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비틀랜드
공지희 지음, 지연준 그림 / 열린어린이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틀랜드가 뭘까? 비틀려서 비틀랜드일까? 아니면 비틀비틀해서?

첫 편을 읽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니 다른 이야기가 나오길래 단편인가 했는데, 계속 읽다보니 연작이었다. 화자인 미뇨가 사는 동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그 동네의 주소는 산37번지. 이제 재개발이 진행될 다닥다닥 꼬불꼬불한 동네다.

미뇨네는 그동네에서 파랑대문집에 살았다. 대문과 마당이 있는 집이라.... 요즘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 동네에선 형편이 나은 편이었으리라. 첫번째 이야기 <히야네 방>에선 그 집의 문간방에 히야네가 이사온다. 곰팡이가 핀 그곳은 거의 버려둔 창고나 다름없는 곳이었는데도. 단칸방에 식구는 엄청 많다. 히야는 가끔 전에 살던 집과 동네 이야기를 해주는데 너무나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들이었지만 미뇨는 이내 그 거짓말이 좋아졌다. 아니, 그걸 거짓말이라고 부르지 말자. 현실을 버티기 위한 아름다운 허구라고나 부를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두 친구와 함께 세 명이 같이 다녔다. 그 중의 한 친구는 거의 치마를 입고 다녔다. 어떤 때는 긴 치마도 입었다. 나는 그 애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교 길에 그 아이는 날마다 자기 집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집이 얼마나 큰지, 엄마가 얼마나 우아한지, 얼마나 맛있는 걸 먹고 사는지, 얼마나 좋은 선물을 받는지 등을 얘기했다. 나는 진심으로 "좋겠다"라고 말해주었다. 어느날 그 아이가 일요일이 자기 생일이라며 초대를 했다. 난 그 아이 집에 가본적이 없었다.(고만고만한 우리 동네에 그아이가 말하는 그런 집이 어디에 있지? 라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다른 한 친구 집 근처라는 것만 알았다. 일요일에 나는 최대한 깨끗이 입고 다른 친구 집 근처로 갔다. 마침 나와서 놀고 있었다.
"어, 웬일이야?"
"생일초대....."
그러자 친구는 풋 웃더니 내 팔짱을 끼고 몇 걸음을 걸었다. 그러더니,
"으이그 으이그~ 그걸 믿었냐. 집에 가!"
하고 내 등을 떠밀었다.

난 지금도 그 아이가 얼마나 어른스러우면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있고, 또 믿지 않으면서도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있었는지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날마다 지어낸 이야기를 했던, 긴치마를 즐겨 입던 그 아이가 가끔 보고싶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두번째 이야기 <햇볕 구슬>에선 한때 영재급 우등생이었던, 지금은 동네 미친놈으로 불리는 해일오빠가 나온다. 오빠가 지금 하는 일은 햇볕을 모으는 일이다. 햇볕을 빼앗겼던 시절만큼 햇볕을 모으게 되면 오빠는 다시 제정신이 들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작가는 다시 내게 "제정신이란게 뭔데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세번째 이야기 <뽑기 언니>에서는 미뇨보다 조금 많은 나이에 뽑기 상자를 메고 생계 전선에 나선 언니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적 사먹어본 달고나의 달콤한 냄새가 감도는 이야기. 하지만 설탕 탄 씁쓸한 맛도 함께 느껴지는 두 여자아이의 이야기.

네번째 이야기 <노라와 아빠>에서 미뇨는 가출(?)을 한다. 아마도 이때쯤 아빠는 세상 사는 일이 참 힘들었고, 그래서 술을 마셨고, 술버릇이 사나워 가족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가출길에 누굴 만났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라를 만난 것은 참 다행이다. 공터에서 혼자 놀던 외로운 노라. 노라는 언제나 아빠의 물건을 걸치고 있었다. 어떤 때는 모자, 어떤 때는 신발.... 그 물건의 주인인 아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다섯 번째 이야기 <높고 쓸쓸한 망루 위, 초록 헬멧>에서 미뇨는 강아지처럼 살가운 염소와, 염소와 단둘이 사는 초록헬멧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알 수 없는만큼 멋지고 설렜다. 소년은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들려주었고 재개발 예고로 술렁거리는 그 동네를 아쉬워했다. 그러고는 어느날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미뇨의 마음이 어땠는지 작가는 전혀 말하지 않았지만 열세살 여자아이의 마음에 싹텄던 설렘을 생각하니 내가 대신 먹먹해지려고 했다.

마지막 장 <바다파랑대문집>에서 건너편 동네 공동주택으로 이사가 살던 미뇨는 오랜만에 옛집을 찾아 추억에 잠긴다. 십삼년 아름답고 새큰하고 비틀거렸던 기억이 거기에 묻힌다.

고학년용 동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소그룹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아이들의 감성에 다가가지는 않을 것 같다. 아이들마다 경험이 제한적이라서 말이다. 작가 공지희 님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지만 감성이 단순한 친구들에겐 눈에 안 띄고 스쳐갈 부분들도 간혹 보인다. 아픔은 아파 본 후에야 진심으로 이해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