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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합시다 ㅣ 산하세계문학 10
후스퉈 지음, 다무 그림, 문현선 옮김 / 산하 / 2016년 3월
평점 :
대만 작가가 쓴 동화를 전에 읽은 적이 있었던가? 한두권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은 요 근래 읽었던 아이들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었다. 처음 보는 대만 작가의 우화적 상상력과 풍자에 감탄했다.
배경은 '고양이 거리' 라는 곳이다.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이곳은 반려동물의 주인이 잠든 후에만 열리는 곳이다. 사실 '반려동물 거리' 라고 할 수 있지만, 생긴 이래 줄곧 고양이당이 정권을 잡고 있어서 그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고양이당의 슬로건은 "인간은 우리의 노예다!"이고 이것은 인간과 유대감이 각별한 개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구호다. 강아지당은 "인간은 우리의 친구다" 라는 구호를 갖고 다가오는 선거에서 집권하려고 한다.
그 선거의 과정이 이 책 내용의 대부분이라고 보면 되겠다. 별다른 정책도 없이 장기집권만을 꾀하는 고양이당의 후보 호야, 만년야당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강아지당의 후보 복돌이, 반려동물 중 소수자인 조류를 대표해 무소속으로 나온 비둘기선생. 이 셋이 고양이거리 대통령선거의 후보자들이다.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 정치판의 막장드라마의 동화버전이라 하면 될까? (동화버전이라 하기에는 너무 사실적인거 같음ㅎㅎ) 후보자 외에도 등장인물들이 있으니 선거를 돕는 이들(선거본부장과 대변인 등)이다. 이들의 캐릭터도 하나하나 선명하고 재미있다. 고양이당의 대변인은 공주병이라는 여자주인의 고양이인 미미. "잘 자. 사랑하는 미미. 공주님은 이제 잘게." 하는 말을 가소롭게 듣고 있다가 그녀가 잠에 빠지기만 하면 쏜살같이 고양이거리 통로로 돌진하는 미미. 나긋나긋한 말투로 진행도 잘하지만 상대편 염장지르기도 잘하는 천상 고양이 캐릭터.
강아지당엔 자폭을 우려해 주변인들이 절절매야 할 정도로 으르렁대는 조폭 캐릭터가 있는데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웃지 않을 수 없는, '예쁜이'다.(주인이 좀 악취미인가봐ㅎ) 거기에 주인의 자유롭고 쿨한 사랑을 받는 대변인 덜렁이는 잘 존다는 단점은 있어도 성격 하나는 좋아서 누구하고나 잘 지낸다.
요리조리 사건을 만들어내는 역할인 검둥이는 천지분간 못하는 어린 강아지인데 고양이당에 포섭돼 스파이로 이용된다. 하지만 그 천지분간 못함으로 X맨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망성 없는 소수자 후보의 사퇴와 제1야당과의 연합, 여당의 유권자에 대한 뇌물수수, 흑색선전, 스파이활동(2중스파이까지) 등등 어디서 많이 본 내용들이 쭉 이어진다. 이쯤되면 독자로서 장기집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이루려는 강아지당에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다. 근데 강아지당이 하는 짓을 볼까. 거짓정보를 흘려 고양이당의 결정적인 실책을 유도한다. 이제 선거판은 앞이 보이지 않는 혼란에 빠져든다. "최선이 없으니 차악을 선택한다"는 유권자의 고민이 이 책에도 들어있다.
이 책의 제목은 "투표합시다". 과연 어떻게 결말을 내야 이책이 제목의 효과를 내게 될까? 복돌이는 사력을 다해 마지막 정견을 알리는 선거운동을 하고 결과를 기다린다.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복돌이가 이기고 고양이당의 장기독재가 끝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순간 일어난 사고와 아수라장이 이 책의 현실성을 더해준다. 당선자의 이 한마디로 책이 끝난다.
"첫 임무부터 고달프게 생겼군....."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아이들에게 권해줄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함께 읽는다면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지도.... 그래도 아이들 수준의 '정치우화'로 이만한 작품은 아직 못본것 같다. 고학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아주 흥분할 것 같다.ㅎㅎ 이야기주제도 잘 생각해보면 나올 것이 많으리라. 예를들면 "어른들의 정치판도 고양이거리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투표를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너무 진부한가? 더 생각해 보자.^^;;)
한밤중에 이 책을 읽었는데, 내 옆에서 곤히 잠든 강아지 눌눌이의 얼굴을 몇번이나 들여다보았다. 너 고양이거리에 간다면 어떻게 할거니? 니가 천지분간 못하기로 설마 고양이당의 스파이 노릇을 하진 않겠지? 인간은 우리의 친구라는 구호에 왈왈왈 환호를 보낼거니?ㅎㅎㅎ
그러고보니 고양이를 사랑하며 키우시는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며 느낌이 어떠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