 좋아지신 느낌이다. 가독성이 매우 좋았다. 한자리에서 다 읽었다. 물론 아껴서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치고 우울할 때마다 꺼내 한꼭지씩 읽는 것도 좋겠다. 여행할 때 한권을 휴대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집중력을 요하지 않으면서도 느낄 것들은 많은 책이라 딱 맞춤일 것 같다.

인생이 여행인, 여행이 인생인 쨍쨍이므로 이 책은 어쩌면 쨍쨍의 인생 이야기라고도 하겠다. 만남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쨍쨍이므로 만남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만남은 사랑이기도 했고 우정이기도 했고 잠깐 스쳐지나가는 감정이었는가 하면, 신의이기도 했고 친절, 유쾌함, 여유 등등 온갖 삶의 태도이기도 했다. 보통 여행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보러' 가는 경우가 가장 많다. 먹으러 가는 경우도 있고. 다 합하면 경험하거나 느끼러 간다고 할까? 타지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그들과 친구 맺기 위해 여행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쨍쨍 여행의 차별성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쨍쨍의 여행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쨍쨍만의 것이다.

쨍쨍은 sns도 활발히 하시는 것 같은데, 몇 종류를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페이스북에서 친구다. 언제부터인가 쇼츠도 올리시더라고. 그런거 잘 못하는 내 눈에는 퀄리티도 상당해. 그리고 배아픈 점은 갈수록 젊어지신다는 거. 저렇게 꼿꼿한 근육질의 몸매에 매끈한 피부가 60대 중반이신거 실화? 아직 난 60대도 아닌데 같이 있으면 내가 연장자로 보이겠...;;; 이것 또한 그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계있을 것 같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며 도전하는 태도. 자주 걷고 수영이나 요가를 꾸준히 하시는 것도 관계가 있겠다. 하여간에 이렇게 젊게 인생을 즐기며 그 장면들을 공유하시는 영상에 부러움과 찬사의 댓글이 주로 달리지만 '주책이다' 등의 댓글도 달리는 것 같더라고. 하긴 당연한 거다. 세상엔 별별 꼰대가 다 많으니까. 그 옛날 쨍쨍이 현직에 있을 때 그의 공개수업에 "청와대에 보내야 합니다" 라는 후기를 쓴 쌤도 있고 "수업이 개판" 이라고 쓴 쌤도 있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ㅎㅎ 의외로 여린 쨍쨍은 가끔 상처도 받는 것 같지만 꿋꿋하게 자신만의 인생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멋진 책도 펴냈다.

쨍쨍의 쇼츠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야드라~"로 시작한다는 점인데, 나는 서울말이 섞이지 않은 그의 순수 사투리가 참 듣기 좋다. 그게 책의 제목이 된 것에도 찬성이다.
"야드라~ 떠나보니 살겠드라."
쨍쨍같은 사람이 있듯이, 나처럼 굳이 타지에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는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목적이든 떠나는 볼 생각이다. 그게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곳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안가본 곳은 태어난 한국, 심지어 서울 내에서도 천지 삐까리니까. (쨍쨍 사투리 흉내내 봄) 나는 다시 내일부터 출근해서 일한다. 유예된(예약된) 즐거움은 일에 활력을 줄 수 있으리. 그런 면에서 당장 떠날 수 있는 자, 당장은 어려운 자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영 어려운 사람도 괜찮다. 이 책을 읽은 것도 일종의 떠남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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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너머 신기한 마을
가시와바 사치코 지음, 모차 그림, 고향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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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이 작품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년 전쯤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새롭게 옷을 입고 복간된 것이라고 한다. 많은 동화들이 20년 이상 지나고 보면 주제든 소재든 뭔가 더 이상 가치롭지 않은 부분이 느껴져서 아쉬워지곤 한다. 그 세월에도 변함없이 살아남는다면 명작에 가까운 작품이라 하겠다. 읽어보니 이 작품이 그렇다. 세월의 퇴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새로운 느낌의 이야기였다. 이 작가는 최근 귀명사 골목의 여름이라는 책도 냈다는데, 그 책도 궁금해졌다. 50년을 한결같이 신비한 느낌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작가라면 믿고 읽어볼 만할 테지.

