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김현희 지음 / 생각비행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에 딴지일보에 실린 저자의 글을, 딴지일보가 아닌 페북에서 두 편쯤 읽었다. 내가 하필 그런 글만 보게 된 것인지 기분이 언짢았다. 저자가 예로 든 '인간으로서도 한참 모자란' 교사를 내가 한 명도 못봤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전체의 평균보다 많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본 대다수의 동료교사들은 주어진 일(수업과 학급운영, 업무 등)을 잘하려고 애쓰고, 학급의 힘든 아이들에게 측은지심을 갖고, 그러다 받는 상처에 아파하기도 하고, 단 뭔가 부당한 것에 강하게 저항은 못하는, 성실하고 선량한 소시민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하필 고약한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봐라 교사란 것들이 이렇게 바닥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해서 교사로서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가장 불쾌했던 예시의 교사는 책에선 나오지 않았음) 이봐요 후배선생님, 당신이 말하고 싶은게 뭔가요? 자기가 속한 집단을 이렇게 매도하고 당신은 그 안에서 고고하단 얘길 하고 싶나요? 어쩌죠.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런 교사가 아닌데요. 나 나름 오래된 교사지만 당신이 예로든 그런 말과 행동 한 적 없고 내 주변 동료들도 다 그런데요. 당신은 인디스쿨 연수나 좋은교사모임, 실천교사모임 같은데 가봤나요. 거기서 내뿜는 빛나는 변화의 에너지와 간절한 노력을 보지 못했나요. 그런 데에 힘을 보태주고 함께 좋은 길로 나아가면 되지 그러잖아도 힘든 동료들에게 여론의 뭇매까지 맞게 하고 싶은가요. 난 이런 소리 듣기 억울해요. 그래서 당신이 밥맛이에요!!

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하니 좀 부끄럽다. 내가 원래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에 잘 지배된다. 더구나 저자의 글을 한두편 읽어봤을 뿐인데 '싫다'는 느낌에 더이상 읽지도 않았으니. 이 책이 나온걸 인터넷 서점에서 봤다. 마침 학교도서관 수서를 하던 중이었다. '책으로 나왔네? 목록에 넣을까?' 라는 마음과 '쳇, 됐어' 라는 마음이 엇갈렸다. 결국 구입을 했고 읽게 됐다. 여전히 불편한 건 사실이나 저자에 대한 유감은 없어졌다. 오히려 참 대단한 후배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대단히 순결하고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 기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내가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당연한 사실) 나는 내가 참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존중(이라기보다는 끌려가는 거에 가깝지만)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남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괴롭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수한 기준에 따르면, 나는 이분이 예로 든 극단적인 사례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내가 앞에서 말한 '선량한 소시민'은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절대 장점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를 '보통 사람들'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보통 사람들의 나긋한 성품 자체는 물론 잘못이 아니다. 이들은 대개 진지하고, 유순하고, 친절하고, 충돌을 피하는 성향이 강해 사회적인 호감형이 되기 쉽다. 그런데 수많은 사회심리학자가 밝혔듯 일단 판이 이상하게 짜이면 가장 위험한 존재가 바로 이러한 보통사람들이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체제에 순응해 본인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본문 59쪽)

이 대목에서 나치 전범 아이히만까지 언급한 것은 소름이 끼치지만.... 나도 떠오르는 기억이 몇가지 있다. 저자도 언급한 mb정부 시절의 파행적이고 비교육적인 일제고사, 그걸 거부(정확히 말하면 거부가 아니라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안내함)한 몇몇 교사들에게 내려진 교사로서의 사형선고, 찰나의 분노 후 외면하고 묵인한 대다수의 교사들.... 모두 들고 일어나도 모자랄 판에 반대서명조차 해주지 않던 믿었던 후배를 보고 가슴속에 흘렸던 피눈물... 그런게 기억났다.

"체제에 무비판적인 '보통 사람들'이 명령을 이행하는 입장을 넘어 괴물로 변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수순이다. 그러므로 교사를 비롯해 사람들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권위에 순응하고, 집단의 목표에 관심이 쏠리고, 그 과정에서 약자들을 학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끝없이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본문 61쪽)

결국 저자는 이 성찰의 행위로 이러한 글들을 써왔던 것일게다. 인격이 부족한 일부 교사들을 비난하려 함이 아니라 '교직의 어떤 환경이 교사들의 합리적 이성과 인권의식을 마비시키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미처 깊이 해보지 못한 고민이었다. 부끄럽고 찔리는 점이 아주 많았다. 또한 개인적 부족함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이상한 교사' 되기를 거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라는 고민이 생겼다.

6장 <관성의 법칙>에서 저자는 에어컨과 배구라는 두 가지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이건 성공사례라고 웃기에는 몹시 씁쓸하고 찜찜한 사례였다. 그 방법이 바로 '학부모를 사칭한 민원전화'였다. 난 이것이 학부모들에게 "시도해보세요.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이와같이 아주 많아요." 라고 권유할 사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주체에서 제외된 교사들의 답답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학부모를 사칭해야 교장과 교육부는 그나마 꿈쩍이라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를 채찍질만 하는 것도 실은 온당치 않다. 더구나 학부모의 민원이 거시적이고 타당한 경우도 있지만 자기 자식의 이익에 국한된 극히 이기적인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하여 난 이 사례를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물론 다음장에 이어지는 '학부모가 함께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앞에서 저자의 기준이 매우 순수하고 높다고 했는데, 대다수가 무심코 무비판적으로 행하는 일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덕교육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서 그동안 무심코 가르쳐오던 내용들의 독소를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대단히 의미있는 문제제기들이었다.

후반부에는 저자가 근무하던 학교의 급식문제(언론에까지 알려졌던 길고 요란하고 복잡했던 문제)가 마무리되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교육계의 고질적 문제들을 짚어주었다. 마지막으로 교사들의 '지적 헌신'을 촉구했다. 여기서 지적 헌신이란 경쟁적 주입식 교육으로 아이들을 다그치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설픈 행복주의에 따라 지적 갈망과 가능성을 방임하는 교육도 아니다. 이러한 저자의 균형잡힌 시각을 접하면서 그간의 주장과 분석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겠구나 라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의 일독을 힘들게 했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내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봐야 하는 작업이 힘들었다. 나는 원래 자존감보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보며 나와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집단을 비판하는 것이 당장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열심히 해왔어요." "잘하고 있으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요." 라는 위로와 격려일수도. 하지만 잠시 위로의 도취에서 벗어나 아픔에 나를 담그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으며 독자들과 그 답을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저자도 알 것이다. 그의 고민에 대한 해답이 비록 규모가 큰 움직임은 아닐지라도 여기저기서 반짝반짝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 움직임을 엮어 큰 힘을 내는 일을 지혜롭게 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희망이 있다고 본다. 빛나는 필력을 가진 저자가 다음 책에서는 그 희망을 얘기해주면 좋겠다. 그 희망을 향해 가는 과정에 이런 책도 꼭 필요했음을 이젠 부인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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