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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종소리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31
송언 지음, 한지예 그림 / 사계절 / 2004년 10월
평점 :
단순한 나는 이 책이 정말로 슬픈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슬픈 종소리라니, 듣기만 해도 구슬프지 않은가? 그런데 표지 그림이 너무나 익살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 역시 송언 선생님 특유의 익살이 가득 담긴 유쾌한 이야기였다. 슬픈 종소리란 다름 아닌,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였던 것이다. 이런!^^*
이 학급의 쉬는 시간은 시끌벅적한 모양이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일기검사를 하고 계시고, 아이들은 이런저런 기상천외한 놀이들을 하고 논다. 급기야는, 죽은 듯 엎어져 있는 아이를 두고 아이들이 외친다. “선생님, 여기요! 김귀휘가 죽었어요!” 선생님의 대응은 더욱 걸작이다. “죽었으면 어쩔 수 없지. 저기 운동장 가 모래밭에 묻어 줘라. 살았으면 그냥 놔 두고.”
신이 난 아이들은 ‘죽은’ 아이를 떠메고 복도와 계단을 지나 운동장으로 향한다. 아이들에게 운동장 대신 넓은 들판과 산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호랑이도 되었다가, 산토끼도 되었다가, 마지막으로 모래밭에 도착하여 죽은 친구를 파묻어주려는 찰나, 책의 제목인 그 ‘슬픈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와 함께 죽은 아이는 “애들아, 나 죽었다가 지금 살아났어!” 라며 발딱 일어나고, 3분 늦게 입실한 아이들을 너그럽게 용서하신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자, 이제 공부하자.”
아이들이 친구를 떠메고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에서 아찔해지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소심한 선생이다. 나 같으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그렇게 운동장에 나가는 걸 용납할 리가 없다. 그러다 계단에서 놓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다치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나? 교실 앞뒤에서 뒹구는 애들을 보면 말한다. 어디서 뒹굴어! 니네 집 안방인 줄 아냐? 조심해서 놀아야 다치질 않지!(실제로 학교는 다칠 일 투성이다. 쉬는 시간에 맘껏 풀어놓았다가는 당장에 보건실 단골손님이 된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아마도 털보 선생님에게는 내가 모르는 내공이 있으신 게 틀림없다. 무질서 속의 질서, 자유스러움 속의 자연스러운 규칙, 아마도 그런 것이 있으리라. 그래서 참 부럽다.
아이들은 텅 빈 운동장에서도 즐겁게 논다. 상상 속에서 아이들은 못 될 것이 없다. 얼마 전 즐거운생활 시간에 아이들과 새의 날개를 만들었다. 자~ 날개 달고 나가서 놀자~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나는 데리고 나가면서 궁리한다. ‘한 조씩 빨리 날기 시합을 할까? 멋지게 날기 대회를 할까?’ 운동장 구석 정자에 이르러 나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했다. “얘들아, 여기는 새집이야. 날다가 힘들면 여기에 와서 쉬어.”
이야~! 흩어진 아이들은 날개를 펴고 힘차게 뛰어다닌다. 그 중에 몇 아이들은 매도 되고 독수리도 되어 다른 아이들을 쫓아다닌다. 쫓기던 몇 아이들은 다시 정자로 들어와 헥헥거린다. 어느새 매와 독수리는 정자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칙이 생긴다. 정자에 들어와 쉬던 한 아이가 쪼그리고 있다가, “선생님! 알 낳았어요.” 하며 정자 기둥에 붙어있는 둥그런 것을 어루만진다. 놀이에 있어선, 아이들이 어른들의 스승이다.^^*
우리에게도 ‘슬픈 종소리’가 울려 땀이 뻘뻘 흐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다음 날 일기에 보니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쓴 아이들. 나에겐 준비 안 된 수업이 아이들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현장학습을 가서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풀어놓아도 “선생님, 심심해요. 뭐하고 놀아요?” 하며 게임이건 수건돌리기건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못 노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놀이공원의 자극적인 놀이가 아니면 만족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이건 아마도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놀도록 놓아주지 못한 어른들의 탓일 것이다. 머리말에 송언 선생님은 이렇게 써 놓으셨다. “동산에 둥근 달이 떠오를 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신나게 놀아라. 너희들이 놀지 않으면 새 세상은 끝내 오지 않는단다.”
하지만 집의 아이들이건, 학교의 아이들이건 이렇게 마냥 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내 자신이 슬프기만 하다.
(2008년 다른 곳에 썼던 리뷰를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