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인형의 집에서 일공일삼 14
김향이 지음, 김보라 그림 / 비룡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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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매우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동시에 좀 기괴한 느낌도 예상했다. 모두가 잠든 사이에 인형들은 움직인다.... 이런 으스스한 이야기들은 꽤 많지 않은가?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인형들이 움직이는 것은 맞다. 하지만 기괴하다기 보다는 눈물겨9운 느낌이었다. 인형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어서.... 케이트 디카밀로의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에서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이 동화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주인공 인형들은 모두 인형할머니의 손에 의해 한곳에 모이게 되는데, 그 '인형할머니'는 바로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인형을 수집하고 제작하고 수선하며 인형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대단한 애착이다. 이런 분들은 수집품에 생명이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먹지도 숨쉬지도 않으며 생각도 하지 않는 무생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애착을 보일 수 있겠는가? 그 상상 가운데서 인형할머니는 행복하고 외롭지 않다. 그리고 그 상상이 이런 동화를 쓰게 했을 것이다.

돌스하우스라는 인형의 집에 할머니는 여기저기서 구한 인형을 넣어주었다. 4인가족으로. 그들은 담담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아들인 엔디부터 딸인 잉에까지.

엔디는 깊은 숲속에 단둘이 살던 할아버지가 외로운 할머니를 위해 깎아 만든 인형이다. 어느 폭설이 내린 날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찾아나선 할머니 또한 돌아오지 않았다. 수없는 계절을 엔디는 노부부를 기다리며 그 오두막에 버려져 있었다.

엄마는 인디언 인형이다. 한 인디언 소녀의 어린시절부터 혼인날까지 함께 했던 이 인형은, 바로 그 혼인날 백인 침입자들에 의해 가족 모두가 죽고 마을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아빠는 꼬마신사 인형이다. 이 인형은 아이의 손에서 사랑받을 사이도 없이 범죄에 이용되었다. 가정폭력과 그를 피해 도망가는 여인의 모습도 나온다. 자세한 상황묘사는 없지만 가슴이 조였다.

딸 잉에는 돌스하우스에 걸맞는 고급 인형이다. 그 가족 역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움직이거나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러다 잉에는 맨홀로 빠지는 엄청난 사고를 당한다. 거기서 늙은 시궁쥐를 만나는 첫 장면은 끔찍하다. 하지만 외로운 존재들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법. 시궁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잉에에게 베푼다. 비록 그것은 이별이었지만.

가슴아픈 이별의 주인공들은 돌스하우스에서 가족으로 만났다. 누구보다 인형을 사랑하는 인형할머니의 손길 아래 있으니 이들은 이제 슬프지 않으리라. 이들이 겪은 인간사의 단면들은 너무 슬퍼서, 죽음이니, 늙음이니, 폭력이니, 이별이니 하는 것들을 내게 떠올리게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을 겪은 댓가로 이제는 행복하기 바란다.

김향이 님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며 읽은 편은 아니었는데, 역시 상당한 내공이 있음을 이 작품을 읽으며 확인하게 됐다. 이전에 읽은 작품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작가가 부럽다. 할머니의 연세에 이렇게 몰입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하나하나 이루어가며 그것이 행복한 상상을 동반한다는 것이.

아직 할머니도 되지 않은 중년의 나는 모든 상상에 가지를 쳤더니 삐쩍 남은 줄기만 남았다. 그 줄기 사이로 보는 세상이 살풍경하다. 이 책에서 이야기했던 늙음과 이별, 사랑과 죽음. 이것들을 나는 어떤 마음으로 맞을 것인가. 마음 한구석을 저릿하게 하는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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