 

이 책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는 것인데, 그 영화를 상당히 인상깊게 봤음에도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다.....^^;;; 시간 여유 있을 때 한번 다시 보면서 이 작품과 비교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첫 번째 공통점은 이 책의 제목인 안개가 아닐까.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 거의 모든 작가들이 설정해보는 상상의 구조가 아닐까. 작가 뿐 아니라 상상을 즐기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그리는 세상에 상상 속에서 다녀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작품을 읽을 때 뭔가 아련하다. 어디엔가 진짜 있을 것 같고, 어딘가 통로만 찾는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세상이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는 상상은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낳았고 그리운 느낌으로 우리 곁에 머무른다.

 

6학년 리나의 아빠는 리나에게 여름방학을 보내고 오라면서 안개 골짜기 마을을 설명하고 먼 길을 보낸다. 아빠가 말한 역에 도착했지만 리나는 그 마을을 찾을 수 없어 울상이 된다. 하지만 아빠에게 물려받은 우산을 따라가다보니, 안개를 통과해 어떤 마을에 오게 되었다. 아주 작고 예쁜 마을이었다. 상상 속에서 가보기에 딱 알맞은 마을이다. 작지만 마법이 가득해 지루하지 않은 마을.

 

가장 먼저 도착한 집에는 퉁명스러운 할머니가 있었고, 거기가 리나가 묵을 하숙집이었다. 할머니는 리나에게 일을 해서 하숙비를 벌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리나는 마을의 여러 집을 순례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 마을을 뒤죽박죽 거리라고 부른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겪는 일들이 이 책의 내용이라 하겠다. 무서운 음모에 휘말리거나 엄청난 모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결국 남는 느낌은 진실됨과 따뜻함? 그리고 이 세상으로 다시 건너왔을 때 리나는 훌쩍 성장해 있었다.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작은 마을의 몇 안되는 집에는 각각의 개성있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나타, 배와 관련된 물품을 취급하는 토마스, 그 집에서 사는 욕쟁이 앵무새 바카메, 도자기 가게의 시카, 도자기로 변신당해 있던 왕자와 그의 어머니, 장난감 가게의 먼데이와 가면을 벗지 않는 그의 아들 선데이 등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하숙집에서 일하는 잇 씨와 요리사 존도 중요한 인물이다여기 사람들은 자신을 마법사의 후손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인간세계와 많은 면에서 다르지만 희로애락의 감정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그래서 리나가 짧은 기간 그렇게 찐한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겠지. 돌아오는 길, 선물 보따리에 담긴 한 명 한 명의 선물이 감동이다. 가장 큰 감동은 욕쟁이 앵무새 바카메의 선물. 어디서나 마음을 나눈 곳에 감동이 있다. 나는 그걸 점점 줄여가며 살고 있고.

 

리나의 다음 방문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남기며 작품은 끝나는데.... 50년이 지나도록 이 책의 2권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독자들의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겠지....

이 마을은 여러 곳과 이어져 있거든. 거리와 상관없이 말이야.”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한 걸음만 내디디면 뒤죽박죽 거리에 올 수 있다는 말이야.”

이런 상상이 어린 시절에 주었던 그 환상적이고 신비한 느낌은 얼마나 무한했던가. 그리고 나이 든 지금 느끼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 모든 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눈물겹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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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회화나무
오월실천교사 지음 / 푸른칠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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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도모하는' 교사의 영향력은 강하다. 특히 '함께 도모하는' 경우, 그 힘은 더욱 강하고 널리널리 퍼진다. 나는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부러움의 눈빛도 약간 담아서.... 교직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 '나도 그런 모임 속에서 열심히 해봤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성향대로 사는 것이니 돌이켜도 어쩔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교직의 문화는 이 '함께 도모하는' 교사들이 굴린 큰 바퀴가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바로 이런 멋진 책을 펴낸 이분들처럼 말이다.

