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고양이 사계절 웃는 코끼리 18
위기철 지음, 안미영 그림 / 사계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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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철 님의 쉽고 재치있는 문장을 좋아한다. 전에 이 작가의 이야기가 노는 법이라는 문학이론책을 읽어봤는데 이론책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술술술 재미있게 읽혔다. 그리고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분은 동화를 어떻게 쓸까?^^

 

저학년 담임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인지 요즘 얇은 책들을 자주 뽑아보게 된다.(아니 사실은 동화만 주구장창 읽다보니 연령대가 점점 내려간다...ㅎㅎ) 마침 위기철 님의 동화가 보여서 뽑아왔다. 대단한 흥미나 눈을 뗄 수 없는 흡인력 같은 것은 없었다. 조미료 안 쓰고 설탕도 조금만 들어 있는 엄마표 과자를 먹는 느낌? 처음에는 약간 심심한 느낌이었는데 이내 그 느낌이 좋아졌다. 앞에 말한 책에서 저자는 동화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독자와의 소통이라고 했던 것 같다.(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하거나, 아이들 심정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것 말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며 의미도 있는 이야기여야겠지? 참 복잡한 주문이다.

 

그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동화의 본질에 충실하다. 어린아이들을 옆에 눕히고 조근조근 들려주거나 읽어주기에 아주 좋겠다. 동화에는 배경 설명이나 자세한 심리묘사 같은 것은 없다. 그건 그냥 독자가 상상하면 되는 것이다. 3편 중 첫째 편 초록 고양이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어요.”

놀라 살펴보는 꽃담이의 눈에 빨간 우산을 쓰고 노란 장화를 신은 초록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고양이는 꽃담이를 데려가 40개의 항아리 중에서 엄마를 찾으라고 했다. 기회는 한 번 뿐이며 실패하면 엄마를 다시는 못 찾을 거라고 으름장도 놓는다.

만일 내가 찾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야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지.”

겨우 그뿐이야?”

당황한 초록고양이는 들고 있던 빨간 우산을 주겠다고 한다. 그걸로 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냥...... 비 올 때 쓸 수 있지.” 라고 답하는 고양이를 보며 허당스러움과 귀여움을 느낀다. 게다가 너는 엄마가 없는 모양이구나.” 하는 말에 발끈하며 나도 엄마 있어! 진짜야!” 하며 발을 구르는 모습에선 안아주고 싶은 측은함까지 느낀다. 그러니 전혀 무섭지가 않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잖은가? 40개의 항아리 속에서 어떻게 엄마를 한 번에 찾는지. 꽃담이는 킁킁 냄새를 맡다가 한 항아리를 찾아냈다. 거기서 엄마냄새가 났던 것이다.

 

그때 난 잊고 있던 오래된 눈물겨운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둘째를 낳고 1년 휴직을 하며 모유를 먹이고 마지 한몸인양 붙어 지내다가 복직을 했던 첫 날, 아들은 하루종일 내가 허드레로 입던 티셔츠(연한 오렌지색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를 품에 안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누나를 불렀다고 한다. “누나!! 엄마~ 누나!! 엄마~”(누나! 이거 봐! 여기서 엄마 냄새가 나!)

물론 지금은 엄마냄새가 다가오면 문을 닫아버릴 괴물 형상이 되어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는 말이다. 아련하고 찡한 기억이다.

 

이번엔 꽃담이가 사라졌고 엄마가 꽃담이를 찾는다. 지난번과 똑같은 형태의 문장이 낱말만 바뀌어 나오면서 반복과 리듬을 느끼게 한다. 엄마도 꽃담이를 찾았다. 항아리를 다 밀어 깨뜨려버린 것이다. 항의하는 고양이에게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딸 구하는 일에 물불을 가리겠니?”

... 갑자기 가슴이 탁 막힌다. 그래, 물불을 가리지 않지. 그래도 구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었지.... 얼마나 원통하겠나?ㅠㅠ

 

나도 엄마가 있다고, 진짜라며 울먹울먹 따지는 초록고양이까지 데려와 모두는 한 가족이 되어 행복하게 산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게 끝이다.

 

두 번째는 꼬마 도둑이라는 이야기다. 허당 마법사 초록고양이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 시치미를 뚝 떼고 털만 핥고 있는 고양이. 이 편에서도 첫 편에서 보았던 대화의 리듬이 반복된다. 다들 영악하지 못하고 대충 허당들이다. 허당이 주는 편안함. 난 실제로도 허당이 좋다.^^

 

세 번째 빨간 모자를 쓴 괴물이야기는 어린아이의 악몽을 다루고 있다. 결말이 얼마나 유쾌한지 모른다. 악몽을 꾼다고 하소연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60쪽도 채 안되는 얇은 분량에 이렇게 은근한 재미가 있는 이야기 세 편이 담겨있다. 어찌나 얇은지 꽂아놓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이렇게 얇은 책을 읽고 재밌다며 이렇게 서평을 구구절절 쓰고 있는 나는 나이를 거꾸로 먹어 이제 어린이의 경지에 들어선 것인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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