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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양이 가장의 기묘한 돈벌이 1~2 세트 - 전2권 ㅣ 보름달문고
보린 지음, 버드폴더 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9월
평점 :
동화를 영화에 비유하자면 예술영화 독립영화 단편영화 등등 많겠는데, 이 동화는 영화 느낌은 아니다. 그럼 뭐? 드라마, 드라마다! 현실과 판타지가 적절히 어우러진, 에이 저게 말이 돼? 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입소문을 듣고 전편을 몰아서 보기도 하는 화제작 드라마.
보린이라는 작가를 몰랐던 나는 이 책을 외국작품으로 오해할 뻔했다. 그림작가 이름도 외국이름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고양이 가장'에서 '가장'이 고양이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우리집 가장이다' 할 때의 그 가장이었다. 즉 고양이가 이 집의 가장이란 뜻이다. 어떤 황당한 설정인 걸까?
지하 단칸방에 철든 딸(심메리)과 한심한 애비(심병호)가 살고 있는데 어느날 아빠는 가장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음유시인이 되고 싶다나 뭐라나. 딸한테 넘어갔던 가장 자리는 고양이(꽃님이)한테까지 떠밀리는데 이때 고양이의 반응,
"좋소이다."
"이 몸이 한번 해 보겠소이다."
이로부터 구질한 현실에 뿌리를 댄 긴박하고 환상적인 판타지가 펼쳐진다.
고양이의 말투가 너무 맘에 든다. 이보다 더 믿음직하고 멋질 수가 없다. "알겠소이까? 그리 생각하란 말이외다."와 같은 말투. 그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이름 꽃님이.(이 이름은 내 첫조카의 어릴때 애칭. 남성적 검은 고양이와는 너무나 맞지 않아 더욱 재밌는 이름이다)
가장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돈을 벌러 나갔던 꽃님이는 하나밖에 없는 방의 월세 고객으로 여우를 유치해 오는데, 곰팡내 가득한 그 방에 자그마치 백만원을 지불한단다. 그것도 월세가 아닌 일세로! 횡재를 맞아 좋아하던 부녀는 여우의 수수께끼 같은 올가미에 깊이 빠져들고 마는데.... 철없는 그들의 정신을 들게 해주는 건 역시 꽃님이의 존재. 결국 돈을 계속 벌 순 없었지만 제자리로 돌아올 수는 있었다. 이렇게 해서 1권 [여우 양복점]의 에피소드는 마무리.
하지만 그냥 끝나면 드라마가 아니지. 뭔 일이 터지고 헉! 이걸 어째 할 때 끝나야 다음편을 기다릴 게 아닌가. 병호 씨의 폰으로 문자가 온다. 자그마치 15,324,000원을 사용했다는 카드사의 문자였다. 여우 사건은 후유증을 남겼다. 그들 부녀의 인두겁을 쓴 자들의 짓이다. 이렇게 해서 사건은 2권으로 넘어간다.
2권의 제목은 [황천택배 헬택배]이다. 택배 아저씨를 선망의 눈으로 보는 메리 앞에 어느날 꽃님이는 택배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 택배원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택배 회사는 이세상에 있는게 아니었다. 황천에 있었다.
무릇 눈을 뗄 수 없는 옛이야기들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금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걸 안 깨면 얘기가 안되잖아? 1권에서도 그랬지만 2권에서도 병호씨와 메리는 꽃님이가 정한 금기를 깨고, 어쩔 수 없이 꽃님이까지도 사건에 휘말린다. 하지만 꽃님이는 만만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꽃님이는 황천에서는 알아주는 아주 오래된 '어르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꽃님이가 왜 인간 세상의 메리네 집에 머무르며 고생을 자처할까? 지우지 않는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을 처음으로 꺼내놓는 꽃님이의 모습이 아프고도 쓸쓸했다. 세상사는 부질없지만 또 그만큼 소중하기도 한 것. 다 지우면 편하겠지만 그러면 우리에겐 무엇이 남을까?
이 코믹환상황당 드라마 같은 동화는 전혀 교훈 같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인간사의 모순된 면을 보여준다. 내가 볼 땐 그게 이 동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 근데, 나름 힘들게 몰아보기로 전편을 다 봤더니,
"이 다음은 3권에서"
라고 끝나는 것 아닌가. 다음 무대는 박스시티팩토리인 것만 살짝 보여주면서.
드라마는 계속된다. 근데 반칙이다. 연속극이 이렇게 중간에 쉬는 법이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