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쓴맛 햇살어린이 43
심진규 지음, 배선영 그림 / 현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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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쪽 정도, 중학년쯤에 적당한 분량인데 1학년 교실의 이야기라 독자대상이 조금 애매한 감은 있다.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거 같다. 초등샘이시고 얼마전 신춘문예에 당선되셨다는. 현장 선생님이 쓰신 교실 이야기니 오죽 생생하겠는가? 심지어 이 책의 주인공 선생님은 작가샘이 가까이서 뵌 어떤 분을 모델로 했구나 라는 짐작을 하게 될 정도였다.(아닐 수도 있지만^^;;)

'조직의 쓴맛' 이라는 제목은 엄청 구미를 당겼다. "배신자! 넌 조직의 쓴맛을 보게 될거야!"와 같은 영화대사에서의 의미 그대로, 단 코믹하게 풀어간 아이들 사이의 관계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다. 근데 완전히 헛짚었다. 이 책은 한 선생님과 그반 아이들의 이야기였고 '쓴맛'은 말 그대로 쓴 맛이었다.

찬이는 그렇게 바라던 1학년이 되었지만 첫날부터 실망하고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 이름이 '고순자'인 할머니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옆반은 예쁜 '신규'선생님이 담임이고 과자파티 같은 것도 한다고 친구들이 자랑하는데, 자기네 선생님은 뽀글뽀글 흰머리에 스님옷 같은 걸 입고 첫수업날 질문이 고작 "오늘 아침에 똥누고 온 사람?"이고, 받아쓰기 등등 공부스러운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이런 점은 엄마들의 수근거림과 불만으로 이어져 강한 민원을 받게 되는데, 이건 요즘의 경향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동화의 리얼리티에 손상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민원의 이유는 얼마든지 다양하니까 말이다;;;) 요즘의 경향에 맞는 고순자 선생님의 스타일을 몇가지 적어보겠다.

1. 지적발달보다도 아이들의 '몸'에 먼저 관심을 기울인다. 식사와 배변 등을 차분히 하나하나 가르친다. 1학년에서는 필수다.
2. 받아쓰기를 하지 않는다. 근데 요즘 1학년 1학기에는 다들 하지 않는다. 2학기에는 간혹 하시는 분을 봤지만 안하는게 교육청의 지침이기도 한지라 안하시는 경우가 많다.
3. 신체활동과 배움을 결합시킨다. 문자에서 자유롭게 놓여나 알게 된 것을 말로 표현하고, 그려보고, 그 후에야 조금 써보게 한다. 이 책에서는 운동장에 그리고 써보는 아주 인상적인 수업도 나왔다.
4. 억압하거나 강하게 질책하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지도한다. (이거야말로 저학년 학부모들이 가장 바라는 건데?)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계시구나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아님 작가샘 자신의 방법인지도?^^) 아주 특색있는 것은 선생님의 다양한 벌이었다. 아주 재밌는. 예를 들면 '내 말 좀 들어'는 선생님 말을 잘 안들을 때 쓰는 벌인데 '말'인형을 10분동안 들고 서 있는 벌이다.(속에 뭐가 들었는지 되게 무겁다고 한다. 나도 돌멩이 몇 개 집어넣고 하나 제작해 둘까보다.ㅎ) '날 좀 보소'라는 벌은 선생님을 안쳐다볼때 선생님과 함께 춤을 추는 벌이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노래도 부르면서.

그 외에 선생님은 '비밀의 약'도 가지고 계셔서 상황에 따라 꺼내서 먹이신다. 복도를 내달리던 말썽꾸러기 녀석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자 '열려라 닫힌 입'약을 먹여 입을 열게 하시고, 친구에게 상처를 준 녀석에게는 이 책의 제목인 '조직의 쓴맛' 약을 주었다. 결국 여기에서 파생된 문제들로 선생님은 민원을 받고 고초를 치르게 됐지만....

내용 중에 선생님이 내년에 정년퇴임이란 말이 나온다. 나는 10여년 후에도 그렇게 여유있고 노련하며 전문적인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까. 지금도 어려운데 말이다. 나는 요즘 힘빼는 것을 고민중이다. 딱 아이들 발단단계에 맞는 만큼만 힘을 넣고 나머지는 적절히 빼기. 그리고 순자선생님처럼 유머를 잃지 말기.

지금도 곳곳에서 이름없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순자선생님들께 경의를 바친다. 선배님들, 저도 당신들과 같은 길을 가고 싶습니다. 힘내시고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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