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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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를 즐겨보던 내가 옛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환희 님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읽고부터였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나에게 가장 강렬히 다가온 것은 옛이야기의 심리적 가치에 관한 내용이다. 구전된 이야기들의 각편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화소들의 심층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들어있으며 놀라운 심리적 가치로 아이들의 내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각각의 상징성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어서 읽은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이라는 책이었는데 세계 곳곳 전혀 무관하게 떨어진 지역에서도 화소가 유사한 이야기들이 전승되어 왔다는 것을 신데렐라를 예로 들어 알려주었다. 또한 그 화소들이 잔인하거나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아이들의 통과의례에 꼭 필요한 장치이니 그대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내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번째로 읽은 책이 이 책의 저자인 신동흔 교수의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었다. 위의 책들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으로, 특히 우리 옛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의 여정이 우리 심리에 주는 힘이 무척 크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얼마전 인터넷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이분의 책이 또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온지 2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이분의 책은 구수한 육성으로 듣는 듯하다. 친근하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왜 주인공들은 모두 길을 떠날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많은 옛이야기들을 '길떠남'의 관점에서 조명했다. 저자의 시각이 매우 새로우면서도 이야기와 삶에 대한 통찰이 탁월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가믄장아기> 이야기에서 두 언니는 결국 지네와 버섯이 되는데 이를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나이가 들도록 부모의 품에 머물러 거기 의존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온전한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없다. 그건 차라리 지네나 버섯의 삶에 가깝다." (본문61쪽)
또한 형제들과 부모의 간을 빼먹은 <여우누이>를 보고 저자는 부모의 품이 완전한 독이 된 경우라고 해석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보호 속에서, 어떤 잘못도 다 용인되는 안온한 품 속에서 원하는 바를 다 얻으며 자란 아이들이 바로 여우 딸이 되고 여우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괴물이 된 아이는 쉽사리 돌이켜지지 않는다. 바깥에 나가면 아무것도 못하니 누가 그를 받아주겠나. 결국 부모형제가 가진 걸 자꾸 빼먹으려 든다는 것이다. 학급에서 만났던 몇몇 아이들이 떠오르면서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악어 아들>은 잘못된 사랑의 비극을 말해준다. 잘못된 사랑이라니. 부모는 악어아들이 커져서 떠난 후에도 매일 불러다 먹이를 주었을 뿐인데... 그러나 자식을 떠나보냈으면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서게 해야 한다. 나아갈 때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다.

익히 아는 <효녀심청>이야기도 저자는 길떠남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길떠남으로서 청 뿐 아니라 심봉사도 행복을 얻게 되었다. 무거운 책임감만으로 자리를 지켰으면 끝내 얻을 수 없었을 행복을.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의 전설을 보면 부모를 떠나는 앙가라는 무참한 비극을 맞는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은 때가 되면 놔주는 것이 답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식은 때가 되면 부모 품을 떠나 자기 삶을 사는 것이 답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쭉 읽다보니 아주 괴상하고 엉뚱하며 대책없는 우리 아들이 실제로는 이야기 속의 트릭스터와 같은 존재였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ㅎㅎㅎ 중딩 때부터 우리 아들의 입에 붙어 있던 말 "내가 알아서 할게" 지가 알아서 깨지고, 지가 알아서 실패하고, 지가 알아서 실수하고? 일찌감치 엄마손을 거부한 아들은 지금도 민담의 주인공들처럼 때로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빠져 자고, 때로는 벌떡 일어나 좌충우돌 하는데 그 와중에 이 엄마로선 상상도 못해본 길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더 살아보면 알려나? 내 뜻은 아니었지만 내 품에서 일찍 튀어나간(길을 떠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는 것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길떠난 주인공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어딘가에 정착하게 된다. 떠남이 있으면 머무름도 있는 것이 인생사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차피 돌아올 것을 굳이 힘들여 떠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같은 곳으로 돌아왔어도 돌아온 그는 이미 떠날 때의 그가 아니다. 세상 많은 것을 품게 된 그는 이제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존재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길떠남의 원리를 제시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혼자 떠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참여행이다 혼자 떠나야만 자기 뜻대로 길을 나아가 자기가 뜻한 바를 자유롭게 행할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 망설이거나 몸을 사리지 말고 일단 부딪친다. 이런 캐릭터를 저자는 민담형 인간이라고 명하면서 반대의 캐릭터를 소설형 인간이라고 했다. 머리속으로는 만리장성도 쌓지만 생각만 많아 선뜻 움직이지는 못하는 - 바로 나같은 사람이다. 길을 떠나려면 이래서는 안된다.
-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에 도전한다.

길떠남. 낯선 두려움을 주는 이 단어. 이 말은 비단 여행만을 일컫는 말은 아닐 터. 중년의 나에게도 길떠남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갈무리가 더 적절할 이 나이에도 나는 떠남을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한편, 투박하고 거칠어보이는 옛이야기에 이렇게 깊은 인생의 진리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재미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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