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장례식 아이앤북 창작동화 41
원유순 지음, 조윤주 그림 / 아이앤북(I&BOOK)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몇 년 전에 동물을 키운 적이 한 번 있다. 고슴도치였다. 아들이 다니는 영어공부방 선생님이 처치곤란인 고슴도치를 원하는 아이에게 주겠다고 하셨나보다. 그걸 가져오고 싶다고 울고불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는데, 가져와보니 그건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잔뜩 화가 나('겁이 나'가 맞나?) 온 몸을 팽팽하게 부풀리고 가시를 세운 채 쉭쉭거리는 고슴도치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처치곤란 애물단지였다. 나도 누구한테 떠넘기고 싶을 정도....
이녀석의 가시를 조금이라도 내려 준 사람은 처음에 반대하던 남편이었다. 남편은 며칠 후 암컷 한 마리를 사왔다. 한마리도 싫은데 더 사온다고 난 질색을 했지만, 얼마 후 새끼 다섯 마리가 태어났다. 남편은 그녀석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크는 과정을 사진 찍으며 애지중지 돌봤다. 첫째는 덩치 크고 순해서 곰순이, 둘째는 독일군 닮았다고 일군이.... 밤늦게 들어오면 "우리 애기들, 잘 지냈나?" 하며 도치들 집으로 향했다. 세끼 네 마리는 분양하고 아빠 엄마 도치들과 곰순이는 우리가 계속 키웠다. 곰순이를 키우니 비로소 애완동물 느낌이 조금 났다. 도치가 보여주는 최고의 사랑은 '가시를 세우지 않아주는 것'이다. 특히 남편 손에서는 절대 가시를 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도치들에게 빠져 있을 무렵, 엄마도치가 시름시름하더니 죽었다. 딸과 아들은 눈이 빨개지도록 울다가 아빠와 같이 나가 묻어주고 왔다. 얼마 있다가 아빠 도치도 죽고, 곰순이는 꽤 오래 우리와 같이 있다가 떠났다.
그러는 동안에 집에 들어오면 곰순아~ 부터 부를 정도로 정이 들기도 했지만 많은 식구, 많은 짐에 도치 집과 사육물품들은 솔직히 공간적으로 부담이었다. 곰순이가 떠나던 날, 아프다 떠난 곰순이가 불쌍해서 울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다. 모든 물건을 다 버리고 치웠다. 그 이후 아무 것도 키우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동화를 읽으며 계속 곰순이 생각이 났다. 도치 통에서 태어나 평생 거기서 살다 간 곰순이, 이뻐해 주긴 했지만 안쓰럽고 미안했던 곰순이. 솔직히 인간의 집에서 살 존재는 아니었던 고슴도치 곰순이.

작년 여름방학, 어린이문학 연수에서 원유순 선생님을 뵙고 계속 그분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말'에 선생님의 퇴직 전 경험담이 실려 있었다. 아이의 말과 태도에 머릿속이 '띵'하고 울리던 경험. 이건 아닌 것 같아 붙들고 가르쳤지만 전혀 스며들지 않는 느낌. 교사라면 이 느낌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선생님의 이 경험담은 아이들의 '곤충 기르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동화는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들 사이에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키우는 게 대유행이 되었다. 벌레 싸움을 붙이는 것도. 여기에 혹한 새봄이도 엄마를 졸라 사슴벌레를 샀고, 한동안은 이것저것 먹여가며 정성껏 돌봤다. 벌레싸움에서 이기길 고대하며 '헐크'란 이름도 지어주면서.

하지만 헐크는 새봄이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관심이 멀어진 어느날 문득, 죽어있는 헐크를 발견하게 된다. 곤충 장례식을 치르자는 친구 정택이의 제안에 뜨악한 마음으로 헐크를 가지고 나가는데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헐크는 그사이 바짝 말라 있었다. 묻어주고 정택이는 인사를 하는데 새봄이는 인사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 뭘... 이라고 생각하던 새봄이였기 때문일까? 억지로 입을 떼는데 울컥 떠오르는 생각들, 그리고 눈물.... 원유순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말씀을 그 짧은 눈물에 담았다고 생각된다.
"미안해 헐크, 잘 가. 다음에는 꼭 숲에서 태어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아예 하지 않고 있는 나보다는 훌륭한 이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이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생명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검색해보니 원유순 선생님의 다른 책들에 비해 판매지수가 높지는 않다. 그닥 눈길을 끌지 않는 책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두껍지 않으니 몇 번에 나누어 읽어주어도 좋겠다) 아이들이 무심코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생각을 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줄 것 같다.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진 아이들일수록 건강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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