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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질러, 운동장 ㅣ 창비아동문고 279
진형민 지음, 이한솔 그림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이현 님의 야구동화 <플레이볼>을 재밌게 읽은 내게 이 책이 또 눈에 띄었다. 표지만 보아도 딱! 야구동화였다. 그런데 읽어보니, 정통 야구이야기라 볼수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막야구' 이야기라고 할까. 아님 제목대로 운동장 이야기라고 할까.^^
세상에서 야구가 가장 재미있는 김동해는 학교 야구부에 들어갔다가 쫓겨난다. 중요한 시합에서 자기네 팀이 아웃된 걸 솔직하게 말했다가 팀과 감독님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공을 좋아하는 공희주는 야구부에 들어가려 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두 아이는 야구에 대한 미련으로 운동장을 서성대다 만나 의기투합하게 된다. "우리도 야구부를 만들자!!"
현관에 공고문을 붙이는 일부터가 이들에겐 난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의 야구부는 "막야구부"가 된다. 근데 아주 딱맞는 작명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가진 건 공밖에 없는 이 아이들은 신발주머니를 베이스로, 모자를 글러브로 사용해야 했고, 배트 대신 주먹으로 공을 쳤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인원과 구성원이지만 상황에 맞춰 경기를 진행하면 되었다. 감독도 교사도 심판도 없지만 문제될 게 없었다. 이렇게 어설퍼도 신나는 막야구는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날마다 계속되었다.
여기에 브레이크가 걸렸으니, 김동해를 쫓아낸 그 감독님이 운동장 사용을 금지시킨 것이다. '학교의 명예를 지키는' 야구부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로. 막야구부가 굽히지 않자 이번에는 운동장 넓이를 전교생 수로 나눠 그중 막야구부 인원수 만큼만 사용하라고 한다. 그 어려운 계산을 마치고 따져보니, 야구를 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공간이 아닌가!
고민하던 아이들은 방법을 찾았다. 부원을 늘리면 면적도 따라서 늘어나는 것. 이들은 부원 확장 작전에 들어갔다. 여기에 수학학원 원장인 공희주 아빠에게서 빼내온 족집게 수학문제가 주효했다. 선생인 나는 이 부분을 그냥 흘려볼 수가 없었는데, 정답지가 없는 쪽집게 문제를 풀면서 저절로 협동학습과 반복학습과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과정을 흥미있게 지켜보았다. 학습의 장소는 교실이 아닌 '운동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많은 부원을 확보한 막야구부는 운동장을 많이 차지하게 된다.
이 책에선 흥미진진한 경기장면이 마지막에 한번 나온다. 운동장 사용을 두고 벌이는 야구부와 막야구부의 한판 대결! 종목은 막야구!^^ 과연 결과는??
작가가 제목에 '운동장'을 넣은 이유를 짐작해본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일차적인 공간이 바로 운동장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운동장마저 아이들에게 온전히 주지 못한다. "축구나 야구같은 구기종목 금지" 이건 우리 학교 점심시간과 방과후의 운동장 사용 지침이다.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지나가다 공에 맞아 다친 사건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고 그 중에 한 건은 꽤 심각한 부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내려지는 조치는 늘 이렇다.
"금지".
방과 후 운동장이나 놀이터에서 맘껏 뛰놀다 저녁 먹으러 집에 들어가는 아이는 이 시대에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놓아먹이는 말 같은 희귀한 아이가 지금 우리반에 둘이나 있다. 무척 건강한 아이들이겠지? 슬프게도, 모든 관계적 문제들과 사소한 비행들이 모두 이 아이들의 손끝에서 나온다. 부모님을 불러 상담할 때 아이를 좀 관리해 주십사 부탁하는 말은 운동장에서 데려가라는 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말이었고, 나는 이 과정에서 자괴감을 심하게 느꼈다. 모두가 운동장에 있다면 이런 고민을 안해도 되는게 아닐까?
교사들을 위한 놀이연수도 많고 책도 많이 나왔다. 막야구부가 날마다 마음껏 경기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굳이 그런게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놓아먹이는 아이들에게만 말고, 모두에게 운동장을 돌려주는 길은 없을까? 이 재미있고 상큼한 책으로 작가가 던져준 화두가 무척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