이 쌤들 중 한 분이 페친이어서 광주실천교사의 활동을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그 창의성과 스케일에 항상 놀라곤 했다. 어떤 자리에서 우연히 같은 모둠에 앉게 되어 잠시의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는데, 이분의 아이디어는 좀 천재 같았고, 추진력도 대단했다. 페북으로 간접적으로 보는 것도 대단했지만 이렇게 실물을 손에 쥐고 보게되니 진짜 실감이 난다. 그동안에 추진했던 프로젝트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고, 아니, 그림까지도 의뢰하지 않고 직접 그리시다니! 선생님들의 능력이 놀랍다. 표지부터 너무 멋지다.

본문의 그림은 흑백으로 되어있고 5.18의 역사가 간결하게 담겼다. 감정을 담지 않은 사실의 기록인데도 아픔과 슬픔이 배어나온다. 화자는 제목의 '회화나무'로, 전남도청 앞에 있던 나무다. 이 나무가 지켜본 일들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10여년 전, 나도 기억하는 그 해의 큰 태풍에 뿌리째 뽑혀 넘어진 후, 다시 심었지만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극적인 일이 있었다. 그나무 아래 싹이 튼 어린나무를 가져다 키우던 한 시민이 어린나무를 기증한 것이다. 두 나무는 지금 나란히 서서 공원의 일부가 되어 있다고 한다.
"아기 회화나무는 앞으로 어떤 기억들을 씨앗에 담을까요?" (32쪽)
이 마지막 문장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저자들은 5.18을 비극으로만 그려내지 않았다. 더구나 어린이들과 함께 이야기할 5.18은 더욱 그렇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희망을 얘기하려 하는 것이다. 역사를 퇴행시킨 작금의 사태들이 우리를 슬프고 화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 회화나무가 상징하는 희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어서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을 때 유용할 듯한 활동자료가 첨부되어 있고, 그 유명한 방탈출을 비롯, 뮤지컬과 노래도 큐알코드로 연결되어 있다. 뮤지컬 큐알코드를 찍어서 감상해 보았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노래도 너무 잘하고, 함께 만드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워서 감동이다. '어린이시 노래가 되다' 라는 프로젝트를 페북에서 보았는데, 그 열매가 역시 멋지구나. 이렇게 진취적인 선생님들의 의욕이 꺾이지 않는 현장이길 바라는 마음이 솟아난다.

학생들과 함께 한 프로젝트의 최종 산물이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책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멋진가! 그 산물을 귀하게 보고 출판해 주신 편집자의 밝은 눈에도 감사한다. 교육도서에 특화된 푸른칠판에서 그림책은 첫 출판인거 같은데, 계속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은 널리 읽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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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소소 선생 1 - 졸졸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 책이 좋아 1단계
송미경 지음, 핸짱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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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송미경 작가님도 중저학년을 위한 시리즈 동화를 시작하시나보다. 이라는 번호로 시작했으니 그런 계획이 분명해 보인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송미경 작가님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신 편이지만 떡집 시리즈나 고양이 시리즈처럼 길게 가는 캐릭터의 시리즈는 내신 적이 없다. 이제 야심차게 한발을 내딛은 이 시리즈의 캐릭터는 어떠한가? 그는 생쥐이고 여성이며 작가이다. 이름은 소소. 매력이 있어야 지속될 텐데.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있겠지만 내게는 매력이 있었다. 소소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소소한 인물? 강함보다 약함 쪽에 가깝고, 자신감보다는 열등감에 가깝고 목소리도 작을 것 같은 평범한 인물.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동일시하면서 읽기에 적합한 인물. 동일시까지는 아니라도 애정을 담아 지켜볼 수 있는 인물.

