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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 아니고 똥푸 - 제17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ㅣ 초승달문고 41
차영아 지음, 한지선 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2월
평점 :
<쿵푸 아니고 똥푸 / 차영아 / 문학동네>
몸도 마음도 분주해 지난주엔 동화를 한 편도 못읽었다. 슬슬 월요병이 찾아올 일요일 밤, 이 책을 읽고는 마음이 차오름을 느낀다. 그까짓 바쁨이 그리 대수냐. 일은 조금 놓쳐도 돼. 사람을 잊지 마.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마. 동화는 내게 그런 말을 하는 듯했다.
올해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에는 짧은 동화 세 편이 들어있다. 똥맨이 똥푸라는 이름으로 출현하는 첫 작품 <쿵푸 아니고 똥푸>는 적당히 유머도 담기고 결말도 흐뭇했다. 두번째 작품 <오, 미지의 택배>는 예고도 없이 마음의 한쪽 끈을 탁 끊어버렸다. 따뜻하고 아름다운데 자칫하단 울 수가 있다. 독자가 개를 키웠다면, 키우다 떠다보냈다간 직방일 거다. 세번째 작품 <라면 한 줄>에선 단편에서 보기 힘든 판타지와 모험의 힘이 느껴진다.
<쿵푸 아니고 똥푸> 에서 다문화가정 아이인 탄이는 수업 중에 똥을 쌌다. 아이들이 이걸 다 알아버렸다. 볼장 다 본 상황이다. 선생님 아니라 선생님 할아버지라도 이 상황을 깊은 곳까지 수습하긴 힘들다. 하지만 탄이를 돕는 존재 '똥푸'가 나타났다. 똥의 역할과 위력을 이보다 더 잘 알려줄 순 없으리. 똥이 가꿔준 딸기로 만든 딸기잼을 들고 엄마의 고향인 필리핀을 간다. 마지막 문단이 멋지다.
"산다는 건 백만 사천이백팔십아홉 가지의 멋진 일을 만나게 된가는 뜻이에요. 똥싸개가 된 날 똥푸맨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요. 또오오오옹푸!"
실수 한 번에 좌절하지 말자. 더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오, 미지의 택배>에서 미지는 자신에게 배달된 미지의 택배를 받는다. 상자 안에 있는 건 밋밋한 흰 운동화라 잠시 실망하지만 설명서가 있다. 천국에 30분 머물 수 있다는.... 설명서대로 미지는 누군가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눈앞이 노래지도록 달린다. 그 이름은,
"봉자야, 봉자야, 봉자야!"
돌아가신 할머니나 아빠가 아닐까 했는데 봉자라니? 읽어보니 봉자는 떠나보낸 반려견이었다. 갓난아기 미지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뭔지 알려줬던 봉자, 친구없는 미지를 누구보다 기뻐 반기던 봉자, 밤마다 미지가 지어낸 얘기를 들어주던 봉자.... 암으로 아프던 봉자가 눈을 감던 장면은 짧고 조용하고 슬펐다. 마지막 힘으로 미지를 한번 핥아주고 눈감은 봉자.... 럭키 책 서평에서도 썼는데 개가 핥는다는 건 왜이리 마음이 느껴지는 걸까. 우리 개 눌눌이는 말썽만 부리는 녀석이라 갓난아기를 지켜줄 놈도 아니고 조용히 얘기를 들어줄 놈도 아니건만 봉자의 마지막 핥아줌에 눌눌이의 촉감이 느껴짐은 왜인지.....
30분은 쏜살같이 흐르고 둘의 이별시간은 다가온다. 뭔가로 다시 태어날거란 봉자의 말에 미지에게 펼쳐진 세상만물은 이제 사랑 그자체였다. 난 윤회를 믿진 않지만 사랑스러운 결말이다. 외톨이였던 미지는 이제 친구들에게도 다가가게 될 테니까.
<라면 한 줄>이 뭔가 했더니 시궁쥐 딸의 이름이었다. 겁이 많아 하수구 가장 가까운 라면집에서 주워온 라면 한 줄 외엔 먹어보지 못한 라면 한 줄. 그녀에게 목숨을 건 모험이 강제된다. 길떠남은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한 것. 그 길에서 만난 외눈박이 고양이와의 사이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라면한줄은 엄마가 가르쳐 준 주문을 외쳤고 위험에서 벗어났다. 그 주문의 뜻은
"사랑이 항상 이긴다." 라나.
옛이야기가 어린아이들의 심리에 건강한 작용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왠지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꼭 읽어주고 싶은 이야기, 별 얘기 아닌 것 같은데 마음을 건드리고 어루만지는 이야기라서. 별볼일 없는 존재들이 참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야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