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의 밤 햇살어린이 32
미야자와 겐지 지음, 양은숙 옮김, 고상미 그림 / 현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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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명한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 어린시절 TV에서 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라는데, 만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지금도 정확히 부를 수 있는 이 주제가와 신비로운 메텔과 친근한 철이의 모습만 기억이 난다. 뭔가 엄청 슬픈 느낌이었다는 것도.... 은하철도라는 모티프만 따 왔을 뿐 줄거리는 이 책과 달랐던 것 같다.

이 책은 중반부까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작가가 천천히 깔아놓은 복선은 결말 부분에 와서야 회오리치며 독자의 가슴에 무거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다. 아이들이 그걸 느끼려면 독서력이 좋거나 조금은 인내심이 있어야겠다. 아니 그건 어른인 나의 생각일 뿐일수도. 은하계를 여행하는 환상적인 내용에 아이들은 금방 빠져들 수도.

주인공이 겪은 신비로운 일이 깨어보니 꿈이었다... 동화에서 흔히 나오는 일이다. 이 작품의 은하철도 여행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꿈이었는데도 꿈으로 느껴지지 않는(등장인물 뿐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조차도), 꿈과 현실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은 참 강렬했다. 그건 마치 이 세상과 죽음 저편의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내게 그런 느낌을 준 첫번째 책은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마지막 권인 <마지막 전투>였다. 난 거기서 천국의 모습의 끄트머리자락의 일부를 보았다. 인간의 능력으로 더이상의 묘사는 무리겠다 생각했다.

나니아 연대기와는 매우 다르지만 난 여기서도 비슷한 느낌을 맛봤다. 나의 감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고 어찌 확신하랴. 은하열차에 탔던 청년과 두 아이는 남십자성에서 내려 엄마가 계신 천국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경건했고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슬프진 않았다. 나도 그렇게 기차에 몸을 싣듯 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 기차는 그냥 올라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주어진 일을 다 해야 되는 것, 그게 설령 고통이라 해도.... 내게 남겨진 삶이 약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가는 길은 가볍고 경건할 거라는 소망의 그림자를 조금 보는 듯했다. 좀더 아름답게 살아야 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조반니라는 아주 가난한 소년이다. 아버지는 실종되었고 어머니는 병들어 아이의 어깨에 올려진 삶의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아이들은 소년을 놀리고 따돌릴 뿐 마음을 나눌 친구라고는 캄파넬라 한 명 뿐이다.
그날은 은하축제가 있는 날이라 아이들은 등불 띄우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조반니는 몇 푼 돈을 위해 인쇄소에서 일을 하고 어머니를 돌본다. 저녁에 어머니를 위해 우유를 받으러 나왔다가 언덕에서 그 기차를 만난다.
어느새 조반니는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었고 앞에는 캄파넬라가 앉아있었다.
「바로 앞자리에 키 큰 아이가 앉아 있는데, 새까만 윗옷은 물기가 척척해 보였습니다.」
"엄마가.... 날.... 용서해 주실까?"
"그래도 누구든 진짜로 좋은 일을 하면 가장 행복한 거잖아. 그러니 엄마도 날 용서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

별 생각없이 넘겼던 이런 내용들은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이었다. 열차여행의 마지막에 캄파넬라마저 사라져 울부짖던 조반니는 언덕에서 잠들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또 알게 되는 사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한 캄파넬라가 물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 현실처럼 생생한 꿈에서 조반니는 캄파넬라를 배웅했다는 것, 그리고 또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것을.

여행 중 만난 전갈자리에서 그들이 부여한 의미가 참 무겁다. 모두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태워 불을 밝히고 있는 전갈자리. 작가는 이 작품을 7년이나 품고 있었지만 결국 미완성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무겁다. 자신의 삶이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그래서 그는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서평 또한 쓰기 어려운 책이다. 시작은 했으나 어찌 끝맺을지 모르겠다. 저 너머의 세계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이 세상을 본다. 나는 좀 달라져야 하는데... 라고 생각한다. 미야자와 겐지가 생각한 행복은 이만저만 어려운 행복이 아니다. 평생 그 끝자락이라도 만질까말까한 행복.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거기에 머물러야 함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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