 

지금 상황이 초라하게 보여서 그렇지 소소 씨는 벌써 10권짜리 시리즈를 낸 경력 작가이다. ‘딩동 놀이공원이라는 제목의 이 시리즈는 5권까지는 반응이 매우 좋았지만 6권부터는 시들한 정도를 넘어서 뻔하고 시시하다며 욕까지 먹고있는 상황이다. 소소 씨는 유명세를 감당하기엔 소심하고 예민한 인물 같다. 한창 팬레터가 빗발치던 잘나가던 시절에도, 재미없다는 항의 편지가 주를 이루는 지금도 친구인 두더지 봉봉씨네 타르트 가게에서 편지를 대신 받아준다.

 

핸짱이라는 그림작가님과의 콜라보는 정말 최고다. 나는 그림은 많이 따지지 않는 편인데 이 작가님의 다른 그림을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그림이 맘에 들었다. 소소 씨의 동네, , 봉봉 타르트 가게 등 그냥 평범한 일상의 그림인데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예쁨과 따뜻함이 있다. 그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색감과 그림체를 가졌다.

 

소소 씨는 5권 이후의 슬럼프 때문에 깊이 침체되어 있다. 창작의 고통은 내가 겪어본 일이 아니지만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오래 갖고 있는 건 정말 힘든 일이 아닐까? 그런데 요즘 오는 편지 중에 졸졸 초등학교에서 오는 편지가 있다. 다른 편지들과 같이 뜯지도 않고 넣어버렸지만, 계속 오는 편지에 궁금해진 소소 씨는 결국 열어보았다. 그건 소소 작가님을 작가와의 만남으로 초청하는 편지였다. 올 때까지 편지를 보낼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소소 씨는 답장을 쓰게 된다.

계속 편지를 받느니 가겠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누르며 소소 씨는 출발했다. 드디어 숲속의 작은 학교, 전교생 열두 마리의 생쥐 학교에 도착했다. 커다란 풍선에 매달린 환영 현수막에서 환대가 느껴진다. 하지만 일반적인 강연과는 조금 다른 게 있었다. 시청각실이나 강당 같은 강연장이 따로 없었다. 교실에서 함께 지내면 되는 거였다. 졸졸초 선생님은 PPT를 꺼내려는 소소 작가에게 고개를 젓는다.

그냥 여기서 아이들과 함께 노시면 돼요. 저는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면 돌아오겠습니다. 같이 점심을 드시죠.”

 

교실도 너무 예뻤다. 4층이 모두 연결된 교실. 도서관이자 공연장이고 놀이터인 교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한때를 보내면서 소소 작가는 PPT가 줄 수 없는 진실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입속에 남아 늘 되뇌곤 하던 노래의 기원과, 옛 친구를 만나는 감격도 누린다. 졸졸 초등학교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어?^^

 

그냥 끝나면 서운한지, 한 번의 위기가 다가온다. 봉봉 씨의 부탁으로 산딸기를 따러 갔다가 뱀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 만남은 끔찍한 최후가 아닌 창작의 전환점이 되었으니 넘나 행복한 이야기인 것.... 보람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소소 씨는 어제의 그 소소 씨가 아니다. “이야기는 갑자기 손님처럼 찾아온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그 손님을 정신없이 맞이한 하루는 정말 고단하면서도 활력이 넘쳤겠다. 그래, 그래서 무조건 엉덩이를 떼어야 한다니까. 그래야 뭐가 되어도 돼. 그래야 타인을 만나고, 그래야 새로운 것을 보고, 그래야 위기도 겪고! 하지만 그 위기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등등.^^

 

소소 씨도 그렇지만 주변의 인물들이 다 매력적이었다. 꾸준하고 진실된 친구 봉봉 씨도 그렇고, 졸졸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은 다들 너무 매력쟁이. 뱀들은 무섭지만 나름 허당매력이 있고. 특히 담임 선생님이 대박! 드라마라면 약간 설렘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만남. 그리고 두 고양이 일꾼들도 좋은 분들이었다.

