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동화동무씨동무 선정, 2017 아침독서신문 선정, 2017 오픈키드 좋은 어린이책 추천 바람어린이책 5
윤여림 지음, 김유대 그림 / 천개의바람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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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스승의날이다.
세상이, 아니 교직이 일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오긴 했다고 본다. 20여년 전 내가 처음 발령났을 때 스승의 날에는 책상위에 손수건, 스타킹 등 선물이 잔뜩 쌓이곤 했다. 그중에는 부담스러운 립스틱이나 커피잔 같은 것도 있었다. 멋모르고 발령난 나는 그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맸다. 몇년이 지나며 조금 제정신이 든 나는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알림장을 통해 이런 안내를 했다. 어찌보면 무척 거칠고 무례한 멘트였다.
"저는 스승의 날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스승의 날을 상기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스승의날을 빙자한 교실내 소란행위를 엄금하며 꽃 한송이도 받지 않으니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퉁명스러운 멘트에서 보이듯, 나의 이런 행위는 뭔가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10년이 넘도록 이 멘트를 고수했다. 특히 언론에서 5월만 되면 교사들을 애들 코묻은 선물이나 바라는 거지떼들로 묘사하는 걸 보며 이 멘트는 더욱 견고하게 굳어갔다. 그래서 우리반은 옆반 아이들이 일찍 와서 풍선으로 교실을 꾸미고 칠판편지로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릴 계획을 꾸밀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해 입이 댓발 나왔고, 그날은 괜히 더 날카로워져서 아이들을 다그치곤 했다.

다행히 작년부터는 김영란법이 생겨 이정도로 단도리를 하지 않아도 꽃한송이 안보고 지나갈 수 있다. 나도 멘트의 수위를 조절했다.
"5월 15일은 스승의날입니다. 스승의날은 교사의날이 아닙니다. 스승은 평생 잊지 못할 인생의 가르침을 주신 분을 일컫는 말이고 현재의 담임과는 무관합니다. 스승의날을 본교 교사와 연관지어서 불편한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김영란법의 학교 적용에 민망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년전 책상위에 스타킹 손수건 화장품 더미가 쌓이던 상황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상담때 빈손으로 오지 못해 들고온 다과 종류를 다시 들려 보내자니 미안하고 먹자니 체할 것 같던 그 난감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이 편이 훨씬 마음 편하다. 이것이 오직 교사들의 자정 노력에 의해 된 것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신속히 단호하게 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어어 떠밀려온 경향도 있음이 아쉬울 뿐이다. 정이 없다는 둥 하는 염려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학교는 직장이고 나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월급값을 다하려 애쓰고 있다. 그거면 (일단)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일단)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여기까지는 교사의 언어다. 스승의 언어는 그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스승이 되겠다는 욕심 같은 것은 없지만, 왠지 아이들한테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으로 복잡한 스승의날 전 주말에 나는 선생님이 주인공인 책을 읽었다. 여기에 나오는 콩가면 선생님은 나랑 좀 비슷한 점이 있다.(주로 단점이?ㅎㅎ) 하지만 내가 닿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페북에서 경이롭게 구경하는 스타선생님들에 비하면 훨씬 나와 닮았다. 친근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 이 제목을 보여주고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할 것 같다. "얘들아, 제목을 보니 이 선생님은 평소에 잘 웃으시는 것 같니? 안 웃으시는 것 같니?"
웃지 않는 무표정 선생님. 일단 마이너스 아닌가? 친절이 얼마나 중요한데.
나 또한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애정표현을 주로 구박으로 한다. 다음해에 찾아와 교실 문밖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은 주로 구박덩이들이다. 과장된 칭찬도 잘 하지 않는다. 이런점이 닮았다면 닮았다.(단 이 선생님은 구박도 잔소리도 잘 안한다)

첫번째로 등장하는 동구라는 아이는 숙제만 하려고 하면 엉덩이가 간지러운 '숙제병'에 걸린 아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매일 숙제를 내주겠다"고 하신다. 그리고서 이어지는 말. "숙제해 왔다고 상주는거 없고 숙제 안 해 왔다고 벌주는거 없다."
와, 이거 내게 매우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상도 벌도 없는 교실에서 과제가 어떻게 이행될까?
처음에 글쓰기 숙제를 반 정도 아이들이 해왔는데 그 이후 숙제를 해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더니 마지막엔 숙제병 동구까지도 해오게 되었다. 그 비결은.... 아주아주 단순하지만 어려운 거다. 한 수 배웠다.

콩가면 선생님의 교실에도 보일듯말듯 관계의 문제들이 등장하는데 그 해결에 선생님은 보일듯말듯 관여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고도의 기술이다. 나는 20년이 지났어도 이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음 부럽다.

선생님이 학급의 외토리 비호감 성인이와 친해지는 과정도 흥미롭다. 성인이를 불쌍해하지도 봐주지도 않으면서 존재감을 살려주는 과정. 말투는 여전히 무뚝뚝. 와 정말 내 스타일.ㅎㅎ

"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 제목과 같은 일은 그럼 언제 일어나는 걸까? 그건 바로 방학식날.
"무슨 선생님이 방학이라고 좋아해요?"
"선생님이니까 방학을 좋아하지. 말썽꾸러기 녀석들도 안보고 얼마나 좋아? 내일부터 늦잠 자야지!"
뭐 그게 끝은 아니다. 심통 부리는 성인이를 불러세워 함께 교실 문을 잠그고 짜장면 먹으러 가는 선생님. 선생님의 멋지고 즐겁고 보람된 방학을 나도 응원한다.^^

스승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마지막에도 스승 이야기를 해보겠다. 콩가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스승일까?
이건 우문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교사로서는 정말 괜찮은 교사라는 것이다. 비록 일년 내내 안웃다가 방학식날 웃는, 평소에 아이들과 부비부비도 하지 않는 무뚝뚝한 교사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더도말고 이정도만 괜찮은 교사이고 싶다.
욕심히 과하다고?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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