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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그린 책 - 2020 볼로냐 라가치 상 COMICS Early Reader 대상 수상작 ㅣ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7
리니에르스 지음, 김영주 옮김 / 책속물고기 / 2017년 3월
평점 :
내가 쓰고 그린 책이라 해서 실제 어린이가 쓰고 그린 책인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다. 이 책에는 어른과 어린이, 두 사람의 그림체가 나오는데 둘 다 작가의 것이다. 어른 그림체는 네모 틀 안에 갇혀 있으며 바깥 이야기(아이가 색연필을 선물받아서 기뻐하며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과정)를 이끌어 간다. 아이 그림체는 틀 밖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며 아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부럽다. 이렇게 맘껏 지어내고 맘껏 그릴 수 있는 아이의 상상력이.(아이가 아니라 작가가 그린 거라니깐! 그래도, 이정도 짜임새까진 못 갖추더라도 아이들의 이야기는 참 기발하고 그림은 대범하다. 물론 나보다 더 소심하고 끙끙대는 아이들도 없진 않지만.)
아이는 엄마한테 색이 많은 목색연필 한 갑을 선물받았다. "예쁜 무지개 조각을 가진 기분이 드는걸" 이라는 시적인 표현을 하는 아이. "아주 멋진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어." 라며 일단 제목과 표지를 완성한다. <모자 두 개를 쓴 머리 세 개 달린 괴물>
우와 대단하다. 괴물이라니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것이고, 머리가 세 개 달렸는데 모자는 왜 두 개인지 독자들은 궁금해할 테니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어갈 수가 있잖아?(왜이래. 아이것도 작가가 쓴 거라고 했잖아.ㅎㅎ)
틀 안에 들어있는 어른 그림은 작고 단정하고 펜선이 섬세한데 비해 아이 그림은 크고 거친 선들이 그대로 드러난다.(내 눈엔 크레파스로 보이는데 색연필화가 맞나??) 어쨌든 아이가 만든 이야기를 보자. 깜깜한 밤, 무서워서 인형을 안고 잠을 청하는 에밀리아에게 무슨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옷장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그 다음에는 머리가.... 이렇게 해서 괴물과 대면하게 된다.
괴물들의 사연을 듣고 나서 그들을 돕기 위해 옷장을 열었을 때, 옷장이 깊이를 알 수 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부분 뭔가 익숙한데? 나니아 연대기에서 모티프를 차용했구나. 하긴, 모방에서 창조가 비롯되는 것이니까. 이야기에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은 상당히 중요한데 아이는 기존에 있던 '옷장'을 한번 더 선택했다. 하지만 그 이후(옷장 속)는 많이 다르다. 그 속에선 더 큰 괴물도 등장하고, 적절한 조력자도 등장하고.... 한마탕 모험과 추격전을 마친 후 방으로 돌아오는 일행. 그리고 모자를 찾아쓴 세 괴물은 에밀리아에게 선물을 주고 떠난다.
안쪽 이야기는 이렇게 서툰듯 재미있고, 바깥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 때 생각해야 할 점들을 적절히 짚어준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나도 이야기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라고 할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어린시절의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그땐 이런 책이 없어서.....^^;;;;
전에 다른 서평에서 자세히 쓴 적이 있는데, 나도 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좋아해서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다. 느낀 점은 어린 아이들이 더 잘한다는 것. 5,6학년 아이들보다는 2,3학년 아이들이 만든 이야기가 훨씬 아름답고 재미있었다. 요는 아직 말랑말랑할 때 주물러 줘야 한다는 것. 어느덧 굳어있는 것을 발견한 후에는 잘 되지 않으니까.^^ 이 책을 보고 나서 하면 더더더 잘하겠다. 동기유발과 안내자 역할을 동시에 해주는 책이라서.
아이들이 상상과 창조 속에 빠져 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 행복에 빠뜨리는 게 교사의 역할 중 하나라면 한번 잘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불태워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