 

마지막 장 구석에 “2권에서 만나요라고 쓰여있다. 올레~~ 벌써 다 써두신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전 장 구석에는 새로 편지를 보낸 학교 이름이 쓰여 있다. , 이 시리즈는 권마다 다른 학교 순례인가? 그것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아. 선생 마인드라서 더 그렇겠지만 진심 궁금하네. 편집자님 2권 빨리 내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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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챔피언 허달미 바람어린이책 32
정연철 지음, 심보영 그림 / 천개의바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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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엄청 동질감을 느끼며 읽을 거라 예상하고 읽기 시작했다. 나도 느림보니까.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달미한테 동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달미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자자 선생님이나 "속이 터진다."고 말하는 엄마한테 공감했다. 나는 달미랑 달랐다. 그 이유도 안다. 나는 느림보이긴 하지만 '느긋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속도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불안감과 조급함이 일상적 감정이 되었다. 나는 요즘 학교에서 메신저를 가장 먼저 켜는 사람이고, 뭐든 조금씩은 미리 해두려고 한다. 마음 뿐이지 제대로 안될 때가 많지만....

허달미. 주인공 이름도 잘 지으셨다. 달팽이의 '달'자가 들어간 것도 좋고 성도 왠지 잘 어울린다. 머리 모양을 달팽이 모양으로 그리신 그림작가님의 센스도 돋보인다. 느림을 상징하는 동물은 많다. 거북이, 나무늘보, 달팽이.... 그중에서 이 동화는 달팽이를 선택했다. 나도 어떤 계정에서 닉네임이 달팽이인데...^^;;;

달미 머리모양만 달팽이인 게 아니라 실제로 달팽이가 등장한다. 이 책의 달팽이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살짜기 판타지의 분위기를 주며, 중요한 소재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소재 중의 하나는 '달팽이 똥'이다. 달미는 우연한 만남으로 달팽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달팽이는 먹은 것 색깔 그대로 똥을 눈다나? 나도 처음 알았다. 딸기 똥, 바나나 똥... 이 달팽이 똥이 여러 번 중요한 사건들을 일으키며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그건 바로 빠름과 조급함의 대표 인물, 자자 선생님과 엄마한테 '느림의 경험'을 선사하는 거였다.

빠름도 느림도 각자의 다양성 측면에서 생각하면 개인의 특성이고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민폐는 안 끼치는 범위에서!" 라고 생각하고 있다.ㅎㅎㅎ 현장학습 때 자자 선생님의 안타까움과 아이들의 짜증이 너무 공감되어서.... 자자 선생님은 불평하는 아이들을 단속하고 달미에게 한결같이 친절하셨지만, 나는 한번쯤은 정색하고 야단칠 것 같아서....
"시간 약속을 안 지켜서 남들을 기다리게 하는 건 그들의 시간을 뺏는 거야. 너가 무슨 자격으로 20명의 시간을 이렇게 뺏는거니? 천천히 하는 거 좋아. 하지만 시간 약속을 했으면 그건 지켜. 남들하고 연결되어 있는 건 예외로 할 줄도 알아야지!"
이렇게 야단치는 게 나의 캐릭터. 동화에 이렇게 나왔더라면 욕먹을 캐릭터겠지?^^;;;;

마지막 소재인 '골든벨 대회'에서 의외로 마지막까지 남은 달미는 그동안 '천천히 다니다가 보았던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내가 황급히 다니며 보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도 생각하게 해주었다. 현대인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부질없는 전력질주. 다같이 숨만 차지 얻는 게 무엇인가? 이런 세상에서 작가님의 그려내신 '달팽이의 미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회의 속도를 전체적으로 줄일 수는 없을까? 그 속도 때문에 잃은 것들이 너무 많다. 몸과 마음의 건강도 잃었고 관계도 잃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잃은 것도 생각해보면 그 때문이다.
"어떤 책 보니까 제목이 '틀려도 괜찮아' 였어. 나는 느려도 괜찮아. 아니, 좋아."
사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나처럼 느리면서 마음은 느긋하지 못한 사람이다.ㅎㅎ 느려도 진심으로 괜찮은 세상이 되면 가장 행복할 사람은 바로 나다. 나를 위한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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